|
신채식 선생님은 중국 통사를 한눈에 개관할 수 있는 교과서 그 고전으로까지 평가되었던 <동양사 개론>의 저자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압축적이고 정확한 서술, 단아한 문장의 미덕에 힘 입어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용도로 다양한 목적을 가진 학습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랑 받아 왔습니다.
이 책은 오대 십국으로 통칭되는 길지 않았던 분열기를 끝내고 옛 위나라의 도읍이었던 변경(카이펑)에서 새 체제를 세운 송 제국, 그 정치적 시스템 안에서 황제 독재권의 위상과 의의에 대해 고찰했습니다. 우선 "제목"은 "송대"라고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시대 고찰 범위는 남송은 거의 제외된 북송대(정강의 변 이전까지)로 다소 한정되었습니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제가 과연 송 제국 들어 황제 독재권이 (이전 재상과 상서 등 고관의 참여와 조언 권력의 현저한 약화를 초래하면서까지) 이론적으로, 또 실제 운용상에서, 공히 강화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느냐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개 망명 정권인 남송의 황제 독재권을 서술 중 커버하기란, 본 취지에도 그리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분석의 실익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시되기 때문이 아닐지, 일개 독자 입장에서 저 나름대로 짐작해 봤습니다. "남송대의 사정"이 전혀 다뤄지지 않는 건 아닌데, 이는 정통의 당당한 계승이라기보다는 "대안 체제의 변칙적 등장"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송 제국의 실질적 멸망은 이미 여진(금 제국)에 의해 세워진 괴뢰국 제, 초 등에 의해 완결되었다고 봤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오대 십국의 분열기를 극복하고 강력한 중화 문화권 중심의 통일 체제에 대한 기대를 업고 등장한 게 송 제국이라고 서평 중에 적었습니다만, 1) 송의 등장은 분열과 혼란의 오대의 극복이란 의의만 갖는 게 아니라, 그 앞 만당기의 지리멸렬상과 현저한 국위의 추락까지 고루 만회하고자 한 설욕과 반성의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저자께서도 지적하시듯 오대는 치욕의 암흑기에 불과하기만 했던가, 아니면 조광윤의 카이펑 정권과 어느 정도 연속선상에 놓인 과도기적 모태였던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활발한 실정입니다. 나아가 이는 오대 십국기를 직전 사실상 느릿한 해체 도상에 놓였던 말당과 더 친연관계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고 그 나름 의욕에 가득한 출발상을 보였던 송 제국과 더 밀착한 성격으로 볼 것인가의 딜레마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2) 다음으로, 황제 독재권의 강화는 특히 조광윤 즉위 직후의 "배주석병권" 조치라는 전설적 일화와 관련하여 그 의의가 과장되어 유포, 유행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와 유비 관계에 놓일 만한 것이 이후 명 제국 성립 직후의 내각 대학사 제도 도입과 관련한 재상제 전폐, (역시 같은 명칭의) 황제 독재권 강화 조치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경과를 잘 보아서 아는 바입니다만, 명나라 역시 초기에는 주원장의 세심한 내치 관할(그는 천자로서는 이례적이게도 마치 말단 공무원이 행정 서사[庶事]를 돌보듯 친히 업무를 챙겼는데,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신채식 저 <동양사개론>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스타일로 인해 자연스레 재상(직제 설치의 형식 여부와 무관하게)이 업무 처결에 낄 여지가 없었습니다. 또한 영락제 같은 강력한 정복 군주가 등장하기도 했고요. 이러던 게 후대로 갈수록 무능한 암군이 속속 제위를 이으면서, 장거정 같은 카리스마형 독재 행정가가 등장하여 그 전대의 양상과 별반 차이도 없는, 학자형 경세가의 내정 통할이라는 익숙한 패턴이 또다시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북송은 과연 그 전, 그리고 그 후의 이런 재상과 관료의 참여, 더 나아가 전횡을 막을 만큼 황제의 제도적 권력과 실질적 운용상이 차별화되었던가? 저자는 여러 증거를 들며, 종래의 통념에 대한 찬반 양론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요약, 설명합니다. 중국사 특유의 노숙한 개성과 방대한 규모의 관료제란 사실상 거대 제국을 떠받드는 핵심 메커니즘이었으며, 이는 군주의 기량과 포부, 비전, 개인적 영민함 여부와 무관하게 언제나 정치, 사회, 경제, 조세 정책을 추동하는 본체로 군림했음이 전 역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고도 하겠습니다.
신채식 저작집 총서 기획 중의 한 권이며, 의외로 전자책 포맷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읽어 보실 분들은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포털 재개시 주소 http://blog.naver.com/gloria045/2210727034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