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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들려오는 자성의 목소리
가장 최근에 소개팅을 했던 아가씨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흔히 소개팅이 가지는 함정인 랜덤이 아닌 본인이 졸라서 성사시켰던 일인지라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던 분이라 잘되었을법도 한데 결과는 그와 정반대였다. 그 불안한 전주곡은 처음건넨 하는일에 관한 인삿말에서 시작이 되었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건 일부분의 이야기이고 그로인해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서 아픈이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들과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우던 장기려 박사님, 그리고 지금 당장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계셨다면 노벨평화상이 유력했다던 아프리카에서 병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며 오지에서 죽어가신 그 의사 선생님 등 전체를 호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라며..
특히 지금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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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업에 종사하던 이가 저널리스트가 되면서 이다지도 시니컬하고, 배배 꼬인 심사를 드러낼 수 있나 충격적이었다. 과거 한때나마 자신이 종사했던 업종의 관계자 즉 의사들에 대한 작가의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상당히 가혹했다. 그들은 신이 아니다. 돈만을 바라본다, 환자에 대한 연민이나 애정이 없다. 친절한 마음을 가져라 등등 작가는 자신조차도 벗어버린 의사가운을 입은 많은 의사들에게 퍽도 많은 주문을 해댄다. 그렇게 잘할것 같으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선량하고 친절한 의사의 업을 수행하지, 무슨 지적에 공격이 이토록 가혹하게 쇄도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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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고나서는 약물이니 질병이니.. 이런것들에 관해 굉장히예민해졌다. 하나의 약품에 동반되는 수많은 부작용들.. 이러한 부작용들이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나 나나 몸이 아플때 기댈곳은 병원이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다. 나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대해 한두가지 불만을 갖은적이 있었을것이다. 그중에서 내 머리속에 아직까지 기억이 남는 의사가 있다. 너무 오래되서 이름이며 위치까지는 잊었지만 의사가 내게한말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나는 그당시 귀에서이상하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엄마에게 말했고 (그때당시 정확하진 않지만 중학교 1~2학년 이었을것이다.) 그런내가 걱정된 엄마는 나를 병원으로 대리고 가셨다. 나는 의사선생님께 귀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나는거 같다고 하니까 의사는 자세한 진찰도 안해보고 그런 소리가 나는거 같으면 정신과로 가야죠~ 허허 하고 웃어버리셨다. 어린나는 굉장한 충격이었고 두번다시 그말을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윙윙거리던 소리가 안나는건 아녔다. 여전히 지금도 가끔 귀가 윙~ 소리를 내곤한다. 그당시에 나는 정신과라는것이 소위말해 미친 사람들만 가는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충격은 더 컸던것 같다. 지금이야 정신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긍정적으로보지만 말이다.
이책은 내게 생각하기도 싫은 위의 의사를 생각나게했다. 설령 내가말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정신과로 가는게 맞다고 해도 그분은 어린나에게 적어도 그런식으로 말하진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웃지도 말았어야 했고.. 얼마나 걱정되서 찾아온건지, 가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한 환자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은 처사로밖에 여겨지질 않는다. 이책은 마음아프게도 위와 같은 의사들이 참으로 많다는것을 알려준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을텐데.. 자신을위해 애써주시는 의사를 존경하는 환자를 두고 그들은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게 마땅한데 오히려 고개를 빧빧이 들었다. 모름을 무시하고 알고자하는 궁금함과 걱정을 짓밟았다. 병원에가서 마음이 더 답답해짐을 경험한 사람은 응당 나뿐만은 아니라는것을 이책을통해 알게되었다. 왜 그럴수밖에 없는지.. 의학이란학문이 끊임없이 진보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학문]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학문]을 끊임없이 위로 위로 끌고 올라가는 와중에 정작 [학문]의 목적인 환자는 등한시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도 다행인건 점차 겸손해지고 올바로 행하는 의사들이 있고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전의 산부인과 의사들의 양심선언만 해도 그렇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소중한 직업을 행함에 있어 낙태라는 생명을 죽이는 일을 행함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누가원한것도 아닌데 스스로 양심선언을 하고 올바로 바꿔지기를 희망하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게 시작일것이다. 점차 훌륭한 마음을 가진 의사들이 내주변에 하나둘 늘어나갈것을 기대하고 또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는거와 모르고 당하는것중 나는 알고 당하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기에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우리보다 우리의 몸을 더 자세히 공부한 흰 가운의 그분들이 조금더 약자를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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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쓴 시간: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자: 지: 내겐 너무 싱거운 얘기다. 의학의 문제점, 의료시스템의 불합리, 의사들의 자질 문제 등등을 익히 잘 앍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적어도 기존의 의학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더 좋은 방향을 찾기 위한 모색이요, 충고요, 조언이다. 적어도 의료계는 이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진정 사람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야만 한다. 서양식 의료체계를 맹신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의료 문제점을 명확히 알게 되면 미래에 본인의 치료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서양의학을 맹신하다가 큰 일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의 병은 자기 스스로 예방, 치료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나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지금 온 나라가 무척 소란스럽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두고 정부와 국민이 가부를 가리는 씨름을 하느냐 야단법석이다. 미국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조건없이 전격적으로 수입하려고 추진했던 정부에 국민들이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거듭되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성난 국민들의 촛불은 시들지 않고 있다. 이 정부는 며칠 전 반성의 사과문 발표도 무색하게 정부는 추가협상을 잘 했다고 자찬하며 고시강행을 하고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반대하는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강경 진압하고 있다. 도대체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의학을 맹신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을 신봉하지도 않는다. 의학은 인간의 병을 완전하게 치료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물질세계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우주와 지구 그리고 인간의 존재원리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의학과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섭취에 따른 인간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이 극히 미미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면서 정부가 연령, 부위를 가리지 않고 수입하려고 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인간광우병에 걸릴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광우병에 걸린 경우 100% 사망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누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싸다는 이유로만,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해서든 미국 쇠고기를 사먹겠는가 말이다. 현대 의학으로도 절대로 고칠 수 없는 인간 광우병에 도박을 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왜 국민들의 생명권을 무시하며 정부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욕이 있거나 미국과 검은 커넥션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왜 저리 무리수를 두려고 하겠는가. 훗날 역사가 심판하지 않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어리석다. 이 대통령은 이미 실패한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쫓아가려고 안달이 되어 있다. 미국이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여 지속 가능한 경제제도로서 당위성을 상실한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무조건 쫓아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앞뒤 재보지도 않고 따라 하려고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면 절대 추종하지 않을 것인데도 말이다.
![]() 사실상 미국은 실패한 국가다. 오늘날 세계경제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도 어떠한 규제나 제한도 없이 시장에 맡긴 미국의 선진금융기법이 한 원인이다.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변형된 파생금융상품들을 개발하여 마구잡이로 전세계에 유통시킨 결과가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미국은 의학계도 각종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다. 오로지 가진 자만을 위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제도가 인간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뿌리깊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즈니스 만능이다. 유관업계의 강력한 로비로 과학과 진실이 왜곡되고 과장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미국은 무기, 식량, 금융을 가지고 세계를 흔들고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미국적인 것을 멀리하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야만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사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진실은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에 숨어있다. 미국의 목축업자들이 정.관계에 강력하게 로비를 하여 자신의 불량 상품을 전세계에 유통시키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다. 미국 목축업자들과 가공 수출업체들은 생산성과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여 가축들을 부자연스럽게 사육하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을 추진한다면 결코 취하지 않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소의 성장을 촉진하고 고기 맛을 좋게 한다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만 아니라면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소에게 소고기를 먹일 생각을 하였겠는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추악한 짓이다. 당연히 소는 초식동물로 풀을 먹고 자라야만 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도 없는 짓을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큰 범죄이다. 자연은 이에 대해 광우병이라는 천벌을 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충분히 반성하고 경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은 소고기를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고 그 동물들을 잡아 다시 소의 사료로 쓰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비인도적인 짓을 계속 저지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비즈니스 때문인 것이다. 빨리 소고기를 대량생산해서 많이 유통을 시켜야만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익을 위해서 정부에 로비를 하고, 그들의 정부는 힘이 약한 국가인 우리나라와 비상식적인 ‘비즈니스 계약’을 추진했던 것이다. 거래는 계약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야만 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제해서는 거래가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불공정 거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어느 국가의 사람들이라도 광우병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쇠고기를 섭취할 완전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일방의 비즈니스 논리로 이런 불공평한 거래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미국이 비즈니스 논리에 의해 과학이나 사실이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과학을 맹신하지도 않을 것이고, 의학도 맹신하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는 모든 것을 위협할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한다. 비즈니스는 정상괘도를 벗어나면 인류의 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상품의 구매는 구매자의 자유다. 아니 권리다. 자유의지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거나 취소하거나 할 수 있다. 개인간의 거래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거래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미국과의 소고기 수입 협상을 보면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미국 소고기가 품질이 나쁘더라도 우리에게는 수입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 도대체 이런 이상한 거래방식이 어디에 있는가. 이런 터무니 없는 계약을 계약이라고 체결하고 국민들에게 인정하라고 강요를 하는 정부가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명히 우리는 어떤 상품도 구매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구매자는 통상 하자가 있으면 즉시 반품할 권리를 갖는다. 미국 소고기가 광우병이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더 철저한 위생규정을 적용해 수입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구매자인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쌍무적이지도 않고, 호혜적이지도 않고, 일방적인 이런 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깡패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할 짓이 못 되는 것이다. 창피해서 도무지 고개들 들지 못할 방식이다. 이런 터무니 없는 협상에 싸인을 한 정부를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제정신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불합리한 계약은 당장 파기해야만 한다. 별 요상한 논리를 세우는 사람들이 다 있다. 우리나라 소고기도 광우병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을 하면서 미국 쇠고기를 수입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정신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마치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외도를 밥먹듯 하니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와 같다. 한우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미국 쇠고기 수입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말이다. 이는 또 다음과 같은 비유와 유사하다. 어떤 외부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겁탈했다. 그래서 법에 호소를 하니 그 외부인이 하는 소리가 “네 자신도 가끔은 (아내 뜻에 반하여) 아내를 겁탈하지 않느냐”하고 항변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서 동네 이장의 판단에 따라서 겁탈 유무를 정확하게 가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완전히 무식한 논리가 아닌가? 그러면서 광우병 걸릴 과학적인 확률을 거론하고 있다. 미친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한다. 모든 것에 과학적 논리를 적용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생명 존중의 정신을 배워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생명이 걸린 것처럼 말이다. 0.0001%의 확률이라도 내게 해당되면 100%인 것이다. 통계나 확률은 남 일을 무관심하게 얘기할 때나 쓸 수 있는 용어일 뿐이다. 제가 죽는다고 해도 태연하게 ‘나에게 확률이라는 과학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칠 미친 과학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이번 사태는 모든 것을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보는 자들이 벌이는 무모한 도박이다. 자신의 사적 목적을 위해서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위험한 짓이다. 세상은 하나의 관점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과학이나, 비즈니스가 만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에 걸려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에겐 돈이나 명예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건강이, 생명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사람에게 과학이나 확률은 미신과 같이 어리석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을 맹신하는 것처럼 서양의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의학인 인간의 존재 원리를 명백하게 밝히지 못했는데도 서양의학이 과학적이라며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하게 단언하지만 동양의학은 50점은 된다. 하지만 서양의학은 30점짜리이다. 아니 20점쯤이나 될까? 서양의학은 한의학 등 동양의학을 대체의학으로 치부하고 있다. 의학이 바로 설려면 동양의학이 주가 되고, 서양의학이 부가 되어 급한 외과적 수술이나 세균 등에 의한 전염병에나 적용되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의학이 완전해 질 것이다. 나는 전에도 현대의학을 비판하는 책을 읽어보았다. 의사가 쓴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이란 책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서양의학을 얼마나 믿어야 좋을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은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해보시길 바란다.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read&premode=list&page=1&ftype=2&fval=의학&backdepth=&seq=80&num=1 도대체 현대 서양의학을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까. 과연 서양의학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질병에 걸렸을 때 안심하고 서양의학적 치료에 기댈 수 있을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보는 서양의학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과연 서양의학 믿을만한지 알아보고 자신의 질병을 치료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 나아가 참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보자. …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책 읽은 시간> 자: 지: <책 읽은 계기> RG에서 의학에 관한 책 더블 리뷰가 있어 건강에 대한 글을 써보기 위해 읽었다. 이 책은 너무 약하다. 인간의 생명을 취급하는 것은 의학이기보다는 의술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즉 인간적인 측면을 잘 고려하는 의술이 진정한 의학이라는 것이다. 나는 현대 서양의학을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는 북두칠성에 치성을 드리는 미신을 믿겠다. 사실 인간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즉 정신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니 몸뚱이만 치료하는 서양의학은 반푼이도 못 되는 것이다. 98년도인가 99년인가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간 일이 있다. 아니 처음에는 안과엘 갔다. 싸움을 하다가 눈텡이가 밤텡이가 되어서 눈에 핏줄이 서서 겁이 나서 안과엘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핏줄이 섰던 것이라 그냥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았을 것인데 병원엘 가는 바람에 생고생을 했다. 그런데 안과엘 다니다가 눈병이 옮아서 치료가 하되 안 되어 종합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종합병원에도 두어 달을 다녔나 보다. 세상에 눈에 핏발이 서서 그걸 치료하려다 병원에 갔다가 3~4개월씩이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눈병 치료하려다가 무좀이 나았다는 것이다.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 아닌가. 아무튼 그 때 종합병원에 다닐 때는 특진을 신청했는데도 1시간 30분씩이나 기다려서 1분 정도밖에 진찰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터무니 없는 ‘썩을’ 의료시스템에 얼마나 분개를 했는지 모른다. 병을 치료하려다가 오히려 병에 걸리고, 돈과 시간만 무진장 날렸으니 얼마나 속이 터졌겠는가. 나는 구안와사라는 병에 걸린 적이 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신경외과의사인 친구가 경고를 하였지만 병원엘 가지 않았다. 또 가족들이 난리를 치고 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버텼다. 1~2개월 지나니 자연스럽게 신경마비가 풀렸다. 심한 목감기에 걸리기도 했고, 몸살을 심하게 앓은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8년 동안 한번도 병원이나 한의원에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병원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인간은 자연치유력이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거기 음흉하게 비즈니스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 현대사회에는 돈이 압력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의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생산성이 높지 않으면 안 된다. 병원도 돈을 많이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가 무조건 신뢰하고 있는 의학 과연 안전한가. 마땅히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여기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이라는 책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두려운 정도가 아니다. 전에 읽었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이라는 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이 책은 현대 서양의학의 근본적인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학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조금 더 배려했으면 좋을 인간적인 측면이나 어쩌다가 일어나는 실수들을 부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그렇게 두려운 이야기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환자의 인간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의사들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여러가지 의료 시스템적 문제점을 읽는 사이 의료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환자들을 길들이는 방법이라든지, 수입이 안 되는 환자들을 방치하거나 해서 죽게 만든다든지, 서로 환자를 떠넘기기 위한 수작들이라든지, 툭툭 내뱉는 싸가지 없는 말들이라든지 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기가 막힌 내용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특히 돈에 얽힌 문제들을 보면 치를 떨게 될 것이다. 환자에도 우선순위가 매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돈 없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이다. 머나먼 독일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지만 점점 비즈니스 프랜들리로 변하는 한국의 의료실정을 감안한다면 마음이 무척이나 무거워질 것이다. 재미나는 내용이 있다. 독일도 미국처럼 의료민영화를 실시하는가 보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간간히 언급되고 있는 걸 보면 절대 의료보험을 민영화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 나는 왜 갑자기 의사의 시간이 없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이건 상부의 지시예요. 공보험 가입자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특진을 원할 경우에는 본인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구요. 병원 규정이 그러니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126p) - 나와 마찬가지로 공보험에 가입한 내 친구는 병원에 갈 때마다 최소한 두시간은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평하지 않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가 “전 당신 같은 환자분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고 말하자 비로소 그녀는 병원을 바꿨다. (127p) - 수석의는 자신이 방금 사업가 기질이 다분한 병원장과 병원의 행정팀장들이 참석하는 비공식적 회의에 불려갔다 왔다고 설명했다. 그 회의의 유일한 의제는 ‘환자의 서열’이었다. (133p) -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화학치료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주사를 통해 자극적인 독이 환자의 정맥으로 흘러 들어가면 메스꺼움, 구토, 무력감, 탈모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반 정도의 환자들이 고통스러운 구강점막염증으로 고생하게 된다. 또한 상당수의 환자들이 손과 발에 발진이 생기거나 호흡곤란을 겪는다. 결국 화학치료를 받는 환자들 전부가 쇠약해지는 것이다. … 동료의 용서할 수 없는 무관심은 그렇다 쳐도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두번째 화학치료가 큰 문제였다. (143p) - 우리는 환자가 얼마나 더 살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의사도 정확히 예견할 수 없다. 어떤 병에 걸리면 평균적으로 얼마나 생존하는지에 대한 통계학적 자료는 있지만 경우에 따라 병은 그런 예측을 벗어나기 일쑤다. (146p) - 미세한 암세포들이 신체 곳곳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 세포들은 언제든 다시 깨어나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것이다. (168p) - 그렇다 , 신경외과 자신도 왜 환자의 상태가 그렇게 갑자기 악화되었는지 궁금했다. 이제 두 의사는 환자에게 처방했던 약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환자는 신경외과 의사에게 코티손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위 보호제’는 처방받지 못했다. 이럴 경우 코티손은 위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양의 코티손을 복용할 경우 위산이 과다분비될 수 있음을 알려줘야만 했다. 하지만 어떤 의사도 환자에게 복용 횟수와 복용량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176p) - 하지만 치명적은 원인은 ‘주말’때문이기도 했다. 환자는 3딜 동안 입원해 있었지만 신경외과에 있는 어떤 의사도 그녀를 진찰해보지 않았다. … 부인은 병원 시스템에 숨겨진 위험 때문에 죽은 것이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177p) - 실제로 수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피할 수 없는 불행으로 여긴다. 이는 의사들이 ‘이상적인’ 출세 과정을 봐도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많은 시간을 헌신하는 의사가 적절한 보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환자의 병력을 꼼꼼하게 조사하며 신중하게 진료하는 의사 역시 출세와 거리가 멀다. 외과에서 살펴보면 가장 뛰어난 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의사가 출세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179p) - 한 늙은 심장 전문의는 내 심장판막에 결석이 보인다고 했다. 내가 막 스무살이 되던 해였다. 이후 나는 여러 해를 불안해하며 지내야 했다. 몇 년 후 병원에서 근무할 때 어느 노련한 심장 전문의에게 재검사를 부탁했다. 그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내 심장판막이 나무랄 데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런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내가 엄청난 걱정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심장 전문의는 이전에 내가 받았던 잘못된 진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의사가 그리 경험이 없거나 환자의 맥박수가 빨랐다거나, 혹은 검사 장비가 신형이 아니었을 경우에는 심장판막이 경화되었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187p) -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의과대학에서는 심리학, 정신의학, 심신상관의학과 관련된 수업이 경시된다. (189p) - … (중략) … - 새로운 치료법들을 서로 비교할 경우 수 많은 함정이 존재한다. 즉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거나 왜곡함으로써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예전부터 의사들은 의사인 자신이 약제의 효력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야 치료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플라세보 효과라고 불린다. (239p) - 기존의 데이터를 소급해 특정 진단법이나 치료법이 탁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자발적으로 정기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40p) - 또 대도시에 정착한 어떤 외과의는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금세 알아차린다. 그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이면에 있는 심리적, 사회적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환자가 실제로 어디가 아픈지 재빨리 찾아낼 수 있었다. (245p) - 어느 심장 클리닉에 근무하는 일반의는 2,3년에 한번씩 실습 장소를 바꾼다. 풍부한 임상 경험을 지닌 의사에게서 교육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가 출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환자에게 최고의 의술을 베푸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뿐. (245p) 서양의학이 나아갈 길은 과연 어딘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해야만 한다. 아직 서양의학이 과학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는 서양의학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실수를 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인간이란 존재가 정신적인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어 정신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할 때 서양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비즈니스를 추구하지 않을 때 최소한의 인간의 생명 윤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언제나 이러한 진리를 깨달을까. 질병보다 무서운 것이 의식이고 인식이다. 우리 인류가 보다 큰 의식을 갖고, 인간이란 존재와 질병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질 때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나는 질병이 전혀 없는 완전히 건강한 삶을 꿈꾼다. 우리 인류 모두가 같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질병이 전혀 없는 완전한 세상을 꿈꾸는 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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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자에게는 그토록 원하던 하루가 된다.” 이 명언을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에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단지 멋있어보여서 내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다른 이들의 죽음을 접하고 나 또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이 명언의 의미가 마음 깊이 와 닿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어떤 이유에서 빨리 죽음을 맞이하기도,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다른 이보다 조금 늦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살아가는 방법만을 배우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에게 갑자기 죽음이 언습해오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에게 남은 날들을 초조해하고 회피하다 죽음과 마주하는 직전에서야 체념하게 된다.
의사는 이렇게 매일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어찌해야할지 모른 채 극도로 초조해하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에게 의사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누구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본인 스스로 잘 아는 사람도 의사의 희망적인 한 마디를 기대하며 매달린다. 처음부터 돈을 위해서 의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박애 정신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들도 매일 이러한 사람들을 대면하고 과도한 병원업무 속에서 찌들려 본연의 정신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인간 기계 수리공으로 되어가고 있다.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은 이런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베르너 바르텐스는 실제 의사로 근무해오다 점점 비정해지고 비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가 실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병원에서 의사들의 문제적인 상황들을 삽화로 보여준다. 번역가의 가치판단이 개입했는지 모르겠으나, 작가는 이 사례들을 의사들의 태도와 병원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굉장히 비판적으로 병원의 현실을 전달한다. “난 환자를 최소한 15분을 기다리게 하지. 그러면 환자는 의사에 대해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거든.” .... “환자가 없었다면 의학은 훌륭한 학문이었을지도 몰라.” 환자를 길들이기 위해 의사들은 응급실 호출이 있은 후 15분 뒤에 응급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의사들은 이 15분을 ‘학술적으로 증명된 15분’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여유의 15분]에 나오는 부분이다. 환자가 사경을 헤매든 죽기 직전이라도 병원에 익숙해진 의사들은 환자가 진정하는 시간, 길들여지는 시간을 기다린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병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로 의사들은 응급실에서 호출 오는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응급실에 넘쳐나는 긴박감, 죽기직전에 환자에게 정확한 의학적 판단과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5분은 의식이 있는 환자들은 심적인 안정감을 다시 찾고, 의사들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에게 15분은 의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걸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다.
이 책에서 재미있고 동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수녀의 눈물] 부분이다. 50대 후반의 수녀가 복통을 호소하고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와 필자의 병원에서 대장 조영촬영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이다. ‘대장 조영 촬영’은 영상에 대장의 모습을 드러나도록 항문을 통해 하얀색의 조영제를 넣고 공기를 넣어 대장을 부풀려야한다. 이 검사를 위해 수녀는 런닝셔츠만 걸친 채 남자 의사 앞에 서게 된다.(한국에서는 검사 가운을 입는데 독일에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남자 앞에서 자신의 몸을 보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수녀는 검사하는 동안 더 큰 시련을 겪게 된다. 검사를 위해 장에 투입했던 공기가 계속 방귀로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순고하고 성스러운 수녀에게는 다른 사람 앞에서 조영제와 같이 뿜어져 나오는 방귀가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이다. 전문의는 이런 수녀에게 다른 환자에게도 있는 일이라고 위로했지만 그녀의 항문에서 새어 나오는 조영제를 처리해주고 그녀의 알몸을 가려 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수녀는 무력감과 굴욕감을 경험하고 탈의실에 숨어 울음을 터트린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 상황이 상상이 되어 웃음도 나왔지만 한편으로 수녀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검사를 하면서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경험들을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의사들에게는 환부에 지나지 않지만 환자에게는 부끄럽고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체의 일부일 수 있다. 의사는 환자가 수치심을 가질만한 검사를 할 때는 커다란 수건이나 칸막이, 그저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 환자의 수치심을 덜어줄 수 있다. 이런 작은 배려가 환자들을 난감한 상황에서 구해주는 것이다.
환자들은 알몸 상태에서도 존중받아야한다. 환자들을 힘들게 하고 모욕을 주는 의사들의 행위들이 모두 고의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의미 있게 시작한 의사들도 매일 반복되는 병원의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 시달려 도망 다니는 의사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책임을 져야한다. 의사는 환자들을 살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다. 의사가 병원의 주인이 아니라 환자가 병원의 주인이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죽어가는 환자의 입장을 100% 동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 죽음 앞에 서 있는 환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사는 기계를 고치는 기계공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이다. 이 책을 통해 의사들은 왜 이런 부정적인 에피소드만 편집해서 의사만 비난하는냐 반박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 상황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병원, 의사와 관련되지 않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본연의 좋은 의도를 잊어간 채 타성에 묻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모든 일은 그 일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 있지만, 직업이 되어 하게 되면 힘들고 괴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직업으로 선택하여 일을 맡았다면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야한다. 이 시대의 의사들이여, 이 책을 통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의학도의 꿈을 가졌던 열정이 가득했던 그 때로 돌아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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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TV에 나오는 메디컬 드라마들... 그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의사..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TV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도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사라는 직업...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큰 이익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는 의사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속모습...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요즘에는 TV나 각종매체...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이라는 책이 너무도 흥미가 일었다... 이번에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의 많은 병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의사라는 직업.. 사람을 살리는 직업인데.... 너무도 돈과 권력에 구애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로 모든 책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병원..의사들이 부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너무도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기에 음적인 부분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이 책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실례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진실성이 있을 것이다. 의사들이 병을 보고 알아내는 확률이 1/3이라는 말은 바꿔말하면 오진률이 1/3이라는 말이다... 오진에 의한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병을 제때 발견하지 못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한다는 말인가? 병원마다 같은 것을 보고서도 다른 판단을 한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에.. 조금은 의사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신중하고... 환자의 피해.. 휴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메디컬 스캔들....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현재 일어나는 일이라기에... 더욱 섬뜻하지만... 언젠가는 이 이야기가 상상속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