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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북구식 사민주의와 폭력에 대해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북구식 사민주의와 폭력에 대해" 내용보기
9년전 칼럼집인데도 역시 오시장의 '부자급식'때문에 시사성이 떨어지는 책으로 읽히지 않는다.   제목처럼, 이 책은 좌/우의 다양한 의견은 용납이 되지만 상/하의 자본주의적, 권위주의적 관계는 용납이 되지 않는 북유럽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직장을 얻게 된 것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러시아, 대한민국, 노르웨이 사회의 장단점을 다 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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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전 칼럼집인데도 역시 오시장의 '부자급식'때문에 시사성이 떨어지는 책으로 읽히지 않는다.

 

제목처럼, 이 책은 좌/우의 다양한 의견은 용납이 되지만 상/하의 자본주의적, 권위주의적 관계는 용납이 되지 않는 북유럽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 직장을 얻게 된 것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러시아, 대한민국, 노르웨이 사회의 장단점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필자를 갖게 되었으니 복받은 셈.

 

일단,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사회 복지제도와 평등한 사회,  소수의 다양한 의견도 담는 다양한 언론, 무상 교육 시스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 한국보다 '선진적'인 사회의 모습을 서술한 부분이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서구 선진국가 구성원들이 누리는 혜택이 주변국 노동자들의 착취에 기반한다는 것을, 이들의 평등정책이 제3세계에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울러 보여 준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처럼 민주적으로 길든 노르웨이 사람들이 노동자 본위의 노동법도, 노조도, 감시기관도 없는 제3세계에서도 과연 민주주의를 실천할까? 그들의 민주주의는 특수한 사회환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다른 환경에서는 상당히 변질되는 일종의 외면적 관습이 아닐까? 아니면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유혹을 받든 지키고자 하는 내면적 이상인가?     - 102쪽

 

그러니, 일부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이 저자는 자신이 속한 서구 사회의 일면적 가치로 한국 사회를 다양한 면을 획일적으로 비판하려 드는 흔한 서구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은 강제 군복무에 대해 서술하면서 폭력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남자라면 꼭 거쳐야 할 의무에서 도망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세상의 거대한 폭력에 맞서는, 국가적 합법화된 폭력에 문제 제기를 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임을 밝혀준다. 이 점은 여자인 내가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다. 부끄러웠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등으로 상류층이 국가의 징집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든가하는 식으로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청문회에서 파헤치는 후보자들의 군미필 문제에만 관심갖지 말고 이들 용감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어떨까. 더구나 요즘 취직난으로 오히려 취직시 가산점을 얻기 위해 해병대에 지원한다는 어린 친구들도 종종 보이는 터라, 지금 우리 사회의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옛 성현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들, 길들여져버린 그릇된 인식들이다.    -133쪽

 

그러나 우리가 그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 속의 악마'에게 손을 드는 셈입니다.     - 264쪽

 

위의 두 인용부분을 보면, 저자는 서구인이라기보다 유,불, 선의 긍정적 가치관을 아우른, 고전적인 동양 선비의 풍모를 지닌 사람처럼 보인다. 계속 이 저자의 책들을 읽어 보겠다.


 

m******n 2011.01.23. 신고 공감 4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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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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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썼던 박노자 교수의 두 번째 책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에 없고 노르웨이에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러나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박노자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한 문화에 젖어 지낸다는 게, 얼마나 비판의식을 잃고 살게 하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그의 책은 우리 사회에 폭력이 얼마나 깊숙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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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썼던 박노자 교수의 두 번째 책입니다. 그는 현재 한국에 없고 노르웨이에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러나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박노자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한 문화에 젖어 지낸다는 게, 얼마나 비판의식을 잃고 살게 하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특히 그의 책은 우리 사회에 폭력이 얼마나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비폭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개인의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폭력이란, 단순히 타인을 물리적인 힘을 가해 때리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의 상하관계에 의한 폭력, 군사주의적인 권위에 의한 폭력, 집단 대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폭력,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 국제정세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대국의 제3세계 국가에 대한 폭력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우리 사회의 폭력근절을 위해 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w*****2 2002.07.13.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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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통해 본 한국 사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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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닫힌 사회 속에서 23년째 살아가고 있는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인 줄 알고 살았다. 아는 게 없었기에 알고 싶은 것도 없었고, 수능을 위한 공부 이외의 것들은 모두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나름대로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인정하는 범주 안에서 살아왔다. 과거와 같은 진보적 낭만이 존재치 않고, 선배들이 경험했던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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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 닫힌 사회 속에서 23년째 살아가고 있는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인 줄 알고 살았다. 아는 게 없었기에 알고 싶은 것도 없었고, 수능을 위한 공부 이외의 것들은 모두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나름대로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인정하는 범주 안에서 살아왔다. 과거와 같은 진보적 낭만이 존재치 않고, 선배들이 경험했던 치열한 자아와의 싸움이 존재치 않는 대학 속에서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았고, 어설프게 나마 사회에 저항한답시며 지금까지 버팅겨왔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복지사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어느 누구도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당하지 않는 사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박노자님의 경험한 노르웨이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과 더불어 북유럽의 전형적인 복지국가로 일컬어지고 있는 곳이다.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그저 언론에서 비추어지는 모습 그리고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나름대로 내 안에서 지금껏 만들어온 환상들을 나는 부러워하곤 했었다. 노르웨이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이제는 EU 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버렸기에 더 이상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로서의 노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아직까진 나름대로 독자노선을 구사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나를 흥분시켰다. 한국과 노르웨이, 불행하게도 두 곳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듯 했다. 오랜 식민 역사 속에서 강력한 권위주의와 폭력적 가부장제를 내면화한 한국인들의 한 사람으로서 노르웨이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이는 마치 유토피아와도 같아 보였다. 자본만이 제일로 인정받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가 판을 치는, 계속해서 커져만 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눈뜨고 바라보는 것 외엔 별 도리가 없는 듯한 한국 사회에 비해 노르웨이는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곳이었다. 수정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긴 했지만, 북유럽의 여당으로서 사민당은 나름대로의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지금의 복지국가로서의 위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우받는 삶을 살고 있었으며, 모든 이들은 자신이 원한다면 학문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다. 적어도 금전적 이유로 인하여 자신을 개발할 기회를 놓치지는 않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가. 대학 교수의 임용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고, 궁극적으로 학교의 주인으로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노르웨이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러한 번영은 제3 세계에 대한 착취에 기반한 것임을 박노자님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열등감을 군사력에 기초한 지배로서 극복했던 지난 서양 사회의 부끄러움에 대해 노르웨이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자성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노르웨이 사회의 부와 번영이 가난한 국가의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과정 속에서 가능했다는 점에 그들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 했다. 문제 없는 사회가 존재치 않듯이, 노르웨이 사회 역시도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상대적으로는 개방적이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많은 전체주의적 행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많은 부분 한국 사회보다 열려 있었다. 꽤나 오래전 도입된 대체복무제도는 이제 완벽히 자리를 잡은 듯 해 보였다. 지난 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물결이 일었을 때 대다수의 이들이 이에 동조하는 집단을 매도하는 것으로 모자라 인격적, 성적으로 모욕을 주던 모습,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사회에 깃들어 있는 폭력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 위로 포탄이나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지 않은가.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눈을 치우던 나의 친구를 가리키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 거라고 다섯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자신의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 나도 군대 가서 고생했으니 너도 가서 고생실컷 해봐야 한다는 그 말. 내가 시어머니에게 당한만큼 나의 며느리도 고된 시집살이를 시킬 것이라는 그 목소리들… 모든 것은 내면화되어 있는 폭력의 발현이었다. 강경한 우파만이 정상으로 인정받고, 사회에 약간만 비판적이어도 제거 당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폭력이 폭력이 폭력인 줄 모르고 살아왔다. 다르다는 것으로 인해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 다름 속에 가치 평가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 사회는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q*****2 2003.10.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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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는 희망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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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들이 ‘복지’에 대해 논의할 때, 매번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북유럽’. 또는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그 나라들에선 재분배가 최우선이며, 그에 따른 무상 교육, 무상 의료가 상식이란다. ‘무상 급식’ 하나 도입하는 데도 그토록 부산했던 우리나라인데, 그런 나라들이 정녕 존재한단 말인가? 시혜적 복지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한국이란 나라에 사는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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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들이 복지에 대해 논의할 때, 매번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북유럽’. 또는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그 나라들에선 재분배가 최우선이며, 그에 따른 무상 교육, 무상 의료가 상식이란다. ‘무상 급식하나 도입하는 데도 그토록 부산했던 우리나라인데, 그런 나라들이 정녕 존재한단 말인가? 시혜적 복지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한국이란 나라에 사는 나로써는 북유럽의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이 어떠할지 짐작하기 여간 어렵지 않다.

 

알고 싶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영위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사회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인지. 또한 그것의 한계는 무엇인지.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박노자가 노르웨이 사회를 경험하며 느낀 것들로 쓰여진 책이다. 그는 장단점을 두루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현실적으로는 사민주의자이지만,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자이니까. 사민주의의 장점을 정확히 인지하되, 한계도 꿰뚫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솔직히 전달해 줄 것임을 믿었다.

 

노르웨이 헌법의 기본이념은 바로 인권이다. 그것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이곳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실질적인 평등 사회다. 사회적인 평등? 상호 존중은 일상적인 예의에 불과하다네. 일례로, 교수가 교육에 임할 때 학생들을 위한 최상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한다나? 원생을 하인 부리듯 하는 한국과는 비교불허가 아닌가. 경제적인 평등? 단적인 예로 버스기사의 월급이 교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단다. 아니, 학생들을 그렇게 생각하는데 버스기사보다 돈을 적게 받는 교수라니? 그만큼 노동자를 우대한다는 말이다.

 

이들에게 평등은 일상적이다. 교수나 학생이나 다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가용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에 자가용을 끌고 가는 것을 그들은 거의 윤리 위반으로 취급"하는 나라니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돈을 적게 쓰는 것이 자랑거리란다. 그래서 교수도 집에서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싸온단다. ‘이럴 수가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다들 "줄일 수 있는데도 안 줄이는 소비는 부끄러운 낭비로 여긴다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선 데모도 일상적이다. 박노자 말로는 데모가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데,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아이들이 데모를 통해 배운단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말이다. 처음 알았다. 데모는 국민이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합법적인 행위란다. 내가 과문한 탓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선 데모하면 쥐 잡듯 몰아대지 않나. 당연 불법인 줄 알았지. 하여튼 노르웨이에선 경찰이 데모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꿈에서도 볼 수가 없단다. 데모가 비폭력적인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분명 한계는 있다. 다음 박노자의 문제 제기를 보라. ” 이처럼 민주적으로 길든 노르웨이 사람들이 노동자 본위의 노동법도, 노조도, 감시기관도 없는 제3세계에서도 과연 민주주의를 실천할까? 그들의 민주주의는 특수한 바탕으로 형성된, 다른 환경에서는 상당히 변질되는 일종의 외면적 관습이 아닐까?” 그렇다. 사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관습과 같다. 제도로 굳어졌기 때문에 서로에게 구속력이 생긴다. 또한 좋음을 알기에 유지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박노자가 전하는, 노르웨이인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국 교수들과 똑같이 원생들을 부렸다는 일화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세계적인 금융자본주의의 중심부 국가인 노르웨이의 풍요는 제3세계가 당하는 착취와 빈곤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국민들 중 일부 진보주의자를 제외하고는 국민들은 희미하다. 이것도 또 하나의 한계로 작용한다. 그들만의 사민주의’. ‘보편적 인권을 국시로 여기는 그들이지만,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 사고와 실천이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인권 개념의 확장에 힘입어 국제원조에도 제법 힘쓰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어찌됐든 우리 사정보단 훨씬 나아 보인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현지에서조차 노예인 양 착취하고 있지 않나. 아니, 나중엔 아예 동물을 사냥하듯이 단속하는 형편이니. 우리로썬 그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일이다.

 

비록 한계는 있지만 이 정도가 어딘가 싶다. 물론 사회민주주의가 오히려 시장자본주의를 더욱 공고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당장 작금의 한국에서 서민들의 삶은 너무 참혹하다. 그렇다고 혁명의 기미가 보이느냐? 소자본가의 심성을 가진 국민들이라 그럴 조짐이 별반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일단은 어느 정도 복지를 확충해서 당장의 고통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한국 역시 한 번이라도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하면 관성을 가져 절로 굴러가게 될 텐데. 그런 후에 또 다른 전환을 꾀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자그마한 희망마저도 벅차다. 사람들이 진보 정당에 관심을 전혀 기울이질 않으니. .

 

박노자의 책은 처음이었다. 일단 반가웠다. 나 역시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자이지만, 현실적으로 사민주의자니까. 그리고 내용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는 참 해박했다. 세계 근현대사를 종횡무진 오가며 현실을 명확하게 해석하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그의 사상과 실천은 매우 근본적이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사유하는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그만큼 정확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래서 읽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글에서 무언가 난잡한 느낌이 든다는 사실. 아직은 왜 그런지 분명한 이유를 잡아내질 못하겠다. 한 권만 더 읽어보련다. 제일 최근에 나온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PS. 지금 맥주 마시면서 글 쓰고 있다. 술 마시니까 글이 술술 써진다. 그래서 이거 40분 만에 썼다. 책 리뷰 중 최단기록이다. 근데 뭔가 못 미더운데더 이상 수정하기가 귀찮다. 이게 한계다. 내일 보고 부끄러우면 어쩌지? 그럼 스리슬쩍 수정할지도 모르겠다. 이웃님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구절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정신적 현주소를 알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역사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를 보면 된다. 보통 역사에 대해 만족해 하고 긍정 일변도의 자세를 취하는 사회나 집단이면, 발전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발전이 있으려면 일단 그 발전을 촉진하는 불만이 있어야 하고, 그 불만의 구체적인 표출로 역사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새로운 가치 건설을 옛가치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 없이는 불가능하다."(89)

 

"도덕적으로는 남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껴야 한다고 믿는 유럽인들이지만, 한국과 같이 '머나먼' 아시아 국가의 소외층이 겪는 고통은 멀고도 먼 '남의 것'으로만 느낀다. '쪽방'에 갇혀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매매춘 여성의 신음소리나 매일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면서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월급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생타령 소리는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보장된 노르웨이 사람들의 귓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세계체제'라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 있는 그들은 ''의 고통과 절망을 도식으로는 알아도 체감하지는 못한다. 그들이 외교하기에 매우 편한 '상대주의'를 쉽게 택하는 심성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제3세계의 인권과 민주에 대한 그들의 판단도 어느 정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할 듯하다. 러시아 속담처럼 배부른 자는 배고픈 자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119~120)

 

"인간의 종족적인 집단결속 본능을 자극하는 민족주의에는 배타성과 야만성이 내재해 있다. 노르웨이와 같은 인본주의적인 민족주의라 해도, 또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데 주력하는 세계 주변부의 '민족해방 투쟁형' 민족주의라 해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민족'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과연 20세기의 야만성과 광기로부터 우리 자신의 내면을 해방해 자율적인 개인정신과 양심을 '중흥'시킬 수 있을까?"(139)

 

" '주류'를 의심하고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외신의 '세계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태도일 것이다."(210)

 

고등학교 시절인 1980년 후반 들어 아프가니스탄을 사막화한 소련 침략군의 만행이 하나하나 폭로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 파괴의 광기도 양면적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을을 점령하고 닥치는 대로 원주민을 도륙하고 돌아온 병사들 중에는 몸이 성한 사람은 있어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악몽에 못 이겨 폭음과 마약 중독, 범죄와 자살 등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지요. (…)

한편 그들을 죽임과 죽음의 늪으로 몰아낸 소련이 과연 아프가니스탄의 사막화로 득을 봤습니까? 오히려 전쟁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패배의 불명예를 안게 된 터라, 더 빨리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군사주의적 제국주의의 발악성과 허무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대대적인 살육을 벌였다가 망한 소련에서 살육으로 득을 본 계층은 출세가 빨라지고 횡령의 기회가 많아진 고급 장교와 군산복합체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의 말대로 근대적인 산업국가는 전쟁이 만들지만, 역시 종종 독이 뚫린폭력행위 때문에 패망하기도 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면서 말이지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결국 가장 비폭력적인 종교로 느껴지는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잃은 주인ㅡ제국주의적 행태를 봉는 국가ㅡ이 엉뚱한 곳에 제멋대로 박아대는 한 개의 ’, 한 개의 인간 나사가 되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226~227)

→ 박노자 사상/이념의 출발을 엿볼 수 있는...

 



b******a 2010.10.01.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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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보고 참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초록으로 뒤덥인 책에 사람의 얼굴이 놓여져 있고 책의 제목은 특이하게 가로와 세로로 놓여져 있다. 표지부터 눈에 안 띄인다고 할 수 없다. ''지은이의 이름이 참 특이하군.''으로 시작해 책의 내용을 읽어내려가고는 바로 사들고 집에 와버렸다. 지은이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의 춘향전을 보고는 한국에 빠져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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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보고 참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초록으로 뒤덥인 책에 사람의 얼굴이 놓여져 있고 책의 제목은 특이하게 가로와 세로로 놓여져 있다. 표지부터 눈에 안 띄인다고 할 수 없다. ''지은이의 이름이 참 특이하군.''으로 시작해 책의 내용을 읽어내려가고는 바로 사들고 집에 와버렸다. 지은이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의 춘향전을 보고는 한국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귀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노르웨이에 가서 한국학을 필두로 동양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한국사람보다 한국의 역사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심도있게 아는 이 사람이 한국인을 대신해 노르웨이라는 제 3국에서 한국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북유럽의 생활상을 말한다. 태어난 러시아에서의 전체주의적 입장과 한국의 가족주의적 입장 모두를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이 북유럽에서 느낀 감정들을 꽤나 솔직하게 고백한다. 한국인이라면 의레 가지고 있을 법한 ''서양은 부유하고 좋은 나라다.''라는 인식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다가도 뒷부분에서는 나의 그런 생각을 무참히 깨버린다. 나는 여기에서 이 책의 매력을 느껴버렸다.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저자가 북유럽의 선한척, 그러나 속으로는 물질주의를 표방하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낱낱이 파헤칠때의 그 쾌감이란. 여태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에 놀라면서, 그것을 일깨워준 저자에게 또 한번 감탄하면서, 또 우리가 여태까지 착한 복지주의 국가인줄만 알았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추악한 면모를 그대로 본 것을 정말 고맙게 여긴다.18세기의 영국이 노예를 운반하기위해 사용한 노예선의 설계도를 보고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홍세화씨가 말했듯이 그를 갖게 된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그만큼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인의 감성으로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게다가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우리가 언론이라고 믿어왔던 것에게 가공되고 천편일률적인 사실들만 수용해왔다는 것을 의심 한번 하지 않은 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한심스럽다. 이 책으로 인해 세계관이 다시 정립되었다. 전혀 어렵지 않으면서 각 장마다 감탄으로 넘길 수 있는 그런 책. 개인적으로 셰계사나 세계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c******y 2004.05.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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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들에게!!^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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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2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스스로도 한국사라던가 세계정세라던가 여러가지로 모르는게 많아서 이것저것 홍세화님의책이라던가 읽으면서 공부를하다가 집어든게 박노자님의 책이었는데요! 음..사실 놀면서 읽는 쉬운책은 아니죠^-^;적어도 저한테는+ㅁ+;;;;아직 배우는 학생이라 좋은 말이라던가..좋은 글이 될거 같진 않지만;; 적어도 제가 사회공부를 책으로 공부하면서 여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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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2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스스로도 한국사라던가 세계정세라던가 여러가지로 모르는게 많아서 이것저것 홍세화님의책이라던가 읽으면서 공부를하다가 집어든게 박노자님의 책이었는데요! 음..사실 놀면서 읽는 쉬운책은 아니죠^-^;적어도 저한테는+ㅁ+;;;;아직 배우는 학생이라 좋은 말이라던가..좋은 글이 될거 같진 않지만;; 적어도 제가 사회공부를 책으로 공부하면서 여러가지 띄엄띄엄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지식과 생각들이 머리 한켠에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읽고난후에^-^그 후에도 여러가지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지도를 하나씩 이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눈이 확 트였던것같은 느낌도 있고!! 고등학생분들도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g********a 2005.12.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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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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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난감한 책이다. 박노자는 러시아 인으로서 한국에 귀화하였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모양이다. 곳곳에 정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티가 난다. 어설프게 한국을 몇년 '체험'한 뒤에 써 내려가는 다른 많은 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책이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좌파'이다. 그래서 복지사회로 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협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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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난감한 책이다. 박노자는 러시아 인으로서 한국에 귀화하였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모양이다. 곳곳에 정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티가 난다. 어설프게 한국을 몇년 '체험'한 뒤에 써 내려가는 다른 많은 책들과는 분명히 다른 책이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좌파'이다. 그래서 복지사회로 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협없는 좌파의 이상'을 추구하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찌보면 순수하기 이를데가 없는 내용인 것 같다. 때문에 이 책은 이상과 신념을 위한 책이지,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노자는 노르웨이를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가야 할 복지사회, 좌파적 사회의 모습으로 ㅡ 그것도 완벽한건 아니지만 ㅡ 그려내었다. 그의 말대로 위아래가 철저한 우리 나라와 같은 주변부에서는 참으로 부럽고, 그리고 현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문제제기였다. 그의 책을 읽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착취의 현상을 수업시간에 막연히, 그리고 슬쩍 스쳐지나갔던 것과는 달리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은 득이다. 북유럽과 미국과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비교적'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준주변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착취 때문이라는 그의 지적은 한국에만 머물러 있고 그 외에는 그저 막연히 안개보듯 보던 내게 더 넓은 시각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와는 다른 북유럽의 노동자들의 '괜찮은'현실, 모든 종류의 폭력에의 반대, 포르노에 대한 거부와 그에 대한 환상을 깬 점, 그리고 모든 모순이 없어진 살기 좋은 사회를 꿈꾸는 그의 모습은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지만, 동시에 참으로 멀고 그리고 그저 배부른 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참 많은 모순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말대로 자본과 타락한 권력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고 또한 '지구를 지켜라'에서 나왔듯이 인간 유전자 어딘가에 박혀있을 본성에 근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꿈꾸면서도 참으로는 그것을 그저 '말'로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우스운 일이다. 좌파의 세상은 평화롭지만, 그것은 사실 이루어지기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사람은 다 너무나 다르고, 그렇다면, '좌파'의 이상을 전파하여(좌파도 매우 여러갈래지만) 그에 대한 동의를 구해나가기 보다는 서로간의 타협을 통한 길을 만들어내고 싶다. 이 책이 구체적이면서도 또한 막연하게 느껴지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식의 시선이 은근히 느껴지는 그의 서술 속에서, '타협하지 않는 좌파'대신 지금은 비록 조금씩, 아주 천천히 가는 길이 되더라도 '타협하면서 이루어내는 좌파'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노르웨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는 보통 신문, 잡지 등과 같단한 음식을 파는 작은 상점을 찾아볼 수 있다. 신문이 놓여 있는 곳을 볼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규모가 작고 시내와 아주 먼 상점에도 보통 소수만 보는 공산당 신문이나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행하는 다양한 신문이 꼭 진열되어 있었다.
YES마니아 : 로얄 a*****z 2003.07.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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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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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등에 대해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의 경험과 노르웨이의 집권당인 노동당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좌파 정권에 대한 이야기와 아직도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인종주의적 편견들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둘 만했다.   그리고 교육과 관련한 북유럽의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민주적 풍토와 상대적으로 우리들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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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등에 대해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의 경험과 노르웨이의 집권당인 노동당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좌파 정권에 대한 이야기와 아직도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인종주의적 편견들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둘 만했다.

 

그리고 교육과 관련한 북유럽의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민주적 풍토와

상대적으로 우리들의 권위적인 풍토와 창의력을 억제케하는 현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되새겨 보았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큰 이슈가 되었던 오태양씨와의 서신도 재밌게(?) 읽었다.

"우리도 당했거나 당해야 할 폭력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왜 당신만 피하려고 하느냐"

(P. 252) 식의 시선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터부시 해온 것은 아닌지.

비단 병역거부자 뿐 아니라 학교나 직장에서의 "왕따"에 대해서도 마치 적자생존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우주의 섭리인양 알아서 적응하고, 알아서 해결해야한다는

식의 눈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닌지. 나 부터 반성해야 겠단 생각이 든다.

 

정의와 평등, 평화와 모두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삶.

참 쉽고, 맞는 말이지만 또한 쉽지 않은 길이다.

 

과시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사그라들고, 인식이 한 층 높아져,

나와 내 가족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와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돈(자본) 앞에 굴종하고, 인격과 양심을 잃는 일이 없기를. 

k*****6 2008.05.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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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있다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이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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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함께 읽으며 왜 그렇게 서럽던지... 속상하고 안타깝고 밉고 그럼에도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는 그러기에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박노자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음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밟더라도 위로 가야한가 하는 사람들과 난 위에 있다 하는 사람들속에 살고있는 우리가 불쌍했다.   노르웨이가 부러웠다.차별없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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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함께 읽으며 왜 그렇게 서럽던지...

속상하고 안타깝고 밉고 그럼에도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는

그러기에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박노자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음에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밟더라도 위로 가야한가 하는 사람들과 난 위에 있다 하는 사람들속에 살고있는 우리가 불쌍했다.

 

노르웨이가 부러웠다.차별없는 교육, 귀천없는 직업, 질서의식, 알뜰한 소비, 대중교통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정치인.

 

모든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위아래만 있다 하는 사람들속에 우린(여기서 우린 좌우로 나란히 서 있는 우리다.) 줄세워 진다.

 

난 그냥 이 사람 옆에 있고 싶은데 나를 뒤로 가라 앞으로 가라 지시한다. 그리고 위다 아래다 평가한다.

 

나 또한 누군가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린 촛불을 들었다. 위에서 아래서가 아닌 좌우에서 옆에서 들었다.

 

누군가를 위에서 물을 뿌리며 불을 끄려 하지만 우린 그 누군가를 아래로 세우려 하는것이 아니다. 옆에서 좌우에서 손잡길 바란다.

t*****8 2008.07.09.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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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면에 감춰진 비정상에 대한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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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박노자의 이름을 한겨레21에서 봤을 때는 참 특이한 이름이구나 싶었다.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라는 직함은 더욱 더 특이했다. 한국 사회의 폐부를 사정없이 찔러대는 날카로운 그의 글들에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된 후에야 그가 최근에 귀화한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내가 가진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부숴버렸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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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박노자의 이름을 한겨레21에서 봤을 때는 참 특이한 이름이구나 싶었다.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라는 직함은 더욱 더 특이했다. 한국 사회의 폐부를 사정없이 찔러대는 날카로운 그의 글들에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된 후에야 그가 최근에 귀화한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내가 가진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부숴버렸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이하 좌우)’는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한겨레출판사가 왜 이 책을 시덥잖은 여행기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부제를 붙여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노자가 노르웨이에 가서 느낀 점들을 쓴 부분도 상당수 있으니 완전히 틀린 제목은 아니다. 문제는 그 글들을 쓴 주인공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급진좌파’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좌파지식인임을 주장하는 박노자라는데 있다. (박노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이라는 논문을 추가하며 좌파의 나아갈 길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노무현보다도 한참은 왼쪽에 있을 박노자이지만, 그는 좌파인 동시에 지식인이며 학자임에 틀림없다. 사상적으로는 왼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현실상황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판단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설명을 유지한다. 여느 ‘탐험’ 이었다면 분명히 있었을 북유럽 국가, ‘선진국’ 노르웨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공세 대신 박노자는 노르웨이가 가진 장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역사적 연원과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르웨이 대학의 평등성을 보여주는 대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니 아직 ‘채 벗어내지 못한’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이면을 언급하는 식이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이슬람에 대해서 쓸 때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그들의 테러리즘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비판을 퍼붓는 여느 ‘지역전문가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처했던 뼈아픈 과거사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킴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향되고 단편적인 지식들로 인한 오류를 바로잡아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가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인 저자에게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참사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해결방법은 또다른 테러가 아닌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버나드 루이스가 이슬람 세력의 경직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로 든 살만 루시디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 논하는 보다 중요한 주제인 ‘반폭력과 평화주의’에 있어서는 읽는 내내 참 ‘불편했다’. 책 너머에 있는 저자가 나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내내 받아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였다. 왜 보다 나은 사고를 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좀더 편한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려고 하는가라고 저자는 내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있었다. 인상깊었던 다음 구절을 되뇌이면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게 느꼈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서.

[인상깊은구절]
새로운 유혈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를 다시 전장으로 만들 수도 있는 지금,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만큼 역사도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과거 지배층의 대량 살육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배운 젊은이는 또다시 살육의 장으로 쉽게 끌려갈 수 있다. 반면 지배층의 폭력과 ‘밑으로부터’의 비폭력적인 해방적 저항이라는 세계 역사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면, 손쉽게 미군의 총알받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사람들, 아이를 키우면서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b*****l 2004.10.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