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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면 우울한 낯빛의 긴 얼굴이 떠오른다. 의붓오빠들에게 당한 어린 시절의 성폭력 때문에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 받아야 했다고 알려져 있는 그녀는 어느 날 남편과 언니에게 유서를 남기고 산책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투신에는 당시에는 절망과도 같았던 여성들의 삶이 예민한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소설 기법으로 유명한데, 이는 특별한 줄거리 대신 등장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기법이다. <더블린 사람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좀 더 등장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그녀의 의식의 흐름 기법은 현학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우울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처음에는 그녀의 글이 조금은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이할만한 점은 1882년에서 1941년이라는 그녀의 생애가 제임스 조이스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 뉴넘 칼리지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한 에세이집이다. 영국에서 결혼한 여자가 자기 재산을 가지는 것이 허락된 것은 이 책이 발표되기 48년 전인 1882년이었다. 그리고 이 강연이 있기 9년 전인 1919년 영국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녀는 ‘여성과 소설’이라는 당시에는 다소 진보적인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인용과 암시가 너무 많은 나머지 논점이 일관되지는 않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책을 덮기에는 너무 날카로웠고 책을 읽기에는 솔직히 너무 불편했다. 연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녀는 남성으로서의 우월함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증오와 비통을 끝내기 위해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한 물질적 안녕을 기본으로 갖추어야만 마음과 신체의 자유를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감 있는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인용하면서 여성이기에 느껴야 하는 단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엄격한 사회적 통제와 남성들의 특권이 가져오는 혼란 속에서 뒤틀리고 억눌린 삶을 살아야만 했던 샬롯 브론테와 <전쟁과 평화>를 쓰게 된 톨스토이의 단절을 비교하며 여성이 쓰는 소설은 왜 남성이 원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만 하는지를 반문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가치관은 분명 다른데 가부장적인 사회의 한복판에서 그대로의 본성을 잃어버린 여성의 피동적인 삶에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하지 않겠냐는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의 여성이기에 쓸 수 있었던 작품들을 칭찬하며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강박증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녀는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점을 애써 변형시키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한다. 더 나아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비평이 담겨 있는 섬세한 예술로서의 글쓰기를 제안하고 있다. 메리 카마이클의 작품이 펄프로 환원될지라도 그녀의 작품이 100년 후에는 시가 될 거라고 했던 울프의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은 한없이 작은 여성들의 목소리도 어느 순간 남성들과 동등해질 것이며 그 때는 글을 쓰는 자신의 처지가 여자임을 잊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는 의미였을 터였다. 그녀는 성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상태를 야기한 모든 사람들은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가가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의 성을 지나치게 인식하게 되고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어느 정도의 양면적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그의 글이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석학들의 모임이었던 블룸즈버리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녀의 이 신랄하지 않으면서도 비웃는 듯 한 자기성찰적 강의가 그 당시 사회에 미쳤을 파장은 무척 컸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도 읽을 때 섬뜩하리 만큼 날선 내용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을 읽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마음이 들어 며칠 책을 놓은 적도 여러 번... 나는 굳이 이 책을 페미니스트들의 교과서 정도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에서는 당시 사회의 약자인 여성을 대변하고 있지만 지금 현대 사회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약자의 범주에 넣을 이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은 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녀의 논조는 언제나 그 수많은 현학적 메시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수많은 작품을 차용하여 풍자와 비유를 서슴지 않는 그녀의 필체는 당시 남성들의 신경을 모조리 긁어놓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더불어 그녀 자신이 표현했듯 어리석은 여자들의 인생관도 뒤흔들어 놓았을 테지만. 글 한줄 쓰지 못하고 교차로에 묻혀버린 셰익스피어의 누이를 잊지 말자. 그녀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 안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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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어릴때 페미니즘에 살짝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어서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기회가 닿았다.
전체적인 감상은....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충격으로 눈앞이 트이는 그런 책은 아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을 보는 관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발끈, 혹은 울컥, 하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억울해서. 답답해서. 열받아서.
제목이기도 한 '자기만의 방'은 사생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성이 자유를 누리고 살기 위해서 울프가 강조하는 것 두 가지가 바로, 자기만의 방과 일정한 수입이다.
오늘날에는 여성 뿐 아니라 자유를 누리려는 모든 성인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계층대립 구도가 나타나는데 그중 두드러진 쪽이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고, 또 하나는 (앞의 것에 다소 가려있는데,) 바로 부자와 빈자의 대립이다.
울프는 (당대의) 여성이 남성에 비해 돈을 벌 기회가 적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면서 두 가지 대립을 묶어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후반부에서 짧게 지적했듯이, 그것은 여성이 지녔던 많은 한계 중에 하나이며 남성 역시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 비해 자유가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인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를 대조한 장면.
확실히 제인 오스틴의 재능은 성격과 어울린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나니 나는 분노와 열망을 가졌던 샬롯 브론테에게 더 끌렸다. 『제인 에어』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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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책. 그녀의 일생을 들여다보노라니..(책의 마지막장에 실려 있음) 그녀는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마지막을 보면.. 주머니에 돌을 채워넣은 채 우즈 강에 투신했다.. 였다. 인생에 있어 수많은 정신발작으로 고통스러웠던 그녀..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그녀가 남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이 책 '자기만의 방'은 그녀가 1928년도에 케임브리지 여자대학 뉴넘과 거튼에서 '여자와 소설'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이다. 여성이 왜 문학으로부터 제외되어 왔는지.. 그 오랜시간동안 왜 여자들이 책을 쓸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강연의 내용이라서 완전한 '여성과 소설'이라는 내용에 대해 깊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다른것으로 시선을 옮길수 없는 책이었다.
그녀는 심한 정신적 우울을 겪어서 그런지 몰라도 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이 드러난 책이었다. 그녀가 생활하던 그 시대조차도 여자는 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책에서는 전하고 있다. 도서관엘 들어가려던 그녀는 사서에게 저지를 당했고 그녀는 욕설을 퍼부었다. 강연을 듣는 학생들에게 돈을 벌고 여성의 지위를 찾으라! 라고 말했더 그녀. 그것이 소설을 쓰기위한 기반이라고 말한다.
지식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에 마음껏 드나들면서 지적인 자극을 받아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그녀는 어릴적부터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을 얘기해 주는 것이리라...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원서의 모든것을 옮겨놓은 책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나왔던 여성작가들의 이름에 주를 달아놓아 쉽게 이해할수 있었고. 원서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역자는 말하고 있다. 제목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의미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말하고 있는 중심이었다. 여자여~! 자기만의 방을 가져라.. 라고 말한다. 그 오랜 시절동안 여자들은 자기만의 방을 갖질 못했다. 여자의 재산또한 남자의 것이어야 했고. 자신만의 방은 없었다.
현재의 우리 여성들의 생활을 그녀가 들여다 봤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흐뭇해 했을까?? ^^ 책의 목차는 첫 번째 방 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섯 번째 방까지로 해서 내용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이라면.. 읽으면 좋을 책같다.. ^^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삶이란 험하고 어려운 투쟁입니다. 삶은 지대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우리 인간처럼 환상을 가진 피조물에게는 무엇보다도 자기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자기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공작부인의 책을 펴보면 똑같은 분노의 폭발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박쥐나 올빼미처럼 살고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죽는다..." 마가레트 역시 시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라면 그러한 행위가 어떤 종류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놓았겠죠. 그러나 사실, 그 거칠고 풍부하며 교육되지 않는 그녀의 지성을 인간적 쓸모를 위하여 얽어매고 길들이고 교화활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주제가 아무리 사소하거나 아무리 광범위하다고 해도 망설이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쓰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행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나 과거에 관하여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책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길모퉁이에서 서성거리거나 사고의 낚싯줄을 강물 깊이 담글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여러분을 소설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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