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만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베로니카(화자)와 레베카.
평범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는 직장을 가진 베로니카와 고래를 연상시키는 뚱뚱한 몸에 아직 결혼도 안했지만 백만장자인 레베카. 학창시절 동무였던 두 여자가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이야기는 베로니카의 현재와 학창시절 레베카와 함께 했던 시간의 회상이 반복된다.
레베카는 왜 베로니카의 주변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집요하게 맴돌기 시작했을까... 베로니카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베로니카의 회상이 짙어질수록 두 여자 사이의 감춰두었던 비밀스러운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베로니카가 뚱뚱한 몸에 이상스러운 옷차림과 행동으로 왕따를 자처했던 레베카와 아이들 몰래 어울리던 일, 레베카가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을때 방관자 역할을 했던 베로니카, 그리고 그 아픔의 결정판이 되었던 졸업파티.
오래전 상처를 들추어내서 레베카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신문에서 우연히 기자로써의 베로니카의 이름을 보게 된 레베카는 베로니카를 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베로니카 앞에 나타나기에 이른다. 레베카가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외로웠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이유 하나였을텐데. 여전히 아름다웠고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고 유능한 커리어우먼인 베로니카를, 레베카는 사랑했고 흥모했으며 증오에 가까운 질투를 했다. 레베카 자신은 뚱뚱하고 혐오스러운 외모에 결혼도 못했고, 남편은 커녕 애인도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자식조차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레베카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이유는 이런 끔찍하게 뚱뚱했던 외모를 가졌기에. 왜 베로니카는 레베카와 어울리는 것을 다른 아이들 모르게 비밀스럽게 해야했는지, 왜 레베카는 그런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는지, 왜 그런 둘은 그렇게 어울릴 수 있었는지... 아마도 이야기의 끝을 봐야 알 수 있겠지...
몸을 일으켰다. 창가로 다가갔다. 점처럼 작아 보이는 차량들이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다리 위에서, 보도에서 사람들은 어떤 신앙의 힘으로 움직이는 존재처럼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과거는 뒤가 아니라 내부에 있으며, 어떤 일들로부터 나오는 베일이며, 안개 속으로흩어지는 피다. - 343페이지
<고래여인의 속삭임>이라는 제목과 표지만을 봤을때는, 그저 뚱뚱한 한 여인의 고백같은 이야기 한편이 등장하겠구나 싶었다. 저런 외모를 가진 그녀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그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좀 코믹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질거라고... 하지만, 이야기는 정 반대의 분위기로 흘러갔으며, 읽는 내내 나를 우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완벽할 것만 같았던 베로니카의 삶에서 그녀는 그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내연남을 가지고 있었으며, 백만장자라고 넘치는게 돈일 것 같은 레베카는 그 경제적 여유로움조차 함께 할 사람이 없었기에... 모양도 이유도 다르지만, 두 여자는 외로웠을거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거부할 수 없이 서로를 당기면서도 밀어낼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고. 과거의 기억을 함께 자신에게 가져온 레베카를 베로니카는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고, 레베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의 과거의 베로니카를 선택했을 것이다. 오래 전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시간 그때처럼...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외톨이를 감싸주는 법을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르는게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가꾸며 만족스럽게 거울을 보던 40대의 베로니카와, 여전히 고래같은 몸으로 움츠려살고 있는 레베카의 마음이 그걸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특히, 베로니카의 과거의 회상부분은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뜨끔하기도 했다. 베로니카가 손 내밀지 못하고 방관자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방관자의 태도를 취했던 모습들에서 우리의 모습을 베로니카로 그려낸 것 같은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한쪽 입꼬리 올리며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작가의 만족스러운 모습까지 보이는 듯한...
처음 만난 남미문학이었는데, 처음 만난 작가 알론소 꾸에또까지... 생소하지만 낯설지 않고, 우울했지만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또 공감하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만족스러웠다.
|
|
분홍빛 색감이 이쁜 <고래여인의 속삭임> 다 읽어버렸다.. 책의 뒷면 소개글에서는 섬뜩함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는 독특한 경험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섬뜩함을 느낄수는 없었다. 가령 고래여인 레베카가 베로니카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나, 또 베로니카에게 상처를 주게 만들어 쓰러지게 만든것.. 그녀의 가방에서 건총을 꺼냈던 일들이 섬뜩함을 안겨 줄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책을 읽는 내내 뚱뚱한 고래여인 레베카에게 자꾸만 연민이 생겼다.
베로니카. 미모에다 이름이 알려진 직업에. 남편과 아들. 애인까지 둔 그녀는 무엇하나 부족할게 없어 보인다. 평범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베로니카는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생 레베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인은 다름아닌 뚱뚱하기만 한 고래여인이다. 고등학교 때 고래여인 레베카는 왕따였다. 하지만 오직 베로니카 만이 레베카의 친구가 되었다. 비밀친구. 다른 친구들 몰래 두 여학생은 책과 영화를 함께 공유했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발생한 졸업기간의 일들은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어버리고..
두 사람은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가 25년 후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날의 만남 이후 베로니카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 레베카. 그런 레베카를 이해할수 없으며,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 베로니카이지만 고래여인을 만난 이후로 베로니카는 그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던 무엇을 서서히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서로 함께했던 우정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베로니카의 배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우정을 느낄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고래 여인의 속삭임 " 날 용서해줘" 라는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는 고등학생때 그녀의 아픔들과 상처들이 다 보여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고래 여인의 내면과 베로니카의 내면을 너무 잘 표현한 소설인것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고래여인의 속삭임> 어떻게 보면 분홍빛 표지와 내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흠.. 책을 다 읽은 지금. 고래여인 레베카의 마음이 느껴지는것 같아서 표지와 사뭇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추억을 영원히 지우기 위해 바닷가에 다시 선 레베카. 날씨는 분홍빛인데, 표지의 레베카 얼굴은 흐리고 레베카 에게만 흐르는 빗줄기가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는것 같은... 손에 든 초록빛 가방안에는 분명 건총이 들어있겠지?
웨이터가 케케를 가져왔다.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먹었따. 케케 조각들이 하나씩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입술을 지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포크로 케케를 찍어 느릿느릿 입으로 가져갔다. 아주 천천히, 흡족한 표정으로, 시간이 길어질수록 맛이 더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것을 통째로 삼키며 기쁨을 누리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일종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지도.
베로, 어떤 일은 외투 같아. 다시 말해 기억에 맞서는 외투같은 의미를 갖는거야.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해? 한 마디만 했으면, 딱 한 마디만 해줬으면 족했을 텐데, 네가 그렇게만 해줬으면 난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지. 난 쓰레기가 아니거든.
추억이란 차츰 자라나는 어떤 일들 같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결코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거 말이야. 추억이란 살아 있는 일들이고, 그 모습이 변해가는 거야.
|
|
당신에게도 고래여인의 속삭임이 들리는가.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저 책표지에서 등장하는 그녀처럼 등치도 크고 뚱뚱한 그런 여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책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녀가 화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래 여인인 레베카가 학창시절 너무나도 사랑했으나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레베카를 함께 왕따(?) 시켜버린 베로니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25년만에 비행기에서 옆좌석에 앉게 된 그녀들.
옆 좌석에 앉은 그녀가 레베카임을 알아챈 베로니카는 레베카의 눈을 피해 모른척 하고자 했으나 자신이 그녀에게 실수로 쏟은 음료로 인해 레베카와 안면을 트게 된다. 하지만 후에 그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베로니카는 껍질뿐인 남편인 지오반니와 끔찍하게 사랑하는 15살 난 아들. 세바스티안과 함께 꽤나 잘나가는 국제부 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일에서도 인정받으며 만족하는 미모의 40대 여성이다. 그리고 패트릭이라는 멋진 내연남까지 둔 나름 완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레베카를 만나고 싶지 않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그것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리라.
왕따가 만연해 있는 요즘의 상황을 미약하게나마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과는 모르게 레베카와 우정을 쌓았었다. 베로니카가 알고 있는 레베카는 책도 많이 읽었으며 말도 잘 통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눈을 피해 함께 영화도 보러 다녔었다.
하지만 베로니카가 좋아했던. 아니 사귀던 남자친구는 잘 생기긴 했지만 머리는 비어 있었고 레베카에게 파티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해서 레베카를 부풀게 만든 뒤 그녀를 바닷가 식료품점 앞에 내려주며 실컷 비웃는다. 그리곤 그녀는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그 파티에서 베로니카와 그 남자의 키스 장면을 목격한 그녀는 상처를 받았고 그 이후로 둘은 서먹해졌고 25년의 시간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그 시간이 흐른 뒤 레베카는 예전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고래를 연상하는 몸집이었고 미혼이었으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외로움만 가득했다. 레베카는 베로니카를 사랑했다. 그리고 증오했다.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작가의 글솜씨가 부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 풍조.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그런 것들을 비난하고 힐책하기 위해 지은이는 이 글을 쓴 것은 아닐까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베로니카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레베카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함께 누릴 사람이 없었다. 만일 베로니카가 타인의 눈을 조금이라도 덜 의식했다면..그리고 레베카가 다른 이들의 사랑에 목말랐다면 조금이라도 외모를 가꾸는데 노력했다면 둘은 완벽한 한 쌍의 바퀴벌레처럼.. 아주 좋은 평생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베로니카의 병원에 찾아온 레베카의 후회와 용서는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아니었을까 싶다.
<책속의 말> 모든 건 오해에서 시작돼.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의지를 확실하게 밝히는 거야.
독서는 일종의 피난처였잖아. 여자란 고독이 깊으면 책과 함께 하나 봐. 누군가가 너하고 함께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해주는 것처럼. 안 그러니?
추억이란 차츰 자라나는 어떤 일들 같아. 그렇게 생각 안 해? 결코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거 말이야. 추억이란 살아 있는 일들이고, 그 모습이 변해가는 거야.
고독이 주위를 향해 날을 세우게 만든 거야. 일상이란 정상적인 게 모인 박물관이잖아.
"삶은 온통 우연들의 집합체야." 그녀가 판결하듯 말했다. "우린 우연이란 게 우리 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돼. 나는 늘 그 순간을 생각했어."
|
|
제목과 표지가 뜨악하다. 철없는 나같은 화상들은 확실히 이 부분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마음이 형언할 길 없이 어려워진다. 입을 꾹 다물게 만들어 버리는 예의 무게감을 각오한다. 시작은 그렇게 했다.
스토리 라인은 깔끔하며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이에 잘 녹아 있다. 화자 격인 베로니카의 삶은 가정과 사회의 경계선을 지우고 양쪽 모두에 충실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의 자화상이다. 반면 레베카는 '강부자'급 이모의 유산을 받아 재투자에 성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지만, 신체의 특징 때문에 정신적 외상을 입고 고독의 바다를 건너야만 했던 여인이다. 이 두 여인은 10대의 학창 시절에 우정을 쌓으며 나름의 끈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운명은 서로를 결정적인 사건의 두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를 통해 훗날의 예사롭지 않은 재회들에 극적인 요소를 부여한다. 그리고 절정.
확실히 특징적인 것은 인물 설정에 있어 모든 이야기의 주체를 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의 행동반경은 철저하게 주변에 머물며 여성의 캐릭터를 부각하는 데 한정하고 있다. 내러티브의 구성은 히치콕까지는 모르겠고 비교적 탄탄한 편이라 매끄럽게 결말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특히 베로니카를 통한 몇몇 장면에서의 심리 묘사는 굉장히 뛰어나다. 레베카의 이야기를 듣는 비행기 안에서의 첫 장면에선 베로니카의 팽배한 지루함이 손에 잡힐 듯 느껴져서 내가 괜히 안쓰러웠다. 패트릭과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보이는 적당한 거리감, 남편과 아들을 대하는 자세, 회사에서 조우하는 여러 인물 군상들의 평가 등등은 아주 쉽게 이입을 허락할 만큼 사실적이다. 혹 지루한 플롯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완전한 의미에 가까운 정신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다분히 깊은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소설의 결론적 화두는 어쨌든 독자에게 내밀한 성찰을 요구한다. 돌아보면 우리가 기억해 낼 수 조차 없을 만한 작은 유리 조각에 상처를 입고 그대로 살아 왔던 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겐 그것이 결정적인 삶의 이정표가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서로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또 인생일 것이다. 바닷가로 간 레베카가 흡사 예수의 풍모를 지닌 또 다른 여인을 통해 새로운 애정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연유가 아닐까. 베로니카의 마지막 고백은 이러한 직조를 더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는 확 잡아끄는 강한 이끌림은 없다. 하지만 제목의 문자 그대로 주변에 떠도는 목소리가 귓가에 한동안 맴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래여인은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
|
고등학교 시절, 내가 속한 학급에도 레베카 같은 친구가 있었다. 보통 아이들보다 뚱뚱한 그 친구는 너무 내성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많았다. 하지만 줄곧 아이들이 그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건대, 그 성격은―물론 선천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주변 환경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같은 실수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저지른 실수는 희화화되었고, 그럴수록 그 아이는 예민해지고 자기 방어적이 되었다.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그 이후 그 아이를 다시 만난 적이 없다.
|
|
겉 표지의 여인도 무거워 보이지만 안의 내용도 상당히 무겁고 사방에서 조여오는 듯한 답답함을 준다. 소설이 재미 없어 그런거냐 하면... 그게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숨을 조여온달까? 처음에 나는 이소설을 소외받은 자 들의 아픔에 관한 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소설은 같은 영혼을 지닌 두여인에 관한 내용이다. 너무나도 다른 외모에 같은 영혼을 지닌 두여인... 가끔 돌기 시작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넘어지지 않고 굴러가게 하기위해 의도하지 않게 앞에 있는것들을 깔아 뭉게게 된다. 뭉게진 쪽이 상처 받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굴러가게 하는것만으로도 힘겨운 일들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답답함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생각하다가 나 역시 가까웠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상처를 주는 것은 가까운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떨어져 있는 사람이 휘두르는 말은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누군가와 가깝다는 것은 그 상처마저 감내하겠다는 각오가 수반된 일인 것이다.... |
|
레베카와 베로니카의 학창시절. 이 이야기는 궂이 얇은 종이 사이로 더듬어낼 필요가 없었다. 바로 나의 이야기였으니까..
뚱뚱한 암소, 고래여자 레베카는 단발머리가 날카롭게 선 교복시절의 나 바로 그 자체였다. 나는 레베카의 시선으로 베로니카를 조망하며, 베로니카의 마음으로 레베카를 포옹하며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게 된 것 자체가 우연이었다. 하필, 제목이 눈에 띄어 도서관 반납구에서 집어 든 책에서 나를 발견하게 될 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다 티슈박스에서 아무 생각없이 뽑아든 휴지가 내 증명사진이었다.
레베카는 그 지성과 상냥함과 순수함을 갖춘 소녀다. 하지만 그녀의 외면은 내면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고래만큼이나 뚱뚱하고 패션 감각도 얼굴 표정도 모두 늙고 병든 개처럼 더럽고 지저분해 또래에게는 배척의 대상이다. 영리하고 박식하지만 학교 선생들조차 아이들과 한 편이 되어 레베카를 괴롭힌다. 레베카의 매일은 송곳 비를 알몸으로 맞고 있다. 레베카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 그녀는 아무런 자신감도 없다.
하지만 어느날, 레베카의 겨울에 제비가 찾아든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상냥한 베로니카. 그녀는 레베카의 현명함과 지혜로움과 선량함에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된다. 다만 '비밀' 친구다.
레베카가 그녀에게서 얻는 위안은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기 어려울 만한 것이다. 레베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봄의 꽃향기를 맡았을 것이며, 물고기의 각막을 벗겨내고 프리즘을 통해 분쇄된 빛으로 꾸며진 세계를 만났을 것이다.
'누군가 를 만나는 시간'
레베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카. 가엾은 베로니카. 그녀는 결코 레베카가 가진 행복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레베카에게 신의 영광과 존재를 증명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베로니카와 레베카의 우정의 부등호는 레베카에게 몇개나 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레베카는 베로니카와의 경쟁에서 크게 벌었다.
그래서 레베카는 베로니카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 첫사랑은 잘생긴 킹카가 아니라 베로니카니까. 레베카는 단 한 마디만 하면 됐다. 굳이 미안하다고 할 필요도 없었다.
" 내일 또 만나자 "
하지만 그녀는 25년이나 레베카와 자기 자신을 결박한다. 그리고 둘 모두의 썩어 문드러진 살점을 뚫고 진주는 레베카에게 건네지게 된다. 그녀들은 서로를 구원했던 것이다. |
|
아주 우연하게 어린 시절 친구나 동창을 만났을 때, 우리는 대부분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진심으로 반가움의 표출하는 경우와 그저 의식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인사가 안부로 이어져 근황을 묻게 되고 서로의 근황을 알았을 때 상대가 무척 성공을 했다면 알게 모르게 위축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라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렇게 만났던 이가 추후에 연락을 취해 만나고 싶어하면 당신은 선뜻 약속을 잡을 자신이 있는가 묻고 싶다. |
|
"삶은 온통 우연들의 집합체야." 그녀가 판결하듯 말했다. "우린 우연이란 게 우리 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돼. 나는 늘 그 순간을 생각했어."
세상엔 너무나 뻔-한 책들이 많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이란 매력적인 제목의 이 책은 사실상 '고래여인의 외침'이란 거칠고 직선적인 제목이 더 어울릴 뻔 했다. 마치 고래처럼 풍만한 - 그러나 그녀가 갔던 예일대 축제의 이름은 '피그 축제'였지? - 레베카를 작가는 뻔하디 뻔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이 한 인간을 따돌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책들이 한결같은 시각으로 식상한 말들을 되풀이해왔다. 거기에 또 한 번 같은 이야기를 보탤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 Hyang 2010 |
|
들녘 출판사의 일루저니스트 그 여섯 번째 이야기인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마자 바로 작가인 알론소 꾸에또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분명히 페미니즘 계열의 소설인데, 이 글을 쓴 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구? 어쩌면 이렇게 여성들의 심리 묘사를 잘 집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남성 작가였다. 그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페루 리마에서 열심히 작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페루 가톨릭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의 플롯은 간단하다. 사십 대 초반의 유능한 국제부 신문기자인 베로니카 로스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녀에게 벌어진 한 편의 공포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글 속의 글, 다시 말해서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낸다. 이웃 콜롬비아 보고타 출장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 같이 거대한 옛 친구(그녀는 친구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레베카를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 몰래 만나 같이 읽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같이 듣던 친구였지만 어느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난 25년간 전혀 교류가 없다가 우연을 빙자한 필연으로 만나게 된다. 주인공 베로니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파티에 갈 때마다 타인에게 돋보일 화장과 드레스를 고르는데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성공한 인텔리 여성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특히 알론소 꾸에또 작가의 베로니카 화장술에 대한 묘사는 이 작가가 정말 남자인가 할 생각이 들 정도로 세심한 터치를 보여준다. 한편, 페르난도 보테로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레베카는 뚱뚱한 몸매와 튀지 못하는 외모 때문에 늘 고독이 그녀의 벗이자, 먹을 것으로 위로로 삼는다. 이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백만장자, 아니 천만장자가 된 레베카는 어느 순간 오래전 친구 베로니카의 삶 속으로 뛰어들면서 이 두 친구 간의 관계는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이 순간, 미스터리 스릴러로 돌변한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레베카가 베로니카가 일하는 신문사로 수도 없이 전화를 걸고, 베로니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심지어는 그녀의 정부 패트릭이 사는 아파트 위층 맨션을 사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베로니카는 경악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걸까?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됐던 25년 전의 사건으로 알론소 꾸에또는 독자들을 유인한다. 베로니카와 레베카라는 상반된 캐릭터들의 대비를 통해, 꾸에또 작가는 현대인들의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캐릭터인 베로니카의 강박적 다이어트는 레베카의 폭식과 상극을 이룬다. 하지만, 그 둘의 내면에는 모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베로니카의 흔들리는 가족과의 관계 역시 문제로 다가온다.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니코와의 관계를 끝내고, 서둘러 결혼하게 된 지오반니와의 결혼생활은 열정, 애정 그리고 의무감의 관계로 소멸하여 간다. 오로지 아들 세바스티안만이 가정에서 그녀의 위로가 될 뿐이다. 25년 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레베카는 자신의 비밀친구 베로니카로부터 적극적 옹호를 원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결정적인 순간에 레베카와 선을 긋고, 그녀를 모욕한다. 그 순간, 레베카는 그야말로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이로부터의 배신은 그 숱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결국, 레베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이 둘의 위태위태한 우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제목만 듣고서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에로틱한 느낌이 들었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이라니…….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캐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 <미저리>가 떠올랐다. 한편,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암울했던 과거의 정치적 이야기들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알론소 꾸에또 작품의 변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꾸에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