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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7회 팔려가는 꽃순이 장면을 분석해보려 했는데 옆길로 새는 바람에....
첫번째 사진은 안나를 회상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
두번째 사진은 철수를 멀리 보낼 구실이 없냐며 공실장과 상의하는 장면
세번째 사진은 철수를 부산 공사장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는 장면
첫 번째 눈물 씬에서는 빌리 테마인 '기억'이 삽입돼서 안나가 웃을 줄 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것이 진정으로 후회되는 빌리의 애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장면 이전까지만 해도 빌리가 안나를 데려오려는 이유는 7회에서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영상편지를 받고 난 뒤 '말도 안돼'라며 절규하던 이유와 똑같이 '돈' 때문이었다. 중간에 안나에게 하던 프로포즈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순정파 전략'같은 비인간적 행태로 변형되었다. 게다가 작전참모이자 최고의 브레인(?)인 공실장이 내놓은 계책은 '철수가 안나를 버리면 그때 데려오자.'였다. 정리해보면 12화 이전까지 빌리가 안나를 데려와야 했던 이유는 오직 돈 때문이었고, 데려오려는 전략은 철수가 안나를 버리면 순정파적 이미지로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빌리가 세운 전략은 매우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기만 하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고, 자신이 직접 조종할 수 없는 다른 사람 생각인데 언제까지 철수가 안나를 버릴 때를 기다릴 것인가? 이 같은 문제는 7회에서 "지금 가서 확 말해버리면... 죽겠지?"라는 빌리 대사처럼 그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다. 빌리는 5년간 결혼생활 동안 안나를 사랑한다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봤기에 그녀가 다른 남자인 장철수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녀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 있으면 알거지'라는 사실이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자기 앞으로 현실로써 다가와도 그저 기다리면서 증거를 없애고 철수와 안나 곁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2화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한 안나를 보고 나서지 못한것에 후회되는 빌리의 꿈 속은 물에 빠지던 때의 옷이 아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안나의 모습과 이전까지 귀신으로 등장한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와는 대비되는 우아한 어조의 "이미 늦었어. 당신은 날 버렸잖아."라는 말을 하는 안나를 그려내고 이를 통해 안나를 바라보는 빌리의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제 안나에 대한 공포심은 그녀를 향한 사랑에 가려지고, 돈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며, 빌리가 먼저 받아야 할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는 오히려 그가 안나에게 먼저 건네게 된다. 이제 빌리는 철수가 안나를 버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서 철수를 안나로부터 떼어내려고 한다.
빌리가 철수집에서 안나를 바로 데려오지 않은 것 때문에 그는 안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 간주하는 평가가 많지만 빌리는 이 정도만 해도 그가 엄청난 고뇌 끝에 그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능동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겨우 한 달을 동거한 것에 불과한 철수는 안나에게 거짓말한 사실이 두려운 나머지 11회 꿈속에서 "죽여버리겠어."라며 삽을 치켜드는 삽슬이 악몽을 꾸는 것이 그 증명이다. 철수보다 한참 더 긴 5년간 같이 안나와 결혼생활한 빌리는 한 달 동안이나 안나 귀신이 보이는 악몽에 시달리는데 이로 미루어 볼때 5년간 쌓여왔던 안나에 대한 공포심은 한순간에 사라지기가 힘들며 안나를 바로 데려오기보다는 철수가 안나를 버릴 때까지 기다리는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다. 게다가 빌리는 안나를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데리고 오지 않은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가?
빌리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한 분석을 위에 네 단락이나 적었던 이유는 사실 지금부터 할 음악 이야기 때문이었다. 빌리는 안나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캡처사진에서 그는 이제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안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철수를 멀리 떨쳐보내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빌리를 맡은 김성민 씨의 연기는 이제 그 어떤 제약에도 굴하지 않고 안나에게 다가가겠다는 굳은 결심이 흘렀다. 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빌리와 공실장이 개그스러운 전략을 짤 때 흐르는 'Comic'이었고, 세 번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빌리가 세운 전략 때문에 철수와 안나의 일상생활에 심대한 위기가 닥쳤음이 느껴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빌리테마인 '기억'을 사용해서 안나에 대해 빌리가 가지는 죄의식과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했었고 이제 안나를 찾으러 가려는데 왜 이것이 위기상황일까?
대본을 찾아보는 것만큼 작가와 연출진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없다. 내가 예전에 작성했던 대본과 TV 방영분의 차이 포스트에서 1회 대본을 살펴봤더니 홍자매는 안나 사진을 쥐어박고, 가운을 집어 던지는 빌리를 묘사하며 처음부터 악역으로 몰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매거진t 인터뷰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알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반성과 후회에 몸부림치는 빌리'를 눈여겨보라는 홍자매의 답변은 그들이 마지막까지 '최초 의도에 충실'했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홍자매가 만들어낸 극본에서 빌리는 12회 이전까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계속 희화화되어 웃음만을 유발하는 존재로 내밀쳐졌고 12회에서 그의 눈물씬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후회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최초 의도'대로 만들어진 대본을 충실하게 따라가자 환상의 커플은 '조안나가 차가운 외피를 벗어던지고 따스한 나상실이 된다'라는 주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조안나의 원래 남편이었던 빌리를 '귀족적 차가움을 상징하는 존재'로 몰아붙였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남겼다.
안나와 철수는 드라마 내내 한달동안 툭탁거리며 싸움을 벌였지만 그 사이에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진심을 깨달아간다. 반면에 빌리는 그들에 비해 할당된 장면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혼자서 고뇌에 빠질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순간의 깨달음이 점점 퍼즐처럼 하나로 맞춰지자 드디어 13회에서 빌리는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남긴다는 안나의 유언장을 보고 이제 그녀가 자신에게 낸 시험문제의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정이 없는 차가움을 상징하던 빌리는 이제 14회에서 평범한 일상의 따뜻함을 상징하는 철수와 같은 성격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셈이다. 홍자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그들의 펜끝을 떠나 훨훨 날아올라서 12회 이후 극중 표현되는 빌리는 이제 후회를 넘어서서 참회의 단계에 이르렀고 안나를 향한 진정한 사랑으로 진화한 것이다. 때문에 14회 엔딩씬의 후덜덜함은 물속에서 '난 조안나야'를 외치며 눈을 번쩍 뜬 한예슬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안나가 빌리와 철수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에도 있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홍자매 작가와 연출진은 빌리와는 달리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어느새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래도 14회까지는 음악편집이 조금 어색해도 순수히 극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만큼은 빌리가 남해 리조트에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처럼 생동감있게 다가왔지만 15회는 따뜻한 철수집과 비교되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현실세계의 상징처럼 비춰졌고, 16회에서 안나를 놓아주겠다는 빌리의 결심도 세부적인 캐릭터설명 없이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급하게 진행되었다. 15, 16화 이야기는 차가운 안나가 따뜻함까지 갖추게 된다는 '최초 기획 의도'에만 부합할 뿐이었고 차가움의 상징을 버리고 평범한 한 남자가 되었던 빌리는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15~16화를 보면 그동안 끌어왔던 살아 숨쉬던 빌리 캐릭터는 안나와 철수의 사랑을 만들기 위한 보조적인 기계로 전락한것처럼 느껴졌다.
빌리도 따뜻한 사람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내 의견을 억지스럽고 전형적인 클리셰라면서 비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놉시스와 극 전개를 살펴보면 그 의견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공식 홈페이지의 빌리 캐릭터 설명을 보면 그 역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서민적인 캐릭터였고 안나가 물려받은 거대 부동산 회사의 사장이긴 하지만 재산은 전부 안나 명의로 되어있었다. 결국 빌리 역시 돈없고 빽없는 우리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빌리의 소심함 역시 안나가 만들어냈을 뿐 빌리도 처음에는 6화에서 혼자 도도하게 앉아서 와인만 음미하던 안나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가 있었고, 9화에서는 안나에게 청혼하기 위해 99일간을 집앞에서 버텨내는 인내심도 있었다. 이러던 빌리가 5년간 결혼 생활동안 자신의 사랑에 대한 되울림이 없자 안나를 버렸었는데, 12회에서 드디어 처음 만날 때처럼 안나에게 용기있게 다가가기 위해 결심을 했지만 그마저도 Comic과 안나, 철수의 일상생활에 대한 긴장감으로 몰고가는 음악편집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안나를 사이에 두고 철수와 각축을 벌이는 빌리는 극적 긴장감 유지의 한쪽 축이었기에 단순히 빌리 캐릭터의 일관성이 무너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변화한 빌리 캐릭터가 무너지자 선악 구별 없이 인물 모두가 그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있기에 안나가 빌리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으로 긴장감과 캐릭터 간 비중의 균형을 유지했던 연출은 살짝 힘이 빠져버린 채 따뜻함과 차가움의 이분법적 대립으로 초점이 변해버렸다. 음악 역시 이후부터는 빌리 등장 장면에 그의 테마인 '기억' 대신 긴장감만 나타내는 'tension'만 흐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빌리는 주연급으로 오르지 못하고 조연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16화의 에필로그씬에서 안나와 똑같은 '왕싸가지' 성격을 가진 여자를 다시 좋아하게 되는 빌리를 보니 제작진이 빌리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에 관해 그다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은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14회까지 빌리 장면만 모아서 본다면 중요한 시점에 감정선의 정곡을 찌르는 절정내공의 홍자매 극본과 정말 자신의 감정이 찔린 듯한 김성민씨의 명연기가 돋보였지만 15회 이후는 그저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빌리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려던 유경이는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치를 키워서 내가 고를 테니까 다들 줄서라며 당당해졌고, 강자는 꿈에 그리던 눈 오는 날에 덕구와 데이트를 했고(덕구 캐릭터도 기계적이긴 하지만 걍 냅두자.), 공실장과 우계주는 드디어 가을동화식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이처럼 등장한 인물들의 거의 전부가 각자 자신들이 원하던 인생을 찾아 나섰지만 빌리는 끝까지 처음의 코믹 캐릭터에 갇혀버렸다. 빌리는 왜 옛날 그 싸가지없던 조안나와 똑같은 행동거지를 보이는 여자에게 끌려야 하는 것일까? 그는 분명히 따뜻해져서 돌아온 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었지 않았나? 빌리의 천성이 원래 메조히스트여서 그렇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6회에서 빌리와 안나의 첫 만남을 다시 보아야 한다. 그는 안나가 '도도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이 말의 어느 부분에 빌리의 메조히즘적 부분이 나와있다고 보는가? 16회 에필로그의 빌리 장면은 안 넣으니만 못했다.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겨우 15분만 연기하고서도 두시간 내내 뛰어다녀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조디 포스터와 함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등장하였고 갖가지 설정과 대사, 연출이 그녀를 돋보이게 만든 한예슬이 MBC 연기대상 우수상을 받았듯이 김성민씨도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빌리를 더욱 살릴 수 있는 대본과 연출이 있었다면 그는 2006년 한국드라마 남우주연상을 꿰찰 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마지막 장면들로 인해 남우조연상밖에 안되겠다. 물론 조연상이라고 해서 주연상보다 그 가치가 떨어지는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김성민 씨의 더욱 훌륭한 본좌급 연기를 만나게 되길 기원한다.
덧붙임 :
1. 최종 결론 : 1~14회 - 걸작, 15~16회 - 괜찮았던 드라마 중 하나
2. 14회를 다시보니 철수집 마당에서 줄넘기하는 안나와 쓰리석을 보며 그들 사이로 다가갈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빌리 장면에서는 '오래된 기억'과 원래 빌리테마인 '기억'이 흐른다. 그리고 안나가 떨어진 결혼반지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tension'이 흐른다. 빌리는 아파도 혼자서만 고뇌하며 견뎌내야 하고, 안나 곁으로는 절대 다가가선 안된다고 못박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빌리 혼자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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