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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121 선재는 구두를 신으려다가 구두코가 많이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구두 손질을 하기로 한다. 선재는 방문턱에 쭈구르고 앉아서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구두솔로 먼지를 털어 내고 더위 때문에 엿처럼 녹아내린 구두약을 바르고는 낡은 양말을 찢어 만든 헝겊으로 정성껏 문지른다.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신기하게도 광이 난다. 선재는 구두라는 사물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구두는 자기 주인의 삶이 어떤 고역과 마주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물이 아닐까. 그래서 주인의 손길에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p.203 선재는 희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술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얘기하는 건 아주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닌가. 왜나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정한 도덕적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 나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비판할 것인지 그 수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 정해지면, 오히려 자신을 이야기한 것이 자기를 해치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자기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에둘러 간다. 그런 준비 없이 자기 자신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 자신의 검은 치부를 홀로 들여다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마치 지지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미니시리즈나 주말 연속극 같은 그런 드라마가 아닌, 한 편, 또는 길게는 2회에 걸쳐 끝나버리는 짧은 단막극.. 그 단막극 속의 주인공들은.. 대개는.. 별볼 일 없는 시시한 인간들이다. 너무 시시해서 한심하고 내가 이걸 왜 굳이 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시시한 인간이 나오기 때문에 내가 그걸 보았다는 걸.. 드라마가 끝나고 한참을 멍때린 후에야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 편으로 끝나는 단막극을 좋아한다. 기다리지 않아도 좋고, 허황된 것에 꿈꾸지 않아도 좋고, 그냥.. 내 이야기를, 아니면 바로 내 주변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 그 느낌이 나로 하여금 단막극을, 영화를 보게만든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엔 뭔가 거창한 것이 시작될 듯한 느낌에 살짝 졸음이 오기도 했지만, 초반 몇 페이지를 지나면서부터는.. 그냥 별볼 일 없는 심심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그냥 흘려도 그만, 외면해도 그만인 그 심심한 인간들의 삶이 더 나아진다거나, 또는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생긴다거나 그런 건 없다. 그들은 지금껏 살아온대로 지지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거기에서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희망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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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 김도언 장편소설. 민음사 2008우수문학도서. 드라마[시크릿가든] 주원 라임의 테마도서 .....................................................................................
뭐 수식어도 많이 붙어있긴 한데... 난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고...
오랜만에 읽은 소설. 울고 싶어졌다. 참 다행한 일. 가끔은 감성을 일깨우는 문학 때문에 살게 된다. 오래도록. 참 오래도록 인공눈물에 의존. 자연산 눈물이 필요했는데...
오늘은 매우 적절한 날이었다. 천안함 1주년. 일본 방사능 수치 1000배 이상. 버스전복 사고. 세상 참 슬프고도 슬프고도 쓸쓸하다. 한없이...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적절했다. 우리네 삶의 조각조각 사소한 인연 속에 눈부신 멜랑꼴리.
소설 속 등장인물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이란 말인가. 어느 누구 하나 가엾지 않은 인물은 없는 듯 하다.
자세히 뒤집어보면 실밥처럼 얽히고설킨 게 우리네 삶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었지.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드는 생각. 다들 어떤 관계 속에 그 어떤 누군가와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을까. 슬픔의 얼굴을 보고, 찌들은 얼굴을 보고, 그리움의 얼굴을 보고, 기쁨의 얼굴들을 또 본다.
누구나의 가슴 속에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 하나 있겠지. 그 기억들로 인해 지구는 오늘 또다시 자전하나보다.
해일로 뒤덮고, 고통을 주고, 또다시 인연의 질서를 정렬해 가며... 지구는 오늘도 자전하고 공전하나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을 따뜻하게 품고 갈 수 있는 우주. 그 속에 존재하는 미물이고 싶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불행한 가정사에 괴로워하는 시인이 되지 못한 시인 학원강사 선재. 고운 미모로 젊은 스님을 파계하게 만든 선재의 어미. 천형의 문둥병을 얻게 된 어미의 남편 파계승. 선재의 동생 병장 선규. 선규가 결국 죽게 만드는 고문관 영표.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임신한 채 대책없는 영표와 결혼한 소라. 결국 유산한 후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사는 소라. 그 집에 세든 선재.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양아치가 된 소라 동생 호준. 호준을 사랑하는 학원강사 미진. 미진을 짝사랑하며 껄떡대는 학원부원장 철민. 그러한 철민을 짝사랑하는 80kg 수학강사 선숙. 경멸감을 갖고 마지못해 학원 강사일을 하는 영어강사 희태. 섹시한 젊은 처자 미진을 좋아하다가 수모를 당하게 되는 철민의 사촌형 학원장 철중. 이도저도 끼지 못하는 얼룩진 인생 운전사 진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결국 영표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벨은 울리고, 병든 아비의 뿌오뿌오뿌오 장남감 나팔 소리는 울리고, 상처 받은 영혼 선재와 외로운 소녀 소라의 가슴이 열리고. 그렇게 또다른 질서가 재탄생하는 순간.
책을 덮으며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에 젖어 내 삶의 질서 또한 재배열 되기를 상상해 보았다.
나의 삶은. 어디쯤 온 것일까. 제대로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긴 한 걸까.
내가 걸어가는 길의 반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 인연. 손 맞잡고 웃어 볼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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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빠져든 드라마...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순역할을 생각해보게 해준 작품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을 범위에 있는 책을 알게 해주어 드라마 작가에게 감사하다.
추운 겨울날 읽어서인지 더위 속에서 헐떡이는 작품 속 인물들의 묘사들이 오히려 찬바람에 웅크리고 추레한 모습들로 각인되어 버렸다.
'난 이들보다 낫잖아'라고 안도하는 아주 잔인한 현실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간혹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많은 이들과 또 나를 그리 바라봤을 많은 상황들 속에서 발가벗겨 내던져진 느낌에 서둘러 책을 덮었다.
[기억에 특히 남는 장 203~204p]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얘기하는 건 아주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닌가. 왜냐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정한 도덕적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 나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비판할 것인지 그 수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선재는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싶다.(중략) 누가 누구를 구원하고 누가 누구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가. 삶은 늘 순간순간을 견디는 것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기쁨이나 슬픔이나 노여움이나 행복이나 모두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것 아니던가. 모두 지나가는 것에 미련을 두고 그것을 부여잡기 위해 삶은 언제나 탕진되어 온 것 아닌가. 그러니 잠시 견디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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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81838241 작가 김도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무척 이상한 방식이었다. 뭐, 아주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였지만 그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작가일기라고 이름 붙여진 에세이-산문 모음인 ‘불안의 황홀’이었고, 꽤 독특한 감수성과 시선-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관심이 들어 그의 소설을 구해두기는 했지만 항상 그렇듯 지겨울 정도로 귀찮음으로 가득한,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루기만 하는 게으름 때문에 구하게 된 동시에 책장에 꽂혀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가 갑작스럽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나처럼 뒤늦게 읽게 되었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는 내용이 끝난 다음에 읽도록 준비한 작가의 말과 평론가의 작품 해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르게 덧붙여서 설명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워낙 인상적인 제목 덕분인지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내용을 접하며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사소한이라는 표현을 붙이게 되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야릇하기도 하고 몽환적인 느낌도 들게 되는 제목 때문에 실제로 읽기 전에는 어떤 내용인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던 ‘이토록...’은 도시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여러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각박한 삶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사소한 일상과 큰 사건 없이 이끌어지는 이야기 때문에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무런 내용이 없다며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소함 속에서 약간의 갈등과 사건이 그리고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짧게 잘게 나눠진 이야기 진행과 긴 호흡 없이 쓰인 글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는데, 여러 이야기들이 겹쳐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선재를 중심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갈등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결국 선재의 내면을 그리고 그가 겪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과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고 비교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순간은 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때때로 안쓰럽게 만들기도 하고 도망칠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에 그 괴로움을 공감하게 되기도 하는데, 여러 등장인물들을 잘 다뤄내고 있으면서 각각의 인물들에 개별적인 개성과 차이를 충분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들의 조합이 그리고 구성이 만족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끝맺음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전체의 과정 속에서 어떤 순간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있고, 살펴보게 만들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고, 어쩌면 지루하고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지루함과 대단찮음은 결국 우리들의 삶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갑갑하기만 한 삶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잠시금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위악적이거나 악취미에 대한 탐구를 보이고 있는 저자라고 알려진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그리 위악적이지도 않고 악취미로 가득하지 않기 때문인지 그냥 저냥한 심심한 기분으로 밋밋하고 팍팍함으로 가득한 삶을 잠시 함께한 기분이다. 나쁜 기분은 들지는 않는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머뭇거려지겠지만. 참고 : 1. 멜랑꼴리의 올바른 표기는 멜랑콜리라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심하기는. 2. 2008년 7월 16일 1판 2쇄로 인쇄된 책을 읽었는데, 230쪽과 231쪽에 오타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눈에 거슬렸다. 소설을 읽을 때는 오타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어쩌다가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230쪽 아래에서 3째줄 '호준이 그렇게 말하자 소라는..' 은 '호준이 그렇게 말하자 미진은...' 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고, 231쪽 위에서 9째줄 '선재가...' 는 ' '호준은...' 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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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만날 듯 하지만 결국 마무리는 미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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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하단 말은 보통 상황이 이상야릇하게 돌아갈때 쓰는 말이다. 무슨 이야기이길래 사소한 멜랑꼴리라고 하는걸까?
문둥병에 걸린 엄마는 소록도로 파계승이 되어 엄마와 다복하게 살던 아버지는 다시 중이 되어 산으로 그리고 남겨진 두 형제! 이 소설의 주인공 형은 시인을 꿈꾸지만 등단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결국 하찮은 학원에 국어 강사로 취직을 하고 동생은 군에 있다.
이소설은 기둥이 되는 주인공과 주인집 여자와의 이야기가 쭉 이어지면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가지를 치고 둥지를 트는 이야기 구조로 가만히 읽다보면 서로 어떤 이유에서건 얼크러진 생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은 늘 자신이 문둥병환자의 자식이라는 그늘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결국 사랑했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셋방살이로 이름도 없는 학원강사로 취직해야하는 자신을 몹시도 의기소침해한다. 그렇게 세들어 살게된 집에 처음 계약을 할때부터 주인남자가 아닌 주인여자가 등장해 의아했던 그는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건너편 주인집 여자의 소소한 일상을 벽너머로 듣다가 나중엔 벽에 귀를 대고 그 알 수 없는 소리들에 집착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주인집 여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군입대를 앞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지만 남편 없는 집에서 풍에 걸려 꼼짝 못하는 자신의 친정아빠를 건사하며 지낸다. 가끔은 남편을 그리워도 해보지만 임신초기에 아이가 유산되어 버려 허탈하고 걸려온 전화를 빨리 받지 못한다고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이 점 점 못미더워진다. 친정아빠는 뿌우뿌우 나팔을 불어 자신의 요의나 변의에 대한 의사전달을 하고 아기도 없는데 항상 기저귀를 빨아 탈탈 털어 널어 볕에 말려야 한다. 그리고 가끔 아빠와의 불화로 삐뚤어져버린 남동생이 가끔 찾아오는 날은 용돈을 쥐어 주어야하고 어쨌든 관계를 회복하려 애쓴다.
주인공 남자는 젊은 여자가 남편없이 혼자 산다는 것도 의아한 상황에 아기 소리는 나지 않는데 항상 마당에 기저귀를 털어 볕에 말리는것이 이상하고 벽너머로 뿌우뿌우 하고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한데 독자는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왠지 주인공 남자에게 답을 해줘야할거 같은 생각을 갖게도 한다. 가끔 찾아오는 양아치같은 복장의 남자는 어딘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동생쯤으로 생각하지만 전화벨이 울리면 꼭 두번만에 받는 여자의 습관까지 점 점 더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주인공을 보니 분명 둘사이에 뭔 사단이 나지 싶다.
주인공이 취직한 종합학원은 생계를 위해 다닐뿐이지 정을 둘 생각이 전혀 없다. 처음 소개받은 영어선생이란 여자에게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도 학원장과 부원장간의 알 수 없는 공기의 흐름이나 왠지 어색한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만 끝나면 자리를 뜨기 바쁘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은 이 부류속에 섞여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듯,
그리고 영어강사의 남성편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학원장과 부원장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팔기도 했으며 자신이 좋다는 양아치같은 남자에게 묘한 매력을 느껴 호텔에서 동거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다름아닌 주인집 여자의 남동생, 그리고 주인공의 남동생은 다름 아닌 주인집 남편의 입대한 군의 상사다. 이쯤되니 우리가 그렇게 넓게 생각하는 이 세상이 얼마나 협소한지 생각하게 되고 또 어떤 인물이 주인공과 혹은 다른 인물들과 서로 연관지어져 있을지 기대하게도 된다.
양아치같은 그 남동생은 영어강사인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것에 큰 보람을 느끼는듯 어느날은 그녀를 치근덕대는 학원장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누나집에서 훔쳐온 누나의 금가락지를 그녀에게 선물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영어강사는 금가락지를 그만 식당에서 잃어버리는데 그것을 줍게 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주인공!
주인집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다가 넘어진걸 도와주면서부터 둘의 관계는 급진전, 그녀는 주인없는 그의 셋방엘 들어가 청소를 하기도 하고 다시 흐트러놓기도 하며 남편없이 외로운 마음을 의지하려 하는데 어느날 술을 잔뜩 먹은 그를 맞아 집으로 옮겨주다 그만 둘은 급격히 몸을 썩는 와중에 남자의 주머니에서 금반지가 떼구르르 굴러 나온다.
언제부터인지 어디서부터인지 정말이지 우리의 생은 이토록이나 사소한것에 멜랑꼴리 해지는 걸까? 사소하지만 왠지 거부할 수 없는 생, 사소하지만 왠지 무시할 수 없는 생, 그런 것들이 모여 거대한 힘을 가진 무엇인가가 형성되는 것이 세상인것일까? 자신의 소원은 천사를 죽이는것이며 방안에 있는 모든 책을 불태우는것이라는 주인공 남자의 삶속에 얽힌 갖가지 인생들이 참으로 멜랑꼴리하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했던 엄마는 다름아닌 주인집 여자와 끈이 이어져 있더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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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정말 이토록 사소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의 내용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다. 아니 사실 평범하다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은 하나같이 지루하고 답답하기까지 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릴레이를 하는 마냥 얽히고설키며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간다. 마치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제자리걸음 인생이랄까!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은 또 내일이고 내일은 또 어제와 같은 시간,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그래서 희망 자체를 기대할 수 없는 삶의 비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 내가 본 그들은 그랬다. 문등병자의 아들이자 파계승의 아들 선재,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리는 어린 신부 소라, 소라의 동생 양아치 호준, 학원의 꽃뱀 미진, 뭔가 늘 부족해 보이는 운전기사 진호, 할 일없는 노총각 철민과 뚱뚱녀 선숙등 뭔가 제대로 된 사람이 없는 소설이다. 또한 그들의 좁은 인생처럼 소설의 구도 역시 학원과 자취방과 모텔을 오가며 펼쳐진다. 이토록 사소함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끌리는 매력이 넘치는 소설인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에서부터 주변 인물까지 모두 상처와 실패로 얼룩진 사람들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각자의 상처를 들여다보면 결국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서로에게 으르렁 거려봤자 되돌아오는 건 결국 또 하나의 상처뿐이다. 마치 죄 또한 자신이 회개치 아니하면 씻을 수 없는 것처럼 결국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선재와 선규 역시 자신의 밑바닥 인생을 부모님의 원죄에 대한 대물림이라 생각한다면 그들 역시 훗날 자식들에게 똑같은 인생을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년의 수행을 한 걸음에 거두게 만들었던 보살 어머니는 지금 한센병을 앓고 저 머나먼 섬으로 떠나 버렸고 아버지 역시 그 서러움을 감당치 못하고 다시 절로 되돌아 가셨다. 그래서 그런 걸까? 선재는 하는 일마다 실패, 실패, 실패다. 시인 지망생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지고 지금은 볼품없이 작은 학원 입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선재와 짝을 이루고 있는 소라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유산하고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병간호하며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린 가여운 여자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어머니가 죽자 양아치가 되어 누나의 피를 빨아 먹는 거머리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 모두가 그렇게 빨아도 지워지지 않은 얼룩진 인생이 되어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마지막은 선재와 소라의 구원이다. 어떻게 보면 보는 시각에 따라 해피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진의 말처럼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약해지는 순간 비참해 진다는 말의 동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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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작가인데 언제인가 조선일보 신간 소개에서 언뜻 본 듯했다 기억을 하는 이유는 제목과 책 표지가 특이해서였을까...
먼저 작품해설을 읽어보았다.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환멸적인 일상과 디테일을 잔뜩펼쳐 놓고는 의뭉스레 냉소하며 독자들 스스로 미쳐서 뛰어나가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이 소설에서 반복되는 지루한 문장과 동선들에 내재된 작가의 전략인지도모른다..
한 주인공의 사소한,어찌보면 비루한 일상들이 정말이지 멜랑꼴리 하다. 보살이었던 엄마와 사랑을 하게 되어 파계한 스님인 아버지 한센병으로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결국 소록도로 떠나게 된 어머니 시인 지망생이었으나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변두리의 학원 국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선재 그 주의의 인물들 모두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둥거리는 일상들이다 씬번호와 함께 단편 단편 짧막하게 커다란 사건도없이 그저 밋밋하게 사소하게 흘러가버린다
이야기와 전개방법은 사소했으나 그 안의 그들은 결코 사소할 수 없는 ...
구원 불가능성에 절망하며 달아나는 둔주곡이자 구원을 향한 전주곡이라 할 수있다. 왜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홀로 어둠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게임의 규칙'이기 때문이다....작품해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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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난다. 몇 해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원래 다 구질구질한거야' 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일이. 그래서 그걸 어떻게든 견뎌내야한다며. 술김에 했던 이야기라 대화의 앞뒤는 기억에서 잘려나갔지만 저 토막만큼은 여태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투박하고 멋없으며 하나 둘 어딘가 부족하다. 우울하다는 표현으로는 충분치않은 것 같다. 시인의 꿈을 접지도 펴지도 못하는 주인공부터 남편과 애틋하지만 떨어져 살고, 아버지의 병수발, 양아치 동생을 마주하는 소라, 구질구질한 입시 학원의 선생들, 운전기사 진호까지. 모두가 그렇다. 호흡이 짧고 다소 투박한 문장이 이 소설 속 인간들의 삶과 닮아있어 읽는내내 텁텁함이 있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건 뒷부분 작가의 말을 읽은 후 알게 되었다. 뒤이어 생각해 보니, 고여있는 물같은 인생들이라 이 인물들이 앞으로 어찌될 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가 궁금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책을 덮고 싶지 않던 건 그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흥행은 될 지 모르겠지만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소설보다 좀 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미진같은 캐릭터는 백번 말보다 한 번 보는게 더 와닿을 것 같다. 구질구질함을 놓을 수 없는 건 우리가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이고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회피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것도 어떻게보면 그 과정인지도 모른다. 내가 놓여있는 구질구질함을 견디는 것,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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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유하는 먼지로 가득한 세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종국에는 바스러지고 마는 지루한 존재의 비밀스러운 표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멋있는 행동과 세련된 말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사소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삶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압도적인 사실로 존재한다. 비주류적 세계의 질서 같은 게 있다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 그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 소설이 의도한 게 있다면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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