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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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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더라도 글을 쓰는 분이 씨줄과 날줄을 잘못 구성하면 그 인물의 객관성과 진의가 시들어 버리고 독자들에게 바르게 알기와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이 작품을 읽어 가면서 시대 상황,인물의 특징,후기등이 잘 어우러지고 한 편의 시대극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멋지고 처연하고 강단있다라는 느낌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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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더라도 글을 쓰는 분이 씨줄과 날줄을 잘못 구성하면 그 인물의 객관성과 진의가 시들어 버리고 독자들에게 바르게 알기와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이 작품을 읽어 가면서 시대 상황,인물의 특징,후기등이 잘 어우러지고 한 편의 시대극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멋지고 처연하고 강단있다라는 느낌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남존여비’라는 조선의 봉건사상으로 인해 아무리 재능이 출중하더라도 사회로의 진출을 원천봉쇄해 암울한 시기를 살아가야만 했던 허난설헌의 굴곡 많은 인생을 다행히 그녀의 사후,남동생 허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때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들이 세상에 빛을 발하며[난설헌집] 그 시에서 민중의 삶과 선계(仙界)의 세계를 음미하고 그녀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것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품고 있던 한(恨)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했다.
1.어째서 여자로 태어났는가?
2.어째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3.어째서 조선 땅에 태어났는가?
라는 건데 그 시대 조선 여인들의 한과 절망이 묻어 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허난설헌은 아이를 순산하지 못하고(남편의 외도) 유산하게 되어 시어머니의 미움을 사게 되고 한 겨울 냉골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같은 여자 입장을 넘어서 그녀의 울분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실제 저의 외할머니도 본의 아니게 아들을 낳지 못한 가운데 성질이 못된 증조할머니가 외할머니 젊은 시절에 구박하고 냉방에서 따로 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련하고 힘드셨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노후에는 기침,해소병으로 오랜 세월 고생했던 외할머니가 내내 머리 속에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의 삶의 비사는 대부분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에서 알 수 있는데 조선의 성리학의 한 가운데에서 당쟁이 심화되고 있던 싯점으로 실사구시를 외치던 학자들에게도 여인들의 사회 활동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작용했던게 분명하다.그녀가 쓴 시 가운데 절창은 <가난한 여인의 노래가 있고 산수화 속에 소녀가 등장하는 선계의 모습인 <앙간비금도>가 있다고 한다.

또한 세도가 양세겸이 주최한 문인 연회에 난설헌이 시를 지어준 댓가를 받기 위해 참석했는데 부패한 정치상황과 초근목피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읊은 시가 전해 오는데 인용해 보려 한다.p304~305

양반집 세도가 불길처럼 드세고
높다란 누각에서 풍악 소리 울릴 제,
북쪽 마을 백성들은 가난으로 헐벗으며
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누워 있네.
어느 날 아침 높은 권세 기울면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부러워하리니,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바뀌고 바뀌어도
하늘의 도리를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참 통쾌하고 심금을 울리는 시다.시대의 폐부를 정곡으로 찌른 멋진 시로 연회석은 한 순간 찬물로 끼얹은듯 침잠되면서 난설헌은 자신의 뜻을 흔들림없이 전한다.

난설헌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그녀가 꿈꾼 민중의 소망과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허균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 고스란히 남아 전해지고 있다.이 글을 읽으며 조선시대 신분제로 인해 빛을 발휘하지 못한 여인들의 삶과 실생활에는 실용이 안되는 주자학에 빠져 탁상공론만 일삼던 시대에 도탄에 빠졌던 민중들의 가련한 삶을 부분적이지만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 다행스럽고,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 보려 한다.





j******6 2013.04.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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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켄드 켐페인 8월 리뷰1-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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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글을 아는 시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이었을까? 한 여인으로는 한없이 불행했지만, 시인으로선 불멸의 존재가 된 허초희, 허난설헌.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가 따뜻한 국밥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덥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지만, 난설헌에게는 시가 삶의 이유였을 것이다. 천금 같은 아들과 딸을 잃은 것도 모자라, 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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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글을 아는 시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이었을까?

한 여인으로는 한없이 불행했지만, 시인으로선 불멸의 존재가 된 허초희, 허난설헌.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가 따뜻한 국밥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덥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지만, 난설헌에게는 시가 삶의 이유였을 것이다.

천금 같은 아들과 딸을 잃은 것도 모자라, 뱃속의 아이마저 놓친 초희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남편은 기방을 전전하며 아내를 돌아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가에선 빨리 후사를 이으라고 압박을 가하고,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조선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아래에 강요되는 굴레만 주어졌을 뿐이다. 반가의 여인이라는 태생이 얼마나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는지, 조선시대 여인의 삶을 볼 때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것은 결코 여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고등학생때 접했던 ‘규원가’ 속에는  참적의 아픔과 남편의 무심함에 얼마나 애절하고 처절하게 살아왔을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을 그녀의 고통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마디마디마다 다 그녀의 원이 배어나오고, 그것은 곧 허초희의 비명이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비명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체 높은 양반가의 지어미, 며느리로 살아간다는 일이 그런 것이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그런 처지에서 붓을 들어 시를 썼던 것은 남편을 향해 가부장적 조선사회를 향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양천 허씨 집안 난설헌 대 남자 형제들은 하나같이 문재가 뛰어나 조선에 이름을 떨쳤다. 난설헌도 시를 배우고, 일찍부터 문재를 발휘했다고 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 특히나 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교양을 위한 수단이나 학문을 닦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삶이 불행할수록, 자신의 문재를 발휘하지 못하게 억압받을수록 난설헌의 인생 중심에는 자연스레 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단장이 끊어질 것 같은 아픔을 시로 토해내면서 시는 그녀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됐고, 원천이 됐다. 시와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더더욱이 조선 민초들의 아픔과 고통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기생이나 쓰는 것이라고 인식돼온 여류의 시는 난설헌에 의해 더욱 그 폭이 넓어졌고, 깊이를 더해갔다.

하지만 난설헌은 채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요절했다. 사후에 안동 김문의 선영에 묻히게 됐지만, 시인 난설헌의 명성을 가두지는 못했다. 난설헌은 시를 통해 허균의 누이가 아닌 조선의 시인 허난설헌으로 당당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조선 사회를 통해 그녀의 시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불멸의 시인이 된 것이다.

시 속에는 그녀의 고통과 한숨과 절규가 담겨있다. 살아 숨쉬는 난설헌의 희노애락과 진짜가 담겨 있었다. 그리하여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불행은 결코 그녀를 잠식하지 못했다. 삶을 바쳐 자유의지로 시를 썼던 난설헌은 그렇게 시인으로 살다, 시인으로 다시 거듭난 것이다.

e****0 2009.08.04.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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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그녀의 일을 처음 읽게 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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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그녀의 일을 처음 읽게 된 소설   해가 막 기울어 꽃이 입술을 닫을 때 여종을 시켜 모시주머니에 넣은 차를 꽃심에 박아두도록 했다. 모시주머니의 차는 밤이슬을 맞으면서 연꽃의 향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침 일찍 손님을 초대해 차동茶童에게 꽃심에 박아둔 모시주머니를 꺼내오게 해 우려낸 연꽃차를 대접했다. 연꽃차를 즐기면서 시를 짓고 난을 치고 거문고를 즐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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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그녀의 일을 처음 읽게 된 소설

 

해가 막 기울어 꽃이 입술을 닫을 때 여종을 시켜 모시주머니에 넣은 차를 꽃심에 박아두도록 했다. 모시주머니의 차는 밤이슬을 맞으면서 연꽃의 향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침 일찍 손님을 초대해 차동茶童에게 꽃심에 박아둔 모시주머니를 꺼내오게 해 우려낸 연꽃차를 대접했다. 연꽃차를 즐기면서 시를 짓고 난을 치고 거문고를 즐겼다. 144쪽

 

 

때는 조선, 당시 여인들은 어떤 삶을 지녔을까? 특히나 양반집 규수는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위의 문구처럼 동양의 은은하면서도 고고한 풍류를 즐기며 삶을 살 수도 있다.(이 구절에서 즐긴 이 부분은 참으로 멋지지만, 슬프게 읽혔다. 여종과 차동의 등장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의 여인에게 국한된 삶은? 그리고 그네들이 보는 세상의 넓이정도는? 아마도 그건 주체적으로 살고자 갈망하는 여인이라면 얼마나 닫힌 세상이었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눈을 가리고 살게 하는지는 누구나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난다는 것, 자신의 발로 박차고 나가 세상의 길로, 자신의 뜻으로 길로 걸어간다는 것. 당시엔 얼마나 크나큰 모험이며 지금 현재 우리의 삶으로 봐도 모험이다.

 

시라는 것, 시인의 삶을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아픔을 애써 알아내려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오곤 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앓아내는.

난설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고, 주변을 읽으며 그것을 그저 통과만 하지 않았다. 시로써 그려내고 시로써 비유하고 같이 앓아낸 여인인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그리고 미래에 주체적인 자신을 찾아, 찾고자 살아갈 여성들에겐 필독서로 뽑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부른 천재시인 난설헌이 죽은 그 나이, 스물 일곱인 나는 이제야 풋내나는 방황을 시작해도 될까? 모든 것이 당시와 달라서 모든게 가능해보여도 용기가 없어 자신을 더 못 찾는 나인데.....

멋진 삶을 살고 싶어진다.

 

전에 읽었던 책들이 연달아 주르륵 생각난다. 김탁환의 팩션 소설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같은 인물을 신경숙이 다룬 [리진], 또 많은 작가들이 다룬 [황진이] 등. 과거를 살았어도 지금보다도 미래를 산 그네들. 그런 삶이 멋있다. 같은 혈육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게도 그녀들의 피가 알알이 흘렀으면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난설헌의 시를 처음으로 많이 접한 듯싶다. 그리고 당시, 시로써 묻고 시로써 화답하는 풍습 또한 우리네만의 멋스러운 풍류가 아닐까 싶다. 또한 목격하는 세상일에 대한 안타까움에 기꺼이 붓을 드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 중 한수를 옮겨 보겠다.

 

[가난한 여인의 노래]

 

얼굴이며 맵시 어찌 남에게 떨어지리오.

바느질 솜씨 길쌈 솜씨 뛰어나건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중매할미 모두 나를 몰라준다오.

 

춥고 굶주려도 내색 않고

하루 내내 창가에서 베만 짠다오.

부모님만은 나를 가엾다 생각하시지만

이웃의 남들이야 어찌 알리오.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처량하게 울리네.

베틀에 짜여진 명주 한 필은

결국 누구의 옷이 될이거나.

 

한 손에 가위 들고 마름질하노라니

싸늘한 밤기운에 손가락이 곱아오네.

남들이 시집갈 때 입을 옷 잘도 짓건만

해마다 해마다 나는 홀로 밤을 지샌다오.

YES마니아 : 로얄 m*****e 2008.03.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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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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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난설헌.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일이 있는 친숙한 이름이긴 했지만 솔직히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유명한 허균의 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은 단편조차 없었던 것을 보면, 부끄럽지만 나는 애초에 난설헌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는 얼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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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난설헌. 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일이 있는 친숙한 이름이긴 했지만 솔직히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유명한 허균의 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은 단편조차 없었던 것을 보면, 부끄럽지만 나는 애초에 난설헌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는 얼마전 티비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서 온갖 역경과 차별을 딛고 일어서 결국에는 어의가 되는 입지적인 여성상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부분에서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픽션이였다고는 해도 조선시대의 여성이라면 고작해야 신사임당밖에 모르던 나였기에 그런 대장금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였고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수 없었다. 

 

애초에 이 소설에서 볼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은 그렇게 하나씩 벽을 뛰어넘고 싸워나가는 여성의 모습이였다. 그러나 철저한 신분사회이고 남성우월 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자의 몸으로 무언가를 쟁취한다는 것은 홍길동전 같은 전기소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수없는 일이였던 모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는 전기소설이 아니며, 따라서 통쾌한 성공 스토리도 아니고 그저,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커다란 벽을 넘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가 가야 했던 한 여인의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져 갔을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집안에서 정해주는 혼처로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 하여 소의 생식기를 날것으로 먹기를 강요당하는가하면, 기생집을 드나드는 남편에게서 옮은 임질로 고생하면서도 내색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인처럼 살아야했던 그녀의 삶이 처절하기 짝이 없다. 아이를 유산한 직후에도 시어머니의 심술로 냉골에서 잠을 자야만 했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먹먹하고 우울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훗날 몰락하였다고는 해도 세도가였던 집안의 애지중지하는 딸의 삶이란것이 이러하였으니 평민, 혹은 천한 집안의 여식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역사에 무지하고, 평소에 여성에 권익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해본적이 없던 나였기에, 이런 모습들은 전쟁터의 처참한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의 생활상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말로만 듣던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 것같은 기분이랄까. '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조선시대의 여성들. 그 '한'이란 단어는 정말이지 오로지 이 땅에서 살아온 그녀들을 위해 존재하는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면에 이런 억압과 한이 있기에 그녀의 시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일게다. 그 자유로운 사상만큼 훨훨 날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명의 남성으로써 여성의 권익이라는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p********a 2010.09.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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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은 또 하나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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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누나로만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서 무척 흥분되고 읽는 내내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다. 사대부의 여인으로 살지 못하고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 엄마인 내게 그녀가 겪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버리고 세상에 나온 그녀에게 닥친 삶은 여전하게 난관에 부딪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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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의 누나로만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서 무척 흥분되고 읽는 내내 그녀의 삶이 안타까웠다. 사대부의 여인으로 살지 못하고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도 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한 그녀의 모습이 엄마인 내게 그녀가 겪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버리고 세상에 나온 그녀에게 닥친 삶은 여전하게 난관에 부딪히고 그 안에 시를 열망하고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된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가야 함의 엄정함, 무서움. 이제부터 스스로의 밥을 스스로 해결아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녀가 만나는 세상은 이렇게 그녀에게 매서운 바람이었다.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고 삶을 노래하고 싶었던 그녀, 그녀는 진정 시인이었다. "시인(詩人)은 성인(成人)이 되어야 한다. 진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겉모습만이 아닌 속이 진짜인 사람이 되어야만 시를 쓸 수 있다. " 스승의 이 달의 말을 몸으로 체엄하게 되는 그녀의 시는 또 다른 시로 태어나게 된다.

 세상속으로 들어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이 갈망하는 그 사랑을 만났지만 표현하지도 못하는 그녀. 갑작스레 세상이 원망스러워진다. 그 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이 사대부로 적을 두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퍼진다.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초희는 절망하게 된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그냥 살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묻지 말고 그냥 살아라. 살아 있으니 살아라." 이 말, 내게도 들려온다. 살아 있으니 살아야 하고 원하는 대로 살기가 너무 힘들었던 그녀의 삶을 생각하며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의문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못한 그녀의 사랑, 시가 되어 지금 사랑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나의 집은 장간리에 있어,
장간리 길을 오가고는 했다오.
꽃가지 꺽어들고 님께 물었지요.
꽃이 더 예쁜가요? 내가 더 예쁜가요?

 간밤에 남풍 불어
배 깃발 파수로 휘날렸다오.
북쪽에서 막 도착한 사람으로부터
그리운 님 양자강 기슭에 계시다는
서러운 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r*********s 2008.06.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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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며 불공평한 사회에 도전하는 그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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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누이로 더 알려진 허난설헌 누구보다 시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분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이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그 시대에 시를 쓰고 풍류를 안다는것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인으로 시와 풍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생이나 할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시절의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고달픈 삶을 상상해본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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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누이로 더 알려진 허난설헌

누구보다 시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분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이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그 시대에 시를 쓰고 풍류를 안다는것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인으로 시와 풍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생이나 할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시절의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고달픈 삶을 상상해본다.

 

이야기의 처음시작은 어린 아들과 딸을 잃고, 유산까지 한 며느리를 차가운 방에 재우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에게서 탈출하는 장면부터 만나본다.

그리고 그 시절 아무리 남편이 나쁜짓을 하더라도 아내로서 굿굿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양반의 도를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는 허난설헌의 삶

처음 그녀를 받아줄 곳은 아무도 없기에 자신의 어릴적 스승의 집을 찾아 가보지만 그 스승 또한 떠돌이 삶을 살아가는 풍류를 즐기고 있는 어쩌면 한량의 모습이다.

스승 이달의 딸과 이달을 기다리는 산청댁, 그리고 기생인 함초화의 만남속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양반이나 초로의 일반인들의 삶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아비의 노름빚 대신에 양반의 첩으로 팔려가는 나연을 구하기위해 자신의 원수인 양세겸과의 두뇌싸움을 하지만 어쩔수 없는 양반가의 아녀자로써 자신의 삶에 더욱 더 힘들게만  만든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위해 자신이 나아갈 방식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했던 오라버니 허봉의 알코중독 모습과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를 짓고,시를 느껴가는 그녀 

그리고 동생 허균과의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 사랑하는 정인인 황연과의 관계들에서 허난설헌 그녀는 어쩌면 잘못 태어난 시대덕에 더 삶이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수 있었다면,

그리고 당파로 인해 서로간의 싸움이 없었다면

신분의 구애가 없었다면

서로 사랑하는이들과 맺어졌다면...  

그분의 삶은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내내 안타까움으로 작용을 한다.

 

우린 일반적으로 성과물에 큰 의미를 두고 사람을 기억한다. 교과서속의 인물을 최고로 생각하면서...

그러다보니 누구의 누이로만 기억했던 허난설헌 그분의 삶을 비록 소설의 힘을 빌려 만나봤지만 그분의 열정을 만날 수 있어 정말 좋은 기회였다.

불공평한 사회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고 옳지 않은 길을 가지않으려는 마음가짐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은 우리가 배워나가야 할 부분인것 같다.

 

 

 

 

h****t 2008.03.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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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그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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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대다수들은 허 난설헌을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허 난설헌은 조선시대 역사상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혼한 여성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무슨댁, 무슨댁, 아니면 누구엄마 이런것은 유교사상이 투철한 조선시대에서 더욱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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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대다수들은 허 난설헌을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누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허 난설헌은 조선시대 역사상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혼한 여성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무슨댁, 무슨댁, 아니면 누구엄마 이런것은

유교사상이 투철한 조선시대에서 더욱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뛰어난 여성의 경우 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우리가 잘아는 신사임당같은 경우가 별로 없다.

겨우 안다는 정도가 기생으로 이름을 떨친 몇명정도이다.

묵묵히 집안을 지키며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수많은 여성들은 소리없이 그 재능을 묻히며 사라졌다..

아마 황진이 같은 기생의 경우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었기에 그 이름을 후세에 알렸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은 대부분 쓸쓸히 사라졌다.

오히려 허 난설헌의 경우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서 더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비범한 재질을 가진 사람의 비운이랄까  그녀의 결혼생활이나 남편의 복은 흔히 하는 말로 지지리 없다.

이 한권의 소설 그 자체에서 수많은 조선의 여성들의 비애를 느낄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처절한 조선의 여성을 대표하는 투사의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더우기 허 난설헌이 살았던 시대에는 아마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선비가 죽은 정여립 모반사건의 직전이고

또한 당쟁이 본격적으로 격화되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오로지 과거 시험하나에 올인하여 관직에 나가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 조선시대상

또한 그러한 관직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당쟁이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집안의 여자들에게 까지 미친다.

그 뿐 아니라 후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또한 정략혼인을 하게되는 허난설헌의 경우 아마 더욱 그 마음고생이

심하였을 것이다.

또한 남편의 자격지심과 자식들의 잇달은 죽음, 그리고 모진 시어머니의 박해를 받은 그녀에게 아마 유일한 낙은 바로 혼인전에

배운 시이었을 것이다.

외로이 처절한 투쟁을 하는 허난설헌의 경우 그 시는 자신의 마음과 인생을 고스란히 붓으로 뿜어 내었을 것이다.

자신의 온 힘을 짜내어 영혼으로 쓴 글인 것이다.

하나하나 그 구절 자체가 그녀의 처절한 삶의 투쟁의 표현이라고 느낌이 들었다.

명시가 아니라 처절한 비애감을 느낀다고 할수 있었다.

시는 바로 허난설헌의 가장 훌륭한 투쟁의 무기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접해지는 시들은  그 상황에 처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었다고 볼수 있다.

그 시들을 읽을때마다 가슴이 찡해진다.

허 난설헌의 처절한 삶을 눈으로 직접 보는듯하다.

시대가 낳은 불운한 천재 여자시인 허난설헌의 고독한 삶의 투쟁을 고스란히 배어나게 하는 책이다.

만약 그녀가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녀는 알파걸의 대열에 끼었을 것이고

자신의 꿈을 만방에 펼쳤을 것이다.

아니다, 만약 그런시대가 없었다면 그녀의 절절한 시도 없었을 것이다.

여성이지만 누구보다 시대를 온몸으로 아파했던 그녀를 내가 만났던 것이다.

 

j*******n 2008.03.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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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슬픔.아쉬움의 느낌이..
"기쁨.슬픔.아쉬움의 느낌이.." 내용보기
조선시대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중심인 사회에서 태어나 재능있는 아름다운 한 여자의 인생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게 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예로부터 나는 부창부수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말이 남성 중심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공편한 기회를 주고 평등한 시선으로 봐줘야 되는데 그 당시 시대에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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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부장적이고 남존여비 사상이 중심인 사회에서 태어나 재능있는 아름다운 한 여자의 인생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게 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예로부터 나는 부창부수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말이 남성 중심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출발선에서 공편한 기회를 주고 평등한 시선으로 봐줘야 되는데 그 당시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분들이 희생하면서 살아왔다.

책에서는 허초희의 파란만장한 삶이 나와 있다. 남성우월사상이 팽배한 시대에서 허초희는 시를 통해 그 시대를 비판하고 여자로 태어나 선택의 기로마다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를 원망한다. 그로인해 그 시대 유학자들과 많은 부딪힘이 있었고, 그들이 허초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허초희는 명문가 규수답지 않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많이 느꼈고 그들을 위한 많은 시를 썼고 또한 사회를 비판한 시도 많이 썼다. 그러나 27세의 젋은 나이에 단명 한다.

역사가 만일 허난설현과 같은 인물을 그 당시 남존여비 사상을 배제하고 기록했더라면 허난설현은 다른 느낌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고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못다 한 허난설현의 재능과 조선시대 임금과 유학자들의 행동이 안타까울 뿐이다.

a********r 2008.03.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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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그녀를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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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그녀는 시인이다.  천상의 시를 짓고서 천상으로 돌아간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늘 외로웠던 여인, 종국에는 불행하게 죽었던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삶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젊은나이에 요절하기도 했거니와 남긴 후손도 없었기에 그녀의 작품과 삶을 이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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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그녀는 시인이다.  천상의 시를 짓고서 천상으로 돌아간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늘 외로웠던 여인, 종국에는 불행하게 죽었던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삶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젊은나이에 요절하기도 했거니와 남긴 후손도 없었기에 그녀의 작품과 삶을 이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먼저 알아보고 인정해 준것은 안타깝게도 중국에서다. 그녀의 시가 출간되고 그녀의 작품이 인정 받게 되자 조선에 살아있던 그녀의 오빠 허균이 작품들을 정리하고 보존하게 된 것이다. 후대에 전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그녀의 시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허구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소설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정말 실감나게 씌여졌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허난설헌의 영화 한 편을 보는듯 하다. 우리가 '황진이'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로도 수없이 봐왔지 않은가... 기생이면서도 당대의 내노라하는 선비들과 문학적 교류를 하고 자유롭고 시를 짓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자유롭게 살았던 여인. 조선의 여인들이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수 있는 것은 기생일 때만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허난설헌이 기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좀더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또한 그녀의 작품들도 많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허난설헌... 그녀는 두 자식을 먼저 하늘로 보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자식을 둔 부모가 되어 보니 자식을 앞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인지 알겠다.  난설헌은 금쪽같은 자식을 일년 사이로 모두 하늘로 보냈다.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은 것이다. 고단한 시집살이를 견디게 해 준 두 자식의 죽음으로 그녀는 얼마 살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된다.  그 심정을 알듯하여 내 가슴도 아팠다. 이렇게 가슴아픈 소설을 읽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는 소설에 열광하여 우리작가든 해외작가든 가리지 않고 소설을 마구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이후 아이를 기르며 생활하다보니 갑자기 소설이 재미가 없어졌다.  그저그런 허구덩어리... 읽고나서 감동이 남지 않는 시간 죽이기 밖에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왜 이제는 소설보다는 내 이웃의 삶의 애환이 담긴 에세이가 좋은걸까..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동안 에세이만 읽어온 나에게 이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감동을 준 멋진 소설이었다.
 
 
m***g 2008.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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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허난설헌.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허난설헌." 내용보기
소녀들은 언젠가 여인이 되고 아버지가 짝 지어준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이처럼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옮겨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던 여인들의 마음속은 아마 시커멓게 타 버려 재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초희는 새가 되어 자유로운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졌을 초희,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인의 재주를 억압하고 그저 조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허난설헌." 내용보기
 

소녀들은 언젠가 여인이 되고 아버지가 짝 지어준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이처럼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옮겨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던 여인들의 마음속은 아마 시커멓게 타 버려 재도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초희는 새가 되어 자유로운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졌을 초희,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인의 재주를 억압하고 그저 조상을 모시고 아이를 낳아 가문을 대를 잇는 존재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그 시대를 오롯이 견뎌냈다. 아니,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와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려 애썼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황연과 맺어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간 것이 그녀의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아님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너무나 뛰어난 재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다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살아갔을 그녀의 삶에 가슴이 쓸쓸해져온다. 초희가 살던 곳에서 뛰쳐 나와 이혼을 당했을 때 나는 그녀가 황연과 다시 맺어지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오로지 초희가 여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무지한 짓이었는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안고 사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인 황연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그 사랑을 지워야 했을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을 표현한 '시'를 짓는 것이었다. 아마 '시'가 없었다면 그녀의 삶은 황폐해졌을 터이고 더이상 살아갈 의미조차 없었을 것이다. 희윤이가 죽었을 때 이미 그녀는 죽었으므로.

 

비루한 양반들을 호통치고 그 앞에 앉아 '시'를 지어 따끔한 충고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기생 "황진이"의 모습과 닮아있다. 대장부 보다 더 호기롭게 소리치는 모습이 이름 높은 사람들과 어깨를 견주어 대등하게 학문을 논하던 황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초희가 기생이 되고 싶어하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어디든 발길 닿는대로 갈 수 있는 기생을 부러워 했었다. 남편이 닭이면 닭을 따르고 남편이 개면 개를 따라야했던 그 시대에서 여인네의 삶이란 붙박혀 어디로든 갈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인생이었으니 왜 기생이 부럽지 않았겠는가. 고단하게 살았을 그녀의 삶에 가슴이 아려올 뿐이다.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 죽고나서야 훨훨 날아가는 새가 되었을까. 자유를 꿈꾼 그녀는 죽어서야 그 삶에서 놓여날 수 있었으니 이 시대까지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기엔 재주 많은 그녀의 삶이 슬프다. 물론 죽어서도 김씨 문중에 뼈를 묻었으니 떠나는 발길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놓여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은, 죽어서도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 글이 어디까지 진실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그녀의 삶을 잘 표현해 놓은 것 같아 나의 곁에서 그녀의 숨소리를 듣는 것처럼 가까이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여자이기에 그녀의 입장을 옹호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꽃 피우지 못하고 쓰러져간 그녀의 삶이 너무 안쓰럽지 않은가.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이 봄날, 나는 허난설헌 그녀가 그립다.

y*****6 2008.03.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