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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을 포함하여 풍성하게 꾸며진 책.
헨리 나우웬-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 책은 그의 삶과 그의 열정.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걸어 현재 그의 이름이 남게 되었는지를 배우게 된 책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도-
네델란드의 화목한 가정에서 첫째로 태어난 나우웬은 어릴적부터 가져온 꿈이 신부였다.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과 유독 많은 대화를 나누는 소년이었다. 나우웬이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으로 가졌을 때가 6살때부터 였고, 여덟살 헨리가 다락방을 예배당으로 꾸미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말했을때 할머니가 다락방에 손수 나우웬만을 위한 예배당을 만들어 주셨다. 더욱이 그곳 다락방에서의 미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우웬이 맡았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신학교에 들어간 나우웬은 유난히 두드러진 생활을 하였고, 예일 대학교, 수도원 생활. 하버드 대학교 까지.. 수많은 곳에서 강사로 또 목사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었다.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함으로써 그의 책에 더 많은 깊이를 담았다. 어렷을적부터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우웬은 매우 감동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특유의 표현법을 가진 그 누구보다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오십여권이나 되는 많은 영성에 관한 책을 낸 나우웬-
하지만 책을 통해 놀라웠던 점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것. 한번도 누구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나우웬. 하느님의 관점에서 가장 가까워 보였던 그였지만, 동성애에 관한 깊은 불안감과 절망이 나타나는 글들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삶은 더욱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던 나우웬- 오직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었던 헨리 나우웬- 책 속 한장마다 실려 있는 그의 사진에서 낮아짊을 몸소 보여주었다. 쉽게 접할수 없었던 그의 사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고, 허술하게 알고 있었던 그의 삶을 잘 들여다 본것 같아,또 내가 그의 곁에서 함께 걸어온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그의 삶이 이제 저 먼곳에서 편안한 삶을 사시길 바란다... 그리스도의 삶은 산 헨리 나우웬- 그리고 그가 보여준 열정은 나에게 일깨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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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네덜란드의 네이께르끄Nijkerk 출생으로 1957년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6년간 심리학을 공부하였고, 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신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연구하였다. 30대에 노틀담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1971년부터는 예일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1981년 헨리 나우웬 자신의 풍요로운 생활에 죄책감과 느끼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강단을 떠난다. 그는 페루의 빈민가로 들어가 민중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지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하자, 다시 강단을 떠나 정신지체 장애자 공동체 ‘라르쉬’의 캐나다 토론토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간다.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 헨리 나우웬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 그래서 각종 검색으로 헨리 나우웬에 대해 찾고 읽어보았다. 그래서 소개글이 길지만 헨리 나우웬에 대해 언급해 보았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회의 사제이며 심리학자이다. 그의 삶은 명예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명감으로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런 그의 삶이 묻어나는 글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충만감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가 라르쉬로 돌아가는데는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장 바니에의 영향이 컸다. '라르쉬'는 정신지체 장애자 공동체로 장 바니에가 1964년 정신 지체 장애인 두 사람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시작되었다. '라르쉬'는 '방주'라는 뜻으로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 가정과 같은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과의 우정을 통해 그들의 연약함 뒤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돕고자 했던 사랑의 공동체였다. 이런 그의 삶을 통해 그는 많은 저서들을 남겼는데 '그리스도 공동체의 언어는 기도이며 기도는 섬김이고 섬김은 기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저서는 20여권이 넘으며 깊은 통찰력과 하나님의 신비의 깊이와 풍부함을 늘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은 헨리 나우웬의 영성을 아주 잘 알고 독자층도 깊어 그의 기독교 서적들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다고 한다. 그의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독특한 접근 방식은 새로운 심리학 이론이나 철학이 아닌 단순히 그의 됨됨이와 하나님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그만큼 그의 메시지는 기독교적이라고 한다. 이 책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의 행적을 그의 가족들과의 삶부터 시작해서 그의 삶과 죽음까지 그의 삶을 사진집 형태로 만들어진 책이다. 유명한 화가들의 행적을 담은 사진집 에세이는 많이 읽고 접했어도 내겐 영성거장 시리즈라는 사진에세이로 신앙인의 삶을 다룬 책은 처음 만났다. 흑백 톤의 차분한 이미지와 간결한 레이아웃은 그의 고결한 성품이 더 돋보였고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의 삶이 묻어나는 사진과 잔잔한 글로 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도 어렵지 않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편집되었다. 헨리나우웬은 신앙인이지만 그의 가슴속의 열정은 뜨겁고 열정적이었다.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라틴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본 가난과 분쟁에 희생당한 사람들과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는 영적 일체성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중앙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와 정책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다른 여러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민권 운동, 라틴아메리카, 핵 군비 철폐, 에이즈 확산 방지운동 등에도 적극 참여하여 결국 "동성연애자들에게도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독특한 사명이 있다"는 결론까지 내려 그는 글을 쓰고 활동가들을 만나고 강연을 하면서 시위에 참여했다. 그가 생각한 것은 기도와 자기 인식과 상호 관계와 적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한, 평화와 화해의 영성이었다. 평화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길은 겸손한 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마11:29) 헨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은 거의 언제나 독특한 방식으로 예수님과 연결시켰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낮아지는 길을 택하신 것이 매우 분명하다. 예수님은 한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낮아지셔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헨리의 판단에 따르면 믿는 모든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 '선택'되었고 각기 독특한 삶의 환경 속에 놓여지고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며 하나님의 찬사를 받으셨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을 통해 '깨어진다'. 그러나 그 깨어진 결과 역시 예수님처럼 우리도 세상에 '주어지게'된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헨리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했고 해묵은 것들을 새것으로 바꾸었다. 말년에는 공중곡예에 매료되었고 그것을 성령안에서 사는 삶을 보여주는 은유로 보았다. 살면서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위험을 감수하고, 최고의 정점에서 예술성을 발휘하면서 때때로 떨어져 내리기도 하는 수많은 경험들을 하는 삶... 그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매우 진실한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빛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가족들과 친구들을 그의 큰 위안으로 삼았다. 그는 끊임없이 그에게 주어진 삶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려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매우 민감했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며 또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늘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세상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그가 우리에게 가르쳤듯이 그는 우리를 향한 선물로 우리가 알고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때에도 계속해서 열매를 맺으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끝으로 헨리 나우엔의 기도 글로 마감짓고자 한다. 이런 사람이 좋다. - 헨리 나우웬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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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헨리 나우웬의 글을 접한 건 2000년 " 영적발돋움 " 이란 책을 읽고다. 개신교 신자인 나에게 신부님이 쓴 글이 다소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당시 난 거의 그책을 성경책과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 묵상하며 읽었고 나의 내면을 다독이며 생각을 정리해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다. 그 책은 당시 대학부 내의 필수 교과서 같은 책이었고 우리들 사이에 헨리 나우웬은 너무도 매력적인 멘토였다. 얼핏 작가 사진에서도 나온 그의 외모는-나이가 있지만 너무도 호감가는 다정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게기로 출판되는 헨리나우웬의 책을 모두 읽게 되고 그가 말하는 내용들을 보며 우리의 내면을 너무도 잘 설명해주는 그의 솜씨에 내심 감탄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건 그의 삶이 말해주는 내용이다. 미국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일하며 최고의 명성과 영예를 얻어며 잘 나가던 그가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로의 행로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삶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헨리 나우웬에 대해 알고 있는 대강의 내용이었다.
이 책과의 만남은 참으로 설레였다. 책속에 헨리 나우웬의 가족이 공개한 그의 사진들을 본다는 즐거움과 가까이서 그를 좀더 볼 수 있는 것이 나의 맘을 설레이게 했다. 책을 읽으며 헨리 나우웬은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하모니를 느낄수 있었다. 헨리가 말하듯 자신이 얼마나 민감하게 하나님과 그의 뜻을 구하고 있는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몰두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헨리는 네덜란드에서 유복하고 행복한 가족구성한 가운데 태어났다. 일찍히 카톨릭집안의 배경이라는 것이 그가 성직자의 길로 선택되어진 하나님의 뜻이지 않을까 싶다. 당시 2차세계대전으로 네덜란드 신학과 사람들의 신앙에 큰변화를 일이키며 헨리에게도 규정에 따른 예배의식과 정통성보다 예수님을 알고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된다. 그가 선택함과 동시에 그가 걸어가는 과정에 하나님은 그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학때 심리학에 관심있던 그에게 논문을 그쪽으로 쓸 결심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길을 선택하며 걷다 보니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교수를 만나 조언을 얻게되고 그의 충고로 메닝거 재단으로 가게되는기회를얻는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흡수하며 자신을 그곳에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만남이 또 헨리를 노트르담의 심리학부서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그는 그동안 관심있게 느꼇던 심리학이 자신의 사명이 아닌 신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된다. 그가 그런 사실을 느꼈을때 맘에 갈등하지 않았을까.. 그의 인생을 보며 하나님은 모든 일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듯 하다. 그 후 헨리는 예일 대학교의 교수로 일하며 명성과 유명한 작가로 일하기 시작했고 3년후 종신재직권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 사람이라면 이것에 안주할 듯 싶은데 헨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었는 듯 싶다. 그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면 그가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큰 성취감을 주는 새로운 사람들이나 활동, 관심사를 찾았다. 그러면서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더 낮은곳으로 그를 필요로하고 그를 충만한 영적 삶으로 이끌어주는 곳을행동한다.
그의 결정들을 보며 헨리는 자신 내적의 마음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한 듯 싶다. 헨리는 우리모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사실과, 예수님과 함께'언약의 후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p211고 말한다. 헨리 나우웬이야 말로 진정한 복음안에서 결단하고 행동하며 누리며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처럼 사랑하시고 그렇게 약속해주신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이땅에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깨달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세상속에서 갈등하고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것이지 않을까... 헨리 나우웬의 삶은 참으로 도전이다. 물론 난 성직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또한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았고 거룩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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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그의 책을 한번 도 접해 본 적이 없다. 또한 그의 삶을 한번 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번에 마이클 오로린의 [그의 삶, 그의 꿈 헨리 나우웬]을 통해 처음 접해본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느끼는 감동과 잔잔한 파문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문해 보며 다시 한 번 그의 삶과 그의 꿈을 되새겨 본다. 책을 펼치며 시작되는 그의 성장 배경과 가족 얘기를 읽노라니 너무나도 안정된 바탕위에 예수님을 알게 되고 배워 나가는 어린 시절에서 묘한 이질감이 생겼고 솔직히 부러움과 질투가 느껴졌다. 허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면서 그런 마음은 희석 되어 갔고 헨리의 생애를 마감하는 시점에서는 그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소년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레이겐버그 신학교에서 청년기를 보낸 헨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탐구에 중심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건강하고 신실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알고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규정에 따른 전통적인 예배 의식을 준수하면서 정통성과 순종과 자기부인을 중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자각하게 된다. [-교회의 위상이 꺾이고 비판의 대상이 되며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교회의 현 시점에서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 하는 바 교회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교회를 믿기가 더 힘든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교회를 신뢰하는 믿음으로부터 분리시킬 때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장소로 교회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후 네이메겐 대학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다루었던 그는 네덜란드와 유럽 밖에서 모델을 찾고 도움을 구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하고 메닝거 재단과 노트르담 대학에서 일하고 되고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열정적인 강의와 활동으로 인기 있는 학자가 되고 영적인 작가로서의 명성도 쌓아 갔다. [- 안톤 보이센과의 만남은 헨리에게 비범한 영적 관점의 모델이 되어 준 바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섬기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섬기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환자의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서로 알고 서로 돌보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 연약한 형제자매의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양을 먹이고 돌보기를 원하셨다.”-] 수도원 생활을 거친 헨리는 낮은 곳으로의 삶의 실천을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사역과 프랑스 트로슬리의 라르쉬 공동체 생활을 겪은 후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의 요청을 받아 들여 공동체 목사로서의 삶으로 보여 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사역으로 역사의식과 소명을 갖추게 되고 “해방 의식이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고 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이 인간 존재의 모든 단계 속에 파고들게 하는 매우 성경적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이 일하는 모든 곳에서 죽음의 세력을 제거하고 치유와 화해를 불러오기 위해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보이고 있다. 라르쉬에서의 삶은 “장애인들을 위한 사랑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부당했던 나사렛사람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생명의 하나님을 위한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헨리는 “지금” 이라는 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우치고 지금 먹여 주세요. 지금 입혀 주세요. 지금 가르쳐 주세요. 지금 안아 주세요. 지금 사랑해 주세요. 지금 여기 이렇게 같이 있어서 좋아요 라고 말한다. -] 삶의 마지막을 뉴욕에서 보낸 헨리는 죽음과 임종 앞에서 죽음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듯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하며 영적인 삶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려 준다. [ -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는, 하나님이 사랑 받고 싶어 하면서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창조한 분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제공해주신다. 우리 내면에 있는 진리에 대해 “예” 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영적이 삶이다. -] 책을 읽노라니 점 점 빠져든 헨리 나우웬의 삶은 우리에게 진실로 자기의 삶을 신앙에 기초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며 고뇌하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참 신앙인의 모습을 깊이깊이 각인되게 보여 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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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위대한 인물의 전기 혹은 자서전, 범위를 좀더 좁혀 한 작가의 그것들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 인물의 성장 배경과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그의 사상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사상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밑걸음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내가 '헨리 나우웬 - 그의 삶, 그의 꿈(이하 나우웬이라 칭함)'이라는 헨리에 대한 책을 읽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책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헨리는 카톨릭과 개신교 양 진영에게 환영받는 작가이다. 그는 카톨릭 사제이다. 그럼에도 그는 개신교인들에게 또한 인기가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는다. 그것들로부터 큰 은혜와 깨달음을 얻는다. 나 또한 그렇다. 헨리의 작품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을 꾸밈없이 솔직 담백하게, 가슴에 무척 와닿게 풀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사실 헨리의 많은 저작들을 상당수 읽어 봤어도 정작 그에 관해서는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때문에 이번에 읽게 된 나우웬이라는 책은 앞서 언급 했듯이 큰 기쁨이고, 수확이라 생각한다.
지난날 헨리의 작품들을 읽으며 그것에 녹아 있는 그의 수많은 고뇌와 의문들을 내 안에 담아 함께 고민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는 몰랐기에 단지 머리를 통해 고민하는 것으로 그칠 뿐 마음으로 고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우웬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의 많은 고민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어 이제는 그 고민들을 마음으로 품게 되었다.
책을 통해 그동안 알려졌던 헨리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헨리에 관한 사실들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소수의 지인만 알고 있었고, 그 중 몇몇이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백하라고 권유 했음에도 헨리는 끝내 거부 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백하는 순간 그의 모든 말과 저작들이 그릇된 잣대로 평가 받게 되고, 바로 뭍히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또한 그의 비밀을 알게 되자 혼란스러웠고,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인간적인 속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진실한 속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나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며 하나님에 대해 고민하고 그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 했던 헨리 나우웬. 그의 그 자세는 내게 영원히 기억되고, 본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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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저서는 10여년 전에 한번 읽어본 일이 있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제목의 아주 얇은 책자였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누군가 아주 좋은 책이라고 권해 줘서 읽었던 거 같다. 아마도 당시 우리 교회 청년부를 지도하던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서 추천하지 않았나 싶다. 잘은 모르겠으나 얇은 책자 속에 엄청난 내공(기독교에선 이를 영성이라 부른다.)이 담겨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력의 소유자인 내가 한번 읽은 책의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기억할 정도면 말이다. 아무튼 그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본서인 <헨리 나우웬 그의 삶, 그의 꿈>을 통해 짚어보는 것이 내게 큰 유익이 되겠다 싶은 생각에 읽어 보았다.
헨리 나우웬은 1932년 네델란드 네이케르크에서 태어났다. 가풍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의 꿈이었던 사제가 되었고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 뒤 미국으로 넘어가 신학과 심리학을 병행해 공부하다가 노틀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쳤다. 1971년 예일대 교수가 된 그는 그곳에서 10년간 재직했고 그 후 하버드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한 그는 강단을 떠났다. 그리고 프랑스에 본거지를 둔 정신 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의 캐나다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갔다. 199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의 삶은 내게 교훈이 되기에 충분했다. 내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낮아지는 일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남을 섬기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까? 알량한 자존심이나 내세우고 남에게 대접 받으려는 못난 마음을 가진 나는 그의 삶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성경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 (마태복음 7장 12절, 누가복음 6장 31절) 대접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는 게 옳다. 예수님께서 남을 대접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의 온 생을 통해 본을 보이셨다. 그것을 헨리도 기억하고 나 역시 늘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실천했고 나는 쭈뼛대고 있다. 그는 제자지만 나는 '무리'일 뿐이다. (여기서 '무리'는 구경꾼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참 많이 느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한 자존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어지러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들을 하나, 둘 찾아서 살펴보아야겠다. 그의 삶만큼이나 깊이 있는 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깨우쳐줄 것이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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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 깊은 저자로 잘 알려진 헨리 나우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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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성의 거장 시리즈 를 헨리 나우웬으로 시작할 만큼 그의 영성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무엇이 그를 후대 많은 이들의 영성을 이끌어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까? 여러권의 책을 통해 만난 헨리 나우웬은 아주 소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었는데, 본받기에 충분한 그분의 삶이 과연 우리와 무엇이 달랐던 것일가?
평신도와 성직자는 다르다. 하지만 그는 성직자로서의 영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평신도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낮아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온 사람이었던 것같다.
마이클 오로린 이라는 작가에 의해 다시 한번 살펴본 헨리 나우웬의 삶은 역시 스스로 낮아지고 있었기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른 책에서는 몇 컷 보지 못했던 그의 사진들을 함께 실어주어 더욱 생생하게 그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었는데 어린시절 장난기어린 얼굴이 성인이 되어서는 순진하고 깨끗한 얼굴이 되었음을 보니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설명과 사진과 함께 바라본 그의 모습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게되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들 아니, 사회 전체에 오픈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새로운 사회 문화 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왔기에 영적성장을 이루었을 것이다.
한평생 낮은 자를 위하여 살아온 마더 테레사의 삶도 그러했고 헨리 나우웬의 삶도 그러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본받을 만한 분들의 삶은 사람과 사회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본받는다는 것은 알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며 그 실천은,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조용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위해 배우고 관심가지고 바르게 판단해야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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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이라는 작가는 내가 넘어서야 할 산과 같다. 이것은 내가 그를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넘어서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책을 완독하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아주 얇은 책인 '고독의 영성'을 제외하고는 그의 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늘 새로운 다짐과 결심으로 그의 책을 손에 쥐지만 나는 이내 내려놓고 만다. 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을 알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의 책은 쉬운 예화와 비유를 사용하여 독자를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혼자 고민하며 생각해보라고 권면하는 듯하다. 이 책은 내가 헨리 나우웬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선택한 책이다. 사람의 성품과 생각은 그의 말을 통하여 나타나지 않는가! 내가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잘 안다면 그가 말하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이 책은 헨리 나우웬의 삶을 다루면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가 공부했던 것들, 그가 한 사역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는 밝으면서 어둡고, 활기차면서 조용한, 왠지 해와 달의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헨리 나우웬의 저서가 그의 삶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새롭게 알았다. 일상에서 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묵상들을 적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 그것들은 고통과 절망을 동반한 경험이었다. 헨리 나우웬은 '어떤 글을 쓰든 나는 언제나 내 스스로 관찰한 것들과 내가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것들을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호소력 있는 글이란 나의 경험과 고민에서 나온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그의 고뇌의 흔적과 진실어린 마음, 깊은 영성으로 인하여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가 심리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그건 잘 알려진 사실이라 나도 들어본 것 같은데 그동안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의 책이 어려운 이유도 말이다. 그의 책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책에서 제시하는 그의 저서들을 그의 경험들과 연결시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했던 여러 가지 말 들이 책의 여백에 적혀있다. 그 중 나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니, 가슴에 남는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때에도 계속해서 열매를 맺으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죽어서도 다른 사람의 삶에 열매 맺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나의 삶 자체를 통하여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고, 나로 인하여 변화될 사람이 있는가? 절대로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만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삶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상념에 잠긴다. '헨리나우웬은 그의 책뿐만 아니라 그의 일생을 다룬 책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구나.'라는 생각에 새삼 그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헨리 나우웬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읽기 시작한 책인데 그의 삶과 대조되는 나의 삶이 부끄러워 나의 생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열매 맺는 삶’이라는 그의 꿈이 나의 꿈이 된다. 그가 자신의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듯이 나도 나의 글에서 말한 것들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며 이 책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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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나우웬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수필작가의 책에서였다. 천주교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그 작가의 책에서는 곳곳에 헨리나우웬의 글들이 인용되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의 영향력이 컸던가 보다. 그외에도 헨리 나우웬의 글은 이곳저곳 다른 책들에서 나의 눈 속에 쏙쏙 들어왔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집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헨리 나우웬이 카톨릭의 신부라는 사실도 처음 안 사실이다. 나는 당연히 그가 기독교인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사실에 잠시 놀랐다. 조금은 다른 색깔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헨리 나우웬의 글속에는 항상 낮아짐과 그리스도 그리고 죄에대한 고뇌등이 담겨있었다. 아마도 카톨릭이나 기독교나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같나보다. 아무튼 그의 글이 무척이나 많은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어떻게 그런 영적 거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헨리는 아주 솔직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고민과 고뇌등 혼자서 솔직하게 썼던 일기들을 책으로 엮어 냈을때 우려와는 달리 많이 이들로 부터 호응을 얻었다고 되어있다.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영적고민으로 승화 시켜 놓은 글들은 나도 많이 공감가게 만들었었다.
헨리는 글을 쓰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가길 원했다. 또한 하버드에서의 생활을 보건대 그는 유창한 글과 지식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근본 마음속 깊이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런 영성과 진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글을 쓰지 않았나 싶다. "하버드는 하나님께서 내가 머물기를 원하시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너무 많이 알려져 있고 너무 유명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듣기 위해 찾아온다. 하버드는 친밀한 곳이 아니라 지적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책을 매우 읽기 힘든 장애를 안고 있는 코크에서 온 데니가 진 베니에의 책 IMeer Jesus를 읽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데니는 "예수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종종 제가 신경과민 증세를 보일 때에도 ...혼란스러울 때에도 전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제 팔과 다리와 머리와 가슴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절 사랑하고 아주 만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하버드 대학교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모두 초청하여 그곳에 함께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로 끝났던 그 모든 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앉아 예수님에 대해 데니가 말하는 것을 듣게 하고 싶었다. 내가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을 그들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영향력이 많은 헨리가 동성애자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때문에 더 헨리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민하고 기도하고 애쓰지 않았을까.... 헨리의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잘 정립되지 않아서인지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분명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었음은 인정하고 싶다.
"죽기전에 해야할 정말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영향를 미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과 더이상 함께할 수 없을 때에도 계속해서 열매를 맺으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영향력있는 삶과 죽기전까지도 그의 사명을 생각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헨리의 일생을 돌아보는 내용도 좋지만, 책 한부분씩 쓰여진 헨리의 글들이 가슴에 많이 와 닿는다. 그냥 넘어갈 수 없도록 나의 생각을 붙잡게 만드는 글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