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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 45억년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 인간의 역사는 참으로 미미하다. 인류의 기원이라 여겨지는 고등 영장류가 등장한 것이 몇 천만년 전이며,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 핀 시기가 5000년 전이다. 하지만, 5000년 밖에 안 되는 인류의 문명이 지구의 환경을 급속도로 바꾸어 놓았다. 그 이면에는 인간의 야망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찬란한 문명은 환경의 파괴라는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사리지고 있는 삼림과 동물들의 멸종이라는 제단 위에 말이다.) 인류가 지구 환경보호라는 문제를 인식한 것은 반 세기도 되지 않는다.(지금은 유명해진 국제적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의 설립연도가 1971년이다.) 하지만 이 같이 뒤늦은 환경보호 캠페인도 각국의 이해타산과 맞물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여론을 주목시킨 브라질의 아마존 개발 프로젝트 또한 수많은 국가들과 환경 보호론자들의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인류의 문명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딜레마의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개발과 보존의 조화가 아닐런지?
"황금가문비나무"는 북아메리카의 온대 우림에서 자행되는 싹쓸이 벌채에 따른 생태 환경 에세이로 개발과 환경보존에 대하여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알래스카 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가 만나는 연안 무인도에서 난파된 카약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바로 퀸샬럿제도의 원주민인 하이다 부족의 역사로 독자를 안내한다. 북아매리카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며 살던 하이다 부족들은 수달의 모피를 찾아 나선 유럽인들과 조우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최초의 조우 이후 수달의 모피에 혈안이 된 서양인들과의 교역은 하이다 부족의 문화를 송두리째 뒤 흔들고, 결국 수달의 씨가 마르면서 하이다 부족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이다 부족의 이같은 운명은 근시안적인 인간의 탐욕과 파괴적 습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곧바로 더 큰 재앙이 하이다 부족에게 닥친다. 하이다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저자는 곧바로 화두를 북아메리카에서의 벌목의 역사로 돌린다. 서양 문명을 위한 수색대의 선두 병사라 칭하여 지는 벌목꾼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을 철저히 개조해 놓는다. 저자가 서술하는 벌목의 세계는 위험하고 참혹한 전투 현장이다. 이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수많은 벌목꾼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었다. 따라서 벌목꾼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별종의 인간들이었으며, 벌목꾼 자신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이처럼 벌목꾼들 개개인의 특출난 능력에 위존하던 벌목 사업도 대자본과 기술력에 의해서 벌목꾼에서 기계로 대체되면서 벌목꾼들 또한 하이다 부족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경이로운 능력의 벌목꾼들의 세계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그랜트 해드윈이 등장한다. 열여섯 살에 삼촌을 따라 벌목 세계에 뛰어든 그랜트 해드윈은 벌목 세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숲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고 벌목에 있어서는 불가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랜트 해드읜은 어느 순간 벌목 산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즉 벌목 회사들의 싹쓸이 벌채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심경의 변화가 그의 집안의 유전병(형이 정신병으로 일찍 자살함)에 기인한 것인지, 벌목 과정의 파괴적 광경에 의한 자각인지에 대한 판단을 작가는 유보한다. 다만 작가는 당시의 기록 및 주변인물의 증언을 그대로 기술할 뿐이다. 하이다 부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벌목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던 전개는 하이다 부족의 터전인 퀸샬럿제도에 있는 "황금가문비나무" 이야기로 모아진다. 현지 하이다 부족들로부터 조상 가문비나무라 불리며 숭배받았고, 나무를 본 사람들이 우~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하여 우~와 나무라 불렸던 이 특별한 나무는 싹쓸이 벌채를 자행하던 벌목 회사마저 감히 건들지 못하고 보호하던 나무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나무는 주위의 푸른빛을 띤 동료 가문비나무들 중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토록 사랑받고 숭배받던 나무를 그랜트 해드윈이 베어버린다. 이 사건은 북아메리카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고, 나무를 죽인 혐의로 그랜트 해드윈은 기소된다. 사건 직후, 그랜트 해드윈은 <퀸샬럿 옵서버>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우리는 대량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나머지 숲들은 내버려 둔 채 황금가문비나무 같은 개별 나무들에만 주목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들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그 배후에서 벌어지는 온갖 피해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기한 구경거리들 가운데 하나를 누군가가 공격하면 당신들은 그것을 홀로코스트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진짜 홀로코스트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도. 자신들 주위에서 계속되고 있는 파괴 행위들에 주목해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의 분노를 내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소된 그랜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법정에 서기 위하여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실종된다. 그리고 끝내 그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마치 내셔날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등의 한 편의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하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가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그랜트 해드윈의 사건을 통하여 벌목 산업과 생태 환경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다. 저자는 사건을 과장하지도 곡해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의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랜트 해드윈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렬국 우리들 각자의 몫인 것이다.
* 책 중에 삽입된 글 "저 아름다운 나무들을 엄청난게 베어 넘기고는... 저 엉뚱한 소리만 해 대는 신문들을 찍어 낼 펄프를 만들고, 그리고는 그걸 문명이라 부른다." - 윈스턴 처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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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본의 무성한 연안 숲들이 태평양 건너편의 우림을 반사해 주는 거울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풍경이라 생각하는 말라빠진 석회암 구릉 지대들은 한때는 삼나무와 떡갈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던 곳이었다. 목가적 유럽의 농촌은 한때는 셰익스피어와 그림형제에 의해 묘사된 것처럼 마녀와 요정들이 들끓는 숲의 모양이었다고 한다. 남서부의 사막을 예외로 아메리카 대륙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쭉 뻗은 숲의 융단이 펼쳐졌었을 거로 추측한다. 기업 형 벌목이 오기 전 북아메리카의 연안 온대 우림은 알래스카의 코디액 섬에서부터 남쪽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 워싱턴, 오리건 주를 이어 캘리포니아까지 숲들로 이루어진 산맥들이 이어지며 태평양과 대륙사이의 끊임없는 폭풍우들의 방파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태평양과 대륙의 습하고 포근한 기후는 온갖 생명체를 대단위로 키워낼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었다. 온대 우림 1제곱미터는 1천종으로 대표되는 생명체2백만 마리를 품고 있다고 한다. 무심코 밝는 단 한번의 발자국으로도 무척추 동물 1만 6천 마리의 등을 짓밟는다고 하니 기업 형 벌목 시대 이후에 나타난 삼림의 무자비한 벌목으로 인한 그 피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수달의 털가죽으로 시작된 유럽인들 의 탐욕적인 향연은 북서부 연안에 위치한 고립된 존재였던 퀸샬럿 제도에 살던 하이다 부족의 삶을 바꿔 놓는다. 수달을 비롯하여 다른 여러 자원들이 고갈되고 주목의 대상이 된 숲은 이젠 목재산업이 번창하면서 또 한번 파멸로 치닫게 되었다. 거의 모든 인류의 역사에서 목재는 연료와 건축 재료의 주된 원천이 되어왔다. 식량과 의복, 무기류와 열과 빛의 피난처 역할까지도 제공해주었고 이러한 의존관계는 북 아메리카에서 가장 생생한 역사였지만 북아메리카를 뒤흔든 탐욕이야말로 숲을 황량하고 음울한 상태로 변화시켰다. 80년 B.C.컬럼비아의 싹쓸이 벌목의 상처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함께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인공의 작품이로 북 아메리카의 브라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과 지방 정부의 상호 의존적 관계는 비가 많이 내리면 스타벅스의 주식값이 오르는 사실을 생각게 한다. 님포시키 골짜기의 44에이커가 사라져 버리고 그걸 만회하기까지 수 만 년의 세월이 걸려도 원시림의 나무 형태가 그대로 다시 살아날 진 알 수 없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을 따름이다. 벌목꾼이었던 그랜트는 공학자 아버지를 피해 당시 벌목꾼이었던 삼촌의 삶을 동경하였다. 목숨을 거는 벌목의 일이 천성에 맞았던 그는 운 좋게 여러 위험한 상황을 비켜났지만 유순한 형이 가지고 있던 편집증적 전신 분열이 그를 기술 전문적 주류 사회로부터 숲으로 몰아내게 되었다. 수달 무역 붕괴 후 잊혀졌던 퀸샬럿 제도는 가문비 나문의 단단한 강도와 탄력성 있는 가문비나무의 용도를 제대로 간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1차 세계대전기간에 비행기를 만드는데 최적의 조건인 나무로 재발견 되었고 그 이후 지구 한바퀴 반을 돌 정도의 양이 수확되었다. 황금 가문비나무는 하이다 부족민들과 백인들 모두에게 위안을 주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가문비나무는 그 주변 5헥타르만이 상징적이며 위락용 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이며 따로 떼어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백변종 갈 까마귀와 황금 가문비나무가 초자연적 특징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환호를 터뜨리게 하였지만 숲을 사랑하고 숲에 대해 잘 아는 그랜트에게만은 건강한 짝꿍 나무들은 모두 베어져버리고 남은 병든 나무의 모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주변 숲 대부분이 이윤 때문에 베어져 나간 것 보다 돌연변이 나무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항의 행위로 전설속의 하이다 부족의 기억에 남아 있던 야쿤강의 응축된 진수를 상징하는 황금 가문비나무를 베어내야 했던 그랜트의 설득이 정확하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가 자행했던 무참한 거목에 대한 살인은 존 레논의 암살범에 비유될 정도였다. 어린왕자에게 기관총을 난사한 것과도 같았으며 하이다 부족에겐 뉴욕의 911사태보다 심하게 고통스러운 사건이었을 뿐이다. 독보적이었고 신성한 황금 가문비나무의 죽음은 곧 하이다 부족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불가사의한 황금가문비 나무의 번식으로 진짜 황금비나무가 야쿤강을 다시 화려하게 빛낼 날을 기대하게 된다. 북 아메리카의 거의 온 땅의 숲들이 베어져버리고 버팔로 무리가 사라지게 된 이래 다행히도 아메리카 대륙은 재생을 위한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냥활동의 감소와 숲들이 다시 살아나면서 거의 소멸될 뻔했던 종들의 동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오늘 식목일을 맞이하여 다시금 숲의 중요성과 자연을 보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예전의 원시림의 숲을 볼 순 없다하여도 우리의 자연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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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가문비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도 읽으며 우리의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달리 방법을 구하지 못했던 망연자실한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퀸샬럿제도의 하이다 부족에게 그것은 어떤 상징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 참담한 심정이 내게도 느껴지는 듯하다.
어느 화창한 오후 늦게 황금 가문비 나무를 방문한 한 화가는 "환히 타오르는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어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마치 동화 같았어요." 또한 스포츠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사람은 "우리가 그 곳에 도착한 지 몇 분이 지나자, 태양이 안개를 태워 버렸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곳에 황금빛 광휘가 나타났어요. 우리는 그걸 우~와 나무라 불렀어요. 그게 바로 우리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소리였으니까요." (page 171)
초록으로 둘러싸인 나무들 사이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 가문비 나무는 조상 가문비 나무라 부르며 숭배하던 나무였고, 관광객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던 나무였다. 싹쓸이 벌목을 자행하는 그 지역 벌목 회사들도 보호했던 나무였다.
그런 황금 가문비 나무가 그랜트 헤드윈에게는 그것이 좀 더 실용적 성향을 지닌 여러 동료들이 봤던 것처럼 "병든 나무"로 보였던 것이다. 황금 가문비 나무는 와지끈 무너져 내렸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사회가 돌연변이 나무 하나로 그토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나머지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체할 때, 비정상으로 낙인찍혀야 할 사람이 그 사실을 지적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page 197)
한 기자에게서 정신 상태가 정상인지 질문을 받은 그랜트의 대답이다.
그랜트 해드윈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벌목회사가 자행하고 있는 원시림 싹쓸이 벌채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에 항의하기 위해 황금 가문비 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랜트 헤드윈은 나무를 죽인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기 위해 카약을 타고 가던 중 행방이 묘연해진다. 몇 달 후 그랜트의 물건은 발견되지만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물건을 발견하게 된 해양 생물학자 스콧 워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주 희한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아니면 유례없이 특별한 죄를 지어 도망 중인 그랜트 해드윈의 궤적을 쫓아 북아메리카 벌목꾼들과 끔찍하고 참혹한 벌목세계의 역사를 파헤쳐 보게 된다.
그랜트는 열여섯 살에 삼촌을 따라 벌목 세계에 뛰어들었고, 벌목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파괴적인 광경에 충격을 받는다. 존 베일런트는 서양의 벌목의 역사를 30초 필름으로 요약한다면, 벌목이 북반구에 미치는 영향은 세인트헬렌스 산의 화산 폭발이 그 주변의 숲에 미치는 영향에 견줄만 하다고 말한다. 능숙하고 숙련된 벌목꾼이였기에 그들이 개발과 이익이라는 명분아래 저지르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야망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 지킴이로 변신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이 벌목꾼이였기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자라는 데 80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나무를 숲 바닥에 쓰러뜨리는 데는 25분이 걸립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생업인걸요."(page 299)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 베테랑 벌목꾼의 표현은 내게도 슬프고 씁쓸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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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인간이 살아온 흔적을 쫓다보면 황폐화된 숲과 땅을 만나게 된다 고대문명의 중심지인 4대문명발상지를 돌아보아도 찬란했던 문명만큼이나 그로 인해 희생해야만 했던 자연과 땅을 마주할수 있음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퀸샬럿제도에는 하이라부족이라는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이런 퀸샬럿제도가 속한 캐나다 북서부 연안 온대 우림은 1제곱미터에 1천 종으로 대표되는 생명체 2백만 마리를 품고 있다고 추정될만큼 자연환경이 좋은곳이었다 하지만 18c 영국상선이 들어오는것으로 시작 19c 원주민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기독교 전파를 위해 발을들여놓은 선교사들로 이어진 문명의 접근은 풍요로운 자연모습을 담고있던 퀸샬럿제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기독교 전파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억압과 탄압으로 2천명이었던 원주민들은 6백명으로 줄어들고 그에 못지않게 물고기와 나무들도 빠른 수적 감소를 보인다 문명이라는 감투와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인간세상의 이치가 어떠한 변화에도 동요 되지 않을듯 몇천년의 시간을 버텨온 위대한 자연에 도전장을 내민지 불과 얼마안 되 이렇듯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구나 감탄을 해야하는걸까 ? 절대 불가능은없다라는 문명의 이기심이 이루어놓은 무차별적인 공격앞에 그 거대한숲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20c 들어서면서는 벌목기업들에게 가문비나무 광맥으로 알려지며 더욱 큰 혼란을 맞게된다. 삶의 근간인 숲을 지키기위한 하이다부족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벌목꾼들에 의해 800년된 나무가 25분만에 베어져나가게 되는것이었다 돈의 권력앞에 인명의 소중함도 대자연의 이치도 한낱 허망한 진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와중에 모든사람들이 보호하는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하이라부족의 전설속에서 소년이 환생한 나무 잔혹한 벌목회사들이 보호하던나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아 지방정부에서 융숭히 대접하던 돌연변이 황금가문비나무 였다. 존귀한 존재만큼이나 건강하게 오랜시간 숲을 지켜왔다는 사실이 더욱 가치있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벌목현장에서도 굳건했던 그나무는 1997년 벌목꾼 그랜트 해드윈에 의해 베어지게 되는것이다
병든나무에 그토록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전체 숲이 망가지는것을 방관만 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수단으로 그는 엄청난 행동을 하고 있었던것이다. 수천년의 시간을 담아내고 지켜주고 있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망각한채 인간문명의 이기심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파괴해왔는지 어떤 과오를 벌여왔는지 생생하게 느낄수 있었다. 작다라는 생각으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한채 대세에 떠밀려 생각하고 행동하며 떠밀리듯 그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연 파괴에 일조를 해왔음을 자각하며 인간이기심의 오만함이 어떤 모습을 초래하는지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다시 뿌려진 황금색 바늘잎들에게는 이러한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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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것들을 계속 창출해 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생겨나는 무수한 문제들과 현상들에 과연 얼마만큼 적절시 대처하고 착실한 대응을 해 왔는지 생각케 된다.
새로운 창출의 뒷받침이 되어 주었던 자연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오염된 이후 이제서야 여러 프로젝트를 강구하고는 있지만 개발의 시간만큼 복구가 되기란 크나 큰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개발속에 우리들의 의지도 파괴되어져 버려진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볼 바이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해서 자생적으로 상처를 다스리는 힘이나 회복이 더딘 것일지도 모른다.
성장의 가속도를 타던 시대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다. 보다 많은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고,개발이라 커다란 명제를 앞세워 정리하였으니 그러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가히 장관이었을 것이다. 오랜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오지의 신비함과 그것에 앞서는 인간들의 영욕. 그 가운데 터전을 침략당하며 변모해 가는 이들의 모습까지도. 한데 뒤엉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용하다 싶을 정도로.......
그것이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성장이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우후죽순으로 이권만을 노리는 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또 그만큼의 희생과 상처로 내몰리고....., 그런 가운데 찬 물을 끼얹을 만한 사건이 생겨난 것이다. 그 치열한 오지의 현장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접근하게 만드느라 잔뼈가 굵은 그랜트 해드윈.
그랜트가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추억들 대부분이 깃든 장소를 파괴한 이후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유능한 벌목꾼이었던 그가 한 소행이었으니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문제였을지 상상만으로도 족하다. 하이다 원주민들의 막대한 양의 설화가 결합된 조상 가문비 나무라는 상징적 의미와 크기, 생김새의 독보적 존재의미로서 군림하던 황금빛 바늘잎을 가진 가문비나무가 잘려져 나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은 제대로 하였을지 의문스럽다.
행방이 묘연해진 그에 대한 의구심에 더 이목이 쏠려지게 된 것은 아닌지, 모두가 그가 시위한 내용처럼 그 현장을 목격하고 하나되어 호소하였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한결 같을 것 같은 것들이 점차 우리로 인해 곁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면, 애써 갈구한다고 해도 얻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 것일텐데.......
그렇게 원인에 대한 결과는 여간 만만치 않고 우리를 힘겹게 한다. 서로간의 균형이 깨어짐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는 어느 개인, 단체만의 힘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녹색을 지켜 나가자고 주장하는 '그린피스'의 활동, 그리고 개발업자들과의 충돌,견제의 모습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이고, 들춰지는 모습들에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개인적으로 다소 성급하고 과격하게 행해진 결과. 그 결과에 대해 개인적 질타는 물론 행해지게된 궁극의 이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종의 닳지 않는 황금거위처럼 취급했던 광활한 원시림을 개발해 얻게 된 우리의 편리나 가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그리고 모두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삶 모습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란 사실까지 말이다. 혹여 가슴 아픈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우리는 잊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새겨 두고 눈물겨운 노력을 가속화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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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지나치게 하얀 종이가 아닌 문고냄새가 나는 종이를 받아보고서 나도 모르게 씩~ 웃었더랬다. 표지의 나무모양으로 인해 머리속에 책의 주인공은 대충 감을 잡았고......그런데 머리 속이 백지가 되어가는거다. 그래도 나름 지리에는 맹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었다. 머리 속에 지역이름을 입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진도가 나지 않는 스타일이 이럴 땐 얼마나 큰 걸림돌인지. 하루에 10페이지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머리 속에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봤던 사진이나 그림으로 연결조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시 작가소개글로 돌아오고.
도구와 숲의 생성에 대해서도 모르는 내게 이건 얼마나 무모한 종이와의 싸움인지..결국은 띠엄띠엄 읽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책에서 전해주는 사실만으로도 내 머리는 벅차고 가문비나무에 대한 최근의 모양만이라도 겨우겨우 건져가고 있었다. 그래, 큰 맥락만 짚어가자. 이거 한달만에 끝날 일이 아니로구나.
자연다큐를 보고 있었다. 끊임없는 자연과 늘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살아야한다는 말을 내뱉는 인간과..... 난 또 자연다큐를 통해 나약한 인간과 거대한 자연을 또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의 지혜 또한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풍습과 이야기들이 쌩뚱맞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난 다른 나라의 다큐책으로 또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곳곳에 숨어 있는, 나는 바라보지 못하는 자연의 힘. 가끔 피곤한 나를 쉬게 하는 것도 나의 의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의 힘임을, 돌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우리집 화분의 나리처럼 말이다. 때때로 책 속의 그랜트씨와 만남을 가져야할 듯 싶다. 숲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읽고, 아주 기초적인 나무이야기를 더 채우고 그랜트씨의 이야기를 다시금 봐야하지 싶다. 그리고 내 아이 역시도 좀더 나무와 대화를 나눈 다음에 읽어야할 이야기이다.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리겠지만, 다시 가문비나무를 찾아봐야할 듯 싶다. 나는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자연을 거스리기만 한 존재는 아닌지...황금색의 희귀성 혹은 불꽃같은 느낌을 좀더 오래 간직할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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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살럿 제도는 북아메리카에서 비가 많은 지역에 속한다. 구름양이 연중 250일 이상에 이른곳을 생태학자들은 '초해양성 다습 지역'이라 부르는데, 퀸살럿제도가 그 한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에도 퀸살럿 제도는 세상과 동떨어진채 독자적으로 살아왔다. 그곳은 만조와 간조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실존적 지대를 상징한다. 골드브리지에서 700 킬로미터 북서쪽으로 가면 그레이엄 섬의 북쪽 끝 머셋해협에 이른다. 해협의 동부해안을 끼고 올드 머셋의 하이다 마을이 있다. '하이다' 라는 말은 '사람들'을 뜻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우리들'에 대한 다른표현이다.
스킬라이는 독수리부족이었다. 독수리는 하이다의 연합 부족 가운데 두개의 주요한 부족의 하나이며, 씨족관계는 칫스키트나이로 황금가문비 나무 주변의 땅을 에워싸고 있는 야쿤강 북부유역을 포함하는 지역에 역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같은 씨족이다. 그들은 요리하는것과 먹는것을 즐겼던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부족외부의 사람들에게 조차 관대하였다.
북서부 연안에 발을 들여놓고 현지인들과 만나 살아남은 최초의 유럽인은 제임스 쿡 선장이었다. 쿡이 처음에 상륙했던 목적은 수달가죽이었다. 수달 털가죽은 중국인들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던 북태평양의 '황금 양모피'였던 것이다.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수달의 수는 줄어들었고, 그들의 관심은 목재로 옮겨갔다. 목재는 연료와 건축재료의 주된 원천이 되어왔고, 식량과 의복, 무기류뿐만 아니라 열과 빛과 피난처까지도 제공해주었다.
1850년에서 1860년 사이에 북아메리카의 숲 15만 제곱킬로미터가 사라졌다. 1867년 종이가방이 발명되었고, 1900년이 되자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매년 5백억보드피트를 초과하는 나무를 베어 넘기면서 숲을 개간하고 있었다. 1915년에 서부연안 수출에서 미국목재산업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시도로 동남아시아에서부터 먼길을 돌아 야쿤강으로, 그리고 황금가문비나무에까지 뻗어나갔다.
그랜트일가가 처음으로 골드브리지에 발을 들여놓았던 1950년데 후반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않는 고지대 삼림이 우거져있었다. 그랜트의 아버지는 밴쿠버의 거의 모든지역에 동력을 공급해준 댐시설을 감독하고, 할아버지는 목재붐을 타고 재목공금회사 사업주로 은퇴했다. 그랜트 역시도 신중한 벌목꾼에 도로설계자였다. 하지만 그는 열두살많은 형 도널드의 죽음으로 인해 편집증적 정신분열이 있었다. 그랜트는 일생동안 수없이 많은 나무들을 베어넘겼으며,지름 밑둥이 2미터가 넘는 황금가문비나무역시도 메시지와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고의 필요성을 이유로 베어버렸다. 퀸살럿제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하이다부족들은 황금가문비나무는 소년의 환생으로 믿었기에 미국의 9.11 사태만큼 충격을 받았고, 고통스러워했다.
벌목산업에 맞서 황금가문비를 베어버린 그랜트의 극단적인 사명감과, 얼마전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을 불태워버리고도 아무런 가책도 없었던 노인의 얼굴이 함께 크로스된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전통과, 그안에 함께 숨쉬어왔던 세월들을 어찌 복원할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야콘강 기슰의 그루터기 옆에는 두번째 어린가지가 심겨져 황금색 바늘잎들이 초록색 가운데 흩뿌려져 있다고 한다. 모쪼록 하늘높이 자라기를 기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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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은 스타일이 정해져있다. 앞장을 펼쳤을 때 그냥 쉬지 않고 읽히는 책, 첫장이 쉽게 넘너가지 않으면 결국 손을 놓고 많은 책. 이 황금가문비나무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후자였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 없는 책 아닌가? 북아메리카? 배경이 너무 멀었던 것일까? 일본, 중국이라고만 했어도 쉽게 읽혔을텐데 말이다. 한 그루 나무와 사람들들의 행위에 담긴 뜻, 그것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나무, 숲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어딜 가든 나무는 항상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그러한 나무와 숲, 그리고 벌목.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누구를 위한 성장이였을까? 무조건 이권만 노리는 이들, 그리고 그만큼의 희생과 상처.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우림에서 발생하고 있는 삼림 파괴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행위들을 문명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계속 할 것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