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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직업 특성상, 자주 피를 대하고 접한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인상을 찌푸리며 못본것을 본듯이 고개를 매몰차게 돌려버린다. '피'라는 속성은 그런 것이다. 새빨간 그것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여기, 피의 웅덩이 속에서 끌려나온 한 남자가 있다. 전 무호흡 잠수 챔피언 자크 르베르디는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끌려나온다. 그의 옆에선 방 안 가득 피를 흘린채 죽어있는 알몸의 여자가 있다. 그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명백한 살인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살인자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 기자-마르크 뒤페라이다. 마르크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두 번이나 끔찍한 방법으로 잃고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그는 자크 르베르디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를 파헤치면,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자신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자신만의 의식을 숨기려는 살인자와, 그것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심리전이 시작된다. 숨기려는 자와, 알아내려는 자.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살인자와 점차 드러나는 살인사건의 전모. 그리고 의식이라 불리는 살인의 절차가, 점차 무호흡에 빠져들듯 나를 옥죄여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어떤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을 넘으면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검은 선'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르베르디는 어렸을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선을 넘었다. 그는 검은선에서 자신만의 의식에 몰두하고, 결국은 희생자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피에 자신의 광기를 내걸게 된다.
살인자를 쫓아가던 마르크 역시, 르베르디의 흔적에서 구토를 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를 놓지 못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놓아버리고 르베르디를 따라 선을 넘어 검은선으로 쫓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하고는, 결국 그 악에 삼켜져버렸다.
산소와 결합하여 우리몸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새빨간 피는 어떤면에서 경이롭다. 하지만 산소를 잃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검은피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채 죽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마르크는 몸속의 피까지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할땐 조심해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랑제가 보여주는 악의 심연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단,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심연이 당신을 검은선으로 데려가 버릴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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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은 지금, 밤새 나를 옭죄었던 가위눌림에서 겨우 벗어난 기분이다. 깨고 싶지 않았던 악몽을 떨치고 난 후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지를 가늠하는 기분으로 책에 관해 써 본다.
소설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처절한 공포와 숨막힘을 호소하는 남자, 대나무, 오두막, 묶인 여자, 피의 샘, 질식.....남자의 독백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악의 근원을 말해 준다. 그 사내는 무호흡잠수 챔피언 자크 르베르디다. 한 여자가 살해당한 오두막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어 말레이지아 감옥에 갖히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내, 마르크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애인을 잃고 코마를 경험했던 그는 죽음에 홀린 듯 범죄 사건을 뒤쫓으며 사는 지방신문 기자다. 그런 그에게 자크 르베르디는 무척 매혹적인 사냥감이었다. 자크는 이미 범행 사실이 밝혀져 감옥에 갖혔기에 그의 행방을 쫓아 범죄를 막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떤 심리, 어떤 계기로 그렇게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고 싶어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자크에게 평범한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건, 엘리자베트라는 가상의 인물, 여자다. 그를 속이고 진실을 털어놓게 하고자 하디자라는 여자의 사진을 이용한다. 무척 아름다운 모델지망생으로 그녀 또한 악몽 같은 과거를 뚫고 살아왔고 마르크에게 호감을 느낀다. 교도소 안에 갖힌 연쇄살인자에게 순진한 아가씨의 얼굴로 위장해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마음을 연다. 그렇게 자크, 마르크, 하디자 사이의 기묘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와 자크가 엘리자베트(실제로는 마르크)에게 내리는 지령에 따라 마르크는 자크가 저지른 살인을 시간에 역행해 추적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밝혀지는 살인자의 초상...모습을 드러내는 惡 주된 세 인물의 공통점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악몽은 현실을 반영한다. 세 사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자크는 살인으로, 마르크는 살인자를 쫓는 것으로, 하디자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소설은 크게 접촉, 여행, 귀환이라는 세 파트로 나뉘고, 이야기 전개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읽는 내내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친다. 빠르고 정교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무호흡잠수 선수였던 자크가 느꼈을 법한 공포심과 망아지경마저 공감되는 듯하다. 또 말레이지아, 캄보디아, 태국, 프랑스, 시칠리아 등 자크의 행로를 소급해 가는 여정에서 각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세밀히 묘사되어 한층 실감이 더해진다. 이야기의 재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주된 캐릭터 자크가 풍기는 카리스마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검은 선을 향한 집념과 정교한 계획, 강인함, 단호함, 파괴력 등 악마 같은 마력을 지닌 사내다. 읽다 보니 기꺼이 가상의 인물 엘리자베트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달아나고 싶을 정도로 무섭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검은 구렁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랄지.
검은 선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경계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은 어차피, 마르크의 입을 빌어 작가가 비유하듯,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섞여 움직이는 곳 아닐까. 아니, 인간의 내면은 이렇게 흑백이 섞인 피아노와 같지 않을까. 검은 검반만으로나, 흰 건반만으로는 피아노 연주가 되지 않듯이 말이다. 인간은 저마다 악에 동조하거나 악을 행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에서는 다만, 그 극한을 보여 준 것뿐이라 여겨진다.
악마는 섬세할 것이다. 악을 행하려면 선행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악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라 짐작한다. 어둡고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일,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그려 내는 일은 밝고 아름다운 것을 비추는 것보다 더 정교한 탐구를 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검은 선>은 철학적이고도 탐미적이기까지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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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져 있는 선. (245p)
프랑스 소설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가라면 그런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그의 작품 [황새]를 읽고 프랑스 장르소설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작가의 이름만 믿고 덥석 두권을 집어든 케이스다. 이런 경우 잘못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작가에 대한 기대감마저도 허물어질수가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너무 오랜만에 프랑스 작품을 읽어서 그런지 이 작품이 오래전 책이라 그런지 -초판은 2008년이고 4쇄는 2010년 판이니 그렇게 오래전이라고 할 수도 없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번역을 너무 옛스럽게 해서 그런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들이 아닌 약간은 오래전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또한 들어서 초반부는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약간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작가보다도 번역자가 문제이긴 하다. 소설에서는 가독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재미난 내용이라 할지라도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설로서의 기능을 일정부분 상실했다고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빠르게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내용이다.
스릴러라고는 하나 연쇄적으로 사건이 마구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건의 사건이 저질러지고 용의자가 잡히고 그의 다른 범죄들이 연결되고 있지만 부인하는 입장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범죄자들의 심리를 알아보겠다고 덤빈 저널리스트.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바야흐로 범죄자와 용의자와 저널리스트간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붙잡혔고 사형이 확정이라고 여겨지는 - 그는 여자라고 믿고 있는 그에게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보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길 원하고 자신을 따라오길 원한다. 여자가 아니라면 상대도 해주지 않는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신분증까지 훔쳐서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편지를 보내고 한발자국씩 가까와지고 있는 기자는 그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가 이끌어가는대로 그의 범죄의 흔적들을 좇기 시작하는데 둘 사이의 이 믿은은 어긋난 믿음이며 언젠가는 깨어질 얼음판 같은 믿음이다.
배신을 가장 싫어한다는 그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때 이 기자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 절묘하게 정맥만 노리면서 몸속의 모든 피를 쏟을 때까지 기다리는 범죄자. 전직 무호흡 잠수 챔피언이었던 그가 왜 이렇게 피에 집착하게 되엇을까. 편지로 연결된 그들의 소통은 이제 이메일로 더욱 빠르게 왕복하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은 언제 어떻게 깨어지게 될 것인가. 검은 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경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린 거예요. 다른 인간들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죠. (16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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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릴러의 황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돌아왔다. 역시 오래 기다렸다. 출판사에 여러번 졸랐는데 이제야 나왔다. 기다린만큼 이번에는 전작과는 다른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범죄 사냥꾼과 연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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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벌써 하루하루가 숨 막히게 무덥다. 온몸을 찍어 내리누르는 땡볕의 무게를 등에 얹고 걷는 한낮엔 점점 난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샴쌍동이처럼 등에 붙어버린 더위를 한 칼에 베어버리는 섬뜩한 섬광! 여름엔 역시, 스릴러가 답이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전업한 후, 12년간 세계 각지를 누비며 환경, 분쟁, 과학, 소수민족 등에 관한 르포를 쓴 저력으로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을 직접 창작을 하기로 결심한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틈틈이 집필하여 ‘황새의 비행(1994)’, ‘크림슨 리버(1998)’, ‘돌의 집회(2000)’, ‘늑대의 제국(2003)’까지 고공비행을 계속하다 ‘악의 기원 3부작’을 야심차게 계획하고 2004년 ‘검은 선’, 2007년 ‘림보의 서약’을 통해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대단한 작가의 경력을 모른 채, 접하게 된 ‘악의 기원’이었다. 지옥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살해 장소에서 넋 나간 용의자 ‘자크 르베르디’가 첫 페이지에서 잡혔다. 그는 무호흡 잠수의 세계 신기록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친 자이며 현재는 마흔아홉 살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다이빙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할까? 아니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나설까? 이를 쫓는 경험과 경력이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기자 ‘마르크 뒤페’, 그는 함구하고 있는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파헤칠 수 있을까? 명백한 용의자가 있어서 거의 해결된 것 같은 사건이 다양한 일상 위에 표류하면서 새로운 사건을 이끌어내는 능력, 그렇게 말레이시아 감옥에 있는 자크와 프랑스에 있는 마르크의 연애편지가 시작된다. 여자를 선호하는 자크를 위해 본인도 모른 채 연애편지 속에 끼어든 모델 ‘하디자’까지, 삼각관계의 서막이 1권에서 시작된다. 범인이 거의 확실한 것 같은 용의자를 잡고 시작하는 스토리건만, 작가의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동남아를 풍부하고 세밀하게 휘젓고 다니며 연애편지의 비밀, 즉 ‘악의 기원’을 하나씩 벗기는 취재능력이 무척 흥미진진하여 지루할 틈이 없는 스릴러다. 밝혀지는 진실, 살해 방법들이 숨 막히게 잔인하면서도 작업의 철저한 정교함이 알흠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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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해도 해도 너무 더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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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과 적도 사이에 또 하나의 선이 있다.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
그것이 바로 검은선이다. 이 검은선,이라는 책을 우연찮게 받아들고 뭔가.. 하고 있을 때, 낯익은 역자의 이름이 보여 어떤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내 취향이 아냐, 하면서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루 반나절만에 두 권의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근무시간에 꼭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상사의 눈치도 보지않고 퍼질러 앉아 읽어버렸다는 뜻이다.
나는 심리를 묘사하고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잔혹함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 끔찍해서 대강의 줄거리와 결론만을 파악하고 제대로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 검은선은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차마 책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었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결이 절대로 중간에 끊을 수 없게하는 악마의 유혹같은 강한 끌림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무호흡잠수 챔피언인 르베르디가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그를 취재하려는 마르크 뒤페라의 이야기로 검은선은 조금씩 그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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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은 전 무호흡 잠수 챔피언 르베르디, 특종을 잡아 인생 역전을 꿈꾸는 전직 파파라치 작가 마르크, 자신을 거부한 세상을 향해서 내 놓은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가진 것이 없는 모델을 꿈꾸는 하디자의 얽히고 얽힌 세사람의 광기를 담은 이야기이다. 특종에 못 말라하며 점차 퇴락의 길을 가던 마르크는 말레이시아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르베르디가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그를 향한 관심이 집착으로 변해가면서 사건은 치밀하게 '악'을 향해 치닫게 된다. 두 사람이 벌이는 심리게임은 갈수록 복잡미묘해지면서 바로 앞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악의 기원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 관심이 갔었던 '검은 선'은 정말 공포를 느꼈다.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이 어떻게 이어질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첫 번째 작품부터 소름이 돋게 한다. 장르소설이고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낮보다는 밤에 읽어야지 하는 편인데, 밤에 읽기가 겁이 났다. 웬만한 미스터리 소설은 거의 다 읽고 싶어하고 영화도 좋아해서 어지간한 장면들은 그리 놀라지도 않는데, 이 '검은 선'은 정말 무서웠다. 인간이 한 인간한테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섭고 또 무서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가 없었던 이유는 저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힘인 것 같다. 저자의 책은 처음 읽은 책인데, 글 속에 담긴 흡입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사건 자체보다 그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살인자들의 심리를 더 알고 싶어하는 작가 마르크의 입과 귀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악'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종말을 맞이할까? 악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악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어느 선까지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읽는 순간에도 다 읽고도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소름이 돋으면서 읽었다. 르페르디의 잔인하고 탐미적인 의식이 궁금하다면 한 밤중에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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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면 온 몸으로 검은 기운이 스며들고, 손끝에서는 땀 대신 검은 핏방울이 묻어날 것 같다. 그만큼 소설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색채를 담고 있다. '싸이코 패스‘이나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이지만, 작가 그랑제가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살인자의 광기의 이면에 감춰진 살인의 동기를,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판도라의 상자를 눈앞에 둔 것처럼 두려우면서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 마르크가 자크 르베르디의 광기 어린 연쇄살인의 흔적을 좇아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과정은 박진감이 넘치고, 생동감이 넘친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을 넘나드는 그 광대한 스케일과 세밀한 묘사는 르포 기자라는 작가의 내력이 톡톡히 한 몫을 한 듯 사실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마르크가 엘리자베스라는 가상의 인물의 탈을 쓰고 르베르디에게 접근해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이 소설의 긴장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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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는 친구인 다미코와 사랑하는 사람 소피의 시체를 본 후 코마상태에 빠져 그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시간들을 잊게 된다. 끔찍하게 훼손된 소피의 시신을 보며(직접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사진으로 본) 살인범이 왜 그녀를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였는지 그들의 심리,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불행한 사건을 잊기 보다 그것을 대면하고 파헤치는쪽을 택한 마르크는 '까나라'에 수감된 연쇄살인범 르베르디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여자의 피를 신성시 하는 르베르디에게 가상의 인물인 '엘리자베트'를 만들고 그에게 편지로 접근한 것이다. 르베르디가 이르는대로 그가 행한 살인의 길을 따라가는 마르크, 순간순간 두려움을 느껴 포기하고 싶지만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느낀다.
마르크는 직업이 '기자'이기에 일반 시민들보다 정보를 알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르베르디가 던지는 단서들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여자들을 죽였는지 머릿속에 똑같이 재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 보자면 르베르디는 '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다. 그저 심리학을 전공할 뿐인 엘리자베트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자취를 찾고 있건만 그 정보를 그렇게 단시간내에 파악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다니, 거기다 남자인 마르크가 여자 흉내를 완벽하게 낸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가? 아마 르베르디는 자신과 엘리자베트의 영혼이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문의식'을 잘 치뤄내는 엘리자베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르베르디, 모든 것을 알아냈을때 마르크는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그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의 길'을 따라 칼로 베고 거기에 치유의 힘을 가진 꿀을 바르는 르베르디, 마르크가 그의 행동을 떠올릴때마다 구역질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내 머릿속에 꿈틀대는 르베르디의 힘을 느끼며 속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마르크, 그는 엘리자베트의 사진을 보낼 때 '하디자'의 사진을 보냈었다. 그녀가 모델로써 인기를 얻게 되어 마르크가 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하디자는 르베르디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솔직히 모든 사실을 알아내고 책을 내어 '부'를 거머쥐려는 마르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위해 그렇게 위험한 게임을 하다니, 이제는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어디론가 떠나 숨을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애초에 '악'의 얼굴과 마주하려던 그의 동기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출판사 사장에게 위험이 있을 것이란 언질을 주면서 왜 그는 르베르디의 편지를 받는 유치우편 담당 직원 알랭과 하디자를 모델로 키운 뱅상을 생각해 내지 못했던가. 그의 이런 행동을 볼때 마르크는 르베르디의 상대가 될 정도의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다!" 뱅상의 피로 써 놓은 르베르디의 글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르베르디는 분명 감옥안에서 사형을 당할 죄수였다. 그런데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르베르디를 데리고 나서며 엉성하게 승용차에 태워 데려가다니 이것은 "도망가라"고 떠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 르베르디와 마르크의 정면대결을 위해 르베르디의 탈출은 필요한 부분이었겠지만 너무 엉성해서 헛웃음마저 나온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악'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조금의 선한 모습이 악의 모습을 누르며 살아가지만 자신안에 든 '악'의 진정한 모습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를 직접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구든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궁금해서 손을 뻗게 될 것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악'을 깨우게 될지라도 말이다. 마르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악'의 실체가 궁금해서 르베르디에게 다가갔지만 자신 안에 있는 '악'을 깨움으로써 스스로 '악'이 되어 버린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대로 상처가 잊혀진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악'과 마주할 것인가. 그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