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부터가 도서관에서 빌리기 뭐했다. 제목이 저렇지 않고 이상한 '남들과 다른 그녀'막 이 딴 식이었으면 정말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아름다움의 과학'이다. 표지는 그렇게 나쁘게 선정된 건 아니다. 두꺼운 두께에 비해 맞는 표지라고 보기에는 힘들지만, 내용에는 맞는 표지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아름다움이 표현된 인형의 얼굴이니.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은
'미인불패(美人不敗)'다.
다른 거 필요없다.
미인불패다.
미인은 어떤 경쟁에도 우위를 차지한다. (사기로 기소된 경우에는 미모가 약점이 되지만)
읽으면서 만약 우울증 증상이 있으신 분이라면 정말 책이 잔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름 긍정적인 나도 약간은 위축되게 만들었으니.
차례차례 어째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는 건지, 어째서 아름다움은 사람의 사고를 자극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장에는 그래도 '미인은 기대를 많이 받기 때문에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면 비난을 받는다'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미 미인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남성은 비록 여성보다 자신의 외모로 인한 영향력이 덜하지만, 그런 걸 보자,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2.4초는 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장난아니게 재미난 이론이 있다.
'아름다움은 뛰어남을 나타낸다'라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여성이 상류층과 결합하는 것에 관련이 있다.
1. 상류층은 사회가 원하는 능력(지력, 창의성 등)을 가지고 있다. 2. 상류층은 아름다운 여성은 원한다. 3. 아름다운 여성은 상류층과 결합한다. 4. 상류층과 아름다운 여성 사이에 태어난 개체는 아름답고 사회가 원하는 능력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
위의 것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상류층은 아름다운 사람들로 채워지는 거다.
장난아니게 재미난 이야기 아닌가?
정말 재미나서 좀 짜증날 정도였다.
지나치게 현실에 가까웠다.
솔직히 주변에 돈많은 나이좀 계시는 남성분께서 젊고 빵빵한 아내와 결혼하는 사례는 널려있다.
TV를 틀어서 어째서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합이 많은가를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현실성이 있다.
정말 아름다움따위 포기한 채(나의 경우) 이 책을 보거나, 과학적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접근하고 싶은 경우에는 이 책은 재미나다.
하지만, 마음이 상할 수 있음을 알아두길.
|
|
“예쁜 것은 예쁜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철학자 칸트의 아름다움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논쟁을 잠재운‘철학적 최소 표준’을 통한 입장과 같이‘울리히 렌츠’의 이 저술 또한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의 고찰 이상이 아니라 하고 싶다. “우리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엄숙히 인정하면서도 문화적 존재임을 드러내어 헛되이 반항해 보고 진화적 유산을 억지로 조정하려 애쓴다”고 생물학적 존재로서 아름다움에 각인되어 있음을 부정하려는 우리의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너무나 뛰어난 미인들의 특별한 문제와 같이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완벽 할 수도 있다”는‘더머와 틸’의 연구실험,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파르마 백작부인』을 빗대어 ‘매력은 큰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든가, 느닷없이 아름다움의 행복론을 성찰하는 12장과 같이 주제의식에 벗어나는 겸연쩍음도 있다. 그러나 이 저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뛰어난 과학적 고찰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류사적 연대기로서 고대 이집트 벽화에 표현된 여성의 모습에서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시대, 근대 시민사회에 이르는 미의 감각에 대한 현학적 성찰로부터 얼굴의 외형적, 유형적 분석 - 대칭과 평균, 얼굴 전체의 유형, 홍채와 동공의 크기 등 -과 같은 아름다움의 조건에 대한 해부, 그리고‘고귀한 창백함’과 같은 고전적 열망으로서의 피부에 대한 미적 숭배, 중세시대 색소결핍으로 발생한 금발의 선호 현상등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정도의 현란한 인용과 통찰, 분석으로 모호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각인 시킨다. 그리고는 이 대단한‘저술의 꽃’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매력적인, 문자그대로의‘아름다움의 과학적 탐구’는 독자들의 지적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실험사례와 과학이론들로 풍부하게 장식 되어있다. 다윈의 동물 진화의 성공을 위한‘성적 선택’이론을 시작으로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의 걸출한 세계적 명성의 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이 인간에게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도널드 사이먼’의 ‘좋은 유전자 가설’에서, ‘자하비 부부’의‘핸디캡 가설’,‘피셔’의‘폭주가설’, 나쁜유전자 가설, ‘기생충 가설’등 멋진 진화론적 통찰들은 허기에 찬 두뇌에 즐거움의 비명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도널드 사이먼, 윌리엄 해밀턴, 리처드 도킨스, 손힐, 파페 묄러, 로널드 피셔등 그 이름만으로도 유쾌한 석학들의 망라된 이론들은 아름다움의 진화론적 당위성에 설득당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급기야 3장에 이르러는‘카렌 디온’의 “잘 생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회가 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할로(halo:후광)효과를 서막으로 발달심리학, 행동학, 인지심리학자들의 다채로운 실험들 - 예쁜 사람이 과연 더 좋은 작문점수를 받을까? 아름다운 사람이 물건을 영업을 더 잘 할까? 등등 - 에서 “아름다움도 재능이다”, “잘 생긴 남자나 예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많은 신용자본을 소지하는 셈이다.”, “아름다움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비를 자극한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아름다움의 경제학적 접근에 이르러서는 “직업시장에서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조건으로 하여 10%이상의 수입차이가 발생함을 밝히기도 하며, ‘아름다움의 특권의 원천’에 대한 연구까지 소개되기도 한다. 더구나 ‘매력에 의한 사회유동성’이란 주제의 연구를 통해 부잣집 아이가 왜 더 예쁜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은 오늘날 ‘아름다움’의 그 재능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는데 가히 끔직할 정도의 증거로 드밀어진다.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우리들 무의식의 일체적 인식과 시대를 초월해 각인되어있는 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진화의 부산물이자 진화의 논리에서 피해갈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최선을 다한 선택의 결과임을 내비친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한 짚신도 짝이 있다는 입증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집요한 추구의 어두운 단면도 설명한다. 이를 보다 현학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요구수준 형성이라는 유동적인 메커니즘은 에너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줄뿐 아니라 진화론적인 전망에서 나온 가치를 만들기도 한다.” “교환은 고유한 사회적 이론이다.”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은 “아름다움과 명성의 만남”과 같이 아름다움은 생존과 자기보존을 위한 절대적 권력이다. 아름다움을 통해 선택권을 발휘하는데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교활한 속임수건 환상을 자극하는 허상이건 아름다움이란 외형은 일종의 유전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의 본성을 생각해볼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는 작업이다.”이는 심리학적, 생물학적, 경제학적, 생태학적으로 바로 과학적으로 진리이다. 각 단원마다 아름다움, 미(美)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볼 수 있다. 역사적 이해, 과학적 실험과 연구, 경제학적 실험과 이론, 그리고 문화적, 사회학적 고찰까지 별개의 장으로서도 다양한 참고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정도의 유용하고 흥미로운 저술이다. 심리학, 사회학, 진화생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저술이 될 것이다. |
|
1. 책이야기 먼저
[아름다움의 과학]은 사람들의 추상적인 사고영역을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는 인문과 과학의 경계선상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가 일반교양인을 상대로 책을 썼다고 해도 처음부터 읽기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책이 아니다. 큰 목차는 네 부분으로, 세부 목차는 열 여섯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나역시 책장을 넘겨가면서 읽기에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책의 반절이상 앞부분에서는 美에 대한 많은 학설과 실험, 연구결과들이 무수한 학자들과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칫 책의 흐름을 놓칠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역으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학술서 성격도 띠고 있는 책이라, 저자의 주장과 결론적 이야기를 먼저 이해해두고, 그 논거와 주장들을 살펴보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을 밀도감있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2. 책 내용에 관해
먼저 14~15장은 아름다움과 관련한 문제제기 부분으로, 오늘날 美에 대한 광기수준에 주목한다. 너나 할것없이 젊고 날씬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난리다. 꼭 결혼,취업을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감 차원에서도 성형을 마다하지 않는 실태다. 문제는 이런 美의 추구가 미디어나 미용집단에 의해 변질되고 있는 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1장과 11장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하고 있다. 태초의 인간부터 고대 중세 르네상스 현대를 거쳐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8장부터 10장에서 본격적으로 도달적인 화두를 던진다. 아름다움은 타고난 축복이고, 아름다움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사소한 혜택부터 권력적 속성까지도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태생이 스스로 돕지 못했다면 예뻐지려고 노력하라고 한다.(젠장)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이고, 아름다움의 존재이유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제부터 우리는 책의 앞부분을 정성껏 넘겨볼 수 있다. 2장의 아름다움의 조건으로 평균과 대칭, 앳됨(동안), 성숙미, 표정들을 열거하고 있고, 몸매에 대한 시각의 변천이나 엉덩이, 가슴, 작은 발, 금발머리등에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총체적으로 아름다움의 조건도 제시하고 있다.(p75~77) 다음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존재이유는 5장부터 8장에 걸쳐 학설도 많이 나누어져 있고, 견해대립도 심하다. 그러나 간단히 정리해보면 유전적 진화적 측면으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뇌의 지각편애에 따른 감각적 즐거움으로 볼 것인가로 대립한다. 전자의 견해인 진화론적 견해에서도 좋은 vs 나쁜 vs 적합한 유전자 가설로 다시 나누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상대를 만나지 않기 위해 아름다움을 갖는다는 이론에 호감이 간다. 매번 선택의 순간이 오면 최고 최상의 선택을 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나는 최악의 리스크만 피한 선택이면 만족한다. 그렇게 하면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융통성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에 자주 인용되는 핸디캡이론과도 크게 모순되지 않게 된다고 생각된다.
3. 결론에 다다르며
美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하물며 이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자는 사람들의 美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고자 했고, 아름다움이 갖는 속성도 파헤쳐 본다. 잘 생기고, 예쁘다며 당장에 나를 칭찬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듯이 아름다움이 갖는 자신감, 친밀감이 플러스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는 자체는 비난할 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태초에 순수한 마음으로 새롭게 자신을 꾸미고자 했던 놀이수준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미용관련 이해집단이 돈과 권력과 결탁하고 추잡하게 이를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아름다움 자체를 부정하지도 말고, 또한 아름다움에 지나친 집착하는 것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움의 정체를 알게되면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삶은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이다. 참고적으로 최근에 조용진교수의 [미인]이라는 책이 나와 있는데. 미학적 기준은 물론 해부학, 인류학, 도상학, 사회학적으로 미인의 실제를 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대비 너무 비싼게 흠이다. |
|
아름다움이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무엇을 노력하고 있을까? 스킨, 로션만 쓰던 나에게 이러한 생각은 가슴 아프게 했다. 억울하면 예뻐져라! 처럼 선천적인 외모가 아니라면 관리와 수술을 통해 예뻐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의 시선은 단지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생물학적으로 설계 되어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기 전,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눠지는 것일까 잠깐 생각했다.
글쓴이는 아름다움의 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글쓴이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나는 아름다움의 마법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아름다움이 힘을 잃게 될지는 의문이다." 아름다움은 그 가치를 무시할 수도, 변하게 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으로 표현한 것이 딱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시대가 바뀌면서 문화의 차이가 기호의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의 절대적 가치는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신생아가 지나가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면 그 사람은 잘생긴 사람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친척집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있었을 때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 아기는 거의 3분의 2를 매력적인 얼굴을 보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자신의 엄마는 아름다움의 정도와 상관없이 가장 오래 쳐다보았다. 엄마는 항상 최고였던 것이다. " 그렇다 엄마는 항상 최고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혈육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 어린 생명이지만 참으로 영특하다. 다 큰 성인이 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부모님께 가끔씩 전화 드리는 것, 쉬우면서 효도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매력적인 얼굴은 평균적인 얼굴이라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6명의 일반인 사진과 6명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실험해본 결과 합성한 사진이 더 예뻤다는 것이다. 합성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보정이 있었던 것 같지만, 확실히 합성한 사진이 이뻐 보였다. 개성 넘치는 얼굴은 인상적인 반면 평균적인 얼굴은 아름답다니 신기한 일이다. 남자의 ‘외모의 잘생김 척도’에 호르몬이 기여 한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남성호르몬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남성다워지고 공격성을 띈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외모의 소유자들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성격도 까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인상의 편견이, 편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짧은 감탄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외모에 대한 편견은 속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동안인 얼굴에 우리는 ‘과잉반응’한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동안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관심을 갖게 되며, 미숙한 평가를 받게 되며 사람들이 도움을 더 많이 주게 된다는 것이다. 동안인 범죄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관대한 처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냄새로 판단한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 이성과의 접촉에서 '낯선' - 그렇지만 지나치게 낯설지만은 않은 - 냄새를 선호하며, 좋은 냄새를 쫓는다. " 는 것이 눈으로만 아름다움을 쫓는 줄만 알았던 생각에 냄새까지 더하여 주니, 우리는 이성을 눈(외모),코(냄새),입(말투),귀(목소리) 모두 이용하여 보고 있었다. 냄새는 특별한 날이나 외출할 때 흡사 우리가 이성을 자극할 때 몸에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누구에게나 행복함을 주지만, 정반대인 사람에게는 대비되어지는 것에 가슴 아프게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갈증을 내게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억울하면 예뻐져라!” 하지만 예뻐지는 것은 쉽지 않다. 철저한 관리와 유지가 필요한 고도의 작업이다. 남들보다 앞서서, 더 이뻐지려고 과도한 성형문화가 성행하는 지금 글쓴이의 말이 부추기는 것 같아 아쉽다. 외면 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 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이미 아름다움을 쫓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어떻하겠는가 잘생기고 예쁜 것은 모두가 좋아하는 하나의 공통점이니 말이다. |
|
미인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머리좋은 사람 위에 예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예쁜 것은 언제나 좋다. 지옥에도 정말 한없이 못생긴 자들이 가득하다.” 정말일까?
아름다움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편안함, 부드러움, 다정함으로 표현된다. 아름다움이란 유전학적 성질이다. 우리는 수천년 그리고 수백만년 동안 진화에 의해 형성된 미적 감각을 우리속에 지니고 있다. 아름다움은 면역력, 발달 안정성 그리고 생산력에 대한 증명서인 셈이다. 예쁘면 다 착하고, 잘생긴 사람일수록 더 능력있고 성격이 좋을 것 같아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내적요소인 동시에 외적요소의 종합 선물 셋트와 같은 것이다. 미인은 더 감정적이고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며 다른 사람들을 더 챙긴다. 아름다운 사람은 단순히 성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미인은 성적인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더 만족을 느낀다. 아름다움은 힘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름다움에 대해 권위자처럼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고, 가슴뛰게 하고 손에 땀나게 만드는 상류층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우리는 최고의 계층을 인식하고 이와 반대로 추한 사람은 하위계층으로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확실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스스로가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에만 그렇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청하는 TV 프로그램, 즐겨보는 서적, 클릭하는 인터넷 사이트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멋진 남녀가 눈앞에 나타난다. 광고는 아름다운 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만 보여준다. 광고에 나오는 미인들이 우리를 자기폄하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유도하는 ‘감옥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언제나 자신에게 모자라는 것만 보게 된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인간의 유일한 실수는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
|
신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엘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있는 사과를 결혼식장에 놓는다. 그러자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는 자신이 황금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하지만 영리하게도 제우스는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세여신은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판단을 해주면 파리스에게 줄 것을 약속한다. 먼저 아테나 여신은 전투에서 무적의 힘을 주겠다고 했고, 헤라 여신은 소아시아 전체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자를 준다. 즉 아프로디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자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헬레나를 파리스에게 준다. 그런데 문제는 헬레나가 유부녀였다는 것이었다. 이로서 헬레나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나는 데 이것이 바로 트로이전쟁이다. 세 여신의 다툼도 그 원인은 아름다움이었고, 트로이 전쟁의 원인도 아름다움이었다. 과연 아름다움이 무엇이기에 여신들도 다투고, 전쟁도 불사했을까.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대별, 지역별로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이 진실일까? 독일의 의사이자 과학 저술가인 울리히 렌트는 <아름다움의 과학>(프로네시스.2008년)에서 아름다움을 과학적으로 분석했으며, 그 결과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학문적으로 답하자면 아름다움이란 절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계층 ․ 문화 ․ 지역을 넘어서, 또 나이 ․ 직업 ․ 성(性과)는 별개로 아름답다고 인식되는 얼굴은 어디서나 같다.” 저자의 분석결과는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인데, 과연 저자는 어떤 자료나 어떤 연구를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먼저 얼굴에 대해서 행해진 각 연구결과를 나열하고 있다. 이를테면 태어난 지 14시간에서 6일이 지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진행자가 아이들은 품에 안고 왼편과 오른편에 모니터를 놓는다. 그리고 화면에 매력적인 여자 사진과 그렇지 앟은 여자의 사진을 번갈아 띄워서 보여주었다. 그 결과 아기는 거의 3분의 2를 매력적인 얼굴을 보는 데 할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판단기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매력 있는 얼굴은 평균적인 얼굴이다’라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는 텍사스 대학의 주디 랭로이스가 실험한 결과를 나타난 현상인데, 그 실험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1980년대 말 주디 랭로이스는 32명의 남녀를 촬영한 후 컴퓨터로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여러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얼굴이 더 예쁘게 보였던 것이다. 즉 평균적일수록 얼굴은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평균얼굴이 더 예쁘게 생각될까? 이유는 좌우균형 혹은 대칭이 아름다움의 기본적인 속성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균형이나 대칭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균형 잡힌 얼굴이나 몸은 바로 좋은 유전자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동물세계에서 몸에 균형이 잡혀있는 개체들이 짝으로 선택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짝을 선택할 때 어떤 면을 선호하는 지에 대해서도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적 접근을 통하여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은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은 그렇게 간단히 없어지지 않는다. 또 현실은 그렇게 많이 바뀌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저자의 결론은 아름다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저자의 자신감에 넘친 강력한 메시지로 보인다. 그렇다 아름다움은 바로 강력한 권력인 것이다. 즉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이다. |
|
으음-. 결국 이 책의 중간 쯤에서 참고 있던 탄식을 뱉음으로써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더 지적이어야 한다'는 논증 이후부터이다. 예쁘다는 것이 최고 중요하다며, '얼굴 뜯어 먹고 사는 게 맞다'고 말하고 다니던 선배의 논리와 마침표까지 똑같았다. 결국 약간의 치졸한 방법으로 자연미인임을 확인한 후 세기의 결혼을 성사시킨 그 선배가 옳았던 것이란 말인가.
이 책은 굉장히 지적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미추의 필드를 촘촘한 이성의 영역에서 펼쳐 놓고 치밀하게 전개해 나간다.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자료와 실험 결과 앞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불고염치하게 달린 부제-'미인불패'(!)-에서부터 그 긴장감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따라가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실로 매력이 넘친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웅변적인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란게 이렇게나 절대적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끌리는 것은 뻔한 통속의 일부인 것처럼 한편으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런 기준따위가 다 뭐냐며 초연한 듯한 모습은 그저 하나의 캐릭터로 치부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을 짚어가다 보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그 모든 일들이 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지일뿐 아니라 심지어는 당위성마저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전형성이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것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중학교 몇학년 때인가 나의 담임 선생님은 사춘기를 지나며 교실의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우리를 뒤돌아 세우고, 멋부리다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 아예 관심 끊으라는, 다소 폭력적인 오다를 내리곤 하셨다. 물론 선생님 말씀도 틀리진 않았다. 정말 끝이 없는 게 또 그 세계니까. 하지만 꼭 맞지도 않는 것 같다. 울리히 렌츠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
|
객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논하다 : 그 한계성 뛰어넘기 <아름다움의 과학>의 부제는 ‘미인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이다. 사실 외적인 미가 새로운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최근에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의 삽입곡 중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난 너무 예뻐! 난 섹시해! 미모는 나의 무기. I'm a beautiful girl~’ 거기에 이런 속담도 떠오른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동시대 동문화권, 혹은 비슷한 계층간의 가치관 내에서 미는 항상 선택되어지고 우대되어 온것이 사실이 아닌가. 다만 우리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 특히 여성의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속물근성으로 취급받아왔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권력이다’라는 말이 당황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갖게 되는 아름다움은 어떤 기준에서 나오는가. 여기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그 결과를 통해 울리히 렌츠는 (객관에 가까운?, 혹은 객관적이라고 합의가능한) 매력의 요소를 정리해주면서 책은 시작된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표정과 시선처리 등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는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는 여러 연구를 총망라한 것이다. 다수결을 따르는 통계의 법칙에 따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기준으로 미를 판단하고 아름다움을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는, 즉 타고난다는 연구까지 다분히 발칙하다고 할 수 있는 연구결과들을 종합선물세트로 볼 수 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 도서를 추천하고픈 독자들을 대라면 다음과 같다.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없는 어른들이나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사람들, 처세술이 필요한 직장인과 연애가 어려운 이들에게 활용이 톡톡히 될 법도 하다. 우스개 말같지만 외모에 대해 중요성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이나 외모변화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이들이라면 돈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시킬 한두개의 팁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기 위하여 통계자료라는 객관적 근거를 들이대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불평등한 것일뿐이라고 말할 근거가 100가지도 넘는다는 독자들이라면(나도 비슷한 부류다) 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미 자체의 역사 뿐 아니라 미를 판단하는 기준, 편리가 아닌 아름다움을 향한 진화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계급간의 논쟁, 특히 소외계층(인종, 빈부, 여성, 장애 등)의 문제의 쟁점들에서 보면 미 자체를 권력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편에서 보면 소수의 지배층(다수의 판단을 지배하는)에게는 치명적인 약점(그들이 단지 외양에 가치를 두는 속물이라는)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다만 울리히 렌츠가 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적고찰은 우리가 아름다움의 스테레오타입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시켜주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외모지상주의와 이 책의 관점은 다른 편에 서있다는 것을 책을 덮고서야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을 덮고 나서는 오히려 이 책의 내용이 담배갑의 경고문구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당신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통속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하고, 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인식을 하고 있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미에 지배되는 것은 다르다.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움만을 좇는 것보다는 인류가 어떤 무의식적 기준으로 미를 선택하게 되는가에 대한 과정을 인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추앙이 아니라 조금은 평소에 생각하던 진정한 아름다움(예를 들어 예술적 가치나 인류에 대한 공헌가치 등)을 한번 더 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을까? 우리는 현대사회의 미에 대한 추앙이 도를 넘어서면서 결국 미에 대한 광기라는 비정상적인 추세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 착한 것, 우대되어져야 할 것이라는 무의식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에 대한 심리적 경외감은 아름답다고 평가되어지는 이들에게 (아주아주 넓은 의미의) 권력을 부여하고 소소한 것에서부터 이 사실이 적용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울리히 렌츠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머리말에서 글쓴이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이 자신을 행복하게도 고통스럽게도 했음을 깨닫고 그 미의 마법을 파헤치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자연스럽게 책의 결론에 이어진다. 미 자체의 밸루가 높은 것으로 인지하고 아름다움을 우대를 넘어선 숭배와 그에 대한 광기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 초월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덧없다는 것을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문제이며 이것이 바로 미에 대한 신격화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과학>은 얼핏보면 과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잣대만큼의 책두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의 전반부를 통과하고 나면 책 무게만큼이나 독서의 속도는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볼 때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표지모델의 아름다움이라니! 표지모델은 말 그대로 인형이지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여러 연구의 기준을 들이댈 때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열면서 ‘역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예쁘긴 예쁘다’ 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책을 덮으면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신격화가 낳은 여러 문제를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
|
서점 신간코너에 이 책이 전시되었을 때는 사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빨간 입술이 도드라진 마네킹 인형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책 표지가 조금은 천박(?)해 보여서다. 그러다 어느 서평을 읽고서 주문했다. 과연 책은 선입견을 깨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책표지를 본 독자가 어디에 제일 먼저 눈을 두었는가를 예측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단계적 접근이 누구나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첫인상에서는 외모에 빠진다. 하지만 외모가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니다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낀다. 그러나 왜 사람들이 어린애나 노인이나 구별없이 외모적 아름다운 것에 매력을 느끼는가는 누구나 가지는 의문이고 그에 걸맞게 시대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고 더 많이 발전해왔다. 난 이런 사회과학적 연구가 딱딱한 논문집에 갇혀 있지 않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편집된 책에 점수를 많이 주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아름답게 태어난 사람들--남자든 여자든--은 필히 이 책을 읽어서 자신을 무기화(?)하는 노력을 한다면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접할 수 있겠다. 그것이 결코 행복한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외모적으로)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만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질투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본능적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계몽적으로 내면의 가치를 고평가하더라도 본능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비록 아름다움을 외모적으로만 평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연구는 가치가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
|
이 책의 표지는 여자 구체관절 인형인데 잠깐 묘사하자면 -아주 작은 얼굴, 큰 눈, 큰 동공, 긴 속눈썹, 작고 앙증맞은 코, 앵두같은 붉은 입술, 백옥같은 피부- 이다. 어느 것 하나 옥의 티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건 처음엔 내 눈을 사로잡았지만 점점 볼수록 질린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인간미가 없다는 것과 둘째, 아름다움을 넘어서 더 아름답다는 것의 문제였다.
책을 읽기에 앞서 난 사람들의 행동은 결국은 선천적인 유전자 놀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 권태기에 이르는 것, 우리의 외모 등등 모든것이 유전자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이다.
책에서는 좋은 유전자 이론과 나쁜 유전자 가설이 소개된다. 동물이나 사람은 파트너를 구할때 더 아름다운 파트너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인데 아름다운 파트너가 더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것이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남자는 여자를 선택할 때 외모만 충족되면 되지만 여자의 경우는 남자의 외모뿐 아니라 경제력, 성격 등등 다방면을 본다는 것이다. 재미있다는 사실에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 여자는 외모만 관리하면 되지만 남자는 외모뿐 아니라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성격도 좋아야 하고 어느정도의 유머감각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니 말이다.
어찌됐든 그래서 지금은 성형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오늘도 아름다워 지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아간다. 책의 저자는 성형에 관해 관대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성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참 유행했던 여자 연예인 대칭사진들이 떠오른다. 오른쪽 얼굴 대칭, 왼쪽 얼굴 대칭으로 한 그래픽 작업물의 결과물이 참 흥미로웠었다. 완벽에 가까운 대칭을 가진 연예인의 얼굴은 극히 몇명 있었고 그 외의 경우는 비대칭에 가까웠다. 하지만 미미한 비대칭이라서 다시 합쳐놓고 볼때는 별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얼굴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어떤 것일까?
이게 바로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일까..
아름다운 얼굴의 구성요소는 이렇다. 깨끗한 피부, 대칭, 평균에 맞는 얼굴, 앳됨과 성숙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얼굴, 보너스로 풍부한 표정까지.. 미를 추구하는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인 진리는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미인의 사진을 더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연구결과는 후천적인 학습이 아닌 선천적인 본능에 의해 미인을 감지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사고로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미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반응했다는 것은 얼굴을 알아보는 것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이책은 꽤나 많은 내용을 전달해주려고 애쓴다. 아름다움의 요소로 시작해서 갖가지 통계자료,실험자료등등, 또한 동물과 인간의 차이, 소소하게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자들이 잘 웃지 않는다는 점까지 들어서 말이다. 터부시되는 문제를 잘 끄집어내서 설명해주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내용들이 들쑥날쑥해서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은직후 난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이론들의 난립들로 인해 머리속이 정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결론은 하나이다.
아름다운 것이 결국은 좋고 생존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