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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날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풍습과 의례들이 사실은 조선후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 한국 사회의 원형이 조선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는 고려를 계승 발전한 모습이 여러곳에서 보인다. 극단적으로는 조선왕조의 기원은 고려라는 주장까지 있다.
존 B.던컨의 주장처럼 조선왕조의 지배층과 제도가 고려와 긴밀한 연속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1392년 조선왕조의 개창이라는 왕조교체는 혁명이라기 보다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수립하려는 10세기부터의 노력이 400년만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라고 던컨은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는 왜 400년 동안 수립되지 못했을까? 중세의 특징인가? 고려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간다. 한반도에는 두 번의 통일 정권이 있었다 한번은 신라 그리고 다른 하나가 고려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물리적 통합이었을 뿐, 통합 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 화학적 통합은 없었다. 이에 비해 고려는 지방사회의 극심한 세력갈등을 극복하고 통합국가를 이루어냈으며 또 그에 걸맞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고려통일의 비결이며 고려왕조 운영의 원리는 다원주의였던 것이다. 중세 유럽에 비견 될만큼 강한 지방자치를 실시하였다. 고려시대는 아직 농업생산량이 원시적인 수준이었고 휴한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사회 경제적인 생산력의 수준 차이가 지방에 따라 심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현, 속현, 향,소, 부곡이라는 고려 특유의 복잡한 군현제가 탄생하였다. 이와 함께 지방세력을 통해 민의 유망을 막고 지방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본관제라는 사회제도가 탄생하였으며 전시과등 고려 특유의 어쩌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조세제도까지 운영되었다. 고려창업과 운영의 비결은 다원주의였다. 다른 것을 다르게 통치한다. 하지만 잘 나갈때는 모든 것이 잘 운영되지만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모든 장점이 단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고려왕조의 창업을 이끌었고 성공하게 만든 900~1200년까지의 중세온난기동안 고려는 엄청난 생산력의 향상을 가져왔다. 생산력의 향상을 국가 발전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군현제, 본관제, 전시과에서 개혁이 필요했으나 고려 정부는 현실을 모른채 불합리한 수취와 토지점탈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하여 12세기 부터 이어진 민의 유망은 계속 이어졌고 이자겸.묘청의 난과 무신정변으로 지배층 내부의 분열이 폭발하게 된다. 개혁에 실패하고 이어지는 거란,여진,몽고와의 복잡한 대외관계속에 고려는 재기를 못하고 왕조의 교체를 당한다. 12세기 이후 생산력의 발전으로 민이 정치적 경제적인 주체로 자각하면서부터, 기존의 지배질서에 대한 불만이 유망과 항쟁이라는 밑으로부터의 동요와 변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배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위기이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은 그런 위기의식에 대한 지배층의 자기분열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국 민의 불만과 요구를 지배층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결과 유망과 항쟁, 그리고 무신정변 등이 일어 나면서사회는 커다란 변동의 와중에 놓이게 된다. 박종기 교수의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는 이런 고려의 다원주의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고려에 대한 다정 다감한 시선을 계속 유지하며 고려사를 기술한다. * 1 2013년의 대한민국도 고려시대 처럼 급증한 생산력의 발전이 어둡게 흘러 가는 것이 아닐까? 생산력의 증가를 수취의 증가로 이끈 고려처럼 경제는 발전하는데 비정규직은 늘어가는 어두운 대한민국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이끌어야 한다. *2 고려사 대중서는 의외로 드물다. 유럽중세에 대한 책이 더 많아 보일 정도다. *3 900~1300년에 걸쳐서 일어난 중세온난기와 고려의 맥이 일치하는 것을 보면 기후가 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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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높이기 위해 너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것 저것에 뜯어고치는 경향이 있다. 현정부는 과거정부를 부정하고 같은 방식으로 현정부는 미래정부에의해 부정될 것이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자기편을 심어 훗날을 보장 받으려는 이유다. 조선 역시 고려를 밟고 일어서야 했기에 고려 500년의 역사는 철저히 부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오늘날 고려에 대한 우리의 역사관은 조선의 그것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최근의 드라마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등을 통해서 접하는 여말선초의 분위기를 500년 고려왕조의 전부처럼 일반화하게 되는 것도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보다는 고려가 현대사회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양이 중세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를 맞았다면, 고려와 조선은 반대였다. 지방 호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팔관회'를 대표로 하는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꽃피웠던 고려에 비해 조선은 중세 암흑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성리학' 하나로 일원화, 절대화된 사회였으니, 다양한 문화의 싹은 틔울 수가 없었다. 이는 다양성과 단일성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현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맞물려있다. 특정 역사관이 자기들 구미에 맞지 않는다하여 역사적 시각이 왜곡됐다느니, 패배주의를 심어준다느니,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다양성을 제한하려는 그들의 태도는 반드시 다양성의 사회에 사는 현명한 국민의 힘으로 저지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한 것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그들의 필요성이 권력을 만나 전제주의화하고 있다. 전제(專制): 1. 다른 사람의 의사는 존중하지 않고 제 생각대로만 일을 결정함. 2. 국가의 권력을 개인이 장악하고 그 개인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함. -출판사 리뷰 중에서- 저자는 500년 고려사를 평이하게 서술하면서도 고려사 전문 연구자라는 저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최근의 고려사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하였다. 그 특징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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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쓴 500년 고려사'는 고려의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는 책이랍니다. 사실 조선사를 연구하거나 조선시대사를 다룬 책들은 많이 출간되어 있는데 고려사는 조선사에 비해서 좀 적은 편이랍니다. '새로 쓴 500년 고려사'를 통해서 고려와 고려사에 좀 더 관심을 갖을 수 있기를 바래요. 탄탄한 구성이 마음에 들고 글도 술술 잘 읽혀지는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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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이 책은 교과서에서 다루는 고려사의 기본적인 틀 위에, 한 단계 더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다. 특히 고려 왕족의 근친혼 이유, 본관제가 형성된 배경, 그리고 실리적인 외교 노선을 취했던 고려의 대외정책 등을 통해 고려라는 나라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과 달리 고려는 자국에서 편찬한 실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관련 콘텐츠나 연구자료를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고려사의 심화 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점이 매우 뜻깊었다. 또한 저자인 교수님은 일본의 식민사학자나 일부 한국 역사학자들의 해석과는 다른,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제시하여 고려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주었다. 2. 본론 (1) 고려의 건국과 지방세력의 역할 고려 건국은 왕건 개인의 힘이 아니라 지방세력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일리천 전투에서 전체 군사의 약 70%가 지방세력이었으며, 이를 통해 태조 왕건이 지방의 성주 및 장군 세력을 통합하여 왕조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는 지방세력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실질적 통일왕조로 평가된다. (2) 고려의 시기 구분 고려의 역사는 전기(제도 정착기), 중기(변동기), 후기(원 간섭기 및 개혁기)로 나뉜다. • 전기: 광종의 과거제 개혁, 성종의 관제 개편, 문종의 전제 개혁 등으로 고려적 질서 확립. • 중기: 무신정변, 민의 항쟁, 원과의 전쟁 등 내우외환으로 사회 모순이 심화. • 후기: 원의 간섭 속에서도 개혁 시도가 이어지며, 새로운 왕조로의 이행이 준비됨. (3) 근친혼과 외척정치 고려 왕실의 근친혼은 왕권을 유지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유교적 윤리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고, 국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지 않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왕실은 지방 유력세력과 혼인을 맺어 세력 기반을 다졌으며, 이후 왕족끼리의 혼인을 통해 권력을 내부적으로 고착화했다. 이후 외척 가문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왕실과 유력가문 간의 권력 균형이 고려 정치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4) 본관제의 형성과 의미 본관제는 중앙정부가 지방세력을 통제하고 지방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시행한 제도로, 지방세력에게 성씨와 본관을 하사함으로써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국가 지배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실용적인 제도였다. 이 제도는 조세 확보와 지방 통합에 기여했으며, 고려의 행정적 통합을 가능하게 했다. (5) 대외정책의 실리성 고려는 주변 강국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하며 실리 외교를 펼쳤다. 거란·여진·몽골 등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무조건적인 항쟁이나 굴복이 아닌, 현실적 이익을 고려한 유연한 외교를 유지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숙종과 예종의 신법 정책은 대외정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는 고려식 ‘부국강병책’으로 평가된다. (6) 민의 성장과 사회 변화 12세기 이후 생산력의 향상으로 민이 토지 소유자로 성장하면서 사회 하층민의 의식이 높아졌다. 그러나 왕조 정부가 여전히 부곡제 등 신분적 차별 제도를 유지하자, 불만이 커져 유망과 항쟁이 잇따랐다. 이러한 민의 움직임은 결국 무신정변과 사회 변동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고려 후기 새로운 사회 질서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3. 결론 이 책을 통해 고려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단순한 연표나 사건 중심이 아닌, ‘구조와 흐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왕권과 지방세력, 외교와 민의 관계처럼 서로 얽힌 고려 사회의 복합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교과서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구체적 사료와 해석을 바탕으로 고려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 역사를 볼 때도 단순한 흑백 논리가 아닌 다각적이고 실증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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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이라는 긴시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진정으로 그 나라의 실체를 파악을 하고 있고 어떠한 모습으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살았는지에 대하여서 알고 있는 과거의 나라는 바로 전의 나라인 조선만이 남아있는것이 현실인것 같고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 발해와 같은 경우에는 알고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황당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조선의 바로 앞에 위치를 하였고 원나라의 제후국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면서 무인시대를 시작을 한 고려에 대하여서도 알고 있는 부분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을 다시 한번더 알려주고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통일신라가 자신의 힘만으로 통일을 못하고 외세의 힘을 빌려서 통일을 하였다고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다른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신라의 잘못은 영토만의 통일이 아닌 사상과 문화의 통일을 이루어서 모두가 한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을 하고 영토만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아서 관리를 하였다는 사실이 후삼국이라는 내전기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신라의 입장으로 본다면 자국보다 강력한 국력을 자랑을 하였던 고구려나 아니면 자국과 비슷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더욱 수준이 높았던 백제의 유민들을 한나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자국의 정치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 필요하였고 그러한 일들을 할수가 있는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면 통일이 될것으로 생각을 하였다는 면이 있는 것을 통일이후에도 수도를 경주로 유지를 한것을 보면 알수가 있는것 같습니다. 신라의 망설임으로 인한 결정이 삼국의 통일이 영토만의 통일이 되었고 민심은 각자의 향방에 의하여서 나누어지게 되고 그러한 이반된 민심이 분란을 가지고 온것을 파악을 하고 있었던 고려는 자신들이 재통일을 한 나라의 문화적인 부분에 대하여서 각자의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면서도 각자의 고유문화를 인정을 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마음을 사람들의 생각에 깃들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개성을 간직을 하고 있는 호족들을 하나의 모습으로 유지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자의 구역을 지정을 하고 그 구역에서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수가 있게 만들어 가면서 각 지역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구역의 세분화와 함께 각지방의 비용을 각자가 가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을 하여서 처리를 할수가 있는 자율권을 주면서 중앙집권화가 되었던 조선과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랜 전란으로 인하여서 황페화된 나라의 토지와 각자의 유력지방세력의 연합이라는 초기의 한계도 중앙에서 모든것을 결정을 하고 집산을 하는 중앙화가 이루어지는데 방해를 하였고 그러한 방법이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시행을 하여서 토지를 경작을 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많이 일어나고 그러한 반란의 여파가 왕권의 약화를 가지고 오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수가 있습니다. 잊혀진 나라인 고려의 역사속에 등장을 하는 각분야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보고 왜 고려와 조선의 모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지와 고려인들은 무리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한 방법을 유지를 한 이유에 대하여서 보여주고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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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역사책으로 조금 특이하게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듯, 바로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서술로 고려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새 책이 얼마전 출간되었다. 그 책 역시 고려사를 담고있다. 고려사관련 도서는 조선사 도서에 비하여 정말 적고 귀하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은 당연히 더 귀하다. 그래서 이러한 책들이 좋다. 일반 독자들도 고려사에 한발 다가설 수 있게 친절히 쓰여졌다. 책도 그리 두껍지 않기에 부담없이 읽기 좋다. 고려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