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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를 보려고 극장이 있는 빌딩으로 들어섰다. 매표소는 4층. 마침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1층에 멈춰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니 빨리 올라가겠구나 싶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엄마야’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뿐인데, 내가 너무 놀라서 당황했었나 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분명 그도 놀랐을 텐데, 놀란 것보다는 미안해서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간 ‘왜?’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 했던 거다. 너무 놀란 나의 제스처가 그를 당황하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3층을 눌러달라고 했다. 그도 나처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건데 3층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로 문은 닫혔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냥 서 있었던 거다. 그가 앉은 상태로 보면, 팔이 그의 가슴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 그래서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 안에서 혼자 얼마나 애가 타고 있었을까. 보통 엘리베이터 안에는 층수 누르는 버튼이 문 쪽으로 세로로 만들어져 있고, 벽 쪽으로 안전 바와 나란히 가로로도 있어야 했는데, 왜 그런지 그 건물 엘리베이터는 층수 누르는 가로 버튼이 없었던 거다. 그냥 습관적으로 타고, 누르고, 내리곤 했던 터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건물 엘리베이터에 가로로 누르는 층수 버튼이 없다는 것을, 엘리베이터에는 가로로 누르는 층수 버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거기 엘리베이터가 2대 있었는데 한쪽에는 가로 버튼이 있었다. 그때 내가 탄 쪽 엘리베이터에 가로 버튼이 없었던 거였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3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그 몇 초 동안 나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는 무안함을 감추며 아니라고, 오히려 내가 너무 놀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있어서 당연히 안에 아무도 없을 거로 생각해서 놀랐다고, 괜찮으니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그가 전동 휠체어를 작동해서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가만히 누르고 있었다.
전에 어느 방송인이 자국의 장애인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서비스, 정부 정책 같은 걸 시행할 때 당사자인 장애인이 그 기획 단계에서부터 같이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무엇이 불편하고 필요한 것인지 피부로 직접 닿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에 그들의 참여가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겪은 그 몇 초의 경험에서 그 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다.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도 그 빌딩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엘리베이터였다고...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장애에 관한 책 몇 권을 일부러 찾아봤다. 쿠라모토 토모아키의 『보통이 뭔데?』는 나에게 그날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한울림스페셜의 '장애공감 1318' 시리즈 중 한권인 이 책은 시각장애인인 저자가 자라오면서, 일상을 지내면서 겪은 시선을 이야기한다. 내가 알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나 배려가 정작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그날 내가 봤던 일과 그로 인한 생각을 이 책이 그대로 말하고 있던 거다. '네가 그냥 생각하는 것과 직접 부딪혀서 알게 된 것은 이렇게 달라.' 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저자는 우리가 '보통'이라고 정한 기준에서 익숙한 것들이, 보통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 '그 보통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 보통의 전제가 처음부터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일부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생기기에 비장애인에게 치우친 보통의 개념이 장애인에게는 보통이 아닌 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반대로 장애인의 기준으로 '보통'이 이루어지면 비장애인은 보통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세상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보통의 의미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보통이란 기준이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보통'을 실현하면서 '공생'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너무 당연하고.
저자의 경험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상대를 배려한다고 했던 게 오히려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인 쿠라모토 토모아키는 시각장애인이다. 약시에서 전맹으로 진행된 경우다. 어렸을 적 그가 약시였을 때, 친구들과 야구를 했던 기억은 즐거웠지만 '참여'한다는 의미를 상실한 놀이였다. 약시인 그를 배려하며 진행된 야구,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친구들은 야구의 규정을 약간 변형했다. 그에게 공이 날아들 확률이 적은 자리로 수비를 배치해주었고, 그의 자리로 공이 날아오면 옆의 수비수가 대신 공을 받아주곤 했다. 타자로 그가 마운드에 섰을 때는 투수가 가까운 거리로 와서 공을 던져주었다. 친구들은 같이 하기 위해 그에게 이런 배려를 한 것이지만, 그에게는 참여의 의미가 상실된 야구였을 뿐이다. 어른이 된 그가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들은 맹인용 지팡이를 짚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는 지하철 안에서 잘 안 보이는 통로를 걸어 서 있을 자리가 필요했던 건데,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을 취했던 거다. 그가 말하길,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아니니 굳이 자리 양보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선로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몸이 다치게 된다. 이때 생각할 건, 사람들의 구조정신이 아니라 지하철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스크린도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하철의 스크린도어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필요한 안전장치가 아니겠는가.) 건물의 문턱을 없애 휠체어가 잘 다닐 수 있게,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등 배리어 프리가 많이 적용되어 있지만 아직도 그 공생에 가까이 왔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싶다.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숨기거나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것이 비교적 쉬운 때문인지, 경도인 사람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숨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중도장애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장애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리겠지만 장애가 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조금이라도 비장애인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요. (82페이지)
시각장애인만 놓고 보면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또 청각장애인이라면 조금은 들리는 사람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장애가 심하면 더 힘들고 심하지 않을수록 덜 힘들다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장애가 심하지 않다고 해서 어려움도 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경도장애인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 받기 어렵거니와 어중간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무리를 해야 해서 오히려 중도장애인보다 더 힘든 점이 있습니다. (99~100페이지)
특히 저자의 이야기에서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경도장애와 중도장애의 차이에 관해서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경도', '중도' 장애라고 부른다. 장애의 정도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차이로 장애의 정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한데다,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오해가 경도장애가 중도장애보다 불편함이 '덜' 할 거라는 거다. 저자의 경우 약시보다 전맹이 더 심한 장애라는 오해에 대해 말한다. 내 생각도 그랬다. 희미하지만 약간 보이는 것과 아주 안 보이는 것 중에서 약시가 덜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신체의 장애를 겪지 않은 나의 착각이었다. '덜' 불편한 것과 '더' 불편한 것의 차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약시일 때의 불편함, 전맹일 때의 불편함이 서로 다른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내가 장애에 대해 알고 있던 약간의 이론마저 온전히 알지 못했던 거다. 내 머릿속에 있던 장애에 대한 지식을 다 지우고 다시 새겨 넣어야 하는 거였다.
‘이럴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 ‘이렇다’라고 이론으로만 들어왔던 것은 ‘이렇구나!’라고 실제 부딪히면서 알게 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의 몇 초가 나에게 얼마나 귀한 경험을 허락했는지 알겠다. 실제의 경험과 생각, 시선이 만들어내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됐던 거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경험일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경험은 아닐 터.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무심한 시선을 가진 나에게 일부러 찾아와준, 두 번 만나기는 어려운 아주 특별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타인에 대해, 세상을 향해 관심 좀 두라고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보통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시선을 알게 하고, 공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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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정의로 보면 <보통>이란 '특별하지 않고 예사롭거나 일반적인 것'을 뜻합니다. 흔히 '흔한 것'을 지칭할 때 이 <보통>이라는 말을 쓰는데 너무 흔하게 쓰다 보니 잘못 쓰일 때도 흔합니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섣불리 나서거나 튀는 행동을 삼갈 때 곧잘 쓰이는 속담인데, 모둠에서 눈엣가시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할 때에도 자주 쓰이는 속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일반화되어서 외모나 성격 등이 남다를 때에도 무리가 남다른 한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힐 때에 이런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할 때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넌 <특별하다>니, <보통>이 아니니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곤 합니다.
과연 두손두발 모두 멀쩡해야만 <보통>인 걸까요? 두눈이 멀쩡히 보여야만,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을 수 있어야만 <보통>이고 <정상>인 걸까요? 더 나아가 피부색이 <한국인의 색>이어야만 <보통>인 걸까요?
우리 사회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못합니다.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불쌍하다거나, 그러니까 <무조건> 도와줘야 하고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할 <불편한 존재>로 찜해두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나도 그런 면에서는 <지적이며 교양 있는 체하는 편견 가득한 외눈박이 장애인>에 불과했다.
우리는 얼마든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찰나에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구던 간에 얼마든지 <후천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장애인>의 처지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편한 사회일 수도 있다는 것에 정말정말 무관심하다. 잠시라도 눈을 가리고 거리를 누벼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요즘 전동휠체어가 많이 나오니 한 번쯤 타고서 지하철이고 백화점이고 누벼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소수자라서 아직 사회적 배려를 해주는데 미흡한 것이라면 개선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채로는 진정한 해결이라고 할 수 없다. 여전히 그들을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며 격리시키나 소외시킬 대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을 위한 <실버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진정 노인을 위한 해결책인지 곱씹어 보면 알 일이다. 노인들을 <격리>시키는 것 아닌가? <소외>시키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진정 노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노인들의 관점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속시원히 풀어주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늙었을 때 고이고이 격리되고 소외될 것이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므로 사람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재능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특정한 기준>으로 누리는 사람과 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눠선 안 될 일이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어야 진짜 <사람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은 그럴 때에만 쓸 수 있는 <특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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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달 들어와서 4번째 장애인관련추천도서는 바로 보통이뭔데? 라는 일본 시각장애인 이 쓴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장애인 어떤 교훈과 내용을 담고 있을까? 다른 여러가지의 교훈을 줄 수 있는 대목이 있었으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행동과 마음을 들 수 있다. 즉,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이나 장애인이 지나가면 어떤 도움을 주고 싶어서 옆에 친절하게 다가오는 분들과 장애인 친구들의 행동은 다르다는 것이다. 장난을 치더라도 도움을 받을 때도 이야기를 하더라도 게임을 하더라도 친구의 행동과 아무리 전문 자원봉사자라고 할지라도 100%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기에 어떨 때는 고맙고 감사하지만, 어떨 때는 불편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시각장애인인데 지체, 청각, 언어, 뇌변병, 등 여러가지 장애유형들마다 특성이 있고, 아무리 도와주는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 장애유형에 따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짱구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짱구를 예를 들면 먼저 친구들 물론 경증장애인이기는 하지만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성대묘사라던지 목소리로 누구를 따라하는 행위같은 것을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이유는 하나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앞에서 성대묘사를 하면 놀림밖에는 더 되겠는가? 라는 생각이며,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선도 일반인에 비해 다르다. 친구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서 장애인이 지나가면 물론 일부러 어떻게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시선이 동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 책 제목에서처럼 시각장애인 이렇게 해야하고, 청각장애인은 저렇게 해야 하며, 지체장애인 요렇게 해야 한다는 것 대부분이라는 용어를 쓸 수는 있겠지만, 100% 전부 그것을 그렇게 도와달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 즉,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것에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는 것~~~ 짱구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장애에 대한 생각 인식을 바꾸고 또한 장애인들도 내가 장애가 있어서~~~~ 이제는 바꾸자 노력하자~~ 남들이 1번만에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 우리는 2~3번 아니 10번이라도 해서 통과하면 되지 않을까? 남한테만 요구하지 말고 우리부터 노력한 후에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기도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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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 뭔데: 한 장애인이 청소년에게 묻는다] (쿠라모토 토모아키, 2006; 한울림 스페셜) . 장애 영역에 따른 장애인의 특성만을 일반화시켜 바라보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이며, 마주 봐야 할 것은 '장애'가 아닌 바로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보통"이라는 기준으로 일반화시켜 비장애인을 규정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장애인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장애가 있는 개인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도경만: 당진도금초등학교 특수학급교사,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 1. 놀이의 변화, 관계맺는 방식의 변화로 장애는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 나는 지금은 한쪽 눈만 희미한 빛을 겨우 알아볼 정도로 거의 눈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하얀 지팡이 없이도 다니고 자전거도 탈 만큼은 보였다. 친구들과 깡통차기를 하거나 비밀기지 만들기를 할 만큼은 문제없었다. 가끔 깡통차기를 할 때 목표물이 잘 보이지 않아 헛발질을 한 적도 꽤 있다. 하지만 장애가 없는, 이른바 "보통" 아이들 가운데에도 행동이 서툰 아이도 있고, 실수를 하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장애가 특별히 안 좋다고 느낄 기회가 없었다. 그 때까지 나에게 장애는 키가 큰 사람이 있는 한편 작은 사람도 있고, 발이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린 사람도 있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장애 때문에 손해를 본다거나 괴롭다고 느낀 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 영향을 끼칠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놀이에서 영웅은 될 수 없었지만 함께 어울려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 그러나 ... 야구가 주된 놀이로 자리 잡으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야구공은 작고, 사람들의 움직은 빨라졌고, 더 멀어졌다. 야구라는 놀이가 등장하면서, 나는 내가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 내 몸이 "보통"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뚜렷이 의식하게 되었다. 놀이가 변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장애는 갑자기 심각한 문제로 바뀌어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2.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다. . 친구들은 나를 배려해서 경기규칙도 바꾸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경기진행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 친구들의 배려를 고맙게 느끼면서도 바뀐 규칙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거기에 누군가가 "공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성공담으로 미화한다면 힘이 빠질 것이다. . 공유는 공생과 다르다. 공생이란, 서로 다르며 때로 함께 하기 어려움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투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등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함께 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간과 공간의 공유(거기에 있음)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는 "참여"가 있어야 진정한 만족을 누리는 공생이다. . 목표하는 것과 실제로 이루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훌륭한 공생의 예로 보여도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 듣기 좋은 소리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고, 혹시 실망스럽거나 희망이 안 보인다 해도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3.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한다고 해도 승강장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위험이 승강장에는 도사리고 있다. 점자블럭, 승강장 끝의 보호대, 스크린도어 설치 등 국가/사회의 노력,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 . '배리어 프리' : 사람들이 이동하거나 어떤 시설을 이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벽(장애물) 없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4. 장애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동등의 대상이길 원한다. . 장애인에 대한 안전대책이 늦게 마련되는가 = 사회는 장애인이 이용할 것은 고려하지 않고 시설을 만드는가 . 보이지 않아서 넘어지고, 다리가 불편해서 걸을 수 없으니 점자블록을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에는 '장애가 있으니까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장애(보통이 아닌 것)가 문제의 원인이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 규정은 상대적이다. 이동에 불편하지 않게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면, 지체장애인과 일반인과는 대등한 관계가 되는 것ㅇ디ㅏ. 5. 중증장애인만 힘든 게 아니라 경도장애도 힘들다. 알려져 있지 않아서, 필요한 대책마련에 소홀하고 덜 불편해 할거라고 미뤄져서 불편하고 성가시다. .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모두가 수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이해를 받지 못하면, 필요한 정책을 세우거나 사회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맹을 위한 점자 표시가 붙은 발매기는 꽤 많이 보급될 무렵, 약시를 위한 쉬운 글자색이나 크기, 글자를 비추는 불빛 들을 고려한 발매기는 없었다). . 약시를 위한 대책이 없다고, 전맹을 위한 대책에 맞추기 위해 점자를 배워야 하는가... 취미로 큰 옷을 입는 것은 자유이나, 그 사이즈 밖에 없으니 몸을 옷에 맞추라고 한다면 말이 되는가... 6. 그러나 보통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경도장애인 . 스스로 자신의 장애에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어 '보기 흉하다, 창피하다'고 느끼는 것도 한 몫하고 . 장애라는 선입견을 피하고 싶은 것도 한 몫한다. . 경도장애인은 중도장애인에 비하면 몸 상태가 비장애인에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쓰면 때로는 비장애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무리하면 문제가 쉽게 생긴다. 초등학생이 프로야구 선수를 위한 훈련지침을 따라 하면 무리가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중도장애인은 이런 무리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도장애인은 그 무리라는 걸 하기가 쉽다. 7.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 점자보급이 중요한 일이긴 하나, 시각장애인이 겪는 글자와 관련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할 필요는 없다. .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장애인에 대해서는 그냥 한 덩어리로 취급하고 마치 그것이 가능한 듯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 어쩐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속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무엇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해 두루두루 아는 것은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나는 상대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을 잘 모를 때는 상대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일 수 있다. 귀를 잘 기울이다보면 모르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도움이라고 해도 이것을 이해하고 돕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 상대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도움을 받을 때 가장 힘든 건, 도움 주는 사람이 서툴 때 있는 게 아니라, 그런대로 잘하지만 자기 방식만이 옳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 믿음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 제일 힘들다. 8. 쓸데없는 배려는 필요없다. . 사전 지식이 있으면 편리하다. 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 틀림없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장애인은 약한 존재, 상처 잘 입는 존재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장애인은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이전에,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식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챌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나, 언제나 틀림없는 답을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을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장애유형별 특성에 대한 지식으로 시작된다면 필경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않고.... 뭔가 허전한 느낌에 문득문득 빠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 갖는 게 서툴기 때문에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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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장애인연맹 제주DPI의 해피로그 |
현대 사회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 자체를 '공존'이라고 한다. 즉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바람직하게 보인다면 공존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야구가 유행하면서 약시인 자신과 함께 놀기 위해 규칙을 새로 정하며 같이 어울리게 되었지만 단순히 게임 속에 서있는 그대로인 존재로만 참가할 수밖에 없어 즐거움보다는 지루함을 느끼곤 하면서 공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공존을 배려의 대상자의 느낌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현대에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보다는 인식 자체가 미흡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철도 승장강에서 떨어진 경험에서 자신조차 떨어질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며 시각 장애인에게 주는 주의가 적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실제 대상자가 아닌 이들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희박해 다른 이들엔 대해 생각해본 전적이 없어 부족한 듯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불편함, 즉 장애는 상대적인 기준인 '보통'에 의해 고려가 된다. 만약 날개가 있는 사람들의 나라로 간다면 우리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해지며 본래 나라에서는 비장애인이었던 대상이 장애인이 된다.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로는 시설도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도 있다. 이 시선으로 장애인을 일반화하는 등의 행위는 비장애인처럼 행동하는 장애인의 수를 증가시킨다. 또한, 대상자의 외향만을 보고 배려를 행하는 것은 '장애인에게는 배려해야 합니다.'와 같은 문구에 세뇌당한 것과 같다. 야근을 하며 피곤해 보이는 이들이 보일 때보다 단순히 시각장애인으로 보일 때, 양보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이며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상대해야 한다.
작가님의 친구들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롭게 규칙을 선정하며 야구를 하며 '공존'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외면적인 모습이며 실제로는 배려의 대상인 작가님은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는 구문에서 배려 받는 이들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과와 바나나는 같은 과일에 속하지만 먹는 방식부터 작물 생산까지 여러 분야가 다르다. 이처럼 같은 종류의 장애를 지니고 있으면서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크기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필요로 하지만 누군가는 안경이 필요한 것과 같이 다름은 자연스러우니 각 개인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비장애인인 나는 장애인이 이러한 배려를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마 체험을 통한 일시적인 공감만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작성한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이 진실로 장애인에 대해 무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장애를 가지게 되는 요인은 후천적인 사고 등으로 유발되어 항상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시설이나 인식을 조정해야 한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비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것이다. 장애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은 비장애인이 대부분이다. 증상이나 어려움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해 이러한 기준을 정한다. 이 저자는 이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것 외에도 후천적 장애 습득자는 정도와 상관 없이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진실이다. 그렇다면 적응하고 생활할 수 있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과 대화하거나 관련 생활을 학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나는 이를 개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수화나 점자를 학습해 그들 대화하고 생활을 개선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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