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추리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첫째로는 역사적 진실 혹은 정설로 굳게 믿고 있던 사실이 붕괴되면서 전혀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것을 보는 데서 유쾌함 혹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역사에 관한 지식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빈치 코드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에는 첫번째 이유가 컸을 테고,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수많은 역사(추리) 소설이 두번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 작가의 쿰란을 읽었을 때에도 위의 두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다빈치코드도 나오기 훨씬 전이었는데, 예수의 죽음에 관련된 비밀 대목에서 어찌나 속으로 감탄에 감탄을 했었던지...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그럴 법해. 어쩐지... 유대교나 기독교와 전혀 상관 없는 나였기에 이렇게 소박한 감탄사를 마음껏 날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 진위 여부야 어찌되었든, 유태인 그것도 '초정통' 유태 젊은이가 살아가는 방식에 또 한번 큰 인상을 받았다. 20세기 말에도 전통을 오롯이 고수하며 신만을 위하여 삶을 성스러운 영역으로 유지하는 그들.
이 작가의 후속작이 나왔다고 해서 기억도 희미한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상기해봤다. 일곱방울의 피는 쿰란의 적자라 할 만했다. 같은 주인공들이 역시 쿰란 두루마리를 둘러싼 비밀스런 사건에 휘말린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발생한 사건이 태곳적부터 있던 유태교 신념과 결합하여 장장 이천년을 이어져오며 그 갈등이 현대에 폭발한다. 21세기에 고대 종교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 고대 문헌을 읽고 고대 글자에서 영감을 얻으며 고대인의 의지를 영속시켜 그 끝을 보고 말리라는 불멸의 의지, 결국 최후의 투쟁이 일어나고, 그 오래 묵은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한편의 거대한 신화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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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치 영화 <인디아니 존스>나 <툼레이더> 같은 추리 영화를 보는 듯했다. 어쩌면 다른 고대 유물 발굴 작업과 관련 있는 영화를 더 닮았을 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그런 영화를 보지 못해 더 비슷한 비교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만큼 두꺼운 책이지만 마치 영상물을 보듯이 뛰어난 비주얼적인 작품이었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전작 <쿰란>과 <마지막 부족>의 시리즈물 격으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전작을 못 읽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거꾸로 이제 <쿰란>을 읽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대 유물 작업 도중에 작업을 주도하던 교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비밀경찰은 동굴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필사생 아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은둔생활을 하는 백 여명의 에세네인들의 메시아로 지칭된 아리는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살인 현장에 있었던 일곱 방울의 피는 고대에서 소를 제물로 바치던 제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유물 발굴을 하던 교수가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아리는 조사 첫 단계에서 발굴단에 있던 제인을 재회한다. 아리는 사람들 얼굴에서 주름살에 비쳐드는 글자를 해독하는 신비한 능력을 우리에게 드러내는 동시에 2년 전에 <쿰란> 사건 이후 떠났던 제인을 보면서 다시 혼란을 느낀다. 신의 부름, 한 부족을 위한 메시아, 사건을 해결하려고 고대 두루마리를 해석하는 고대학자 그리고 민간인에 대한 사랑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아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신비한 제식, 또 다른 살인 그리고 도망과 추적 등 긴박하게 돌아간다. 또한 살해당한 교수가 마지막으로 손에 넣었던 은 두루마리를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는 고대 시대로 돌아간 듯 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흥미롭다.
‘그 어느 때보다 고독하게, 더없이 깊은 절망 속에서,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서 있었다. 유다 사막, 쿰란이라 불리는 장소, 사해 가까이의 그곳을 향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조마조마했지만 아리가 읽어 내려가던 은 두루마리의 내용은 그에 못지않게 긴박했다. 종교가 뭐고, 부족이 뭐고, 왕과 교황 그리고 그를 둘러싼 기사단이 다 뭔지… 또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반전 아닌 반전…
‘그의 가슴속에 기독교 교회에 대해 한 치의 증오도 없는지, 그가 십자가를 사랑했는지 마지막으로 고위 성직자들이 물었다,
너무 신비감을 강조하려다 보니 사랑의 감정을 얘기할 때, 너무 순수한 열정 그리고 그에 따른 고민과 혼란 등에 대해 일말의 거부감이 일었지만 기독교의 수많은 분파, 말로만 듣던 바리새인이니 사두개인이니, 많은 부분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고대 유적을 찾아가는, 최근의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
옛날 에세네파라는 정통주의 유대 분파가 있었고,
이 소설은 이 보물지도의 궁금증을 파헤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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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말을 했었던가.. 나는 일곱방울의 피를 읽으면서 왠지 자꾸만 아는 만큼만 읽게 된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문화와 종교적 전통, 신학사상 등등등 전반적인 서양의 역사인식이 없다면 이야기의 흐름보다도 낯선 용어와 종교의식을 이해하기에 급급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기에 그렇다. 한때 인디아나 존스가 유행했었고 그와 비슷한 툼레이더나 미이라같은 고대유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영화가 많이 나오고 나는 그저 신나게 즐기며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되었었다. 사실 아주 자그마한 고고학적인 가치를 지닌 유물이라거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는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실과 진실은 무엇인지 생각해본적은 없던 것 같다. 일곱방울의 피에서 아베카시스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초대교회공동체와는 또 다르게 수도공동체처럼 살았던 에세네파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이미 수십년전에 발견되었고, 공동체이면서도 철저히 개인의 사적명상을 추구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교리교육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이단시되고 있는 프리메이슨이나 성전 기사단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역사까지 대강 알 수 있었던 것은 성서와 교리신학을 조금 공부하였기때문이지만 그러한 나도 이 책이 쉽지만은 않았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고고학적인 지식을 덧붙여 쓴 소설일뿐이라고 한다면 그리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 책은 살인범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책이 아니기때문에 조금은 깊이 생각하며 읽어볼수도 있겠다. 전작인 쿰란을 읽지 못했기에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에세네인들의 메시아로 등장하는 아리 코헨의 상징은 무엇인지, 예수가 사랑했던 제자 요한에 빗대어 아리 코헨이 제인을 사랑한다는 설정 등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성전재건'에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소설을 읽고 신학적인 의구심을 늘어놓을수는 없잖은가. 그저 나는 아는만큼만 읽고 생각할뿐이다. 물론 종교적인 신학적 고찰은 일단 제껴두고 저자의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쓴 역사 추리소설을 그저 즐긴다해도 일곱방울의 피는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제단에 목이 베어 손발이 묶인 상태로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고 있으니,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예수 이래 너무 많은 폭력과 살인이 일어났어요. 신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부당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구요. 에릭슨이 제단에 묶여 죽은 것을 보고 이건 부당한 짓이라는 걸, 진실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이해하겠어요? 이 모든 건 그저 인간들의 역사, 전쟁의 역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속에 신의 존재 같은 건 없다는 것을 난 깨달았어요." "신은 개입하지 않아요. 하지만 신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소. 신은 심지어 당신의 반항 속에도 존재하지요. 그걸 이해해요?" (85) 아는만큼 읽는다는 말이 점점 절실해지고 있다. |
'일곱 방울의 피'는 전작 '쿰란'에 이어지는 삼부작의 중 한 편이다. 1996년 쿰란에서 사라진 사해 문서를 찾아 떠나면서 기독교의 기원과 그들이 말하는 진짜 예수님의 모습을 신선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의 연장인 작품인 것이다.
에세네인파인들은 속세를 떠나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비밀종파의 일원이다. 쿰란 동굴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소명을 다해 메시아를 기다리며 신성한 성소에서 성전을 재건할 메시아로 주인공인 필사생 아리를 지명하게 된다. 그러던 중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에세네인파의 비밀 의식대로 행해진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진실을 찾아 필사생 아리는 2년 전부터 마음을 다해 사랑해오던 그녀 제인을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성전 기사단의 보물이 적혀있는 은 두루마리를 찾기 위한 에세네인파, 프리메이슨, 성전 기사단의 부탁으로 성전보물을 보관했던 하산 이븐 사바흐의 후손인 암살자들과의 관계는 복잡해지면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된다. 은 두루마리 기록에 의해 밝혀지는 성전 기사단의 원래 임무와 여러 종파가 혼재되어 있는 이야기는 한시도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방대한 역사기록이며 그들의 과거의 기록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일곱 방울의 피'는 쉽사리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방대한 종교적 지식과 주인공 필사생 아리의 인간적인 고뇌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작품이다. |
'쿰란'과 '황금과 재'의 작가 엘레에트 아베카시스의 새로운 소설... 사실 이미 알려진대로 저명한 유대학자를 아버지로 둔 유대인 작가이기에 그녀의 책에는 그런 유대주의의 영향이 깊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역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 하고... 개인적으로 유대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기에 이런 유대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지만, 지나치게 그쪽으로 치우친 내용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