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종교인들에게 무척 도발적일 이 책은 발간 후 얼마가지 않아 개신교 집단의 반발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절판되었다. 더욱이 이 책의 내용을 반박할 합리적인 논거나 이 책에서 제시한 것들에 상응하는 상세한 텍스트 없이 눈 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책을 헐뜯기에 바빴다. 진정 이 책의 내용에 잘못이 있고 이 책이 낮은 수준의 것이라고 폄훼할 것이라면 그 것을 입증할 제대로 된 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이미 20년이 넘게 예수를 접해온 나에게 있어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역사적 예수가 죽어서 당신의 신앙이 죽는다면, 당신은 애초에 교인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대체 이 책이 왜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없이 개신교 집단의 반발을 받아야 했고, 결국은 절판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이것이 우리 한국 기독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뿐이다. 단일교회 최대 규모의 교회가 있는 한국, 교권 세습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는 한국, 수도권에만 교회가 밀집되있는 한국 기독교. 과연 실제 비난 받고 절판 되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
| 참 무지한 상태의 용감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던 이론을 새삼스래 새 것인 것처럼 들고 나왔다. 문제는 기본적인 기독교 신학 정도의 지식으로 중심이 아닌, 주변 자료를 가지고 주장하기에 문제이다. 그리고 정통과 주류 기독교 신학자들이 아닌, 아류와 퀘이커 같은 신비주의 입장이 마치 기독교의 입장인 것처럼 오해될 서평을 늘어 놓았다. 적어도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타종교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부족하지만 본인도 일반 국립종합대학 철학과를 마친 후, 정식으로 교육부 인정 신학박사 과정까지 마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몰상식하게 본적은 없다. 또 지난 학기도 장신대에서 "기독교와 동양사상"을 강의한 바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서평이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서술되었기에, 불교식의 마음 자세 운운과 신앙의 정신이 형식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흘렀다. 이런 종교 다원주의 사상이 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서구에서는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인간의 죄악성과 한계성을 보고 낙관적 인간관을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책보다는 더 학술적인 불트만의 "요한복음 연구"같은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지주의는 육체와 영혼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역사성은 2000년 기독교사에서 살아있는 순교자들과 신학자들의 사상과 삶에서 증명되기에 이 책을 보는 낭비적인 시간에 차라리 종교학 공부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기독교는 초월성과 역사성, 계시성과 윤리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
| 이 책을 처음봤을때 이거 또 기독교 욕하는 책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문에 산 것이기도 하지만. 대충 훑어볼때 까지도 그저 이것저것 근거를 들이댄 기독교 비판 이라고만 알았다. 하지만 제대로 읽었을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가질 계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주제는 예수의 실존성 이라기 보단 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어야 진정 믿음을 가지고 깨닫게 되는가 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동양의 유,불,도 에 비하여 서양의 가톨릭(기독교는 그 후에 분파된 것이므로 언급하지 않겠다.)은 이론이 빈약하고 신 이라는 것을 내세워 무조건 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경향이 많다. 나는 예전부터 이것을 생각해 왔지만 내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었고, 그저 문화상대성의 관점에서 서양종교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성경말씀만이 진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따끔한 충고를 하고는 했다. <인간이 쓴 책, 그것도 여러번 번역되면서 본래 내용과는 다른점이 많은 것을 어떻게 신의 진리라 하는지 참 의문이군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과거 그러니까 제 멋대로 왜곡되기 이전의 그리스도교는 동양의 사상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은.. 그리고 어떤 면에선 비슷하기까지 한 고차원의 이론을 갖춘 종교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은 대중들은 감히 신의말씀에 이유를 붙이려 한다고 했겠지만 말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예수가 실존했던 실존하지 않았던 중요하지는 않다. 그가 실존했다면 하느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셔서 살아가셨다는 것에 대한 존경 기쁨이 있고 그가 실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말은 비록 왜곡되기는 했으나 남아있지 않은가? 종교는 사람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 때 중요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지식이 없는 믿음은 광신으로 갈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왜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광신의 성향을 띨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은 수 천년전에 살았던 한 사람을 우상화 하여 종교를 믿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펼쳤던 이론이 마음에 들어 이 종교를 믿는 것인가.. |
| 하도 논란이 되길래 한번 사서 일독을 했습니다. 흥미로왔지만 인문학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서 여기에 소감을 쓰려 합니다. 인문학의 한계라면 그것은 아마도 전제가 결론을 이끈다는 점일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문제에 있어서 두가지 지류가 있는데, 한가지는 에비오니즘에 입각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의 존재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에 입각한 예수연구로 예수는 원래 인간이었으나, 신화가 덧붙여져 신적인 인간, 나아가서는 하나님으로 되었다는 결론의 연구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책은 그러한 것과 오히려 정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신화속의 예수를 인간처럼 만든 것이 기독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케티즘인데, 19세기의 역사적예수연구는 에비오니즘에 입각한 연구로, 역사실증주의적 연구입니다. 즉 인간예수에 대한 연구입니다. 즉 도덕적인 성인, 착한 사람으로서의 예수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정 반대로 인간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수를 연구했다는 점, 즉 인간예수를 연구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 자신의 신념으로도 인간예수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때에는 역사적 예수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를 만날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 만날 수 있고, 그를 만난 사람은 사실 진정한 구원에 이른 이가 없습니다. 오로지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사람, 즉 역사를 초월한 예수, 즉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수 미스테리아를 체험한 자만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예수전기를 많이 읽어봐야 구원은 먼 것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예수를 말하는 자들을 정죄하던 이들이 지금은 인간예수를 말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쓴 리뷰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버릇을 가졌다고 할까...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서 신대원 입시생이 시간을 쪼개서 읽는데, 여러분들은 제목만 보고 흥분해서 마음대로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도 논리상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문제점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이 책 뒷부분에 곽노순 목사님이 지적해 놓았고, 저는 단지 이 책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이 글을 쓴 것 뿐이니까요... |
|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의견과 설이 분분하다. 기존 음모론적인 전승과 전설을 미스테리풍으로 소설화한 다빈치코드?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다. 예수는신화다에 서도 그간 많은 설이 있었던 예수에관한 이야기이다. 주된 내용은 고대 오시리스-니오니소스 미스테리아 신앙의 유대버전으로 만들어진 예수의 전설이 그후 문자주의자들에 의해 전설이 역사가 되었고 본래 기독교신앙이었던 그노시스주의가 몰락하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최근 연구결과가반영되기 전의 저서라서 지금와서 보면 저자의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들이 많이 있고 예수의 역사성은 어느정도 뒷반침되는 증거가 많이 있어서 저서의 신화설은 빛바랜 주장이나 문자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그노시스주의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본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저서, 특히 신약의 저자들은 전승과달리 저자미상이거나 위서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고 많은 책들에서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라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교회에서하면 백안시 당한다. 도올이 성경의 기술대로라면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테레비에서 했다가 엄청난 반발을 샀던 것을 보면 좀 암울하다. 그의 주장은 신학교에서도 배우는 내용 아니던가.) 현재 미국의 복음주의적 행태를 극단적으로 따르는 한국의 교회들을 볼 때 본서에서 기술한 중국의 문화혁명과도 같았던 문자주의자들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아팠다. 본서가 기독교계의 반발로 절판이 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암울하다. |
|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쿠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신인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라고 한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시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 처녀(동정녀)이다.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라고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문자 그대로 순교자로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다만, 그의 죽음은 상징적으로 심오하고 신비한 진실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예수를 본받는다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준낮은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로 부활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문자주의의 승리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대다수 그리스도교인들이 신앙은 예수의 역사적 존재성을 토대로 삼고 있다. 그들은 전제적인 콘스탄티누스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사도신경에 동의한다. 문자주의는 원래 그리스도교의 공개적 미스테리아였고, 입문자를 영적인 길로 이끌기 위한 준비 단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환상적인 마법과 기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례를 받고 믿기만 하면 불멸성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는 공개적 미스테리아는 은밀한 미스테리아보다 더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었다고 한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기독교 탄생의 역사를 새로 쓰는 충격보고라는 부제를 달고.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듯이 그리스도교에도 숨은 내용이 있을 것이다. 사실 문자주의는 심한 편이다. 성경의 일점일획이 틀림이 없다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을까. 판넨베르크라는 신학자가 한국에 왔을 때 성경에 대해 질문을 받고 성경은 역사적 산물이라는 뜻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일점 일획에 얽매이는 사람들은 좀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위에서 본 내용들처럼 많이 듣던 내용들은 아니었다. 아니 문자주의 신도들이 읽는다면 무척 놀랄지도 모른다. 이런 책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자유의 신장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좀 지나친 결론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어떤 의문에는 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문자주의라고 하더라도 제대로된 교회가 되면 그리 욕먹을 일은 아닐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사고가 맞아 들어가는 현실이 문제다. 아무리 종교가 좋다고 하더라도 비록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재 교회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다. 소수이면서도 제대로 된 교회인 진짜교회, 교회를 돈벌이의 수단 정도로 전락시키고 있는 기업형교회, 기도할 때 천 배 만배 부어 달라고 하면서 헌금의 기본 뜻을 버리고 있는 보험회사형교회, 그것도 모자라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뇌물받는 분으로 만드는 뇌물형교회가 있다고 본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어떤 교회에 해당될지 한 번 생각해 볼일이다. 이 책이 모두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승자의 역사로 기록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된 계기는 신문의 소개글을 통해서이다. 고대 미스테리아와 그리스도의 유사성이라는 주제가 흥이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공동 저자의 의도이든 출판사의 기획이든) 그러한 흥미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는 문제점이 많다. 실제 저자의 상세한 주석을 번역자가 임의로 빠뜨렸다든지, 번역자의 별도의 주석으로 번역자의 의도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독서의 능동적 역할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번역서를 읽을 때는 원전의 축자적 독해 능력의 부족 때문이거나 원전에 대한 접근이 힘들기 때문이지, 원전의 해석적 이해까지 번역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즉, "예수는 신화다"는 출판사나 번역자의 곡해가 오히려 진정한 독서의 흐름을 방해했다는 점이 문제점이지, 글 자체의 내용상에는 좋은 측면이 많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고대 미스테리아에 대한 비교 분석을 통해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던 점, 과연 종교를 믿는다는 것이 우리의 실존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을 돌아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를 단순히 예수의 실존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나, 고대 미스테리아 신앙이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와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분열상에 대한 것으로만 읽는다면 범박한 통속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내가 이 책에서 아쉽게 느낀 점은 예수를 실존 인물로 보는 것이 문자주의 그리스도교의 폐해이고 그것의 상징적 측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공동 저자의 주장에 십분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오는 물음, 곧 그리스도교를 상징적 미스테리아의 전통에 넣었을 때 그것이 우리의 현재의 실천적 종교 행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고대 미스테리아의 전통에 비추어 해석하고 그럼으로 예수의 실존을 의심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공동 저자의 천박한 담론 태도가 원인일 것이다. 담론이 어떤 문제 제기를 할 때는 특히 그것이 기존의 관습과 상식을 뒤집는 것이라면, 마땅히 '새론운 지식/정보'에 수반하는 실천적 양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야 입론에 대한 찬성자든 반대자든 현실에서의 변화를 꽤할 수 있는 것이다. 담론이 문제 제기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지적 유희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일뿐 참된 의미의 담론이라 볼 수 없다. 담론은 실천이 전제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역할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라는 실천적 담론을 위한 뒤늦은 문제 제기라는 생각이다. 뒤늦었다는 것은 이것이 책의 겉날개에 쓰여있는 것처럼 충격을 주기에는 조금만 신화와 종교 문제에 관심있는 자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상식적 의문이기 때문이다.중요한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예수의 실존 문제에 관한 흥미거리를 던져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상식이 돼버린 문제에 대해 뒤늦게 충격보고라고 소개하는 우리 현 문화의 낙후성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기복신앙의 형태를 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의 후진적 특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건 미스테리아의 상징 인물이건 중요한 것은 성경이 인류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며 그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나만 잘 살도록 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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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논쟁은 불가피한 문제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고, 기독교 근본주의 같은 보수 기독교가 세를 얻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갈수록 왕성해지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던 안 믿던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기독교 성서의 이해" 란책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연히 "예수는 신화다."란 책을 알게 되었는데, 절판이었다. (이것은 한기총에서 출판사인 동아일보에 압력을 넣어 절판되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은 문자주의자에 대한 비판과, 특히 성경은 잘못 된 것이 있다는 것이였다. 한 글자라도 틀린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글쎄다. (그럼 예수의 할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어보자?) 그리고 기독교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온 종교가 아니라, 그전에 있어왔던 이집트와 헬레리즘 문화의 연속선상에 있는 종교이며, 또 종교 탄생후에도 로마의 영향을 받아 계속 변화고 있는 것이다.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은 오시니스-디오니소스의 판박이라는 점이다. 예로 예수의 생일을 나는 로마의 설날로 알고 있는데(동지날), 마치 다른 종교의 날짜를 그대로 가져온 것 처럼 설명해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 생각에는 예수를 신화로 보건, 역사로 보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가령 우리가 단군신화를 100% 믿는 것도 아니고(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그 아드님을 보내 주시고, 여인이 된 곰을 만나 자손 단군을 주시니 ...) 또 주몽을 비롯한 난생신화 등을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군등을 비롯한 신화의 주인공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때와 다르듯이 예수의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책의 반론서가 있어면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
| 물론 책 내용자체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이 책의 역할이란 외국에선 다 알려진 사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자들이 꼼꼼하게 수집한 자료를 통해 그동안 성경을 읽다가 느꼈던 여러가지 모순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를들어 예수는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는데, 정통 기독교 입장에서 본다면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는 것에 비해 매우 하찮은 이런 기적이 성경책에 등장하는 이유를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수상쩍은 이유로 - 이미 하늘로 올라간 예수를 길을 가다 만나게되서 - 사도가 된 바울의 행적과 다른 사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밝혀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 자체에 감추어져있는 모순과 진실을 밝히는데는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지만, 성경이 위조된 역사에 부분에 대한 설명은 그 양이나 질이 너무 미흡하게 다루어졌고, 추측성이 강하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대부분의 증거가 역사의 흐름속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빙성이 없다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기 전에, 앎을 우선하지 않는 믿음만을 강조해온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 이 책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는데, 그리고 인터넷서점에 둘러보니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있고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부터 확고하게 믿고 왔던 것을 부인하며, 뒤집어 놓는 아주 놀랄만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으리라 생각되어 큰 기대를 하고 이 책을 구매하였지만 내용은 그렇게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이 너무나 생각이 났다. 굉장한 대발견인 것 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 책에 내용인 성경과 신화와의 유사성은 예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이다. 신약의 예수에 관한 것 뿐만아니라 구약의 천지창조, 홍수, 기적이 나타나는 전쟁 등 많은 것들이 신화와 유사하다. 신화와의 연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이 전혀 놀랄만한 것도 아니고 기대이하였지만, 내용보다는 두 명의 저자가 이 책의 내용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더욱 기대이하였다. 요즈음 범람하는 위경이나 외경으로 기독교를 접근하는 방식처럼 위경이나 외경의 권위는 인정하며 정경(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방식을 취한다. 수백년 동안의 검증으로 인정된 것의 권위는 부정하고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어떤이(예를들어 요세푸스, 타키투스 등등)들에 대해 그의 주장을 부정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자신들이 부정하는 그들의 주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려고 한다. 너무나 작위적인 선택이다. 하여튼 여러가지 더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하고 이 책의 서술방법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 솔직히 새롭고, 놀랄만한 것들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데서 너무나 아쉽다. 뭔가 다른 것으로 놀라고 싶으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하고 싶다. 아니면 조찬선 목사의 '기독교 죄악사' 한용상 장로의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같이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룬 적나라한 책을 읽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아니면 단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다면, '스크림'시리즈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시리즈의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