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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한창이던 작년 모 일간지에서 20세기 지적 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에 대한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당당히 첫 번째로 지명된 사람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프로이트였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나 레닌 또는 모택동 등에 밀려 주변에 위치했던 그의 이름이 어느새 사고의 중심으로 진입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다. 셰리 터클의 박사학위 논문인 이 책은 그러한 지적 조류의 급속한 전개를 추적하고 있는 일종의 지성사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MIT에서 기술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의 전공은 정신분석학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신분석학 하면 모든 것을 성적인 메타포로 해석하는 음담패설이나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된 사이코들을 상대하는 알아듣지 못할 말만 늘어놓는 일종의 해몽 정도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정치(Psychoanalytic litics)라는 원제를 달고 있는 터클의 이 책은 그러한 오해를 깨끗이 일소해준다. 물론 프랑스나 미국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 3명 중 2명은 정신분석가라는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정신분석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있지 못한 우리 나라에서 정신분석의 정치성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슬로건이 그러한 위험성을 대표하는 사례이다.
사적인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면 정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오히려 라캉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이트의 이름조차도 아직 낯선 우리가 터클의 책에서 배워야 할 것은 자기비판과 도전으로 진행되어 온 정신분석학 운동의 역사와 오늘날 정신분석학이 어디에 위치해있는가하는 물음이다.
정신분석 운동의 역사는 자기비판과 도전을 통해 기존의 상태나 해석,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과, 그러한 의문을 제도화하는 기관의 설립과 관련해서 지적 스승의 문제로 점철되어왔다. 분석가와 분석자(analysand) 사이의 무조건적 신뢰와 충성은 다른 편에서는 정신분석이 밝혀내려는 광기를 스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착한 어린아이로 변질되어 버린다. 단적인 사례로, 분석가의 수련은 결국 자기의 신경증적 갈등에 대한 개인적인 분석이며 자신의 고민과 고통으로부터의 출구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과정을 스승 분석가에게서 배우기―분석의 전수를 위해서는 전이(transference)가 필수적이다―위해서는 그에게 충성해야만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사회적 가치의 수용을 둘러싼 해석의 갈등이다.
오늘날 정신분석학의 상태와 관련해서는 어느 프랑스 정신분석학자가 토로하고 있는 고뇌를 들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모든 분석가들은 분석가가 자신들의 삶을 장악하기를 바라는 환자의 욕구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이제 분석가들은 그들을 생활문제의 전문가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므로 그들은 구루(영적 스승)가 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구루처럼 행동하는 것은 분석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것들은 그쪽으로 몰고 간다. 그것은 더 이상 분석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신분석이 당면한 과제이다."
셰리 터클은 최근에 들어와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그녀는 {제 2의 자아(The Second Self)}, {컴퓨터 화면 위에서의 삶(Life On the Screen: Identity in the Age of the Internet)} 등의 책을 집필한 바 있다. [인상깊은구절] "사회적인 가치관의 혼란은 정신분석 치료가 만개하는 조건이다. 개인은 사회가 그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해답을 주리라고 기대하면서 분석을 받으러 온다. 갈등은 명백하다. 아마도 그것은 불가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