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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사면, 복권이 자주 실시되는데,특히나 비리에 연루된 기업총수나 정치인 등에 대해 후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사면 복권된 이들이 정재계에 재기하게 되면 그들을 보는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법감정이나 또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사면복권은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정신과 준법 정신을 훼손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곤 했다.
그런데 삼권분립이 되지 않았던 조선에서도 이 사면 복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세종때,노비 소송에 개입하는 댓가로 재물과 노비를 뇌물로 받았던 권신 조말생의 사면 복권을 두고 세종과 대간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갔던 기록이 실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정의 대명사인 세종이 부패와 연루된 관리를, 그것도 대간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기어코 사면 복권했다니,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어떤 생각을 품고 그랬는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애당초 조말생은 교형을 당할만큼 거액의 재물과 노비를 받았지만 세종은 처음부터 조말생을 비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대간들의 반발을 가까스로 누르고 조말생을 귀양 보내는 선에서 치죄하는데, 그런 뒤 취한 조치를 보면 세종의 의중에는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조말생을 재기용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던 것으로 보여졌다. 불과 2년만에 귀양에서 풀어주고, 다시 고신을 돌려주는, 요즘 말로 사면조치를 취하고, 다시 함길부사에 임명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관리들의 뇌물수수는 연좌죄가 적용되고, 후손들의 과거 응시가 제한되기도 했고, 임용이 되도 이른바 청요직으로 나가는 데에는 결격사유가 될만큼 중죄였으니 대신들의 반발은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를리 없던 세종이었지만 그는 끝내 조말생을 함길부사로 기용했고, 이 인사는 결국 적중했다. 세종은 조말생의 병조판서 등 군사 전문가 또 외교 경력을 십분 활용했다. 당시 국경지대에는 여진족이 자주 조선 백성들의 영토를 공격했지만 명나라와 마찰이 빚어질까 저어해서 쉽게 여진족을 공격하지 못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간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조말생을 기용했던 것이었다. 최윤덕과 조말생의 공으로 명나라와 외교분쟁없이 여진족의 공격을 해결하게 됐는데, 이후에도 조말생을 둘러싸고 세종과 대간들의 갈등은 몇차례 더 빚어졌다.
조말생의 재기용은 세종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부패한 관료를 재기용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평가이고, 필자는 이 사건이야 말로 세종이 법치주의를 훼손하지 않고 민생을 살리는 세종의 정치력이 정치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돌아보면 여진족과 일본 왜구의 공격은 국방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을 때였다. 그렇기에 세종은 편애해서가 아니라 철처한 계산하에 조말생을 재기용한 것이다. 기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심하게 제한됐던지라 조선에서 군사전문가이자 외교력까지 갖춘 조말생이 적임자였기에 기용했고, 결국 국방과 민생을 위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 뒤에도 조말생은 관직에 있었지만, 의정부나 6조 같은 실질적 권한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명예직에 가까운 자리에 둔 것은 그의 부패 전력을 감안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종의 법치주의는 단지 처벌과 통제, 통치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 민생 지향적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는 조선의 법체계와 지금의 법체계, 그리고 법적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만약 요즘에 대통령이 수뢰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공직자를 다시 고위직에 앉힌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면 당시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야당에서 거세게 반대하고 나설 것이고, 언론에서도 대통령을 난타했을 것이란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조선에서 야당과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사헌부, 사간원 관리들의 상소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소를 올렸고, 임금과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집단사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임금이 뜻을 거두게 압박을 가했지만 세종은 이런 가운데에서 끝까지 대간들을 설득했고, 타협을 시도했다. 세종이라는 탁월한 군주였기에 가능했겠지만 군주와 대간들의 갈등과 대립 과정을 지켜보면 지금보다 오히려 더 타협과 설득,대화라는 정치력이 돋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세종의 뜻대로 됐지만 조선은 조말생의 부패 전력을 결코 잊지 않았다. 조말생의 사망시 졸기에서나 또 훗날 왕의 경연자리에서 조말생은 부패 경력 때문에 경력에 제동이 걸린 인물로 자주 언급이 됐다. 그의 비리를 관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사례로 삼았던 것이다.
사극에서 가혹하게 심문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서 그런지, 조선은 법에 의해 치죄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일개 비리 관리에 대한 재기용을 두고 이렇게 왕과 대간들이 설전을 벌이고 갑론을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서구적 의미의 법치주의와는 다르지만, 또 범인의 자백을 증거로 삼는 주의라 가혹행위가 동반됐지만 법치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말생을 두고 15년간 벌어졌던 왕과 대간들의 공방과정이 지리해 보일만도 한데, 오히려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세종이 그렇게 반발하는 대간 그 누구에게도 벌을 주는 강제력으로 군주의 의견을 관철하지 않았다는 것, 끝까지 그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며 정치력으로 돌파해가는 모습이나, 법률에 근거를 두고 끈질기게 상소했던 대간들의 모습이 모두가 일리가 있었다. 법치와 실용주의, 그리고 찬성과 반대 어느 한쪽을 굴복시키지 않고 상생의 묘수를 찾아가는 것이 정치력이라면, 조말생사건의 경우에는 이 묘한 줄타기에 성공한 경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말생의 경우 어디까지나 적재적소에 인물 기용하는 데 탁월했던 세종이었기에, 또 군주제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금의 우리 정치를 보면 수뢰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 행정부 관리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국회의원같은 선출직에는 얼마든지 뽑힐 가능성이 있고, 이번 19대에도 그런 경력이 있음에도 당선된 의원이 있는 걸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이내 사면 복권되는 재계 총수나 정치인, 고위 관료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심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공염불이란 것도 느끼고, 그러면서도 또 비리 관련자인데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유권자들이 있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것은 비리 근절에 있어서 국민들에게도 자성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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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뇌물로 일어난 부정부패사건을 계기로 현재 20세기 검사인 저자 서정민 작가가 다시 그 사건을 재구성한 책이다.
왜 세종은 부패한 관리 조말생을 다시 등용했는가? 세종의 자질과 중도를 지키는 실리적 법치주의를 따르는 훌륭한 왕이었음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조정에 탄핵의 글이 담긴 상소가 한 장 들어왔다. 병조판서 조말생에 대한 탄핵의 글- 병조판서 조말생은 태종때부터 신임을 받아온 인물로 세종때까지 왕의 신임을 받아오면서 조정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관료들의 탄핵으로 조말생 그가 노비로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의 죄목으로 보아 당연히 사형을 처해야 한다고 대간들은 왕께 고한다. 하지만 세종은 그의 죄가 사형에 처해야 함은 당연하나 그간의 그의 공로로 먼 곳으로 귀양을 보내라고 결론지었다. 사형을 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말이다. 하지만 세종의 심중에는 더 깊은 속 뜻이 있었다. 세종의 그런 결론에 관료들은 매일 상소문을 올렸지만 그 부패사건에서 이긴것은 세종이었다.
세종 10년 조말생은 다시 귀양살이에서 사면을 받았고, 다시 동지중추원사에 제수된다. 대간들의 전원 사직서를 낸다는 시위에도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 왜 세종은 부패한 관리 조말생의 죄를 감하여 주고 다시 등용했는가? 인데.. 그 당시 나라 상황은 명나라와의 문제와 여진족의 문제가 함께 있었던 국난의 시기였다. 세종은 조말생이라는 인재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비록 뇌물사건을 일으켰지만 말이다. 조말생이 다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부름을 받고 조정에 온 이후. 세종으로 받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 내었다. 세종은 인재를 아는 사람이었다.
한정된 인재 속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식별할 줄 아는 안목. 그리고 죄목을 떠나서 대의명분보다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고 좋은 결론을 맺게 한 리더의 의지와 결단을 잘 볼수 있는 세종의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관계속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와 인재라고 할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정치인들... 조선시대의 조말생 뇌물사건을 현재의 관점에서 작가는 재구성해 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알게 된 세종의 현명함을 엿볼수 있는 책. 좋은 책이었다.
대간들은 자신들이 옳거든 조말생을 파직하고, 조말생이 옳거든 자신들을 파직하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접근하며 세종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국가를 경영하는 세종에게 이러한 이분법은 있을 수 없었다. 대간들은 사법체계와 법치 측면에서 엄격한 법 집행을 추구.간언하는 등 직분을 다하였으며, 국왕은 중용론에 입각하여 부패논란의 정략화를 방지하면서 민본정치를 구현하고자 국가에 긴요한 인재를 반드시 등용하고자 하였다.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세종은 조말생을 과감하게 재등용하여 자주국방과 민본정치의 이념을 실현하였다. 이러한 성과에 대하여는 어느 신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은 포용과 통합을 통하여 실리주의적 통치철학을 실현하였을 뿐 아니라 사법체계와 법치 안정을 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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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검사의 시각에 역사의 한 장면은 어떻게 비춰졌을까하는 흥미로움으로 책을 들었다.
오늘날에도 비리정치인에 무차별적 사면복권이 자칫 국가의 기강을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어, 사면이 이루어질 때마다 항상 조선시대와 같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어쨋든 계속된 이들의 주장은 조말생의 죄는 중신불서용에 해당하므로 평생 직첩을 돌려주지 아니하여 관리로 쓰지 않음이 타장하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이에 무응답으로 응수하였다. 결국 20여일 정도 지난후 고신만 돌려줄 뿐 벼슬을 주지않는 것으로 1차 논쟁은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세종은 그로부터 2년후인 세종14년(1432년) 조말생을 동지중추원사에 제수함으로써, 2년의 유배생활, 2년의 자중기간을 거친후 다시 공직에 등용을 하였다. 동지중추원사는 종2품직으로 파면 직전 정2품의 병조판서보다는 한등급 낮은 직책이다. 다시 논쟁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보다 포괄적으로 관료의 부패와 국왕의 인사권이라는 두가지 개념을 두고시 치열한 논리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사헌부 집의 이견기는 세종과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러번의 논쟁과정에서 세종은 흥분한 나머지 스스로 재결한 조말생 사건의 판결에 있어 장물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말실수를 함으로써 발목을 잡히게 된다. 왕과 대간들간의 논쟁으로 임금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말생은 왕에게 용퇴하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슬쩍 자신의 억울함도 있다는 주장을 같이 하였고, 세종은 용퇴할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계속하여 이견기는 장리를 서용하지 않는 법은 법률에 뚜렷이 있다는 주장으로 조말생의 파면을 청하였고, 왕은 "권도"로서 행하였다는 말로서 성리학의 근본이념인 왕도정치가 아닌 패도정치를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주장을 하게 된다. 사헌부. 사간원 전 직원은 사직의사를 밝히며 왕을 압박하였으나 안정된 왕권과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고도의 정치술을 구사하던 세종과의 정치싸움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이후 세종15년 조말생은 함길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함경 남,북도 지역의 행정 사법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오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종이 법치주의를 거스른 인사를 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리주의자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조말생의 8년간 병조판서롯의 경험, 명.여진 등 미묘한 국제정세속에서 외교감각을 갖춘 적임자로서의 소양, 적극적 대마도 정벌 주장 등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여 세종의 자주국방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서북면에는 최윤덕을 동북면에는 조말생을 기용하여 여진족을 효율적으로 제압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포함한 인재등용의 한계가 있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세종의 조말생 기용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오늘날에도 인재 등용시 실용을 중시하여 개인적 흠은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등용이 적정했는지 여부는 후일에 평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잠잠하던 논란은 두아들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조말생은 세종의 신임을 얻어 예문관 수장인 대제학을 지낼 세째 아들 조근이 문과 한성시에 합격하였으나 조말생의 전과를 이유로 합격자 등록을 미루는 일이 발생하여 조말생이 상소하자 세종은 이와 같은 조치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여 조말생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둘째 아들 조찬이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으나 사헌부로부터 서경을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아들 구명을 위한 상소를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범했던 장오죄의 무죄까지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는 일이 벌어진다. 조말생은 아들에 대한 구명을 빌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이 처벌받은 부패범죄 사실을 전부 부인하면서 오히려 사헌부에서 나쁜 감정으로 자신을 무고하였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세종과 대간과의 대립구도는 조말생과 사헌부의 대립구도로 재편되었고, 결국 세종은 서경하라는 명령을 하면서 다만 유, 무죄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제시하지 아니한 채 사태를 마무리 짓는 수순을 밟았다. 책에 수록된 무죄주장 상소문을 읽어보니 오늘날 재판에서 피고인들의 수시로 무죄를 주장하면 제출하는 탄원서의 내용과 별 다를바 없다. 불충분한 증거조사, 수사기관의 수사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 대질조사를 요구하였으나 하지 않았다는 것, 사람(노비)을 장물로 계산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법리적 주장에 이르기까지....... 조말생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중추원의 최고직인 정1품 영중추원사에 이르렀으며, 세종은 그의 나이 70세 되던 해에 노신을 예우하는 궤장연까지 베풀어 주었다. 적어도 세종은 말생의 허물을 가려주고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요직에 등용하였고, 말생은 이러한 세종의 뜻에 따라 능력을 발휘하였으나 부패관료라는 오점때문에 영.판.지 의 중요직책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저자는 세종의 이러한 태도가 결국 옳았다며 정치적 대립을 통합으로 이끌고 상생정치를 실현하여 성공한 국가경영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세종의 이러한 태도보다는 대간들의 목숨을 건 비판과 직언에 더욱 무게를 두고 싶다. 대간들의 직언과 상소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세종은 선대로부터 이어내려온 조말생과의 인연을 사사로이 여겨, 그릇된 판단으로 법치도 실리도 그 어느것도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을 지도 모를일이다. 지금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도덕성의 관점에서 보면 조말생이 오늘날 정부요직을 차지하기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검사인 저자가 바쁜 가운데서도 과거의 법제도와 사례를 연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조화하여 의미있는 저술을 한 것에 대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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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생 뇌물사건 수사일지 세종 8년 1426년 3월 4일 김도련 노비소송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우의정 조연,곡산부원군 연사종,병조판서 조말생 등 권력의 핵심 관료들의 뇌물 사건이 드러나 사헌부에서 탄핵 상소문을 올리다 즉시 조연과 연사종은 각각 황해도 수안과 강원도 인제에 부처하고 조말생은 직첩을 회수한 충청도 회인에 부처하다 5월 8일 조말생의 아들 조선이 사람을 풀어 조말생을 탄핵한 대사헌의 집을 드나들던 선종증 만우의 시종승과 노자를 잡아다 린치를 가하여 대사헌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받아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다 5월 13일 사헌부,뇌물 80관 이상은 교형이라는 법정형대로 조말생에게 사형을 구형하다 세종,유형을 선고하고 장물 780관을 몰수하는 최종판결을 내리다 조말생,활해도 평산으로 귀향지를 옮기다 5월 14일~ 6월 2일 사간원과 사헌부 관료들이 판결의 부당함을 아뢰며 세종에게 판결번복을 연이어 간청하다 세종 청을 모두 물리치고 논의르 ㄹ종결하다 세종 10년 (1428년 ) 4월 1일 조말생 전격적으로 사면을 받아 유형에서 풀려나다 세종 12년 (1430년) 4월 14일 세종 조말생에게 직첩을 돌려줄 것을 명하다 4월 15일 변계손 이승직 등이 조말생에게 준 직첩을 거둘 것을 상소하고 대간들이 집단 사직원을 내는 등 이후 20여일동안 세종과 대간 사이에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세종의 뜻이 관철되다 세종 14년(1432년) 12월 8일 조말생,동지중추원사에 제수되다 12월 10일 ~14일 사간원의 상소를 시작으로 이견기의 11차례 상소에 이르기까지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조말생의 관직을 거둘 것을 계속 청하였으나 세종 거부하다 12월 15일 조말생 스스로 벼슬에서 무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세종 물리치다 12월 17일 거듭되는 논란에 세종 권도를 내세워 신하들의 말을 껶다 12월 18일 ~19일 대간들의 전원 사직 시위에도 세종 뜻을 굽히지 않다 세종 15년 (1433년) 1월 19일 조말생, 함길도 관찰사에 임명되다 세종 20년 (1438년)3월 25일 조말생의 막내 아들 조근이 과거에 합격했으나 예문관에서 합격자 등록을 이틀이나 지연하는 사건이 발생 조말생이 상소하다 세종,조말생의 청을 받아들여 의금부에 엄정한 조사를 명하다 10월 20일 조말생의 둘째 아들 조찬에 대한 사헌부의 서경(관료 임명 동의)거부 사건이 발생하다 조말생, 과거 귀양간 일의 억울함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다 세종,사헌부에 명령하여 조찬의 서경을 명하다 세종 23년 (1441년) 10월 20일 조말생,장문의 상소에서 증거조사 불충분 자백한바 없슴, 장물 개념오해등의 이유를 근거로 자신으 ㅣ무죄를 주장하며 병오년(1426년)뇌물사건의 재조사를 청하다 세종 무응답으로 일관하다 세종 29년(1447년)4월 27일 조말생 사망하다
국민으로부터 받은 위임권을 근거로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를 경영하는국가기관에는 당연히 공평하게 국민을 위하고 효율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 해체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정치권력층으로부터 일반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자기에게 불리한 국가기관의 결정에 대하여서는 수긍하고 따르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정착한 민주주의를 토대로 성숙하고 발전적인 선진국가로 나아가느냐 내부분열과 혼란속에 몰락의 길을 걷느냐하는 과도기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조선시대 가장 태평하였던 세종시대 이시대에 국왕으로부터 큰 신임을 얻고 있던 고위관료에 대한 탄핵상소를 시작으로 조선 사회를 뒤흔든 권력형 비리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 사헌부에서 권력형 비리의 중심으로 여겨 가장 핵심적인 처벌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조말생 조말생은 태종조 최고의 인재이며 고속 승진한 엘리트 관료 조말생은 고려 공민왕 즉위 19년 (1370년)에 출생하여 조선조 세종 29년 (1447년) 사망하기 까지 당시로는 드물게 만 77세로 장수하였다 자는 근초,본관은 양주이며 고려말 서운관정을 지낸 조의의 아들 관직에 처음 출사할때부터 주목받기 시작 태종원년(1401년)에 문과 증광시에 장원급제하여 여물고 부사에 임명 그 이후에 감찰,정언,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으로 승진 태종 2년(1402년)에는 동국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말생은 뛰어난 학문과 문장력으로 과거시험에서 으뜸을 보였고 이조,호조,병조,사헌부,승정원의 요직을 두루 거쳤을뿐 아니라 명나라에도 여러차례 다녀오는 등 국제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조말생의 형인 조계생 또한 황해,충청,전라 3도의 감사,예조참판,대사헌,이조판셔,병조판서,공조판서를 역임하고 의정부 참찬에 이르는 등 조말생의 양주 조씨 일가는 당대의 권문가였다 태종이 얼마나 조말생을 측근에 두고 활용하였는지 조말생이 국왕의 비서실장격인 지신사,즉 훗날의 드승지로 임명된 것은 태종 16년 (1416년) 이다 태종은 이때부터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할때까지 조말생으로 하여금 측근에서 왕명을 출납하게 하면서 그를 수족과 같이 썼다 조선시대 노비는 양반 계층에게 있어어 매우 중요한 재산에 해당하였다 노비는 양반가의 살림을 이끌어가는 수단으로서 재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노비를 부당하게 빼앗길 경우 자기 재물을 찾아오기 위해 소송을 하곤했다. 노비가 중요한 재산이었으므로 상속이 이루어질 경우에도 노비가 누구에게 상속되는지 분쟁의대상이 되었다 고위관료에 대한 수사는 과거나 지금이나 수사 대상의 신분으로 인하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할 때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 자체가고위관료를 임명하여 신임하고 중책을 맡긴 국가의 최고인사권자의 도덕성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수사 대상자의 신분으로 인하여 명백한 사실 관계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정략적 수사라는 역풍이 부닥치게 되기 때문이다
세종이 원래 법치주의를 배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조말생에 한하여 법을 굽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당기간에 걸친 격렬한 논쟁과정에서 세종은 법치주의적 측면에 한하여서는 대간들이 제기한 논리와 법 적용을 모두 인정하였다. 대간들의 논리가 부당하다며 정면으로 꺾고 부인하지는 아니하였다 단지 웅용론이라든가 태종대의 중신이었다든가 함길도의 사정에 비추어 긴요한 인물이라든가 하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서 조말생을 등요한 방식은 그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법에 의한것이 아니라 결국 권도에 의한 예외적인 인사권 행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조말생은 시대적 필요성에 의하여 세종이 낙점한 유능한 원로이자 정치적 동지였다 국가의 최고통치권이자 인사권자인 세종에게 있어서 조말생은 법치주의의 관절을 위하여 죽이고 배척하여야만 할 대상이 아니라 적절히 벌을 주고 다시 그 능력을 재활용하여야 하는 임룽 이것이 세종이 판단한 실리주의였다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비판하는것은 어렵다 비난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태를 비방하는것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비난이다 누구나 쉽게 한다 하지만 비판은 사태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의 정확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비판하려면 적어도 그 사태를 잘 알고 분석할 통찰력과 식견이 있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공직부패를 어떻게 비판하고 해결할 것인가 종국적으로 국민들이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려면 공직부태를 제재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과 국가경영자들은 어떻게 비판하고 화합하여야할 것인가 조선시대 조말생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이 던져주는 역사적 과제 지금 현재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이책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정말 정치 나하고 상관없다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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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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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조 세종 재위기간 당시 고위공직자인 병조판서 조말생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진행되었던 권력형 비리사건의 경과와 사후 여파를 법조인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이다. 사건이 어떻게 수사되었고 어떻게 처리되었으며, 왜 세종은 조말생을 다시 등용했는지까지 이유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500년 전의 사건이 요즘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사건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시중에 세종의 치적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늘어놓은 책은 많아도, 세종조 재위 기간중 오점이 될 수 있는 이러한 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책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조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 읽다보면 선택된 문장속의 용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모든 것이 법조인의 글이라는 느낌이 확연하다. 사건의 사후여파까지 서술해 놓은 것을 보면 저자가 상당히 역사에 대해서도 조예가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사건과 무관한 저자 자신의 관점과 가치관을 서술하는데 지면의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책의 구성에 있어 100점을 주기는 어렵다. 마치 평범한 이야기 실력을 가진 이야기꾼이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해 가지고와서 공연을 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ㅋ 개인적으로 한 가지 사건이나 주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역사책을 좋아하는데, 본인과 비슷한 취향의 독자라면 나름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장도 깔끔하고 내용도 적어서 한나절 집중하면 전부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아무튼 고위공직자의 비리사건은 아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우리가 마땅히 스트레스 풀 데 없고 욕할 데 없으면 전두환 29만원 욕하면 되듯이, 고위공직자 비리는 알면 알 수록 스트레스 풀 구석은 많아지니까.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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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성군으로 총애받는 성왕 중의 한명이다.
그런 그와 부패사건이라니, 어쩐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읽어보니 처음에는 계속 죄인을 비호하는 듯한 세종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역시 비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몇 수 앞서 본다고 했던가, 근 15년간 끈질기에 화두되었던 조말생의 사건을 통해 조선의 법치주의와 세종의 실리주의에 대해 크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게다가 이 책을 쓰신 분이 검사로 재직 중인 분이시고 조선의 여러 법 제도와 시행의 묘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이런 표현들이 법률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드라마에서 고신하는 모습만 보던 것 보다는 전문성을 띠어서 수긍하기가 쉬웠다.
현대적 표현이라는 건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당시 김도련은 지방에서 수없이 많은 노비소송을 제기하거나 당하면서도 패소하지 아니하는 막강한 로비스트였다. - p.23
조말생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걸쳐 왕이 된 태종 이방원으로서는 왕권 안정에 저해가 되는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확립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젊은 인재였다. 따라서 태종은 조말생에게 각 분야의 실무를 두루 경험하게 하고 급속승진을 거듭케 하였다. 또한 후에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생전양위를 물려줄때도 당신은 군사업무만을 돌보며 왕권을 강화할때도 조말생을 병조판서로 두어 함께 했으며, 조말생과의 사적인 자리에선 양녕대군의 폐위로 고심하며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p.18~19)
이렇게 신뢰받고 고위간직에 있던 신하라면 응당 왕에게 충심을 바치고 정사를 돌봐야할진데, 그런 조말생이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다는 상서문이 세종8년에 올라오게 되고, 드디어 엄청나게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이런 조말생에 대한 형 집행과, 사면, 직첩을 돌려주는 문제와 다시 관직을 받고 이후 그의 두 아들에 대한 문제까지 근 15년간 조말생에 대한 문제로 세종과 신하들은 대립하게 된다.
저자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비리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조말생의 부패사건을 6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는데 이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였으며, 세종, 사헌부, 조말생, 당시 사회상 등 각각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 현대적 해석 등 광범위하게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고 있으며, 특히 세종대왕의 주장에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만 치우쳐있지 않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이다.
사실 이는 세종대왕의 실리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념이 올곧아 그렇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록 조말생이 죄를 용서받고 관직에도 복귀하여 공을 세웠으나 후대에는 길이길이 부패의 대명사로 낙인을 찍혔을테지. 세종의 업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저자의 논리와 표현력이 멋진 책이다.
끊임없는 대신들의 반박에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지킨 세종대왕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특히 그렇게 온당한 토론을 통해 법을 중시하는 기틀을 마련한 점도. 그저 비난이 아닌 정당한 비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통합해 나가는 세종대왕의 이 자세가 바로 우리 시대에서 배워야 할 자세이다.
나는 특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극도로 신중하여야 한다 (p.74) 와 유능한 인재는 전과를 구실로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p.225) 는 (아비의 죄로 자식의 등용까지 거부해서는 안된다) 세종대왕의 실리주의가 마음에 든다.
저자가 말하는 '정치혐오증' 을 나도 가지고 있다. 매일 뉴스에서 싸우기만 하는 그네들과 선거기간 동안 서로를 깎아내리기에만 급급하던 모습을 보면 '상생' 운운하는 게 우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희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시대와 문화만 바뀌었을 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기에 불완전한 법을 그나마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나가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사람이 많아져 조금씩 조금씩 이 사회가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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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땐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중에 한 분인 세종대왕이 부패를 저지른 줄 알았다. 하나 책을 읽어보니 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세종이 아니라 조말생이라는 사람이었다. 조말생. 이름은 들어본적 있는 것 같으나 나처럼 학교를 좁업한지 오래 되었거나 한국사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이 책을 통해서 조말생이란 인물에 대해 그나마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 책은 조말생이란 인물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부패 사건에 관한 이야기므로 그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서서는 그다지 알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부패사건의 전말을 간단히 간추려 보면 태조(이방원)의 사랑과 세종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조말생의 비리 사건이 터지고 만다. 비리사건의 내용은 김도련이란 사람이 조말생에게 노비(조선시대에는 노비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재신이었다.)소송을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유리하게 판결 해줄것을 부탁하면서 그 대가로 노비 24명을 조말생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 일로 사헌부가 조사를 시작했고 조말생의 비리 사건이 발혀지고 세종은 그의 직위를 발탈하고 귀양보내는 것으로 이를 마무리 한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대간들은 선고 다음날부터 상소를 올리기 시작한다. 상소의 내용은 조말생의 죄가 무거운데 그에 대한 벌은 너무나 가볍다면서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빗발치는 상소와 대간들의 강압적인 태도에도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2년후 조말생은 사면을 받아 석방된다. 이 일로 세종과 대간들과의 담론은 끊이질 않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 조말생은 6년여의 공백을 뒤로 하고 다시금 관직을 얻게 된다. 전원 사직이란 강경한 대간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아 이 일은 이렇게 세종과 대간들의 권력다툼에서 세종이 이긴 사건이다.
그럼 이 책이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종이 조말생이란 인물을 매우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죄가 아무리 커도 다 용서하고 다시 관직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단지 조말생의 군사적 .외교적 능력을 인정하여 중용하였을뿐 과거의 부패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조말생의 손을 결코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무례할 정도록 정치적인 공세를 아끼지 않은 사헌부의 수사 내용을 존중하는 등 과료의 부정부패 척결에 대하여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이로 인하여 조말생은 후세의 조선인들에게까지 부패의 대명사로 공공연히 인식되었다. <p219> 세종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백성이 근본이 되어 편안히 살수 있게 하는 민본정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백성이 편히 살게 하기 위해서 죄를 어긴 조말생이라 하더라도 그의 능력이 조금이나마 백성을 위한 일에 필요로 한다면 기꺼히 이용했다는 것이다, 조말생은 군사작전 수행능력,그리고 탁월한 외교술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자칫 외교 문제가 커질수 있는 함길도 관찰사로 임염한 것이다. 그리고 조말생은 세종의 선택이 옮음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즉 세종은 실리적 법치주의자란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쓴 사람은 검사로 재직중인 사람이다. 그래서 이야기 중간중간 사건을 현대 법으로 바꿔서 설명 했는데 나는 그것이 오히려 더 햇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안그래도 옛날 말이 어려운데다 현대 법 용어까지 정치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로서는 정신을 집중하고 읽지 안으면 안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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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처럼 성군으로 알려진 임금의 이름 옆에 쓰여진 "부패"라는 단어가 의아했다. 세종이 우리가 몰랐던 무슨 "부패"사건을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테고. 그럼 혹 신하의 부정부패사건을 눈감아 준 것일까?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라는 부제를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측면이 강할 것 같다고 짐작은 되지만.. 제목에 호기심이 동했다. 세종에 대한 책을 근래 들어 몇 권 읽으면서도, 내가 잘 몰랐던 세종의 위대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만을 확인했었지,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이 책에선 세종의 어떤 모습을 이야기하려고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성급한 마음에 책을 펼쳐보니 글쓴이가 현직 검사다. 세종에 관한 이야기니 역사가가 쓴 책이겠거니 했는데 현직 검사가 쓴 책이라..? 조금 더 호기심이 동한다. 법조인이 보는 세종의 모습은 어떨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부제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조말생이라는 신하의 뇌물 수수 사건이다. 조말생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사형에 처하자는 대간의 압박과, 조말생이 부왕인 태종으로부터 신임받던 신하로써 공이 있으니 유형으로 그치자는 세종의 중도론이 대립했다. 결국 세종의 승리? 조말생의 유배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세종은 그를 사면하고 결국엔 복직을 시키기까지 한다. 이에 반발한 대간의 반발 상소가 이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강력한 왕권만이 존재했을 것 같은 왕조시대에 신하된 자들이 감히 겁도 없이(?) 왕의 말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일방통행이 아니라, 왕과 신하가 어떤 사안에 대해 주거니받거니 논쟁하는 모습은 왕권과 신권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조선 왕조의 시대상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의문점이 하나 생기기도 했다. 왜 세종은 조말생에 대해 그토록 관대한 처분을 고집하였던 것일까? 책의 중반부분까지는 조말생이 왕실과 인척관계였다는 점,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 그리고 국사에 공이 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간의 공격을 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형에 처할만큼 중죄를 지은 신하를 보호할 이유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다. 책을 좀더 읽어나가다 보면 글쓴이는 그 이유를 함길도의 국방 방어를 위한 적임자가 바로 조말생이었음을 추가로 설명하고 있어, 그 의문점이 해결됐다.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감사로 임명한데 대해 대간이 반발하자 "내가 그대들의 말을 진실로 아름답게 여긴다. 허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의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p137)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말생을 등용하여 활용한 것은 단지 시대적으로 요긴한 서북면 정벌의 군사 활동과 대명 외교 차원 때문이었지 절대로 조말생이 행한 부정부패를 부정하여 개인을 신원하여 주기 위한 차원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p198) 그랬다. 이 책을 통해 세종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절반의 걱정과 절반의 호기심은 이렇게 해결됐다. 다행이다. 내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에 흠집이 나지 않아서.. 현직검사가 쓴 글이라 그런지 조말생 사건을 현재의 시점과 비교 분석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과거의 사법제도와 현재의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장에 걸쳐 비교설명해 주고 있다. 알수록 더욱 호감을 갖게 되는 세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오자? P49의 3줄 : 체통를 -> 체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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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라는 키워드로 다시보는 세종시대 최근 세종에 관한 책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세종시대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 가운데서도 몇몇 책에서 짧게나마 다뤄졌던 세종시대의 부패나 비리에 관한 내용들을 호기심어린 마음에 유독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다른 시대도 아닌 세종시대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놀라움과 의구심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내막을 알고 싶었으나 그와 관계되는 책을 찾지 못했다. 그런 중에 만나게 된 것이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라는 책이다. 사실 제목만 듣고는 세종시대 있었던 모든 비리나 부패사건을 총망라한 책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을 보고나니 그 중 특정한 한 사건만 다룬 책이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조말생 뇌물사건의 재구성-이다. 단행본 역사서 치고는 책이 유난히 얇고 작아 보여 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역시 특정사건만을 다루다 보니 그럴 수밖에... 이야기는 맞바로 세종대에 벌어졌던 희대의 "권력형 비리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자세히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조말생이라는 고위공직자가 사적으로 노비를 받아 부를 착복했으며 그 대가로 각종 이권을 허용해 주고, 인사상의 특혜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부패의 전모가 알려지자 그의 죄를 추궁하는 상소가 빗발쳤고, 결국 그는 귀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조말생은 죄에 대한 벌로 귀양길에 올랐지만 사헌부나 사간원 등의 관리들과 대신들은 죄가 크다며 사형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조말생을 아껴 그를 결단코 죽이려 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사형을 주장하는 신료들과 자신이 아끼는 신하를 보호하려는 세종의 긴 싸움은 계속되고 결국 세종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한편 세종은 조말생의 벌을 줄여주는 것도 모자라 그를 재선임하기에 이른다. 이 또한 다른 신하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지만 결국 세종의 뜻이 관철되고, 조말생은 복진된다. 게다가 세종의 뜻에 부응해 완벽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세종과 대신들의 조말생의 형량에 관해 논쟁했던 일을 1차전, 조말생의 복귀문제와 관해 논쟁했던 일을 2차전이라고 하면, 3차전은 조말생 자신의 신원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세종이 자신을 신임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과거 못지않게 높아진 위신으로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자신의 죄가 없음을 밝히는 논쟁의 불씨를 키우려 하지만 세종은 이를 묵과하고 단지 그의 능력만 높이 사고, 그에게 있어 부당한 대우를 해소해 주는 선에서만 일을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끝내 그는 자신의 죄를 백지상태로 만들진 못한다. 이처럼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는 세종시대에 아주 긴 시간동안 벌어졌던 한 비리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 처리가 되며, 그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짚어 보고 있다. 마땅히 사형에 처해질 죄임에도 죄인의 능력을 우선시해 확고한 감형을 택했던 세종의 조치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행동이었지만 꼭 필요한 인재라는 확신만으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확고한 신념은 실용주의가 어떤 것인지, 어떤 일에 함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부족함을 느꼈던 것은 각주가 없다는 점이다. 책의 내용 중 형법에 관한 용어이나 각종 한자어 등 각주를 달아 설명을 요하는 내용이 많음에도 각주가 전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의 단어들은 글 속에서 설명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글을 어렵게 느끼게 할 뿐이다. 부패는 정직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세종은 ’’필요한 인재’’라는 생각으로 정직하지 못한 조말생의 능력을 믿었고, 그것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세종의 굽히지 않은 소신과 믿음.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리더십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