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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폰트리에감독의 미국 3부작 중 두번째 작품 만덜레이.. 역시 역시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거장의 역작입니다. 도그빌도 그렇고 만덜레이 또한 "미국"의 모순을 꼬집으려 만든 영화지만 감독이 제기하는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가던 그레이스는 만덜레이에서 한 흑인여인이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자 올드레이디의 농장을 들어가게 됩니다. 70년전에 해방된 흑인들이 여전히 그곳에서는 노예로 살고 있었고, 채찍으로 매맞는 한 남자노예를 구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노쇠한 그 농장의 안주인이 갑작스럽게 죽게되자 그레이스는 농장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그곳의 생활이 안정될 때 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그곳 노예들에게 가르치지만 그들은 자립하지 못하고 그레이스가 그곳의 안주인으로 남아주기를 바라게됩니다.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그곳의 노예들을 보면서 유신독재치하에서 갑자기 독재자의 죽음을 맞이했던 우리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이제 그 시절들은 지나왔고 나는 그 시절을 겪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그 시절을 이해시키는 듯 합니다.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유신에 대한 향수..어쩌면 그 향수를 지닌 분들은 시킨대로 일만하면 의식주가 해결되는데 의식주를 보장받지 못하는 자유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올드레이디 농장의 노예들을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예근성이라 불리는 수동성 그것은 개인의 특성이 아닌 사회적 산물입니다. 산짐승 들짐승을 잡아다 우리에 가두었는데 야생성을 수동성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 동물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생존을 위해 수동성이 보호색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시절과 그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노예근성이란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수동성을 받아들이지 않은 소수의 선각자들이 있어 우리는 다행이 그 암울한 터널을 잘 빠져나오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아직 다 빠져나오지는 못한 듯 합니다. 쉬운일은 아니겠죠.노예근성이니, 유신향수니 하는 것들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는 있습니다만,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이 영화가 제게 마련해 준 것이죠. 이렇게 우리의 상황으로 빗대어 보니 흑인들이 당해왔던 일또한 더 가슴이 아픕니다. 더 오랜세월을 더 처절하게 당해왔던 그들의 삶, 그들도 많은 선각자들이 있어 빨리 그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영화의 위대함이란 이렇게 나와 우리와 또 우리와는 다른 그들을 연결해주는 고리여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