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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한 마디로 시대를 앞서서 산 사람이다.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시대에 배척당하고 만다. 아마 지금쯤 허균이 살아 있다면 뜻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서 홍길동전으로 알려진 허균. 과연 그는 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광해군과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혁명을 생각했을까.
저자의 쓴 것처럼 죄인에 대한 결안이 없이 죽었으므로 어떤 형태의 이상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이루려고 한 나라가 나름대로 더 좋은 나라였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서자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만 보아도 무엇인가 기득권을 위한 나라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나라를 세운들 시대의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허균은 혁명의 선구자이기 이전에 개인의 이익을 모두 버렸다는 점, 앞을 내다 본 점에는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허균의 집안만 하더라도 대단히 권세가 있는 집안이다. 그럼에도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손곡 이달과 같은 스승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그것이 교산 허균의 일생이다.
저자의 말처럼 허균에 대한 당시의 평가는 문장이 뛰어나다는 것과 경망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문장이 뛰어나다는 것이 공통된 점이라면 권세가 높은 집안의 천재라고 할 것이다. 경망하다는 평가는 유교의 틀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유교 외에 쳐다보는 것만으로 이단이 되다시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천재가 유교에만 안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살펴보는 궁금증이 없으면 어찌 천재라 할 것인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에 오래 있었던 장수치고 사람들의 헐뜯음과 임금의 의심을 받지 않은 자가 드물다. 군사를 강하게 훈련시키고 아랫사람들을 잘 단속하며 군율을 엄하게 하되 위와 아래가 서로 친해서 적국이 두려워하던 장수라도, 한 번 임금의 의심을 받게 되면 발을 돌릴 사이도 없이 몸은 죽음에 빠지고 따라서 나라도 위태롭게 된다(107쪽)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면 이순신 장군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어렵게 나라에 충성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의심을 받는 장수가 이순신이 아닌가. 그런 이순신이 23전 전승을 기록하며 나라를 구했다는 점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아마 그 때 일본에게 점령당했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일제 35년의 역사보다 더 했을 것이고 아마도 독립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충성을 다해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을 생각한다.
예절의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얽매리오
뜨고 가라앉는 것을 다만 천성에 맡기리라.
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지키게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
가까운 벗들이 서로 찾아와 위로하고
아내와 자식들은 언짢은 마음을 품었건만,
오히려 좋은 일이나 생긴 듯 나는 즐겁기만 하니
이백이나 두보만큼 시로써 이름을 날리게 되었음일세(205쪽).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이지만 허균이 불교를 좋아한다고 탄핵당하면서도 좋아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고 한다. 맞는 것 같다. 유교의 한계 내에서 삶에 대해서는 답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불교를 만나고 노장을 만난다고 해도 삶에 대한 대답은 역시 얻기 힘들겠지만 나름대로 유교보다는 넓은 세계를 알려고 했고 알게 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이탁오처럼 허균도 유교반도가 되어갔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간 교산 허균, 모든 특권을 버린 그의 삶이 선구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 갔다 오면서 선비가 돈을 잃어 버렸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수천 권의 책을 구입해 와서 읽는 열정, 권세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주변의 서자들과 민중을 생각하는 그의 가슴은 뜨거웠다. 과연 그런 허균이 지금 다시 살아난다면 오늘의 현실을 보고 무엇이라고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허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기존의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요즘 법조계에 위헌론이 난무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위헌이라면 세금 쪽에서 볼 때 누진세도 위헌이 될까. 법이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데 너무 법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을 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할지도 모른다. 내 생각으로는 법이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나친 위헌론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느 정도 지성인이라면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고 인간을 생각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현재에 살면서 허균을 다시 생각해 본다. 소설 허균 1, 2, 3권(김선 지음 예문당 2000년)을 다시 한 번 이 책과 같이 읽었다. [인상깊은구절] 조선 전기에는 여러 차례 사화(士禍)가 일어났다. (중략) 사림을 제거하기 위해서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 훈척파에서는 그 사건을 난(亂)으로 규정했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사림에서는 어진 선비들이 죄 없이 당한 화(禍)라고 주장했다. 사화는 역모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기에, 정권이 바뀌면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복원되었다. 따라서 사림이 정치적으로 우세해진 선조 초반에 들어서야 ‘사화’라는 표현이 쓰였다(23쪽). 장자(莊子)의 「제물론」을 일찍이 배웠으니 시(時)와 명(命)이 어긋나는 걸 어찌 슬퍼하랴. 남도 지방의 늦은 봄날을 시름으로 다 보냈으니 고개 너머 고향 산은 꿈속에서나 돌아가 보네.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도전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죽은 뒤에, 서얼이나 다시 시집간 여인이 낳은 자식은 벼슬길이 막혔다. 서얼 자녀는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얼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평생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으니, 조선 사회의 부조리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이다. 재가 여인의 경우에도 당시 남편이 죽으면 생활 능력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남편을 얻지 못하고 평생 수절을 강요했으니, 비인간적 제도 가운데 하나였다(3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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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광해군과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혁명을 생각했을까.
저자가 쓴 것처럼 죄인에 대한 결안이 없이 죽었으므로 어떤 형태의 이상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이루려고 한 나라가 나름대로 더 좋은 나라였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서자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만 보아도 무엇인가 기득권을 위한 나라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허균의 비극적인 생애를 되돌아보며 조선시대에 외면당했던 그의
사상과 학문, 문학세계를 현재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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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내가 이책을 읽은 목적은 인간 허균의 생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그의 글들을 해설 없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수준정도는 아님을 밝혀둔다. 연대기별로 허균에게 일어났던 일과 겪었던 일,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들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다.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그의 생에 전반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시작으로 삼기에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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