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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새까맣고 코만 뾰족하여 할머니에게 손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에 의구심을 품고 조상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1961년에 시작한 저자의 기나긴 연구여행은 46년 만에 끝났다. 46년의 세월을 한 곳에 투자한 그 긴 세월과 노력이 만들어낸 책이다.
보통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 수로왕릉인 납릉의 정문에 있는 정문 위 나무판에 종 모양의 물체를 가운데 두고 머리를 마주한 물고기 두 마리를 보고 의문을 가지고 연구하여 이런 결과를 낸 것이다. 역시 무엇을 이루려면 미쳐야 하는가 보다. 미쳐야 미친다라고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시작한 연구에 의해 메소포타미아의 고대인들의 사유 세계 속에 들어 있던 신어사상이 오랜 세월에 걸친 인구의 이동과 접촉으로 한국까지 퍼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가락국의 수로왕비 허황옥은 아유타국 출신으로 서기 48년에 배를 타고 가락국에 도착했으며,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자녀를 여러 명 낳았고, 그들이 오늘날 600만 명이나 되는 한국 최대의 성씨인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인천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가락국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고 이 글에는 허황옥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저자는 보주태후 허씨릉이라는 것에도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그렇게 해서 연구한 결론은 약 2천여 년 전에 인도 출신 브라만 계급으로 미얀마, 운남을 거쳐 사천에 정착한 민족의 후손으로 사천성 안악(안악 보주)에서 태어나 15세 때 출생지를 떠나 양쯔 강을 따라 내려와 무한에 살다가 다음 해에 황해를 건너와서 수로왕과 결혼한다(359쪽)고 한다. 이러한 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을 연결한 사람은 차마고도를 따라 장사하러 다니던 마방꾼들이었다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북아시아 주민들과의 문화공유 현상은 인정하면서도 남아시아와 문화적 유사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정서가 있다. 그런데 고인돌 문화는 원래 서유럽의 풍속이 주민의 이동으로 인도까지 퍼져 있던 것인데 그 문화가 더욱 더 동쪽으로 전파되어 대만과 한반도를 지나 일본의 규슈까지 나타난다는 것이 나의 현지답사 결과로 밝혀졌다(45쪽). 이것은 우리나라가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점과 대치되고, 우리나라 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에 대치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국어에는 400여 개의 고대 인도어가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을 보면 벼, 쌀, 풀, 알, 씨, 가래, 메뚜기 등 농업문화의 ‘키워드’들이 모두 드라비다 계통의 어휘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현상을 옛날에도 일본 학자가 발표한 적이 있다. 일본어에 드라비다어가 많이 섞여 있다는 내용인데 일본의 극우파들이 그 학자를 매도하여 연구 자체를 접어버린 적이 있다(44-45쪽).
로마의 탄압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어사상은 물고기 아이콘으로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영화에 여러 번 나온다. 그리고 지하교회인 카타콤에 오병이어를 그렸다.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요한복음의 내용이다. 오병이어는 떡 다섯 개가 가운데 있고 물고기 한 쌍이 양쪽에서 떡을 보호하는 그림이다(287쪽).
어떤 궁금증으로 인해 46년간 연구를 하고 나름대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집념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요즘 어떤 일에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드물다. 이런 시대에 조그마한 의구심으로 시작한 결과가 대단한 것이다. 역시 진정한 공부와 연구는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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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박물관 등으로 답사를 가기 이전에 선택한 책 중에 하나.
가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없고 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가지도 않고 하던 찰나에 만난 책이다.
난 왜 가야가 궁금한 걸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속한 곳이 가야였는데 기본도 모르면서 이것저것을 이야기한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고, 우리동네 주변은 어떠했는지를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싶었다.
철기가 많았던 가야. 철기를 전해줬다고도 하는 가야의 왕비에 관한 책을 찾다가 걸려든 책이 바로 허황옥루트다. 단편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연결하는 고리들이 실상은 더 중요했으므로, 노교수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기록들이 내게는 감사하게 느껴진다. 소설이 아니어서 더 좋고, 찾아가는 길에 대한 저자의 느낌과 사실에 대한 기록이 논문집의 딱딱함을 벗어나서 읽어내기가 무난하다.
여태 이름만 알고 있던 신어산이 가진 이야기들과 의미. 역사적인 상상력으로 유추해나갈 수 밖에 없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때론 이것이 주는 긴장감과 활력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가 없다. 가야에 대한 유래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안도감에 또다시 이 책을 들어야 할 거 같다.(솔직히 1번의 정독이라 해도 머리 속에 담을 것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건 노교수의 개인적인 부분이랄 수도 있겠지만 편집의 묘를 부려 삭제할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한 부분이다. (운하문제의 살짝언급) 그리고 이건 편집에서 꼭 봐줬으면 한다. 원고를 마지막 검토하는 과정에서 별거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오타가 있었다. 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발견하고 눈에 걸린 것은 이것이다. 341쪽 -나는 호화유람섬을 탈 수가 없었다. 일부러 예악하지 않았다. 분명 문맥상으로 봐도 예약일 것인데....그 부분만 5번은 읽었다. 정확히 오타다.
노교수님의 기행글을 제대로 수정하는 것이 출판사의 몫이고 혹 사전검토단이 있다면 해야할 일이지 않나 싶다. 기본적인 예의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도움이 되는 책으로 꽂힐 예정이다. 가야에 대한 다른 정설이 등장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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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고고학자의 46년간에 걸친 집념어린 연구의 결과물이다. 평생에 걸친 연구가 마침내 끝이 났을 때 저자가 눈물을 흘렸듯, 나 또한 그만큼은 아니어도 350여쪽의 책장을 덮는 순간 큰 일을 해낸듯 후련함과 감동에 잠시 젖어들었다.
고고학자 김병모의 역사 추적의 시작은 젊은 날 뿌려진 의문에서 출발한다. 1961년 저자는 수로왕릉 정문 앞에 그려진 한쌍의 물고기에 주목한다. 그 때 마침 곁에는 마음 속에 둔 여자, 허미경이도 있었다. 먼 옛날,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이 가야 수로왕의 배필이 되었다. 그 후 가야의 역사는 번창하지만 그 후손들이랄 수 있는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동성동본으로 생각되어 오랫동안 혼인이 금지되었다. 이에 저자와 허미경,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사랑의 아쉬움이 너무 짙어서일까? 이 후 저자의 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된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쌍어문을 추적하여 그 의미를 밝히는 한 편, 허황옥이 과연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밟아 왔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저자는 오지도, 사막도, 박물관도 누비며 끈기있게 연구를 진행해나간다. 그 결과 쌍어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부터 일본에 이르기가지 광범위하게하게 발견되며, 대체로 귀한 것을 보호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알아낸다. 정말 저자 스스로가 고백했듯이 쌍어교의 신자가 되어 생선도 먹길 꺼리는 지경에 이르니, 마침내 물고기가 조금씩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가운데 이루어진 연구 업적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의문을 품고 풀어나가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한 편 '마음 속의 님'이랄수 있는 허황옥은 어떠한가? 인도 남동부 아요디아가 고향인 허황옥 일족은 월지족에게 쫓겨 중국 사천 지방에 자리잡았고, 그 후 무한 지방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서기 48년, 황해를 건너온 16살의 인도 소녀 허황옥은 수로왕의 배필이 되고 이로서 가야국의 역사는 시작된다. 지금 글로서야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긴 세월,식지 않는 정열을 바친다.
동서고금을 누비는 저자를 쫓다보면 다소 벅차기도 하다. 읽다가 순간 순간 나라 이름이며 지명이 잘 안 떠오르기도 해서, 지도를 펼쳐 놓고 두 번 읽은 끝에 따라잡은 책이다. 한 가지 스치는 의문도 있다. 수로왕이 허황옥에게 한 말 때문이다. "나는 나면서부터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이제 현숙한 그대가 스스로 왔으니 이 몸은 행복하오." 이로 보아 두 사람의 혼인은 미리 정해져 있었고, 따라서 허황옥은 결혼 예물까지 갖추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혼인까지 할 정도인 것을 보면 양쯔강 유역, 무한땅의 허씨 일족과 가야와는 이미 그 이전에 상당한 교류도 있었을거라고 추측이 된다. 그렇다면 분명 두 지역간의 교류 내지 친선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나 유물도 남아 있을텐데, 쌍어문 말고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 걸까? , 내가 이 후의 연구 성과까지 몰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이 부분까지 밝혀냈다면 더 시원한 책이 되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한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과연 뭘까? 젊은 날에 마음 속에 뿌려진 사랑, 의문의 씨앗, 관심의 씨앗, 이런 것들이 평생 한 사람을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들 마음 속에 동면하고 있는 씨앗이 있다면 한 번 깨워보게하는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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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김해에 있는 수로왕릉을 구경간 적이 있다. 김수로왕에 대해 알고싶다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오히려 그의 부인이었던 허황옥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버린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 같다. 허황옥의 루트라, 그녀는 진정 인도에서 온 여인이었을까..
수로왕릉에 가면 머리를 마주한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진 나무판을 볼 수 있다. 파사의 석탑과 함께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물건들인데, 단일민족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우리들의 역사 속에 진정 국제결혼이 있었던 것인지 책장을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게 된다.
역사서에서는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쓰여있고, 저자는 그 아유타국의 실체를 찾기위해 추적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아유타란 이름과 비슷한 인도의 아요디아를 찾아가기 위해 인도행에 몸을 실은 일행들은 도중에 파키스탄에서 쌍어 그림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수소문을 해보아도 파키스탄의 토착문화가 아니기에 간다라의 쌍어문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연구를 하는 사람도 없다. 드디어 도착한 아요디아, 쌍어는 사원의 정문에도 있고, 집집마다의 대문에서도 볼 수 있다.
가락은 구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하고, 가야는 신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 한다고 한다. 수로왕릉에서 보게되는 쌍어문 결코 우연만은 아닐 듯 하다.
허황옥의 시호는 보주태후인데 여기서 보주를 출신 지역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한다면, 중국 지명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있다. 보주는 지금 사천성의 안학현 땅이라고 하며, 그곳에 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또한 사천 지방은 그릇받침에도 쌍어문이 그려져 있고, 사천 남쪽인 운남성 부근과 무한 지방에서도 쌍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흥미롭다.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의 출신 지역에 대한 추적은 신화가 현실적 역사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허황옥의 선조들은 아요디아이고, 중국의 보주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허씨 집단 그리고 쌍어가 가지는 의미들을 알게 되는 숨 가쁜 역사 추적 여행길의 동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하나 하나씩 추적하는 일이 아주 재미난 여행 테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역사지를 탐방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근원까지 추적해 들어가는 역사 여행은 우리의 역사 의식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깊이 있는 생각들을 낳지않을까 싶어, 꼭 실천해보고싶어지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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