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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에서 다산 정약용과 백범 김구 선생은 학생들이나 어른들에게 두고 두고 회자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치정인들은 늘 김구를 팔아먹으면서 그 의 삶에대한 궤적을 이용해먹는다. 역시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도 함께 우려먹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단지 그 당시에 내가 태어나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역사적 맥락에서만 느깰 뿐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겠나 싶다.
조선 정조正祖,1752~1800때 출신성분에 따라 노론老論 과 소론少論, 남인南인과 북인北人,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갈등은 오늘날 호남과 영남의 갈등 동서의 갈등과 마찬가지로 피비린내 나는 정치노름으로 조선의 500년 역사가 뼛속깊이 백성들 가슴에 묻혀있길래, 작금의 국민들에게도 남북분단 보다 더 심하게 사분오열 가뭄에 논밭이 갈라지듯, 정당을 대푯성을 가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은 안전眼前에도 없고 그들만의 피티기는 전쟁을 일삼는다.
당파黨派와 당색黨色으로 인해 가장 든든한 정조의 죽음으로 인해 다산의 불행은 가속화된다.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화辛酉士禍에 연류되어 경상도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이라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나라는 쑥대밭이 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대쪽 선비의 나라 사랑과 자식교육에 대한 애절한 삶의 통곡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다산의 학문은 너무 앞서 갔나보다. 다산과 인연이 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다산의 저서를 보고 시대적 상황으로 봤을때 " 좀더 세월을 기다려야겠네. 지금 세상은 선생님의 원대한 이상과 개혁 정책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이해해줄 사람도 많지 않네. 허나 후세에는 반드시 선생님과 같은 열의를 지닌 사람이 있어, 남기신 책들의 내용을 풍부히 하고 더욱 빛나게 할 것이네. 소중히 간직하고 때를 기다리게." 다산은 앞서간 사상가다.
정치적으로 가혹한 기나길 세월속에서 아들 학유學淵와 학연學遊과 아버지의 두물머리兩水理의 남한강과 북한강을 하나로 묶어 한강을 도도히 흐르는 삶에서 갈기갈기 찢긴 강진의 짠 바닷물이 되어 파란만장한 가족사의 통해 끈질긴 학유와 다산의 끈질긴 인연의 사슬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 보다 더 도도한 그 무엇인가 뭉클한 냉가슴을 적셔준다.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나라를 바로세우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하기위해 500여권의 집필한 다산의 기골에서 정치와 경제 자식교육에 대한 방향제시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유유히 우리들의 삶에 녹아 채찍질한다.
하늘이 허락해준 짧은 시간이 곧 우리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아들 학연의 편지에 대한 답글 "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과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여기에 또 네 가지의 등급이 나온다. 가장 높은 것은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옳음을 지키고도 해는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쫓아 이익을 얻는 것이고, 가장 낮은 네 번째 등급은 그름을 쫓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 지침은 타락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도 남을 만하다.
절망에 갇힌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삶에 대한 주름도 곰곰히 체화하는 글귀.
"흐르는 물처럼 순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세상의 미끈한 겉만 바라보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한번쯤 곤두박질쳐져본 사람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그 사이사이 세세하게 잡힌 세상의 주름까지도 눈에 보입니다.다산은 세상의 주름, 곧 나라와 백성의 생생한 현실을 보아야만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왜 학문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배의 형벌 이상으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포용하고, 생각을 대범하게 키워나가도록 학연과 학유에게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라 두 아들의 심장에 심어준 정신은 꼽십어 실천할 덕목이다.
단 하루도 , 단 한 시각도 허투루 보낸적이 없는, 마치 강물이 유유히 쉼없이 흘러가듯 유배생활에서도 다산은 온전히 자신을 연소시켜가며 사람만이 본능을 넘어 스스로 자기행동을 결정할 수있기에 공자의 인仁사상은 곧 사람과 사람사이에 본분을 다하고 반드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만 '인仁'을 실현될 수 있다는 정신은 물질계에 가혹하게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다산의 혼魂이 가득 더 넓게 전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친구간의 우정에 관해서도 깊이있는 덕목이 살아숨쉰다.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종은 술 꾼 몇 사람과 서로 좋아 지내며 객쩍은 소리나 하며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둘째 아버님이 학유에게 들려주었던 " 바람이 사납게 일어나고 물이 거세게 치솟으면, 과연 어느쪽이 끝까지 곁에 남아 있겠느냐"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약종의 술 친구인 이유수와 윤지눌 어른이 다산에게 편지로 걱정해주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기경과 강준흠 특히 이기경은 다산의 친구였지만 목숨을 빼앗지 못해 안달이 난 인물이다. 역시나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의 이치가 딱 들어맞는다. 알수 없는 사람의 마음, 친구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핏줄과 감정의 극단을 제 3의 요인에 의해 겪었던 다산의 가족사에서 핏줄이란 단지 몸안의 붉은 피가 흐르는 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핏줄을 통해 피톨이 몸부림치는 아픔이 내 몸 안으로도 흘러든 것, 마구잡이로 퍼부어지는 굵고 기다란 몽둥이에 내 살갗도 터지고 피가 흐르는 것처럼 아픈,사람의 감정 중에서 그리움이나 회한은 골수에 사무친다고 한다.오직 혼자서만 삭이고 견뎌야 할 뿐 누구와도 좀처럼 나누기 어려운 감정이다. 오죽하면 단단한 뼛속하고도 더 깊숙한 곳, 골수에까지 닿아 사무친다고 했을까.
두물머리兩水里의 남한강 북한강은 하나되어 한강으로 유유히 흐르건만 두물머리에 띄어진 나룻배는 다산의 형상으로 24시간 떠 있구나. 아직도 동서갈등과 분열로 사분오열된 이 나라의 정치는 텅빈 깡정치만 일삼고 있으니 누군가를 탓해봐도 결국 가장 괴로운 것은 자기 자신인줄 알면서도, 다산의 정신이 온나라에 스멸들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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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어제 도서관 봉사 갔다가 빌려온 책입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다른이보다 유독 느리기에 며칠을 생각하고 빌려왔지요.
내가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가 되어 어느새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표지의 그림속 뱃머리에 앉아 앞만 응시하는 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산의 저서 중 많이 알려진 몇권의 제목과 내용, 오로지 지식을 채우는 목적으로만
기억하려 했던 게 부끄럽게 다가옵니다.
딸의 혼례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보낸 시그림
훨훨 새들 날아와 뜨락 매화나무에 앉았네.
매화꽃향기 가득하니 사모해 찾아왔다네.
가지마다 네 보금자리, 즐거이 지내거라.
꽃 피어 화려하니 열매도 풍요로우리.
- <매화와 새 그림>, 정약용,1813년 -
해배를 위해 다산을 유배지로 내몬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려 하는 아들에게 보낸 답장.
아들에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음을 알고 있으니 마음을 크게 먹고 세월을 기다리라는 편지를 읽고 통곡하는 큰아들.
나도 같이 눈물이 흐릅니다. 그동안의 아버지를 향한, 가장의 마음씀이 서러웠겠지요.
자리에서 일어나야겠습니다.
오늘도 도서관 봉사날. 즐겁게 책 읽는 아이들 속으로 빠져드는 행복을 맛보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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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 후기 실학자 중에서 태산처럼 걸출한 분이셨다.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여러 종류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선생의 서간집이나 선생의 언행에 관한 책들도 매우 많다.
선생은 20세 무렵에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 연간에 왕의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하였지만, 남인 출신이라는 멍에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른바 사회의 '메인 스트림'이라는 집단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 국가와 인민의 안위는 돌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예외가 없을 듯하다.
당시의 주류는 '노론'이었다. 노론은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당파인데, 서인을 찾아올라가자면 율곡 이이 선생에까지 이른다. 율골 선생은 생전에 당쟁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선생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인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서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들자면 송시열 선생이 있다. 송시열 선생은 효종 연간에 북벌 정책을 시행했던 인물로서, 사후에는 '송자'로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서인은 이후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다. 서인의 상대 당파인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다. 다산 선생은 동인에서 갈라진 남인에 속하였고, 주류는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이었던 것이다. 역시 동서고금을 통해 일치하는 것이 주류는 보수적이라는 것이고, 재야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당시 노론은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세계는 서양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때로서 일본을 비롯한 동양 여러나라도 세계의 조류에 조금씩 눈을 떠가던 때였다. 주자학적 세계관이 그 한계를 드러내던 때였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조선 사회도 조금씩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만일 그 파열음에 귀를 기울이고 세계의 조류에 조금이라도 부응했더라면 조선이 일본에 강점, 합병되는 불행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산 선생이 활동하던 때의 진보적 성향의 학문은 바로 '서학'이었다. 수 백 년간 인식의 세계를 지배했던 성리학과는 다른 학문, 성리학이라는 약물에 취해 몽매하던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하는 학문이 바로 '서학'이었다. 이는 당시 성리학적 세계관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것에 동반한 자연스런 학문 조류의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 발전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론을 중심으로한 주류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그 역사적 흐름을 막으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서학의 탄압이다. 영조와 정조는 이른바 '탕평책'을 기치로 하여 각 파당의 인물을 골고루 등용하는 정책을 폈다. 그 때문에 많은 남인들이 정계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정조 때의 명재상으로 일컬어지는 채제공 선생도 활약할 수 있었다. 다산 선생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승승장구하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자 모든 상황이 변했다. 마치 현재 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켜 집권하자 지난 정부의 정책을 모두 부정하며 그 이전으로 회귀해버린 현 정권을 보면 당시 정조 사후의 조선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순조가 어린 나이에 등극하자 영조의 후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정순왕후는 정조 생전에 서로 대립하던 사이였으므로 정조가 시행했던 많은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노론들은 눈에 가시 같았던 다른 파당, 특히 정계에 많이 진출해서 활동하던 남인들을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이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 바로 '신유박해'이다. 신유박해는 표면적으로는 서학, 특히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었지만, 실속은 남인을 숙청, 축출하려는 술책이었다.
다산 선생은 이 사건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특히 다산 선생 집안은 천주교와 매우 밀접했기 때문에 그 마수에서 전혀 벗어날 수 없었다. 다산 형제들이 처음으로 서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인물이 이벽인데, 이벽은 다산 형수의 동생이고,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았다는 이승훈은 다산의 매형이며, 이전에 신주를 불태워서 벌어졌던 '진산사건'의 한 인물이 윤지충은 다산의 외가 4촌(혹은 6촌)이었던 것이다. '황사영 백서' 사건을 일으킨 황사영은 조카 사위이다. 그 박해 사건으로 인해 다산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참수형을 당하고 둘째 형 정약전과 다산 선생은 유배를 가게 된다. 신유박해 처음에는 경상도 장기로 갔다가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서는 전라도 강진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의 시각에서 그린 것이다. 다산 선생은 유배 중에도 그 지역의 많은 자제들을 가르치고 사서육경을 비롯한 서적을 주해, 정리하고 목민심서, 경제유표 등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면서 아들들인 학연과 학유에게 부단히 편지를 보내 학문의 뜻을 버리지 말고 끊임없이 연마하도록 종용한다. 하지만 이미 폐족으로 떨어져서 출세의 길이 막혀버린 학유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뜻에 부응할 수가 없다.
학유는 아버지가 유배 간지 수 년후에 아버지에게 간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으면서 다시 학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냉담하게 대한다고 여겼던 큰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장삿길로도 떠날 수 없는 처지라 점차 가세는 기울어가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형 학연은 인삼 농사를 시작한다. 둘째 아버지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사망하고, 곧이어 학유의 처도 나이 30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과로로 인해 죽는다.
18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산 선생은 해배되어 두물머리 소내로 돌아온다. 다산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학유는 아버지의 저작들을 보면서 그것을 간행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통해한다. 친구이기도 했던 추사 김정희는 다산 선생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로써 그를 위로한다. 실제로 다산 선생의 방대한 저작은 1938년에 이르러서야 '여유당전서'라는 제목으로 활자화되어 대중들에게 배포되었다.
이 책에서는 다산 선생이 유배를 간 후 남아 있는 가족들의 고난과 아픔을 아들 학유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다산 선생의 이야기를 보면 온통 다산 선생이 하나의 우주이지만, 사실 남아서 부대끼며 살아남아야 했던 가족들도 또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아버지와 자식 간에 통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혈육의 정을 행간 곳곳에서 느끼게 해준다. 작가 안소영의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도 매력적이다. 청장관 이덕무를 주인공으로 쓴 '책만 보는 바보'에서 느꼈던 깔끔하면서도 감칠맛나는 글을 다시 읽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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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은 안소영의 책을 보고, 그만 반하고 말았다. 뛰어난 글솜씨와 아늑한 그림이 일품이었다.
최근 신작 '다산의 아버님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책이다. 아들의 눈으로 본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 그의 성품과 지식과 개혁에 대한 열망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잔잔하게 그려진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들의 불편한 심정도 고스란히 뭍어난다.
당시 몰락한 양반 사대부가의 생생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안소영은 새롭게 역사를 읽는 법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의 저작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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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살 나이에 귀양을 떠나는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정약용의 둘째아들 학유가 이제 스물셋이 되어 7년만에 아버지가 계시는 초당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가 자신을 못알아볼까봐 내심 초조한 아들의 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도 함께 다산 정약용을 만나러 간다. 아들 학유의 입장에서 썼지만 다산 정약용에 대한 많은 자료와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어린 독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학자의 아들답게 감수성어린 눈으로 모든 산천을 보고,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도 보고 있다. 아들 학유가 아버지가 가셨던 귀양길을 그대로 밟아가면서 아버지가 읊조리던 시를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우리도 학유의 심정처럼 대학자가 유배의 길을 떠나던 억울한 심정을 함께 짐작해보고 느낄 수 있다. 길을 가며 이제 청년이 된 학유는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아버지가 유배가시던 일을 떠올린다. 정약종의 천주교관련 서적이 발각되면서 집안식구들 모두가 고문을 받게 된 이야기부터 ‘모두를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이라고 주장하던 노론 세력과 당시의 정황들까지 알 수 있다. 유배지인 강진에서의 정약용의 생활과 제자들, 그리고 벼슬을 지내던 시절의 정약용도 물론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유배지에 남편을 둔 지어미들의 모습과 자식들의 모습도 그리려 한 점이 새롭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정약용의 형님들과 그 가족들의 슬픔까지도 그려내고 있다. 책은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소내로 돌아오게되고, 소내에서 생을 마감하기 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다시 환갑을 맞은 아들이 아버님의 저작들을 정리해서 펴내지 못한 회한의 글로 마치고 있다. 아들에게 내내 편지를 쓰며 유배지에서 아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정약용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그 아들이 이렇게 아버지를 살뜰히 생각하고 존경했으리라 짐작한다. 부자간의 정이 정약용이 그림자마저 아끼던 국화향기처럼 향기롭게, 그리고 소내의 강물처럼 책 전체에 유유히 흐른다. 감동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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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한다. 다산 정약용은 말년에 18년간 유배생활을 했었다고. 아주 먼 옛날 사람이기에 18년이란 기간이 얼마만한 시간인지 헤아리지 않고 쉽게 이야기한다. 즉 그 시간의 길이를 지금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길이와 같다고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나를 대입하거나 같은 선상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냥 긴 인생에서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보았고 그렇게 생각했다. 정약용이 유배를 간 것은 반대 세력들의 견제 때문이었으며 18년 있다가 풀려났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시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로만 나타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 역사서를 읽다 보면 유배 가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실은 본인 한 명 한 명에게 결코 쉬운 생활은 아니었을 게다. 어디선가 다산의 경우 유배지에서도 아들을 불러 공부를 가르쳤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걸 보며 자식에 대한 가르침이 대단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부분은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가장이 유배를 갔으니 형편이 힘들고 사람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들의 삶으로서의 고민에 대해, 가족으로서의 고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질 않았던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 난 것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리고 결코 세월이 가서 풀려난 것은 아니었구나를 새삼 느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남의 일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그들에게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을 그러한 일들이 지금도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착잡하다.
다산의 둘째 아들인 학유의 입을 통해 정약용을 다각도로 알아가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유배지에서의 생활이나 풀려나는 계기 등을 그저 남 얘기가 아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접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차갑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학유가 된 것처럼 분개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다산에게 화도 내 가면서 그렇게 책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다산의 생활이나 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인간 정약용과 그 가족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아, 정말 당시 잘 나가다가 차갑게 변해버린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분노는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몰락한 가정에서 기 못 펴고 살면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자식이 얼마나 될까. 그런 모든 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과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정학유의 생각이었을까 궁금할 정도로...
작가가 철학을 전공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을 많이 한 탓인지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시 같았으며 한 귀퉁이에 써 놓고 다짐해볼 그런 말들이었다. 단순히 유배 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자식으로서의 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애환이 있고 개인의 고민이 있으며 세상의 부당함을 혼자 어쩌지 못해 좌절하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비굴한 속내가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정조가 죽음으로써 예정된 수순인 내리막길을 걷게 된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을 만나는 기회였으며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만나는 기회였다. 위대한 실학자 정약용과 그 아들이 아니라 인간 정약용과 그 아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초당으로 찾아가는 길을 읽는데 왜 자꾸 서애가 후학을 가르치던 병산서원 갔던 길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둘의 처지가 확연히 달랐겠지만 제자를 대하는 태도와 학문을 대하는 모습만은 같았을 것이다. 해남 대흥사(대둔사)의 초의 선사와 김정희의 일화가 생각나기도하며 언젠가는 꼭 해남을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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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용을 동생으로 둔 것이 오랜 세월이다. 그간 형제로 지내오면서도 그의 지식과 역량이 여기에 이를지 몰랐다.하늘이 천하의 의혹을 풀고 어지러움을 바로 잡으려 할 때에는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문왕은 갇혀있을 때 <주역>의 원리를 알아냈고, 공자는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춘추>를 지었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답답하고 맺힌 것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펼 수없는 사람이다. 만일 약용이 부귀하고 영화로워 안락한 삶을 누렸다면 이러한 책을 쓰지 못했을거다. 내가 섬에 유배되어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나, 약용과 같은 시대에 살고 한 형제가 되었으며 이 책을 읽고서 서문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아! 약용 또한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이다. (정약용의 '주역사전' 서문 중에서)
고통과 절망도 컸지만 형이 있고 아우가 있어 적적치는 않았을 그들이다. 茶山은 5형제였다. 배다른 어머니에게 난 첫째 형 정약현과 흑산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자산어보>의 주인공인 둘째형 정약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과 결혼한 세째 딸, 그리고 천주교 신자가 돼 신유박해때 처형된 정약종과 막내인 정약용이다. 또한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부리부리한상으로 많이 알려진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기도 하다. 해남윤씨 가문인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가 증조부이며 지봉 이수광이 외증조부,. 그러니까 다산이 공재의 외증손이 되는 것이다.
이 가계도를 보면 범상치 않은 학식과 인품의 가문인 것만은 분명해,. 행동하는 지식으로서의 다산의 열정도 뜨겁거도 차가웠던 혈통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정약용을 중신으로 한 삼세대만의 흥망성쇠를 보더라도 화려한 영광만큼이나 피로 얼룩진 것 또한 이 가계다. 신유박해를 필두로 이후 이뤄진 몇 차례의 박해로 인해 이 가문의 형제 손자들 중에는 죽은 이가 허다하고 노비로 팔려가거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조용히 묻어갈 범부의 세상을 살지 못한 것이다.
신유박해에 휘말려 기나긴 유배생활을 해야했던 정약용은 뒷산으로 차밭이 많다고 지어진 강진 다산초당에서 18년을 지냈다. 삼십대 뛰어난 기량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고 수많은 발명품과 학문적 성과를 이룬 그였지만 모진 고문으로 몸이 망가진채 사십대와 오십대를 타향에서 보내야했다. 천주교를 학문으로 접한 것이 죄라면 죄고, 너무 튀었던 것과 곧았던 것이 죄라면 죄, 한 인간의 세월을 앗아간 형벌이 참으로 가혹하다. 20년 가까이 강진을 벗어나 그 어디도 갈수없는 감옥살이를 하는동안 스스로를 다독이고 완성시켜 나갔을 그는 못다꾼 꿈을 그리며 많은 후학과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겼지만, 기나긴 타향살이에 고향과 가족을 등져야했던 그의 슬픔과 회한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곧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 그대로이기도 했을거다.
때는 섣달, 천지 모두 얼음인데 눈서리 찬 기운에 수심만 더하옵고 깜빡이는 등불 아래 홀로 앉아 있노라니 그대와 이별 칠년, 만날 낳은 아득 또 아득 <강진, 유배지로 보냅니다> 홍씨 혜완
천리 밖 두 마음 옥인 듯 맑고 찬데 애처로운 사연보니 그리운 맘 더욱 깊소 나 그리는 그대 생각에 잠이 들고 잠이 깨고 그대 그리워하다 보니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아내가 보낸 시의 운을 빌어> 미용(정약용의 자임)
<다산의 아버님께>는 <농가월령가>를 지은 다산의 둘째 아들 '학유'가 다산의 고향인 소내(지금의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강진에 유배중인 다산에게 보낸 글로, 아버지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는 글이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돌봐야한 탓에 일찍 어른이 된 형과 아버지의 억울함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울화가 오고가는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했던 둘째와 그리고 아내와 주위 친지 가족들... 상처와 공포, 슬픔 속에 갇혀버린 그 세월이 만만치 않았을거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세상의 가혹함을 알게 된 학유의 나이가 열 여섯. 꿈많던 청년이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세상사람들의 야박한 인심에 투정도 해보고, 아버지의 높은 학문을 따라가지 못해 자책을 하면서도 학문으로서 성숙해가기도 하며, 또 아버지의 학문을 세상에 잘 전하지 못함에 책임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꼈을 아들. 그리고 세상 풍파에도 아들의 이상이 꺾이지 않기를 바라며 학문에 정진하기를 다독였던 다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기도 한 이 글은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러나 다산의 작품들과 연구서, 오고간 서간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 사실에서 우러나온 그 애닮픔이 크고 넓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고 세심하게 다산과 가족들의 세세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비치고 보듬는 글이 쉽고 따뜻하여 금방 읽히는 편인데, 글이 진실되게 다가오는 것이 아마도 아버지와 옥중서간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던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지 않나 짐작해 본다.(*안소영 작가의 아버지 안재구 교수는 유신철폐를 외쳤던 사회운동가로 남민전 사건 등으로 감옥에 여러 차례 갇힌 적이 있다고 한다.)
만년에 다산은 호를 사암(俟菴: 기다릴 사에 책력 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음 시대를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못다한 이상과 포부를 펼칠 수 있고 그가 이룩한 저술이 세상의 빛을 보고 실행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의 글들이 아직도 찾아지고 요구되어지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이 더욱 험악해지니,. 만년의 호가 무색하다. 따뜻한 성정의 아들들을 생각하며 몇해전 찾았던 다산초당을 다시 찾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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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를 감명깊게 봤던 나로서는 저자만 보고 믿고 선택한 책이다. 그간 내가 알았던 달달 외우던 정약용의 저서들.. 수박겉핥기식의 배움에 나의 부족함을 느끼며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다. 읽는내내 가슴 먹먹함에 먼 산을 보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삶에 있어서 힘들게 다가오는 것들은 그 나름의 깊이와 의미가 있다는걸 다시 한 번 느끼며 위대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주변사람들과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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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2학기 국어 필독으로 채택되어 중간고사에 포함시킨 중요한 책이다 글밥이 제법 많아 내용을 술술 읽어가기가 버거울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추천하고픈 책이다. 읽어 내려가다보면 찐한 느낌과 감동이 느껴지며 옛 삶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몰려온다 아이들에게 추천하고픈 값진 보석 같은 도서임이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