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인물인 공자의 말씀을 담은 책으로 아이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로 논어는 공자가 썼을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논어는 공자가 직접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그와 나눈 이야기와 공자가 한말, 정치가 혹은 은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청소년들을 겨냥한 책 답게 친구 사귐과 신의를 중요시 했음을 담은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공자의 말씀중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친숙한 내용이 많아 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이지 고전]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쉽게 나온책이라 하지만 ''논어''라는 제목에서 오는 부담감에 아이가 읽으려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겨 먼저 읽어보라 했더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계속해서 읽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뿌듯~) 중국의 혼란의 시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정치적인 뜻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상이나 철학, 교육등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알게된다. 이 한권으로 논어를 파악했다기보다는 논어가 어렵지 않음을 인식시키기에 더할나위 없는 가교역할을 할것으로본다. 또한 부록으로 나오는 통합논술은(따로 떼어 사용 가능) 내용을 다시 한번 다지면서 논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독해력과 수준 높은 논술의 활용을 보여주고있다. 논술의 키포인트인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도 고전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있다.다. 덧붙여 삶을 살아가는데에도 공자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인생의 스승을 가까이에 모실수 있는 특별한 만남이 될것이다. (이 책이 아이의 인생에서 특별한 만남의 선물이 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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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읽을 수 있게 정리된 EASY 고전 시리즈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 2006년에 나왔으니까 출간된 지는 꽤 되었다. 동서양의 주옥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한국의 명서, 그리고 여러 과학 고전까지 정리해준 시리즈라서 고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했다. 판형도 작고 아담한 데다가 기껏 많아봐야 150페이지를 넘지 않는 분량이라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표지도 어찌나 알록달록한지 한 자리에 다 모아두고 보면 색감도 아주 예쁘다. 이번에 본 『노자의 도덕경』은 연한 보랏빛 표지로 된 아담한 책이 분량도 121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아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어른인 내가 읽어서 어려운 중고등학생 책이라면 실제 중고등학생들에겐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이 책만큼은 그 이면의 의미까지는 다 못 파악하더라도 충분히 한 권을 다 읽고 그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될 정도의 난이도라 누구나 권해줘도 무리가 없을 게다. 예전에 두리미디어에서 나온 철학 책을 하나 읽기 시작했다가 상당히 어려워서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한 채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컨셉이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뭐, 이런 종류의 것이라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청소년 용으로 나온 책이라도 내가 읽을 수준으로 쉽게 나와있지 않으면 쉽사리 도전하지 않는데,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이 시리즈는 처음 도전한 이 책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다른 책도 계속 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겠다 여겨진다.
사실 이 책말고도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고전책을 몇 권 정도 봤기 때문에 이 책이 쉽게 느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봤던 다양한 내용들이 지금 이 순간에 기억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배경지식 덕분에 이 책이 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이 책이 쉽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쉽사리 이런 책을 접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읽어서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하나도 없건만, 아니 그런 책은 권해주지도 않건만 머리가 컸다고 권해주는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은 안타깝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책도 많이 봐본 사람만이 그 재미를 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책을 좀 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다. 현란한 영상의 시대에 고루하게 활자를 들여다보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것이 맞는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노력을 헛되이 여기지 않아서 책을 읽는 만큼 즐거움과 참된 깨달음을 준다는 것만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어떤 제테크보다도 그 남는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문학의 위기라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인문학이 많이 강조되는 이때에 이런 책쯤 읽어두면 좀 좋은가? 하여튼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추천해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른용으로 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배경지식을 깔아두기 위해서라도 청소년 책을 읽어보자 마음 먹었다.
먼저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책 밖에서 노자가 어떤 인물인지,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때인지를 간략하게 알려준다. 사실 그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문헌은 사마천의 『사기』인데, 이 책에서는 신빙성이 없는 내용은 그렇다고 자세하게 밝혀놓아서 노자라는 인물의 실존이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책에 없는 그가 한 벼슬에 대한 기록이 있어서 학계에선 그 기록을 사실로 추정한다. 당나라의 이연은 그와 같은 성을 가진 노자를 조상으로 추존했고, 평민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고, 공자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까지 받은 존재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인 ‘도덕경’이란 책도 본인이 쓴 것이 아니라 윤희라는 사람이 은거하러 들어가는 노자에게 한 수 청해서 받은 글이라는 설만 있을 뿐, 정확히 누가 썼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하니, 노자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신비스러운 내용 뿐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데다가, 노자 연구서만 1700 여 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서양에서도 10대 고대 작가 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았다고 하니까 그의 인기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인들이 반색하며 받아들이는 노자의 사상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2부 책 속으로 들어가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3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왕이나 제후가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가다가 욕망의 싹이 트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을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아 놓으면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 일지 않고 잠잠해지면 천하는 저절로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제37장, p. 49-50)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첫 번째 문장,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는 것이다. 마치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자연의 질서처럼, 도는 규칙성은 있되 그 안의 어떤 의도나 목적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휴일에 가만히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도 했다가 책도 봤다가 뒹굴었다가도 친구에게 전화를 받으면, “아무것도 안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의식 안에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없기에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안하는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제1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짜 도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진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제1장, p. 41)
일견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이 말은 도의 무궁무진성, 전지전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도는 사람들이 이러저러하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인간의 말로 표현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것에서 그리 심각하게 숙고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연 현상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 현상의 원인을 파고들어가면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그런 이유처럼, 도도 인간의 설명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원인이 되고, 모든 변화의 이유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 도이다.
그렇기에 하늘과 땅은, 모든 만물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공자는 하늘이 선하기에 인간이 선하지 않으면 그에 맞는 벌을 하늘에서 내린다며, ‘인’을 강조했지만 노자는 도에게는 어떤 목적 의식도 개인적인 감정도 없기에 자연은 인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이든 현자이든 아무것도 우리는 존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통치자가 그런 것을 강조했던 것은 백성들을 좀 더 편하게 지배하기 위해, 그러니까 좀 더 쉽게 백성들의 이익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며 도덕이니 법이니 하는 것은 오히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까지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공자는 도덕규범이 사라졌기에 사회가 혼란해졌다고 보았다면, 노자는 도덕규범이 세상에 들어왔기에 사회가 혼란해졌다고 본 것이다. 처음에 들으면 황당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묘하게 수긍하고 싶은 구석이 있는 노자의 주장이었다.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가 작은 촌락 같은 자그마한 국가로 본다면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많고 국토가 넓은 나라라면 여러 제도나 통치 법규가 필요할 테지만, 노자가 바라는 사회에서는 법조차도 무용지물일 테니까 말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법 체계나 도덕 체계를 다 쓸모없는 것으로 본 노자이기에 그가 공자에게 범접할 수 없는 도인과도 같은 인물로 여겨진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역설적인 그의 사상이 오히려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냈기에 아주 훌륭하다. 57장에서는 요즘 우리에게 특히나 문제가 되는 ‘상대적 빈곤’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세상에 금지하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 사람들이 편리한 도구를 많이 사용할수록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사람들이 기술과 재능을 많이 발휘할수록 신기한 물건이 더욱 많이 나타난다. 법령이 많을수록 도적도 많아진다. (제57장, p. 79)
그 당시에도 상대적인 빈곤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웠나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진리처럼, 적어도 전국 시대 이전의 사람에게서 현대의 문제점까지 지적을 받다니, 그의 사상이 왜 지금까지 왕성하게 연구되는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결국 노자는 세상의 모든 인위적인 것을 벗어버리고 자연의 원리로 돌아가서 마음을 비운 채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진 것이 많아서 과거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근심을 싸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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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은 그 내용이 매우 독특하여 영어권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은 번역본이 있다고 한다. 도덕경은 한자로 5,000자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시적인 운율을 가지고 있으며, 압축된 표현 속에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혜안과 풍부한 지혜가 담겨 있다. 도덕경은 형식면에서는 모든 구절에 상징과 압축이라는 두 가지 표현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내용 면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틀을 넘어서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노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고, 조금 깊이 빠져 들다 보면 직접 번역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은 구절들을 오랫동안 음미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도를 깨닫듯이 막힌 부분이 술술 풀려 도덕경을 자신이 깨달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번역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책보다 번역서의 종류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덕경은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부터 제37장까지를 <도경>이라 하고 제38장부터 제81장까지를 <덕경>이라고 한다. 도덕경 사상의 핵심은 무위와 자연에 있다. 무위와 자연은 바로 도를 형용한 말이다. 이 두 가지는 흔히 '무위자연'이라는 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다. 노자는 이 무위자연이라는 단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모든 학설과 주장을 비판했다. 도덕경은 유위를 기반으로 하는 인류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문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노자는 우주 자연의 이치에 대한 매우 객관적인 이해를 기초로 이런 주장을 했다. 그는 인간의 행위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자연이 운행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 점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도덕경은 도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도교는 도가의 민중 신앙적 표현이다. 후한대에 발생한 도교는 억압받는 민중의 여망을 담아낸 종교였다. 도교는 아주 오래전부터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던 신선술과 노자의 도덕경 이론이 만나 성립된 종교다. 도교에서 노자는 '태상노군'이라는 신으로 모셔진다. 도교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주로 문학이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최치원, 윤선도, 정철, 허균 등 많은 문인들의 문학 작품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우리 민간에 유행하던 풍속 중에서도 도교와 관련된 것이 아주 많았다. 나도 한 때 신선이 되기 위해 깊은 산중 마을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수련을 쌓았으나, 끈기 없고 게으른 성격 탓에 신선은커녕 도사도 되지 못했다. 무위자연을 실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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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공자가 한 말이나 제자들, 정치가들 혹은 은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논어라는 제목 자체가 의논(論)하여 편찬한 말(語)이라는 뜻이다. 논어를 편찬한 연대를 두고는 논란이 있지만, 대략 전국 시대 중기에 공자의 제자들이나 그 제자의 제자들이 편찬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논어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진 것은 한나라 때이다. 진시황이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 실용서를 뺀 대부분의 고전을 불태우고 많은 학자들을 잡아다 매장시켜 버린 일을 '분서갱유'라고 한다. 논어도 이 험악한 세월을 피해 한동안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제나라에서 전해진 <제논어(齊論語)>, 노나라에서 전해진 <노논어(魯論語)>, 공자의 옛집 벽에 감추어 두었던 <고논어(古論語)>, 이렇게 세 종류의 논어가 나타났다. 이러한 책 중에서 한나라 때 장우(張禹)라는 사람이 <노논어>를 중심으로 최초의 교정본을 만들었는데, 지금 전하는 논어가 바로 이것이다. 송나라 때 주희(朱熹, 朱子)는 <논어>를 <예기>의 한 편이었던 <대학>, <중용>, <맹자>와 함께 묶어 사서(四書)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네 권의 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주석을 달았다. 주희가 해설한 주석본은 이후 원, 명, 청 시대에 과거 시험의 교재로 채택됨으로써 다른 학파의 책들과 구별되는 '성경'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이루어졌고 각 편마다 학이(學而), 위정(爲政)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각 편의 처음 두 글자나 세 글자를 딴 것일 뿐 별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즉, 학이편이라고 해서 학문에 관한 말이 집중적으로 나오거나, 위정편이라고 해서 정치에 관한 내옹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논어의 내용을 주제별로 분류해보면 대략 ① 개인의 수양에 관한 교훈, ② 사회 윤리에 관한 교훈, ③ 정치론, ④ 철학론, ⑤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준 가르침, ⑥ 사람에 대한 비평, ⑦ 공자 자신의 술회, ⑧ 공자의 일상생활과 제자들이 보낸 찬사로 나눌 수있다. 이 가운데 ①과 ②에 해당하는 것이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1/3을 차지한다. 논어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은 학이편 첫 문장이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고 평생 책을 읽고 공부하기로 결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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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없다. 이 보다 더 쉽게, 재밌게, 통합적으로 풀어놓을 수는 없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의 각각의 소장철학자들이 맡아 작업한 이 시리즈는, '관심있는' 이들이 공자와 노자, 플라톤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무를 다했다고 봐야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성경 다음으로 많은 번역본, 해석본이 나와있는 책이다. <도덕경>은 노자가 직접 쓴 책도 아니고, 그 내용 또한 분명한 메세지를 주지 않아,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대개 학계에서의 해석이란 것이 비슷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고, 저렇게 해석하면 저런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이 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노자의 생애, 도덕경이 쓰여진 계기에 대해서, 또 도교와 도가학파를 살피고, <도덕경>의 내용인 무위자연, 도덕, 버리는 삶, 작음의 지향 등을 원문해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본문 중에서 노자와 도덕경을 이야기함에 있어 꼭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 중요한 부분만 따다가 현재 우리네 삶과 연관하여 서술하는 방식은 노자와 <도덕경>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덜어주리라 본다.
사상과 철학을 그 자체로만 놓고 읽었을 때와 현재의 나의 삶과 연관하여 읽었을 때는 분명 다르다. 전자는 심한 압박감을 가지고 학문으로서의 그것을 대하게 되며, 후자는 그저 내 삶을 뒤돌아보고 성찰하기 위한 도구로서, 방편으로서, 접할 뿐이다. 부담감은 당연히 후자가 적고, 읽고 생각을 하기에도 후자가 낫다. '통합논술' 이라는 광고문구와 함께 등장했지만, 그것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잘 만들어진 청소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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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맹자, 순자, 노자... 이름은 더러 들어는 봤지만 학교에서 배운 짧은 지식 외에는 노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던 차에 아이핑계로 신청한 책이지만 나에게도 무척 오랜만에 접하는 철학사상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옛 성현의 말씀이 삶의 지혜로 다가오는 순간, 끝없는 욕망을 끊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사실, 매사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 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나였기에 상대적인 박탈감에 때로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공평하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물과 같이 머물러 있을 곳을 잘 선택하고, 마음가짐은 물처럼 평온하고 깊이 있게 하고, 남과 어울릴 때는 물처럼 베풀어 주고, 말한 것은 물처럼 믿음 있게 지키고, 정치에 임해서는 물처럼 조리 있게 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물처럼 원만하게 해 내고, 행동은 물처럼 적절할 때를 골라 시작한다.”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은 물과 같게 하라는 노자의 말이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고대 사상가이면서도 문명의 이기를 꿰뚫어 보는 그의 선견지명에 놀라기도 하고, 강한 국가를 꿈꾸는 대신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촌락중심의 사회를 회복하라는 사상이 오늘날 지구촌 사회에서 얼마만큼 먹혀들지는 모르겠다. 노자의 도덕경이 도가 철학의 중요한 저작일 뿐 아니라 도교의 경전이며, <뉴욕 타임스>에서는 노자가 세계 10대 고대 작가의 첫 번째로 꼽기도 했고, 전세계적으로 노자에 대한 연구가 1700여종에 달한다는 조사는 의외였다.
“공부를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해 가는 것이지만,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덜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도(?)를 닦고 있다. '부모노릇은 무릇 도를 닦는 거와 같다'는 말을 위로삼아 부모 노릇한 지 십여 년이다. 그렇지만 아직 도는 모른다. 이지고전인 노자의[도덕경]을 읽고 노자의 사상을 다 알지는 못해도 그이 말처럼 ‘물 흐르는 대로’, 억지로 삶의 이치를 거슬리지 않고 순하게 살고 싶어졌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말이다. |
| 제가 현암사에서 나온 도덕경 책을 좀 읽어봐서 이 책의 장단점을 더 잘 알 수 있는데요 원래 책에는 ''중1부터 고1까지''라고 써있는데 ''중1부터 고3까지''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원래 고전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읽을 만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학생도 쉽게 이해할만큼 풀어서 썼구요 또 중간중간에 알아야 될 배경지식들을 따로 설명한 부분이 있어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놨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입시 논술을 준비하는 고2,3 학년 학생들까지 깊이 생각해볼만한 주제와 알아야 할 원래 고전의 중요한 내용들을 충실히 반영해놨구요 입시에서 논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데 중학생때부터 이런 책을 읽으며 배경지식도 쌓고 깊이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 논술을 준비할 때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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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짜리 계신 이황선생이 궁금해! # 이황선생은 현대판 공처가? 아니 애처가? # 성학십도가 메야? # 퇴계 이황선생의 기억에 남는 한마디 맞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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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책은 말로만 듣던 이황의 성리학에 대한 책이었다. 어릴 때는 늘 그의 인품과 학식에 대해서만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읽었다. 그래서 겉만 보고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막연히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가 이루어놓은 중요한 학문은 부끄럽게도 전혀 모른 채 말이다. 통탄할 일이지만 내 지식은 그가 그저 성리학의 대가였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 욕심을 냈다. 욕심을 내긴 잘 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니 이해도 쉽고 그림도 재미난 그림이 꽤 들어있었다. 이론을 읽으면서 조금만 지루해질라 치면 곧 도표가 나오고 센스 만점인 그림이 나와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중간 중간 이황의 가족에 대한 예나 친구,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로 인간으로서의 이황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단지 고전 풀이뿐만 아니라 요즘 시대에 맞게 설명을 하면서 주의하라는 조언과 충고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황의 삶과 학문이 대단한 것은 인품으로 보나 학문으로 보나, 칼부림과 피가 흥건한 그 어려운 시대를 어진 성품으로 살면서 또한 시대적으로 볼 때, 토론 문화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은 그 시대에 새파랗게 젊은 학자와 8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논쟁을 하고 자신의 학문을 계속 수정해나갔다는 점이다. 이황에게 공부는 ‘시험공부나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공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황의 성리학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고 덤빈데 있다. 꼼꼼히 체크해가면서, 열심히 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는데, 한자도 어렵고 뜻도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머리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한번 읽고 다 이해하고 머릿속에 간직하겠지만, 공부를 그만 둔지 어언 몇 년인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머리 싸매고 독서실에 앉아 연습장에 연필로 쓰면서 외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이황의 성리학은 학문 자체가 어렵고,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한번에 다 깨달을 수는 없는 학문인 것이다.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지 모른다. 그토록 명석한 분도 평생을 걸쳐 이룬 학문인데,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서 쉽게 해준다고 한다손 치더라도 그냥 공으로 먹기는 좀 미안한 것이다. 공부, 필요하면 이 나이에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공부를 조금 해보자. <성학십도>를 풀이해보면, 이때 성학(聖學)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 십도(十圖)는 열 개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의 십도이다. 먼저 첫째, 태극도는 우주 최고의 기준이자 원리이고 원리인 태극, 하늘과 땅을 낳는 음양, 서로 끊임없이 이기는 오행인 물(水), 불(火), 나무(木), 쇠(金), 흙(土)이 세상 만물의 근원이라고 보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둘째, 서명도는 우주 가족과 그 사이의 계층적 질서, 하늘의 명령인 효를 따르고 효자의 예를 들며 사람의 다짐을 담고 있다. 셋째, 소학도는 몸가짐, 대인관계의 기본 덕목 등 행동규범을 담고 사회의 가치관을 익히게 되어 있다. 즉, 어린이가 배워야 할 기초적인 학문인 것이다. 넷째, 대학도는 성인이 배우는 3강령 8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부를 하는 과정과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그 자체가 이성에 대한 논리적 체계이면서 이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정치적인 개념이 강한 혁명 공약과도 같다고 한다. 다섯째, 백록동규도는 학문의 큰 원칙과 인간관계의 원칙을 밝힌 오륜에 관한 것과 그 이론과 실천에 관한 것이다. 여섯째, 심통성정도는 마음이 어떻게 이루어져 움직이며 도덕적 완성을 향한 관점에서 본 성정의 문제를 다룬다. 즉, 인간의 감정과 본성을 다룬 것이다. 일곱째, 인설도에서는 인(仁)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실천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주희(=주자)는 인을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라고 하며 봄기운과도 같이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요, 이 같은 사랑의 마음(仁)은, 사람은 물론 천지자연에도 가장 근원적인 덕, 곧 원(元)이라는 것이다. 여덟째, 심학도는 심(心)과 경(敬)에 관한 것이다. 심은 인간적인 마음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마음인데, 경으로 이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경재잠도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경 공부를 하고 경건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정신집중을 하고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지막 열째는 숙흥야매잠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어떻게 경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얘기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든다’라는 뜻으로 하루 종일 경건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휴~ 어렵다, 어려워...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짧게 정리해놓으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재밌게 읽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설명이 자세하고 예도 충분하고 그림도 곳곳에 너무 재밌게 들어가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이제 문제는 이황의 위대한 인격만큼이나 이렇게 배운 것을 어떻게 실천으로 연결시키느냐일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가 어려우며, 또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을 쌓아 오래도록 힘쓰기가 더욱 어렵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논술을 위한 작은 연습 문제집은 복습하기에 아주 좋아 보인다. 밑줄 그은 대목만 다시 한번 보고 대충 훑어보았는데 쉽지만은 않겠으나, 한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책이 끝부분 4장이 갑자기 거꾸로 들어가 있다. 빠진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4장이 잘못 제본된 것이었다. 다른 책들은 이런 실수가 없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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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저녁까지 TV를 켜면 온통 채널은 쉬지 않고 떠든다. 물건을 사라는 광고 방송에서부터 드라마, 예능프로, 다큐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정도로 넘쳐난다. 또 요새는 거기다 더 많은 채널을 한 달동안 무료로 보여주겠다는 전화까지 그야말로 채널 홍수다. 재미도 없는 재방송에 오늘도 채널을 돌리고 있는 나자신을 보면서 '뭐 하고 있는거야' 혼자 중얼거린다. 잠시 생각할 겨를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소위 문화라는 충격이 언제부턴가 TV가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TV를 끄고 현실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공허함이라니 과연 문제는 어디서 부터인지 따져 올라가 보면 내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은 전혀 내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 듯 공부에도 순서가 있을텐데 너무 몰라도 모른다. 또 가르쳐주는 사람도 이젠 성인이 되어 이젠 없다. 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지.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너무 쉽게 간과해 버린게 아닌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혼자 자문해본다. 그러다 요즘 들어 생각해 낸 것이 고전을 읽어보는 것이다. 많이 돌아 돌아 와 보니 그 해답은 역시 고전에 들어있던 거다. 슬픔도 기쁨도 지금이 예나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것을 지금 알게 되다니.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 문제를 단지 논술 때문에 라면 너무 빡빡하고 눈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어려운 한자라고 하면 접근하기 너무 어렵고 하기 싫은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접근하기 쉽게 풀어준다면 거기다 만화가 곁들어 주면 그 어렵단 상식은 깨질 수 있다. 더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너무 쉽고 재밌게 풀어 주고 있다. 학교에서 분명 배운 내용이지만 내 기억에 온갖 포즈와 농담을 섞어 가면서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수업시간, 일주일에 단 한 시간 이었던 윤리시간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게 했던 그 돌아 갈수 없는 책상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살아가면서 중용에서 배울점은 너무 많다. 그리고 너무 다가와 있다. 애쓰지 않아도 도에 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잘 하여서 저절로 도에 적중하는 성인이 되기는 어려워도 노력하는 내 모습에 어느덧 내 아이는 나를 닮아 가려고 하지 않을까. 매일 TV앞에 앉아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 그 구체적인 방법을 <중용>에 인용된 공자의 말을 적어본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도 잘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부모를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신하가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군주를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동생이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형을 섬겨야 하는데, 그 것을 잘할 수 없었다. 친구가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내가 먼저 친구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이처럼 일상적인 도덕을 실천하고 평소에 말을 신중하게 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보충하고, 여유가 있으면 다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말이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이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니, 군자가 어찌 독실하게 하진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다 읽고나서 어렵게 느껴진 고전을 쉽게 풀어 설명한 것은 좋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핵심만은 뽑다보니 물론 학생들을 염두해 둔 점이 있긴 하지만 왠지 그 양이 작다란 점이다. 좀 재밌으려니까 끝나버린 것 같은 맛만 봐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부록으로 통합논술은 단지 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유익하게 활용 할 수있는 점이 특이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