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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기도 하고 마음의 안식처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어디론가 떠나있어도 언제나 돌아갈수 있는 곳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곳이기도 할텐데 하나둘씩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남아있는 사람에겐 과연 집이란 존재가 무슨 의미가 될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 나오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직장에 다닐무렵 부모님과 할머니, 우리 사남매가 앉아서 저녁을 먹기 직전의 모습 어서 와라, 밥먹자, 이제 오니? 이런 말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반찬 냄새가 나고 하지만 언제나 이 꿈은 먹기 전에 끝이 난다. 이제는 아무리 무슨 수를 써도 이 장면을 되돌릴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슬프다. 지금 혼자 살고있는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집을 지키고 계실까? 어느해 봄 동생이 사고로 이세상을 떠나고 일년후에 아버지가 수술 합병증으로 돌아가시고 삼개월뒤 할머니가 충격에 돌아가신후 그 많던 일곱식구는 다 떠나버리고 어머니만이 남게 되셨다. 그 사건들이 일어나던 사이에 남은 형제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을 떠났으니 너무도 짧은 시간에 혼자가 되신 어머니는 지금 누구와 추억을 되새기며 힘들었던 시간들과 상실감을 견뎌내고 계실지 이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 루스와 루실은 할머니집에 맡기고 자살해버리는 엄마때문에 할머니집에 같이 살게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가 돌아가신후엔 두 할머니를 거쳐 마침내는 방랑벽이 있어 안주하지 못하던 엄마의 동생, 실비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실비이모는 언제든지 집을 떠나버릴듯한 불안한 모습으로 두 자매를 보듬고 이 모습을 보며 자라나던 루실은 결국 가출을 해 선생님댁에 둥지를 튼다. 많은 일들이 벌어져도 늘 쓸고 닦고 하며 집을 가꾸고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겐 실비이모가 하는 행동들은 너무도 배반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집을 가꾸지 않고 화물기차를 타고 모르는 숲속에 루스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 모습때문에 동네사람들의 시선을 따갑게 받기도 하지만 관습적이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일들을 실비이모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의 죽음으로 생기는 상실감과 허무함, 또다른 힘든 일들을 겪으며 이 틈을 없애고 채우려 열심히 집을 가꾸고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들은 불안하고 사회적인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 주제넘은 참견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는 오래전부터 아니 인간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고 규정지어놓은 그런 보이지 않는 규칙같은 것이 있다. 하우스 키핑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삶속에서 여자가 해야할 일을 정해두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치부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오래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지금의 사회에서도 충분히 할말을 대신해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두 사람은 이런 전통적인 삶과는 다르게 하고 싶은 걸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집을 충실히 지키고 가꾸지 않지만 본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과연 사회와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은 이것이다 라고 규범지어놓은 삶을 사는것이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는 다르지만 개인이 원하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을 사는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하지만 집은 누군가는 떠나고 그로 인한 빈자리가 생기면 또다른 누군가가 남아 집을 지키고 삶을 살아갈수도 있다. 무엇이 정상이고 아닌 삶인지는 누구에게도 요구되어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집이란 존재가 어떤 의미로 우리의 삶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인간에게 있어 가장 본질적인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한장 한장 쉽게 읽혀지지는 않지만 천천히 읽고 나면 마음 한켠이 싸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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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피해갈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은 죽음일 것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읽어왔고 들어왔다. 어쩌면 어떤 이에게는 이 책 또한 그저 그런 죽음과 상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것을 쓴 글로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동생 루실과 엄마가 살았고 할머니가 살았던 핑거본 마을에서 자란다. 호수와 산이 둘러 쌓인 미국 북서부 마을인 핑거본에서 자연재해와 가족들의 부재사이에서 힘겹게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나가는 이들 사이에 있는 그녀들은 사회규약이나 규칙보다는 자연과 더불어가는 삶의 소중함을 배워나간다. 엄마로 부터의 버림과 엄마의 자살, 할머니의 죽음과 이모할머니들과의 짦은 삶, 거기에 다시 이어지는 그리 평범하지 않은 이모와의 삶! 자매의 삶을 담담히 회상하는 주인공은 성장하면서 겪어왔던 것을 이야기하며 제목 하우스키핑 (housekeeping)의 원 뜻 쓸고 닦는 의미에서 벗어나 가족의 해체위기와 상실, 가족을 가정을 지키려는 몸부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비극, 엄마의 자살, 그리고 본인까지의 삶속에 있는 다양한 고독과 사랑 그리고 상처들은 작가의 치밀하면서 순수하기까지 한 언어들로 우리들 가슴에 녹아든다. 한 번에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어렵다는 번역가의 고백 따라 이글은 어쩌면 흔히 읽는 연애소설이나 SF적인 흥미로만 읽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런 방식으로 읽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들이 즐비하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려지는 책장 넘김 사이사이에 나만의 생각이 하나씩 혹은 그림이 하나씩 그려지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그 그림은 때론 애잔한 수채화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흐의 그림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피카소의 뭔지 알 수 없는 얼굴의 조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이 생기고, 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우리는 돌아갈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살짝 감정이 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정말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리고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독과 상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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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keeping :: Marilynne Robinson 아침이 되어 눈을 떴다. 지난 새벽 겨우 잠든 지 두어시간만이다. 또 하루의 시작이구나. 숨이 턱 막혔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이 녹슨 바퀴처럼 삐걱거리며 돌아간다. 특별히 문제 되는 일은 없다. 따뜻한 집에, 냉장고 안도 충분하고, 어딘가에서 돈이나 일을 빌려쓰지도 않아 급박히 쫓기지도 않는다. 인간 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두어 트러블이 생길 여지도 없다. 가족은 건강하고 각자의 일을 충실히 잘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해야 한다. 이렇게 평온한 집을 지키고 있는 나는 더없이 안정되고 늘 기쁨으로 충만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원인 모를 초조함이 침대 위에서 눈을 뜨는 내 가슴을 늘 짓누른다. 마치 개학을 앞두고 방학 숙제를 하나도 못한 마냥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오늘 무언가를 안하면 내일 후회할거라는 불안감뿐이다. 타인을 볼 때 그 불안감은 증폭된다. 저 이처럼 닥치는대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게 허둥지둥 남을 따라 달리려고 채비하는 나를 뒤에서 잡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뒤돌아보면 '왜 그래야만 하는데?' 하고 묻는다. '어디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하고 물으면 더더욱 답을 내지 못한다. 목적지란 대개 명예스럽고 남들의 추앙을 받는 자리다. 어떤 이에겐 그 자리가 꼭 필요하겠지만 나에게도 그게 꼭 필요할까. 달려가다보면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할까. 경력이나 경험을 획득하면 타인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겠지만 타인이 나를 평가해주는 것을 위해 달려가야만 할까. 타인의 평가에 상관없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자기 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자기 만족이라는 것이 여기가 아니라 거기에 있을까. 이런 생각에 부딪히면 나는 달리는 것을 주저한다. 그냥 걸어가고 싶거나 아니면 아예 멈춰있고 싶어진다. 인간의 평생이 오로지 성취하는 것에만 달려있다면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평온과 그 아름다움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서는 이런 회의감이 더 깊어진다. 무언가를 시켜야 돼, 안그러면 뒤처지고 말거야, 란 강박관념과 엄마의 의무라는 족쇄로 아이를 동여매면 갑갑해서 꿈틀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아이를 풀어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또 한번 의문한다. 왜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것인가? 행여 뒤처진다해도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부모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방기했다는 비난을 받기 두려워서인가? 혹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아이의 원망이 두려워서인가? 지금을 참고 견디면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 아이에게 확신해 줄 수 있는가? 지금 행복할 수 있다면 결과야 어떻든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나갈 수가 있지 않을까? 아이가 행복은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니까 괴로우면 하지 말라고, 힘들면 그만두라고 얘기하고 싶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행복은 여기서나 거기서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도 얘기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두련. 그렇게 아등바등 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얻지 못해 초조해하는 마음을. 이제는 그만 놓아주련. 루스와 실비는 그렇게 집안에 정체된다. 학교나 사회의 등쌀에 어거지로 쫓아가는 것은 괴롭지만 집 안에서 불도 켜지않고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아무도 없는 숲속 호숫가에서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는 일은 더없이 마음이 평화롭다. 루스의 동생 루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이 하는 유행을 좇아야만 하고 사회에서의 원만한 생활과 성공을 꿈꾼다. 정체 되어 있는 것에선 아무 감흥도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다. 루실에게 비치는 루스와 실비는 그저 낙오자다. 루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이웃들도 루스와 실비를 비난하거나 동정한다. 루스와 실비는 타인의 시선이 버거워 나름 일도 열심히 하고 집안을 물건으로 채우거나 정리해보지만 이미 고독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과 죽음은 문지방 바로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그 모든 것이 덧없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서로의 존재다. 이해 하고 이해 받고 소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그 외에는 더 필요가 없다. 마침내 그들은 집을 불태우고 남들과 같은 것을 강요하는 마을에서 떠나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반듯하게 살고 있는 루실에겐 그들이 어떻게 기억될까. 그들의 해방 된 행복을 이해 해줄까. 사람은 꿈이라는 명목의 목표로 살아간다. 꿈은 타인의 평가에 의한 명예와 인정 그리고 물질로 채워져 있고, 그것을 뺀 나머지는 성취감이라는 자기 만족이다. 타인의 평가와 물질은 행복의 절대 조건일 수가 없다. 그것은 아무리 채워도 모자르고 메마르는 소유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이러한 가시적인 것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전적으로 과정 자체만을 즐기는 마인드 컨트롤의 산물이다. 즉, 행복을 느끼는 것은 마음에 의해 조정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소유욕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평가에 초연해지며 자연 속에 머무르는 것에 안정된다면 그것 또한 꿈이며 행복이지 않을까. 설령 의욕 상실로 보일지언정 스스로가 그 어떤 압박감도 초조함도 느끼지 않고 평온하다면 명예나 물질이 없어도 인간의 삶으로 괜찮지 않을까. 때때로 도시 생활을 버리고 시골의 자연 생활로 돌아간 이들이 이야기를 듣는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모든 인세를 기부하고 한달 20만원도 안되는 생활비로 살았다. 그런 이들이 불행했는지 행복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단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웠었을 것을.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을. 나는 그 어떤 인생보다 그런 인생이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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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야 뒤 표지에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하우스키핑>은 절대로 서둘러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성격을 명확하게 진단해주는 도리스 레싱의 글이다. 개인적으로 한참 바쁜 시기에 책을 읽게 되어 문장을 음미할 새도 없이 읽어대는 동안, 마음은 어쩐지 느릿느릿하게 읽을 것을 권유한다 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문장이었다. 번역한 것도 이런 정도라면 영문 자체의 멋은 훨씬 더할 것만 같았다. 유창한 독해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어보면 어떨까? 이런 이유로 영어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보긴 처음이다.
루스와 루실의 엄마는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맡긴 채 차와 함께 호수로 돌진한다. 호수는 오래 전 외할아버지가 탄 기차가 떨어지면서 수몰된 장소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지극히 목가적이고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지만, 가끔은 홍수의 피해를 겪게 되는, 그 누구도 자연재해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모와 함께 사는 루스와 루실은 서로의 많은 것을 공유하던 자매지간이었다. 그러나, 이모의 떠돌이 기질을 참을 수 없었던 루실은 집을 나가 다른 삶을 택한다. 루실과는 달리 이모에게서 엄마를 느끼는 루스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이모에게 없다고 생각하여 둘 사이를 떨어뜨리려는 사람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모와 함께 집을 떠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하우스키핑의 삶이라고 해서 그 이외의 다른 삶을 배척해도 되는 것인지,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이미 꽁꽁 다져진 채 굳어버린 사고를 뒤흔든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포기되어야 하는 다양성의 삶을 너희가 막을 권리가 있는지 책은 묻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언어로 쓰인 작품이라는 것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문장이 모이고 모여 줄거리를 이루면서 문장 자체로서는 설 자리가 좁은 일부 책과는 달리, 문장의 자리가 굳건한 이 책은 단번에 줄거리로 가도록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문장의 유려함을 한 고개 타고 넘으면서 서서히 줄거리의 파악도 이루어진다.
책 뒤에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해설이 실려 있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잡아준 기막힌 해설로 책을 200% 완벽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읽지 못했던 불완전한 독서의 보충을 이 해설로써 많이 메꿀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는 날,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읽으며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을 즐기리라 기약하면서 아쉽고 성급한, 그러나 흐뭇했던 독서 시간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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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철없을 것 같은 어린 시절이 끝나고, 학교도 졸업한 후 사회에 나가면 그 동안 상상했던 어른의 세계는 정말 식상하다. 팔딱이는 청춘 시절도 잠깐이면 지나가고, 어느 정도 사회의 때를 묻게 될 즈음이면 많은 이들이 되 내이는 말이 있다. 나 역시도 그랬고, 아직까지 그런 말을 이따금씩 내뱉곤 한다. 그런데 이 하우스키핑을 읽고 나면 그런 다람쥐 쳇바퀴 같은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적어도 루스의 가정에 비하면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육받은 잣대로 따진다면 이 소설의 대다수의 마을 주민들은 평범한 “O”의 삶을 사는 집단이고, 주인공인 루스와 실비이모의 삶은 “X” 쪽에서 개선할(?)점이 많은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지속해야 했기에 루스와 루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생활을 선택해야 했었던 듯 하다. 동생 루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잘 만들어진 하우스키핑의 삶을 동경하고 선택한 것에 반해, 주인공 루스는 희미하게 나눠진 경계 속에서 틈틈이 이쪽 저쪽을 엿보며 살아가는 듯 보였다. 이렇게 수시로 이상적이라고 정의된 가정과 현실의 가정 사이에서 정착할 곳을 찾던 루스는 결국 루실이 떠나고 난 후 유일하게 곁에 남은 실비이모와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집을 이모와 함께 태워버린다. 이제 그곳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것처럼… 이 책은 그런 무겁고 어려운 주제 말고도 읽는 내내 인물이나 사물들에 대한 친절하고도 아름다운 묘사들로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난 루스가 살아온 마을과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기 보다는 내가 직접 그 마을에 살았던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어린것들의 심리묘사는 또 얼마나 탁월 했던지… 어렵기는 해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름다운(?) 고전문학을 접한 즐거움이 꽤 오래 지속될 듯 하니 이것이 또 다른 독서의 즐거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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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을 받아 보았을 때 보통 도서보다 작은 사이즈에 표지에 그려진 다리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임>에서 "모든 덧없는 것들, 특히 아름다움과 행복의 덧없음을 훌륭하게 그려낸 현재의 고전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서 너무나도 가슴설레이면서 첫장을 넘겼다.
[하우스키핑]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루스가 자신과 자신의 주위상황을 알려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핑거본이라는 마을에서 엄마와 외할머니 그리고 루스 자신과 여동생 루실에 이르는 삼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루스의 할아버지는 선로를 이탈한 기차가 호수에 빠져 익사했고, 엄마는 유서 한 장 남기지않고 자동차와 함께 호수속으로 빠져버린 후 루스와 루실은 외할머니에 의해서 자라나게 된다.
어린시절 루스와 루실이 늦은 시각까지 호수에서 놀는 모습은 내가 놀던 시골마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지난 시절의 내 모습을 보게하니 왠지 가슴이 따스해지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루스와 루실은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두 외고모할머니에게 맡겨져 지내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내던 실비 이모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루스와 루실은 실비 이모가 언제 떠날지 몰라 항상 실비 이모를 예의주시하면서 생활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루실은 현제의 사회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면서 상상밖의 생활을 하는 이모와는 대립을 이루게 되면서 결국은 그동안 살아오던 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루스는 이모의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로인해서 루스와 이모는 살던 집을 불지르고 집을 떠나게 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대가족 모습에서 점점 작아지는 개인화된 생활을 해가는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해서 점점 사람의 향기가 사라지고 인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무섭기도 하다. 한 사람의 향기가 아닌 가정의 행복, 더나아가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사랑스런 사회를 가꾸고 만들어가야하는 우리들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우스키핑]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었던 도서들과는 다른 느낌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 나의 생각을 바라는 그 문장들 그속에서 도시속에서의 피곤함을 버리고 편안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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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고전'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이 책은 시대적으로 조금 오래전에 쓰였지만 책의 내용은 수세기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가정에 대한 의미와 많은 주제를 정말 담담하면서도 조금은 우울하게...그러나 너무나도 명확하게 적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땐 내용이 이렇게 심오한지 몰랐었습니다. 책도 너무 아담하고 은은한 표지가 맘에 쏙~ 들어 시원시원하니 페이지도 잘 넘어갈지 알았거든요...그런데 그런 조급한 마음이 앞서 내용을 빨리 이해하려하니 오히려 더 이해하기가 힘들더군요. 하지만 '메릴린 로빈슨'이란 작가의 뛰어난 글 재주에 정말 놀랬답니다. 어쩜 이렇게 담백하게...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했는지...간결한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의사전달에 두번~세번 놀랬답니다.읽는 속도를 늦추어 정말 한문장,한문장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 내려가니 점점 책의 흐름이 파악 되더군요.
'모든 덧없는 것들, 특히 아름다움과 행복의 덧없음을 훌륭하게 그려낸 현대의 고전이다'_ [타임]
이 소개처럼 이 책은 모든 덧없는 것들...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또한 그 존재마저도 무참히 무(無)로 표현하고 있으며...인생의 행복마저도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써놓았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호수가 등장하는 '핑거본'이란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책의 화자인 '루스'를 중심으로 루스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이르는 3대째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탈한 기차가 호수에 빠져 익사한 할아버지,그리고 차를 몰고 호수로 돌진해버린 엄마, 이렇듯 호수는 불안함과 모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엄마가 죽자 루스와 루실은 할머니 밑에서 자랍니다.그러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이 자매는 방랑병이 극히 심한 막내이모 실비와 함께 살아가게되지요. 죽음을 차례차례 봐오면서 이들에겐 '가정'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요... 자신들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그리고 남겨진 극한의 외로움과 배신앞에서 이들은 꿋꿋하게 자아를 찾게됩니다. 그러나 '가정'과 '집'이란 울타리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자연'과 더 가깝게 지내는 실비이모... 모든 정해진 틀에 짜맞춰져 살아가길 거부하는 이모밑에서 뭔가 비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느낀 루실은 '정상적인 삶'을 찾아 집을 떠나고맙니다. 그러나 그런 이모와 점점 닮아가는 루스는 세상과 단절한채 점점 더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이 이모에게서 루스를 떼어놓으려 합니다. 얾매인 삶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자유가 그리워...자유를 찾아 결국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집에 불을 지르고 그 곳을 떠나 방랑한 삶을 선택합니다. 그들에게 모든 불운과 외로움을 의미했던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서의 도약이라 해야할까요? 그런 상징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정말 한없이 훌륭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하우스키핑(HouseKeeping), '집안을 쓸도 닦고 가꾼다'라는 의미지만 이 책에선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의 의미로 쓰였습니다.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지 못한 상실감을 담담하게 표현한 이 작품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란 의미도...그러한 만족감도 어쩌면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인생이란 험난한 여정속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요?가정'이란 테두리는 얼마나 크고 웅장할까요?많은 의문을 두게 하는 책이었던것 만큼 두번,세번 읽고 싶은 책입니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돼요." "그래야만 돼요.다른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요."
행복이 퇴색해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이 책을 접하면서 묘하게도 '집'과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내내 외로움과 고독이 밀물처럼 몰려들었지만 오히려 더 담담했습니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쩌면 외로움과 고독이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불행이다,행복이다,생각 하기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결국 우리 모두는 모든 덧없음에 행복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아이러니하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