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화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는 이상하게도 오래전 유학자들, 왕, 군인이 들어있다. 결국 한국은 아직 16세기 조선과 유학(儒學)의 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의 화폐 중 1만엔짜리에는 파란만장하던 일본의 19세기를 살았던 학자 한명이 들어있다. 이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은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개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좀 부풀리자면 한국은 16세기에 머물러있지만 일본은 이미 과거를 뛰어 넘어 19세기까지는 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의 일생을 소개한 책이다. 확실히 이 책은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구성이 산만하다. 이 책의 주인공 '영웅' 후쿠자와는 확실히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학(漢學)을 하고, 양이(攘夷)를 논할 때 이미 한학을 때려치우고 난학(蘭學)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많은 난학자들이 난학에 안주하고자 할 때 그동안 쌓아놓은 난학 지식을 내려놓고 영학(英學)을 시작한 인물이었다. 그는 시대를 보는 눈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 일본은 서구에 문을 열게 되었고 무사들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열강의 하나로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가 세운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는 지금의 일본 양대 사학(私學)의 하나인 게이오 대학이 되어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런 후쿠자와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근대화할 수 있었고 결국 그의 충고대로 주변의 '미개발지'인 조선과 중국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서구 열강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서... 하지만 후쿠자와의 삶을 보면 거대한 바다와 같은 인물이라기보다는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과 같은 인물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막부말기의 혼란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정쟁 가운데 스스로 또는 타의로 목숨을 잃었던 것에 반해 후쿠자와는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그는 함부로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고 한치 혀로 쉽게 적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다. 결국 역사는 살아남는 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보여주는 듯하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변화하는 역사의 중심에서 변화의 물줄기를 막고 피하기보다 그 물줄기 안으로 용기있게 달려들었던 그는 결국 일본의 문명개화를 이끈 정신적 지도자로 설 수 있었다. 실천적 지식인... 남의 눈의 티만 보려하는 내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하급무사로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막았던 막부시절의 봉건체제를 그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무섭게 변하던 일본의 정세 덕분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목숨걸고 달려들어 조금씩 지껄일 수 있는 영어를 할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시대상황이 만들어준 기회였다. 후쿠자와가 경험했던 이런 신분의 상승은 19세기 일본의 사회변혁기에나 가능하다는 역사적, 사회적 진리가 서울의 명문대학들이 강남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꾸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