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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 무궁무진한 꿈을 꾸고 크나큰 포부를 품을 나이에 난 몇년에 걸쳐서 거듭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하루 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씩 하나씩 제 갈길을 순조롭게 찾아가는데 나만 퇴보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만 닥친 이 가혹한 운명을 원망도 해봤고 무능하기만 한 내 자신을 신날하게 비난도 해봤다. 하지만 고통이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짓누르고 더욱 괴롭히기만 했다. 가슴이 답답했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의 어떠한 위로도 내겐 도움이 되질 않았고 부모님의 방관은 나를 더욱더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외로웠고 더이상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삶을 마감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유서였다. 내가 실패로 인해 얼마나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는지를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써내려갔다. 글을 쓰는데 왜 그리 서럽던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눈물의 편지를 썼고 삼등분으로 접은 후 책상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그리곤 침대위에 누워서 어떤 수단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제일 고통을 덜 받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티비나 영화 혹은 주변에서 들은 자살에 관한 사건을 하나씩 더듬어 보았다. 그중 제일 낫겠다 싶은 것을 하나 정하고는 내일 실행에 옮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편안했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고통도 조금은 완화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을 마감하려고 하니 문득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가 궁금해졌다. 순간 죽기전에는 그 사람이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영화필름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어차피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이니 앞당겨서 내 스스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난 가장 먼 기억부터 조금씩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려보았다. 그랬더니 평상시에는 망각하고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시골로 놀러가 고향친구들과 방학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그 고향친구들과 놀던 그 시절이 내겐 제일 행복했고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개벗고 친구랑 고무 다라에 들어가 물장난을 친 것도 생각이 났고 집 바로 옆 개울의 하수도를 통과하면서 놀던 것도 생각이 났다. 비석치기, 자치기, 오재미, 구슬치기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났고 유일하게 잔디가 깔렸던 무덤근처에서 친구와 개념없이 뛰놀던 기억도 새록 새록 떠올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고 어느 순간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땐 정말 하루 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매일 아침이면 근처에 사는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했고 난 그 친구를 반갑게 맞이한 후 금방 아침먹고 나갈테니 잠깐만 기달려달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 난 중요한 것을 하나 깨달았다. 인생을 사는 것이 그리 재미없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괴롭고 힘들지만 인생 전체를 봤을 땐 즐거웠고 행복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것이다. 일 이년을 사는게 인생이 아닐진데 지금 잠시 힘들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한다면 앞으로 누릴 기쁨을 포기해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한번 열심히 즐겁게 인생을 살아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미 주어진 이 한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사는건 시간낭비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이 외모와 이 능력으로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냥 이대로 끝내버리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았고 후회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난 다시 인생을 즐겁게 한번 살아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랬더니 고통은 어느새 사라졌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저자는 늙은 매라고 불리우는 할아버지와 얼마전 아버지를 잃어 괴로움에 빠져있는 손자 제레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두사람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서 맞닥드리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넘겨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대화의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생에서 여러번 고배를 마신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책이였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나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 책은 내용을 요약하기가 곤란하다. 한 파트 한 파트가 다 소중하고 교훈적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째로 배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실패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실패의 괴로움을 어찌 극복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인상적인 글귀
"폭풍우가 친 다음 날 하늘은 더욱 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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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병으로 여읜 한 남자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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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기계발서는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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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은 금방 사라지지만 고통의 시간들은 너무나 길고 힘들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회의나 고통은 누구나 느끼게 되는 고뇌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감내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계속 가라>는 책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생각을 한 단계 올려 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하여 할아버지의 지혜를 통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삶에서 용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역경이 가지는 역할을 말하고 있고, 그로 인해 강인함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계속 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인생이라는 여행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한발 한발 나갈수록 끝이 없는 여정을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인더언 보호구역이 된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에서 태어 났지만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교사, 역사가, 라코타 인디언 부족의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에도 출연한 바가 있고, 책도 다수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어렵고 힘들 때 심적 안정을 가져 올 수 있는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 : 이 글귀를 보면서 힘든 역경 뒤에는 보다 밝은 미래가 다가온다는 표현으로 생각되는데, 고통을 감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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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쌓음으로써 지혜에 이르기 시작 하는 거란다. 그러면서 우리가 근원적인 힘에 도달 했다는 깨달음을 점점 다 많이 갖게 되더구나. 지식과 마찬가지로 지혜도 성장하거든. 지식이 마음의 힘이라면, 지혜는 영혼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 p.118 지식을 쌓음으로써 지혜에 이르기 시작한 다는 ‘늙은 매’의 말이 정말 이라면, 그는 지식을 덜 쌓아 지혜가 성장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라면 십 사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고도 십 사년 아래로 어린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가지고 9개월을 읽는 분이니. 아니, 9개월 동안 모양내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분이시니. A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나이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정신이 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글쓰기 실력은 부족할지언정, 생각의 깊이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도 계속 가라」는 그런 내게, 삶의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제레미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후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인 ‘늙은 매’를 찾아간다. “ 네 얼굴을 보니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구나. 무언가가 네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죠?” 할아버지의 답으로 책은 시작된다. 제레미와는 다른 이유로, 나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죠?” 라고 묻는다. 둘 중 하나가 떠나지 않는 이상 당분간 함께 근무해야 하는 기름과 물 같은 사이인 A와의 관계 때문이다. 성향, 성격, 취향, 관심사가 모두 정 반대인 A와 함께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분은 뒤통수 뿐 아니라 옆통수, 앞통수까지 치는 재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나리오 한 편 뚝딱 만들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특기까지 있다. 소중한 내 인생과 시간을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게다가 이 사람은 가만있는 나를 왜 쥐어 잡고 흔들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모조리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와 내내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났고 그 영향은 아이에게까지 미쳤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한사람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나는, 평온한 내 일상들을 무참히 깨는 A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어려운 일들, 그러니까 슬픔이나 배고픔이든 가난이든 질병이든 아니면 죽음이든지 간에, 그것들을 자신의 삶 속으로 초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란 좀처럼 없는 법이란다. 하지만 삶이 네 여정 한복판에 역경을 갖다놓았다면, 너는 그것으로부터 강인함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되어 있단다. 그것이야 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이지. 물론 이러한 시간과 이와 같은 슬픔을 선물로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헤쳐 나감으로써 한 번에 한 순간씩, 한 번에 하루씩이나마 그렇게 만들 수는 있을 것 같구나. 그러한 순간과 나날을 거친 끝에 결국 너는 강인해질 것이고...바로 그것이 네가 받을 선물이란다. p.31 ‘늙은 매’는 제레미에게 인생 속의 역경은 오히려 선물이라며 그를 다독여준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강인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시간들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그 때 나 자신이 강해져있을지는 자신할 순 없다. 혹시 A로 인해 나 자신이 위축되고 주눅 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오는지 머리도 복잡하고 몸도 아픈데다가 집에서까지 삐걱대고 있다. “넘어지지 않고서야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겠느냐?” 늙은 매가 말했다. “굶주려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풍요로움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겠느냐? 악이 없는데 어떻게 선을 판단 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결말 없이 어떻게 삶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까?” p.30 지금 나는 넘어졌다.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지금 나는 굶주리고 있다. 풍요로움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저 이렇게 생각하고 담담히 넘기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답답할 때마다 ‘늙은 매’의 조언들을 상기하면서, 힘을 내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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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것 자체가 바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니까.’ 삶이나 인생에서 정답이 있을까.정답 없는 것이 인생이고 삶일 듯 하다. 어느 길로 가나 자신이 가는 것이 길이다라는 말처럼 자신이 개척한 삶에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얻을 수 있고 큰나큰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누가 어떤 길로 가서 성공을 했다고 반드시 그 길이 모두의 길이 아니듯이 한걸음도 떼기 전부터 성공을 부르짖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모든 걸음은 한걸음으로 시작하여 정상까지 올를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이 삶의 선물이 되는 이유, 올해 초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작은아버지를 잃었다. 작년 여름에 친정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폐암판정이 나고 그동안 아버지께 살갑지 않게 했던 작은아버지는 그소식에 부쩍 외로워 하시고 슬퍼하시며 그동안 형에게 못한 정을 쏟듯 오며가며 시골집에 자주 들르곤 하셨다. 난 그런 작은아버지의 외로움을 막닥뜨리게 되었다. 슬쩍 마음 한켠에 감추고 계시던 속정을 내게 쏟아 내며 울적해 하셨던 작은아버지는 겸사겸사 명절전에 형님을 찾아뵈야겠다며 서둘러 눈길을 나서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그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일로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병은 더 깊어졌다. 쉬쉬 하며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던 병이 깊어져 우리 자식들은 좌불안석이었는데 당행히 아버지는 그 뒤로 일어나셨지만 예전만 못하시다. 하지만 중상을 입고 고통을 당하지 않고 돌아가신것으로 우린 만족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일도 슬픈데 작은아버지의 일은 더욱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를 더 돌아보게 되었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한번 더 부모님 살아 계실때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친척분들도 아버지를 한번 더 뵈러 오시게 되었고 따듯하게 챙기게 되었다. 고통에 한동안 힘들어 하셨던 아버지는 큰 일을 겪고 나신 후 달관을 하듯 아픔을 들어내지 않으신다. 작은 일에도 크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하기도 하신다. 슬픔이 가져다 준 감사한 일처럼 그렇게 우린 또 하나의 슬픔을 준비하고 있지만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보다는 삯일줄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버진 동생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내가 찍어다 보여드린 디카 속 사진들로만 그날의 모든 일들을 보시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동생을 잘 보내드린듯 ’좋은데 갔나보다.’ 하시는 말씀으로 일축하셨다. 동생의 사고소식을 듣고 쓰러져 응급실에 계실때 물어보니 당신도 갑자기 그렇게 최후를 맞을까 두려웠던 모양이셨다. ’두려움’ 우린 지금도 날마다 그 두려움이 언제 닥쳐 올지 걱정하고 있다. 평생 인생의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소유’ 의 삶처럼 땅을 일구며 식구들 배 곯지 않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사셨던 아버지는 마지막 그날까지 농사를 지으시겠다며 지금도 날마다 밭으로 나가 농작물을 일구신다. 며칠전에는 감기까지 걸리셔서 무척 힘들어 하고 계시다.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그 낮은 자세가 괜히 목울대를 콱 붙잡는듯 속울음을 울어야 하는 마음, 그런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하여 늘 웃고 큰소리 내고 내 거짓된 행동처럼 부모님께 보여지는 모습이 가끔은 싫지만 고통을 감내하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떤 일도 참아낼 수 있을 듯 하다. ’인생이란 슬픈것만은 아니란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을 갈망하지 않을 터이고, 기쁨을 찾으려 애를 쓰거나, 기쁜 일이 닥쳤을때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 같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쁨이나 슬픔이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지. 또 그 둘 중 하나가 자주 우리 여행의 동반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항상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쁨과 슬픔이나 행복과 불행도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내 인생에는 왜 늘 슬픈 일만 있을까.’ 혹은 ’나는 왜 늘 불행한 일만 있지.’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기쁜 일들이 혹은 행복한 일들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지나쳐 갔을까.세 잎 클로버의 말은 행복이다. 수많은 행복속에 감추어진 네잎 클로버,행운을 찾기 위하여 우린 늘 우리 곁에 있는 행복을 놓치고 만다.그처럼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행복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절망 뒤엔 무지개처럼 ’희망’ 이란 쌍생아가 있으니. 비 온 뒤에 더 맑은 날을 만날 수 있듯이 슬픔과 불행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강인해질 수 있다. ’강인함은 노력과 고통의 선물이다.’ 라는 말처럼. ’역경을 통해 얻은 강인함은 역경에 다시 부닥쳤을 때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법이라오.’ 큰딸이 중학생이었을때는 공부좀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고 녀석은 잘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 자신감을 잃었는지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시험’ 소리만 들어도 속이 좋지 않은 현상을 나타내며 자괴심에 빠져 스스로 혼란에 빠진 듯 했다. 잘하던 과목들도 자신감을 잃고 그런 딸을 보며 늘 하는 말이지만 ’첫 술부터 배부르려 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가라’ 했다. 모든 일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정상을 밟을 수는 없듯이 조금 노력했다고 모든 공부를 다한듯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인생도 그렇고 공부도 마라톤이다.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인데 지금부터 눌러 앉아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과의 마라톤이라 생각해.’ 했지만 녀석에겐 그런 충고도 그저 배부른 엄마의 잔소리 쯤으로 들렸었던가 보다. 하지만 모자라던 과목에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것만으로 반은 이룬것이라 했더니 좋았는지 더 열심히 그 과목에 매달리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 고맙기도 하다. 늘 정상에 있을 때는 오르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몰랐고 내려가는 길은 단숨이라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시작부터 힘들게 고지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정상의 길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정상에 더 오래도록 머물 수 있으며 하산길은 쉽게 내려갈 수도 있다. 녀석이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의 노력이 미래의 어느날에는 꼭 강인함으로 자리하여 단단한 결실을 맺기를 바랄 뿐이다.’인생이란 올라가야 할 수많은 언덕과 산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단다. 아마 우리 마음과 정신의 어느 한쪽에선 올라가는 것이 내려가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다.’ ’인생이란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어가는 여행이란다.’ 늙은 매가 제레미라는 손자에게 들려 준 이야기중에 석수장이들이 몇 대를 거듭하며 산 정상까지 향하는 계단을 만든 이야기 중에 ’그래도 계속 가라.’ 라는 말은 삶이 힘들고 슬프고 불행하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역경을 거듭하며 일어나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절망을 지나 희망이란 절망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을 하듯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한걸음 한걸음 노력을 하다 보면 무언가 얻을 수 있는것이 인생이라는 말인듯 하다. 내 아버지의 삶을 엿보아도 아버지의 인생에서 크게 성공이나 행복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사건이나 일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불행한 삶을 사셨다고는 말할 수 없듯이 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거짓없이 하루하루 노력하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것만으로 감사하고 고맙다. 암이라는 커다란 고통을 안고 계시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올해 농사도 지으시겠다는 희망찬 의지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한걸음 한걸음 고통과 싸우다 보면 좀더 천천히 ’마지막’ 이란 것과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을 나 또한 가져본다. 이 책은 절망하고 싶을 때 어디에선가 날 우연히 기다리고 있을 ’희망’ 을 가져다 준 책이다. 늙은 매의 말처럼 절망도 우리 안에 있고 희망도 우리 안에 있다. 그래도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 다는 희망이 있기에 삶은 살 만 하고 오늘을 지탱하고 내일을 기다리지 않나 싶다. 양지만 걸을 수 없는 삶, ’그래도 계속 가라’ 라는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자신안의 희망을 만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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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전에 이런 책을 쓸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너무도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깊은 감동은 책을 읽는 2주 동안 잔잔하면서도 가슴 깊숙히 새겨졌다.
늙은 매와 손자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다가오는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 지금 느끼는 고통이 너무 큰 사람들 그 밖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따스한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실려있는 일화 하나하나 마다 주옥 같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온 인생을 바쳐 높은 산에 계단을 만드는 석수장이들의 일화에서 '그래도 계속 가라'라고 계단 아래에 새겨진 가르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때로 내 삶에 거친 태풍이 몰려와도 비바람이 쏟아져도 그 속에서 물러서지 않고, 상처를 안고 앞으로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거칠 것 없는 폭풍이나 비바람보다도 더 큰 힘을 가졌다는 교훈을 안고 이 책에 감사함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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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이 드는 요즘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잘하고 있는건지.. 그러다가 무심결에 보게 된 문구
그만 두고 싶을 때, 딱 한걸음만 더... '
속는 셈 치고 책장을 넘겨보았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쌓인 아들 제레미가 외할아버지 늙은 매를 찾아가 묻습니다.
" 할아버지,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죠? "
아!! 저의 맘속에 꾹꾹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사는 건 어느 시대건, 어느 나라건, 누구에게건 똑같은 무게감을 주며 다가오나봅니다.
강하지 않은 어조로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우리의 마음을 읽어내려가는 지은이의 글에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발 앞으로 내디뎌야 함을 느낍니다.
매일매일이 변화없고 제자리라고 느껴지기에 여기서 그만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결국 무의미하지 않음을 늙은매가 말해주었답니다.
지금 우리모두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시기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끈기가 필요한 듯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부드럽지만 강하게 이야기해줍니다.
"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짓눌리다 보면, 흔히 조금 노력하는 것이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쉽단다.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것과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성공하느냐, 실패하는냐를 가름하는 차이가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노력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루는 것 또한 없는 법이란다.....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위란다. ... 그러므로 승산이 별로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때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이 아무리 쓸데없는 짓 같은 생각이 들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하느니라,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은 노력이, 그래도 한걸음 더 내디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란다. 그것이 얼마나 더디건, 얼마나 미미하건 간에 우리가 한 걸음만 더 내디딜 수 있으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거야. "
" 희망을 품어야 할 시간이란, 다시 말해서 절망이 우리 목구명을 움켜쥐고 있을 때란다. 우리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 때라는 말이지 "
우린 지금 희망을 품어야 될 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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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거라. 그냥 네꿈속으로 들어오라고 내버려 두렴. 그들을 네 가슴속에 품어주려무나. 모두가 다 네 친구고 네 동료 병사들 아니었니?
너희들 모두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거서이든, 혹은 말할 수 없는 것이든 간에 무언가를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단다. 너로인해 내가슴이 아무리 찢어진다한들 네가 보고 겪었던 일들을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겠지?
그들이 너한테 오는 것은, 그들이 이세상에 남겨놓은 유일한 연고(緣故)가 바로 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이제 그들에게 그것이 너한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해주렴. 그러면 그들도 이해할 거다. 그런 다음, 너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네 삶을 살거라.
네게 주어진 선물을 존중하려무나. 그들이 심장의 고동속에서 지녔을 선물말이다. 과거를 바꿀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미래는 좀 더 편안하게 만들수도 있단 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어깨를 펴고 다가오는 것에 용감하게 맞서렴.
너 홀로 그것에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니란다. 네가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동안 네 친구들이 늘 함께 있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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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어느날 내게 말하기를, 가능성은 희망의 산물이라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제 어머니가 어떻게 희망을 가져야하는 가르쳐주었다고도 하더라. 제 어미가 자기에게 새로운 하루하루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 었다면서..
내 생각에는 어멈이 그 녀석에게 다른 것도 덤으로 가르친것같구나.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있는 것이야말로 계속 아픔로 나아가는 방법을 아는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친것같아.
-p.152
치열하고 격렬했던 전투에서 살아남은, 죄책감과 고통, 절망속에 있는 사촌의 이 야기.
#.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 된다.
한 젊은이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삶이 왜 이렇게 힘든 거냐고. 이 질문에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네.
"강하다는 것은 네가 아무리 지쳐 있더라도 산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것은 비통해하면서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을 뜻하고, 사방이 캄캄한 절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뜻이야. 또한 다시 한 번
심장이 고동치기를, 다시 한 번 태양이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희망에 매달린다 는 뜻이기도 하지.(이하생략)"
"그래도 계속 가라."
이로써 읽을 이유가 충분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종종 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끝날 즈음이 되어야 진정으로 느끼고 즐기게 된다. 꼭 누가 다쳐야만 용서가 된다.
한편, 살아있으니 용서를 하고 살아있으니 잘못도 하거늘. 기적은 절망속에서 보이는 것일까. 조금만더 간절하게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제레미와 함께 흔들림없는 눈길을 가진 할아버지와의 대화에 참석해본다.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과 비슷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계속가면? 무엇이 있을까?
한 프랑스 친구가 물었다.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는 대답했다. 나다움이 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산꼭대기의 최고봉, 우리네 인생의 최고봉은 무엇일까.
#.추천 대상:
어른들에게는 점검의 시간을, 아이들에게는 생각의 시간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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