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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애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은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 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뭇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시인은 지상에서 숨을 쉬는 존재에게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공감을 풀어내는 특장이 있습니다. 언제 읽어도 잔잔한 긍정의 물결이 가슴속에 차오릅니다.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그러한 시선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달라지기도 하였으니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정도가 자못 심각합니다. 시인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년으로 들어선 나이 탓도 한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외출했던 옷 그대로 식탁에 앉아 자괴한다 / 모든 남의 것이라는 게 이렇게 마땅치 않구나 / 나이 오십도 남의 것 같’(「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 이즈음 / 외롭고 슬프고 어두웠다 / 나는 헌 것이 되었구나 / 찢어지고 더러워졌구나 / 부끄러움과 초라함의 나날’(「모래밭에서」)이라고 직설적으로 토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어둡다 보니 죽은 엄마에게 전화하여 과거와 소통하려고 하고(「보름달 - 전화」),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를 하는 모임에 참가하여 ‘마늘 짓쪄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라며 자신을 긍정하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희귀 병마와 싸우다 일찍 죽은 / 한 여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우리 슬픈 운명을 들어올려줄 거인이 왔으면’(「거인이 왔으면」) 하며 바라기도 하고, 마이스터 에카르트 영성 청강을 들으며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 흰 소국 한 다발을 사 자가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그러나 지상의 공간에서는 치유가 어려웠나 봅니다. 시인이 치유를 하는 곳은 산 위의 바위, 딱딱한 바위에서 ‘계란 속 병아리 목덜미의 보드라움’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위 - 눈물
크고 넓은 바위 위에 팔 벌려 누웠다 바위가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 같았다 아주 엎드렸다 뺨 번갈아대며 흠흠 냄새를 맡았다 손으로는 둥글게 둥글게 바위를 쓸었다 다시 뺨을 대고 가만히 무량한 시간이 흘러갔을까 핑, 바위가 돌았다 눈물 속에 그리운 잔치가 피었다 다 비웠어도 따뜻했던 찻잔의 온기 계란 속 병아리 목덜미의 보드라움 사람이 빈 들길 멀리서 오는 타는 쑥내음 나는 계속 눈물방울이 되어 바위의 살껍질 속으로 들어갔다 몸무게를 버리고 녹아들어갔다 크고 넓은 것이 그리운 나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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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시이다. 어디 시 뿐인가. 얼마나 많은 문자들이 책의 형태를 빌어 서점에 나와 있는지 , 우리 집에만 해도 이미 수천권의 책이 방 하나를 점령하고 있다. 저 책들을 모두 문자로 풀어 본다면, 저 많은 책들 속에 묻힌 글 하나하나를 풀어 세상에 내어 놓는다면 아마 세상은 문자의 포화상태에 멀미를 느낄 것이다. 그런 멀미 때문에 이제 시는 귀하지 않다. 그러나 시가 귀한 대접을 못받는다고 해서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시가 대접받던 시대가 갔다는 것은 인간이 평등해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일은 얼마간의 훈련과 숙련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숙련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시는 낯선 언어일뿐이다. 그들과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인간이 진정으로 평등해지고자 한다면 인간들끼리 주고받는 언어에 담이 없어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을 네가 알아듣고, 네가 하는 말을 내가 알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는 그렇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