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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일까, 후천적으로 학습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일까. 나는 이제까지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태어난 이후의 환경에 따라 배우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책을 통해서도 그렇게 배워왔고 그게 또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게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아가 언어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 인종과 민족을 불문하고 - 당연히 타고나는 선천적인 능력이라는 확신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뇌는 주변 문화로부터의 경험이 있기 전에는 형태 없이 텅 비어 있는 다목적 학습 장치이다."(119-120p) 우리는 이 견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던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생각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즉 언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본능의 한 가지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금 실행하고 있는 언어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실험과 분석으로 언어가 본능임을 입증하고 있는 이 책은 아직까지는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 영역의 새로운 분야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처럼 의문과 회의를 거쳐 언어가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이 점차로 늘어난다면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언어회로와 지능 또는 감정 사이의 어떤 결합은 더 빠르거나 더 느릴 수 있으므로 이야기꾼, 익살꾼, 우발적인 시인, 아첨꾼, 칼날 같은 사람, 스푸너 목사님, 마라프로프 부인, 알렉산더 헤이그, 내가 전에 테스트 한 적 있는 거꾸로 말할 수 있는 여자, 그리고 모든 언어학 수업의 뒷자리에 앉아 Who do you believe the claim that John saw?가 그리 엉망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던 학생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특유의 유전자 조합이 존재할 것이라고 나는 예견한다."(164p)고 한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언어교육관이 생겨나야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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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에 있어서 스티븐 핀거의 이론은 학설은 많이 인용되어 진다. 그의 언어학에 대한 내용들은 다분히 자의적이지만 대부분의 언어학이 우리의 경우에 생겨난 것보다는 외국서적을 번역한 책이 더 많기에 우리의 정서와 상이하더라도 그 점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책은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진다. 상권에서는 정신어나 침묵의 소리 등 7가지 테마가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맘에 드는 내용은 정신어 부분이었다. 그로인해 하권을 구입하려 서점에 들렀더니 마침 책이 품절이라서 하는 수 없이 아직까지도 내게는 하권이 없다.
그래도 도서관에 들르니 내가 찾는 이 책이 서가에 가지런히 정돈된 채 나를 반겼다. 마치 나를 기다린 양 그 책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나는 그 책을 대출해 와서 반납일까지 두주 내내 그 책의 내용들을 내 머리 속에 넣느라 정신없이 보고 또 보며 내용을 탐닉했다. 언어 전문가에 대한 내용이나 여러 용어의 해설도 자세히 되어있고 무엇보다 거부감이 없었다. 언어기관과 문법 유전자 테마에서는 역시 인간의 언어기관을 분류하고 자세하게 삽화까지 넣어가면 설명하고 있다.
문법이나 딱딱한 띄어쓰기 등도 물론 알아야겠지만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언어의 기원부터 언어학이 영향을 미치는 그 모든 분야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다. 어차피 발표를 하기 위해서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발표하는데 너무 많이 도움이 되어서 이 책을 내가 다시 구입하게 된 것이고 필요한 부분은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가 가끔 대화 중에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유식해지는 기분이 든다. 정말 학문에의 길은 아무리 가도 끝이 없고 내게 앎의 기쁨과 보람을 선사하는 것이 너무나 신비롭고 행복하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여기 문자 언어이기에 더욱 값지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언어가 위대하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정상적인 사람들은 시야의 왼쪽에서 불이 비칠 때보다 오른쪽에서 비칠 때 더 정확하게 단어들을 인식하는데 심지어는 오늘쪽 왼쪽으로 표기하는 헤브라이어일 경우에는 오른쪽 귀로 들려오는 단어들이 동시에 두 귀에 들려오는 경우에는 오른쪽 귀로 들려오는 단어가 훨씬 잘 식별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몇몇 간질의 경우에 외과의사들은 두 개의 대뇌반구 사이를 흐르는 섬유질 묶음을 잘라 둘을 분리시킨다. 수술 후 환자들은 정상적으로 살아가지만 신경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는 아주 미묘한 차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환자들은 정지한 상태로 있을 때 오른쪽 시야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묘사하고 오른손에 있는 물체의 이름을 말할 수 있으나, 왼쪽 시야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묘사하거나 왼손에 있는 물체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그들 세계의 왼쪽 절반의 언어 중추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