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저자 노엄 촘스키는 1928 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촘스키는 원래 언어학을 전공하는 학자였다. 그는 '생성이론 문법'과 '일반문법 이론'으로 현대 언어학의 태두로 꼽히는 언어학자였으나 1960 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계기로 정치비평가로서의 길로 접어든 후 자국의 정치, 문화, 사회의 전방위에 걸친 꼼꼼한 자료 수집과 그를 근거로 한 성역 없는 비판으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미국의 양심'으로 불린다. 전량 176 페이지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통해 촘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 모든 것을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작은 책을 통하여 우리는 촘스키가 말하는 미국이라는 '위선으로 범벅이 된 나라'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 그것이 촘스키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임을 안다면, 또 그것(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우리의 잘못된 대미관을 조금이나마 시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로써 촘스키와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서로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 촘스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 당시 미국 내부에서 제기되었던 안을 바탕으로 '평화의 사도' 미국에 대해 적나라한 해부를 시도한다. 당시 대표적 강경파였던 폴 니츠와 대표적 온건파였던 조지 케넌의 두 안을 비교 검토한 촘스키는 그러나 강경파나 온건파나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가 인용하는 자료에서 케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인권, 생활수준의 향상, 민주화 따위의 비현실적이고ㆍㆍㆍ 애매모호한 주제에 대한 언급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제, 오직 힘이라는 개념으로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가 이상주의적 슬로건에서 더 자유로울수록 목적하는 바를 더욱 쉽게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케넌의 이 예언은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중동에서, 한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미국은 인권이나 민주화 따위의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주제에 대한 파급보다 인권이나 민주화를 힘으로 억누르던 독재정권이나 전제정권을 옹호하고 비호해 왔다. 적어도 그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동안에는. 혹 그들이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일라치면 즉각 CIA나 기타 정보기관에 의한 공작 또는 그 나라 내의 반군세력에게 무기나 군수자금을 공급하는 등의 군사원조를 통해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정부를 뒤집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도 저도 안 되면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미국이 그러한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안정'이며, 그것은 즉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정권)상류층과 (미국을 비롯한)외국 대기업체'의 안전을 뜻한다."고 말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두환 군부독재시절을 상기해 보면 촘스키의 이런 진단은 매우 정확하다. 미국에 충성을 다하는 정권의 안정과 그들이 그에 대한 댓가로 치루는 미국의 대기업체들에 대한 이익만 보장되면 설령 그 나라 내에서 정권에 의해 어떠한 만행이 자행된다 해도 미국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만약 그 두 가지가 위협을 받는 문제가 생긴다면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게 그것이 좋은 선례가 되기 전에(또는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런 문제를 박멸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보기관에 의한 공작이 되었든, 내전 유발을 통한 정권 전복이 되었든, 아니면 직접적인 침략이 되었든.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행위는 자국의 지식인들이나 언론을 통해 철저하게 보호받고 아름답게 포장되어 널리 선전된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 속내를 알지 못한다. 그 속에 또 하나의 위선이 숨어 있다. 촘스키는 이를 통렬하게 지적한다.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미국의 주요한 언론들은 모두 커다란 기업체에 불과하며 문화 관리자(신문 편집인, 유명 칼럼니스트 등)들이 국가와 기업의 경영자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특권층들과 함께 특수층 계급의 이익을 나누면서 그들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자국 내에서도 '상류층과 대기업체'만의 안전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일반인들(소위 국민들)은 조용하고 수동적으로 있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므로. 그러므로 촘스키는 말한다. 수동적이고 조용하게 있지 말라고.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질문하는 것(자신에게, 권력자들에게)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들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 왜? 모든 권력 구조는, 심지어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라 할지라도, 대중들의 이견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고 더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행히도) 국민에 대한 억압이 약한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가시간 정도는 투자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단다.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그러한 노력은 제3세계의 국민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 내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제3세계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 혹은 완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미국인들은(우리 역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시발점이라고 촘스키는 당부하고 있다. 촘스키가 말하는 '미국의 본질을 아는 것'은 지금에 와 우리에게 매우 긴요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무조건적인 반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고 보면 우리 역시 우리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오기 위한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결론을 도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란 촘스키가 지적하는 '상류층과 대기업체'가 아닌 수동적이고 조용한 국민 대다수가 되어야 한다. 역시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수동적이고 조용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럴 경우 이전 대부분의 정부(를 비롯한 권력자들)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부(를 비롯한 권력자들) 역시 일방적인 친미에서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 있어 친미란 '상류층과 대기업체'만의 안정, 즉 그들만의 이익만을 뜻하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또 다른 저서 명칭 마냥, 그들에게 국민은 없을 것이므로. |
| 이 책은 수많은 노암 촘스키의 책 중 가장 얇고, 읽기에도 편안한 책이다. 그래서 촘스키의 책을 처음 접할 때 가장 먼저 손에 들게 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그리 만만하게만 볼 수는 없다. 노암 촘스키의 서술이나 번역 모두 괜찮게 되었기 때문에 글 자체는 잘 쓰여진 편이다. 문제는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의 부족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미국인을 대상으로 노암 촘스키가 '세계경찰'이라는 허명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쓴 책이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듯 보이는 자신들의 조국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쓴 책이다. 이렇게 주 독자층이 미국인이다보니(실제로는 외국에서 더 많이 읽히는 것 같지만) 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드는 대부분의 사건이 중남미 지역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들 지역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 독자로서는 이 책에서 근거로 제시되는 중남미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들로서는 읽긴 읽으면서도 정확히 노암 촘스키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기 어려운 곤란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부족하나마 중남미에 관한 여러 책들을 옆에 쌓아놓고, 아니면 인터넷을 연결시켜놓고 중요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따로 찾아가며 읽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 속에 잘 안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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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이름의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만을 서양사람이라 생각한 어린시절부터 지금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를 다시보게 된 시기까지 어쨌든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느시절에도 빼놓지 않고 듣게된 유일한 나라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라 생각되고 그만큼 미국이 우리나라에 준 영향은 꽤 오래 그리고 아주 가깝게 주었던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미국에 대해 어느정도로 알고 있느냐 한다면 과연 몇명이나 진정으로 미국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어느정도로 겉모습이 아닌 미국의 감춰진 실체를 알고 있느냐가 한국의 과제이자 지금도 때늦었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숙제중에 하나라고 본다.
그런 미국의 감춰진 모습을 노암 촘스키라는 현대의 가장 유능하고 영향력있는 학자가 이 책에서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책의 두께가 얇은 만큼 방대한 내용이라거나 아주 자세하게 서술할 수는 없지만 요점만 정확히 알수 있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책을 보다 보면 어느정도 반미라는 감정을 갖게 될수도 있겠지만 주장보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독자 역시 객관적인 시각을 읽어야할 것이라 본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지겹도록 미국의 아래서 제대로 된 한국의 주체성이나 정체성 모두 많이 변질되기도 하고 아직도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국은 미국에 대한 연구와 대응이 지금의 수준으로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인정할 것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가끔 이름만 들어본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침공은 미국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통제로 국민의 눈을 가려버림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이러한 미국의 오랜 침략의 역사를 알게 모르게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에 대해 촘스키는 세계2차대전이후 미국의 역대모든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받아 마땅할 확실한 법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말을 하고 그들 모두를 노골적인 전쟁 범죄자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전쟁 범죄에 깊게 관여해 왔기에 그렇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군들의 타국에서의 강간및 학살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중에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야 당연할 테지만 침략을 이용한 자국의 이익도모는 어찌되었건 용서받을 수 없으며 미국처럼 대량학살과 침공은 특히나 소련이 무너진 지금 더욱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도 미국의 무력침공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무력침공은 물론 경제적 침략도 서슴치 않고 있다.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FTA협상 역시 미래는 매우 암울할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이 이런 침략적 전쟁과 경제적 압력을 다른 나라에게 강요하는 이상 확실히 무너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자유를 위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제 3세계 국민들에게는 우리의 동정어린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필요한 것은 우리의 도움이다. 우리는 미국에 내부적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미국이 저지르는 만해에 맞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바로 여기 미국내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크게 달려 있는 것이다. |
|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노암 촘스킼의 경고도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실에 매몰되어 모든 희망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식의 법칙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신랄하게 미국한번 꼬집어 보는 것도 일종의 대리만족 효과를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의 Americanize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주요 외교 정책으로 제시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잔혹한 행태들은 그 외에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듯 하다. 그것은 세계평화와 안보 등 거창한 수식어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평화를 위한 전쟁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들이 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거슬릴 경우 숙청하는, 철저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반한 블록화일 따름이다. 즉, 자신과 유사한 모습의 little America 가 되길 거부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처절한 보복과 응징만이 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국가라는 정당한 권력에 의한 선한 행동으로 비화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도, 보편적 인권에 대한 수호도 아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는 이미 역사 속에서 미국이 보인 추악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어떤 나라도 이보다 더 폭력적일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노암 촘스키의 예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노동자, 농민 등의 민중에 기반한 개혁을 시도할 경우, 미국은 무력적으로 개입해 통치자를 바꾸고 정권을 뒤엎기도 한다. 그것은 지난 날 소련으로 대표되어지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하는 듯 하다. 자신과 다른 형태의 체제를 갖추었다는 이유, 조금이라도 민주적인 싹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미국에게는 모든 것이 정당화 가능하다. 그것은 자신들을 뛰어넘어 부국으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도 태초에 제거하는 철두철미함이다. 제 3세계의 모든 자원은 미국의 것이며,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는 미국 이어야만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 그릇된 기독교에 기초한 일종의 선민주의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미국은 여전히 선한 이미지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힘은 너무도 막강하여 지난 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스들과 연합할지라도, 수십개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통치자를 암살했으며, 더 나아가 이유도 없이 민중들을 폭력으로 짓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본래 언론은 힘과 결합하여 철저히 은폐되어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의 정권이 미국에 의해 붕괴되었는지, 어느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미군의 공격에 희생되었는지는 미국인들에게, 더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다. 나라가 약소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그들의 공격받음은 가치없음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부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넘쳤던 죄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무가내식 주장을 펴고 있다. 담배나 술 등에 비하면 그다지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 역시도 철저한 외교적 이해에 바탕을 한 행동이었다. 한 국가를 마음대로 ‘악의 축’으로 규정짓고 더 나아가 전 세계적 반대의 여론도 무시한 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무모함은 미국 아닌 다른 나라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저항과 투쟁을 이애하기하고 있는 저자의 과격함이 오히려 더 진실되어 보인다. 그것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 밖에 없는 듯 싶어서 그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
| 냉전시기의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국제 사회의 경찰이었다. 특히나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자이며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방어자였다. 탈냉전 시대인 지금에서도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국제 분쟁의 증가에서 미국이 세계평화를 위한 역할을 떠맡아야만 한다는 식의 생각이 큰 위력을 떨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을 완전히 선한 존재로 본 지나치게 극단적인 사고였다. 그것은 점점더 증명이 되어졌다. 유엔 활동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미국이 정책, 부시 대통령 취임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가했던 대량의 학살, 세계 많은 국가들에 대한 테러국가로의 지정 등등.. 이제 확실히 미국은 전세계의 경찰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로서 비추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시각이 최근 들어 생겨난 것은 아니다. 냉전 시대에도 이미 남미에서의 각가지 인권침해와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미국은 행해 왔었고, 베트남에서 행해진 대규모의 난민 학살과 같은 사실들은 의식있는 지식인들의 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그리고 그 대표 주자로서 노엄 촘스키가 버티고 서 있다. 미국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시야를 유지하며 미국의 정책들을 계속해서 비난해 왔다. 그것은 그의 여러 저서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특히 촘스키의 이 책 'Whta uncle Sam really wants'는 가장 대표적인 저서이다. 그런데 문제는 촘스키적 시각 역시 사실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각은 지나치게 미국은 악마 국가로 몰아가는 듯 하다. 각 국의 발전을 방해하고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막으며 오직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의 미국의 세계에 대한 원조의 목적들조차도 그 나라에서의 미국에 대한 종속도의 강화,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 진영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는 지나치게 계산적이며 이윤지향적 입장에서 국가의 행위를 분석한다. 윤리나 양심, 민주주의적 가치와 같은 것은 아무런 힘이 없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이상주의(자유주의)적 시각은 인간을 지나치게 신뢰하며 국제 평화가 손쉽게 이루어질 듯이 본다.. 하지만 둘다 극단으로 가버린 것이다..현실은 오히려 두 시야 사이의 절충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이며 윤리적인 면이 있는 동시에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촘스키적 시각=현실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라는 부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촘스키를 통해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것들.. 포장되어 있던 미국의 이미지를 통해 숨겨져 있던 이면에 대해서 알게 되어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이 아마도 촘스키가 노리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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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가해진 미국의 범죄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왜 우리는 미국의 끔찍한 죄악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 수록된 모든 사실은 촘스키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 놓은 것이며, 그가 유대해내는 모든 결론도 수많은 증거에 의한 것들이다" 편집자의 말이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촘스키는 진정한 학자로서 그가 연구하는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가다보니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그 본질을 꿰뚫어봄으로써 진보의 최선두에 서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학문은 결코 가치중립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질을 파고들면 모든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결코 우리에게 무상으로 달콤한 초코렛을 나눠주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 파병에 대해 '국익' 운운하며 찬성하는 사람들 역시 있음은 무시할 수 없다. 그들에게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것인가? 시위나 편지쓰기, 투표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들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고 촘스키는 언급하고 있다. 정치가들이 말하는 '국익'이라는 것이 진정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모두가 다 같이 살맛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한걸음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소수 가진 자들이 더 안락한 삶을 누리기 위한 이익인지... 본질을 인식할 수 있어야겠다.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화를 온통 짓밟아버린 미국이, 십여년 전 이십여년 전 엘살바도르에서 과테말라에서 니카라과에서 그라나다에서.. 광주에서... 그렇게 무참한 살육을 행한것처럼 2004년이 된 지금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똑같은 학살을 행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분명해졌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이 책의 결언은 '진리'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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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계, 그것은 지독한 제국주의적 태도로 세상을 다스리려 드는 것이다. 군사, 경제, 문화, 어느 것 하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로마가 그랬듯이 모든 민족이 자기들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한다.
이 책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남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지배 야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실패를 고소해했던 베트남전까지도 일부 그들의 승리였음을 알게 되엇다. 경악하면서... 미국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들의 지배 야욕...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부러운 사실, 그들에게는 노엄 촘스키 같은 학자들의 존재한다. 자기 조국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외칠 수 있는... "갓뎀 아메리카"를 외치는 목사가 있는 미국이 어찌 무섭지 아니한가? 이 땅의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의 외침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 힘이 느껴진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것은... |
|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지금까지 제도권 교육내에서 받아온 교육의 내용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책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이 세상의 민주주의의 발판을 마련해준 우리의 우방 국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는것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이 바로 그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도 미국의 여러 면을 왜곡시켜 표현하고 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이 교과서를 왜곡할 때는 온 매스컴에서 난리이면서 미국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무 말이 없는 것일까...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급 전범을 참배하는 일본인들을 비난하면서 일급 전범을 직접,또는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며 풍족하게 살게 내버려두는 것인가... 진정 이 세상이 정의 실현이 가능한 세상인지... 아니면 도덕과 윤리는 사라진 실리 추구만이 있는 세상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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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분야를 제외한 촘스키의 저서가 그다지 많이 번역되지 않았지만, 처음 미국에 대한 촘스키의 책을 접하려는 사람이라면 단연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문장이 간결하다는 점, 그리고 내용이 - 미국에 대해 조그만한 환상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라면 -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여러 중남미 국가의 근세사와 언론과 기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체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것 같다.
간간히 진보매체에서나 언급되던 촘스키의 평론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을때 주류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촘스킨의 책 내용이 - 이 책의 언론 편에서 지적한 - "문화관리자"와 "특권층"의 계급이익에 조금 반하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에게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다른 속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따라서 우리 사회에는 웬만큼 부유한 특권층 시청자들을 다른 사업체에 파는 큰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이 판매자와 구매자, 생산품들의 좁고 편견에 찬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밖에도 이왜곡된 상태를 심화시키는 요소들이 또 있다. 문화관리자(신문 편집인, 유명 칼럼리스트 등)들이 국가와 기업의 경영자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특권층들과 함께 특수층 계급의 이익을 나누면서 그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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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떤 여성의 강간사건에서 법원은 지켜줄 가치가 있는 정조에 대해서만 법률을 적용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던 기억이 있다. 직업여성이었거나 트랜서젠더였던듯도 하다. 그 사건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 명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별로 합리적이지 못한 판결이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외의 대부분의 국가가 천명하고 있는 천부인권의 권리는 사실 지켜줄 가치가 있는 사람의 권리만 지켜준다는 내용으로 바꾸어도 하등 지장이 없다. 여기서 지켜줄 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은 부와 권력을 지닌 소수층을 이야기한다. 촘스키의 책에서는 투자자와 거대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우습게도 지금의 세상은 경제적효율성이 거의 대부분의 가치 위에 선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많은 만행을 수출을 향상하기 위해서 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었다.
고래로부터 꿈꿔오던 유토피아, 현재에 와서는 이상적인 민주국가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모범이 되기 때문에.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그것을 실현할 싹을 틔운다면 아마 거대한 발이 짓밟아버릴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한국은 아마 우리의 위정자들이 나름대로의 수고(?)를 거쳐서 얻어낸 것일테지. 개인으로서의 정의와 사회집단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약하고 가난한 나라일수록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스러운 것이다. 만약 그라나다처럼 아주 작고 가난한 나라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게 되면, 그라나다보다 자원이 풍부한 다른 나라들이 "그렇다면 우리라고 못하란 법이 없지 않은가? 라고 자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