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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별 다섯 개를 주었을 때는 최소한 그 책의 내용이 발상 전환을 이룰 정도로 혁명적이고 감동적일 때 별 다섯 개를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별 다섯 개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책이다.
개인적으론 학부 때 경제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 때 배우는 것 대부분이 케인즈류였고 고전파와 신고전파 그리고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배웠다. '정부가 개입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 자유방임으로 '움직이는 손'에 맡길 것인가?' 어느 것이 더 현명한가를 주요 화두로 공부했었다.
학부 2학년 때 전공 선택으로 배웠던 것이 '정치 경제학'을 배웠었는데 이 당시는 소련이 붕괴되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 대결에서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로 승부가 끝났다고 평가한 다음이었다. 그 때 배웠던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은 참 김 빠진 사이다 마시는 기분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이론을 배운다는 느낌을 동기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고 할까. 그래도 개인적으론 자본주의의 폐단을 보면서 막스가 썼다는 이 이론들은 나름 상당히 참신했는데 시대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세계 경제이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정도로 2분화시켜 단순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굳은 고정관념이 얼마나 경직된 사고인가를 잘 보여준다.
유누스가 말하는 제 3의 이론은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NGO와 다르다. NGO는 기부를 받아 일을 하는 순수 비영리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다른 영리기업들과 똑같이 경쟁하면서 영리를 추구한다. 따라서 자체수익기반을 갖추고 있어 비영리단체에 비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회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또한 영리기업과 다르다. 영리기업은 수익극대화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혜택우선의 원칙이 목적이다. 가난한사람의 자립, 공중의 복리와 건강, 환경이 주요 목적이다.
특별히 저자를 노벨 평화상으로 이끈 것은 "Micro Credit"(소액자본대출)이다. 이것은 사회적 기업이 시작된 첫 사업이었는데 방글라데쉬의 가난한 농민, 과부, 여성등의 미자립 계층에 소액자본(10-100$)정도를 싼 이자로 대출해 주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저소득계층이 소액의 자영업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이 제도로 방글라대쉬 빈민층의 80%가 혜택을 입고 있다.
이 책이 주는 충격파는 상상이상으로 강렬하다. 현재의 승자중심의 신자유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현실적 대안으로 충분히 고려가능한 소스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건 피와 살 덩어리다. 동시에 이 책은 절대빈곤층 40억 이상의 지구촌에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빈곤은 필요불가결하다고 먼저 포기해버리는 우리생각이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빈곤이 운명의 일부이고 가난한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빈곤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문명화된 사회에 빈곤이 자리잡아서는 안된다고 확신한다면 빈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궁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 p.300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속에 여러 정책적 대안들과 같이 읽다보면 한국 자본주의가 가야할 좌표가 어렴풋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너무 미국중심의 자본주의 모델을 교조적으로 우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사업을 하는 펀드 매니저 엘마누엘이란 친구의 말은 도전적이다. "사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전 아직 마흔 밖에 되지 않았어요.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한 나이죠!" - p.227
아직 늦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로 작정하고 시작한다면 충분히 이르다. 이런 시도들이 국내에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나 사회단체에서 실업자들이 여러 극빈층의 자립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딧을 시험하고 있다. Ivf같은 학생선교단체에서는 20대 학생과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자본대출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과 관련하여 이 리뷰를 읽으시는 분 중에 아시는 것이 더 있다면 개인적으로 댓글남겨주시면 감사하겠다.
마르크스 한 사람으로 세계는 착취당하는 다수에 주목할 수 있었다. 케인즈 한 사람으로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다. 강만수 한 사람으로 이 나라가 온통 혼란스럽다. ^^ 깨어있는 탁월한 경제학자 하나가 세계를 변혁시킬수도 있다.
조국에 필요한 것은 정치가보다 오히려 '지성의 실패' 를 반복하지 않는 무하마드 유누스같은 경제학자 한 사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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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평화에의 위협입니다"
2006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상 수상식이 열렸다. 그 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무함마드 유누스 그리고 그라민 은행이었다. 그는 그라민 은행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기업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세계 곳곳에 알렸다. 그의 외침은 민들레씨앗이 되어 세계 곳곳에 사회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기업이란 더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은 그 단어의 조합을 얼핏 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공헌, 기부, 나눔이란 용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를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어슴프레 알고 있던 개념이 무함마드 유누스의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수십년 간 벌여온 사업을 통해 그 실체를 명확히 그려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은 그가 창안한 단어이자, 그의 삶이 빗어낸 매끈한 자기와도 같다.
그라민 은행은 처음에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로 시작했다. 42명의 주민이 총 856타카, 당시 기준으로 27달러가 채 안되는 돈 때문에 사실상 노예생활을 하던 것을, 무함마드 유누스가 대신 갚아준 것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시골' 또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시작은 미비했으나 그 이후의 성과는 놀라웠다. 모두의 우려를 뒤로 한 채, 대출금의 회수율은 90% 이상을 훨씬 상회했고, 돈을 빌려간 그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생력을 기를 수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사회환원'의 성격이 짙다. 여유가 있는 한도 내에서 행해지는 사회 공헌 활동인 셈이다. 이마저도 기업의 이미지 쇄신의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는 '나눔'의 의미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회적 기업'은 그러한 틀을 과감히 부숴버렸다.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적 기업은 자생력을 갖춘,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이다. 기부금이나 모금 등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그 성과를 다시 사회문제 해결에 환원하는 것이다. 그 발상자체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무함마드 유누스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부의 양극화와 같은 자본주의가 가진 맹점에 대한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그의 논리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통해 이룩한 풍요로움이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어찌보면, 자유경제체제의 맹점이 나은 시대적 산물이 그의 이론인 셈이다.
그는 경제학 교수였다. 미국에서도 수학했고, 고국인 방글라데시에서 안정적인 지위에 있었다. 그런 그가 국가가 처한 빈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접 그 중심에 뛰어들었다. 절대적 빈곤 앞에 그가 공부하고 가르쳐온 경제학의 이론들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결단과 용기는 수많은 이들을 굴레와도 같았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그가 창안한 '사회적 기업'의 개념은 수동적이지 않다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나약해져만가는 이들에게 한 줄기 등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북돋아주었을 것이다. 그의 삶, 그의 외침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리고 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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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유누스 이 책은 그가 2 번째로 쓴 책이다. 그라민 은행 간단하게 그라민 은행(http://www.grameen.com)을 소개하자면, 흔히 말하는 제 4의 섹터(제 4 섹터, 사회책임투자..)에 속하는 기업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 4의 섹터보다는 비정부기구, 제 3의 섹터와 제 4의 섹터 중간쯤 있는 기업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이 기업은 이익 극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그들이 하는 기업활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게 하는게 목표다. 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렇다고 다른 국제 기구처럼 그냥 베푸는 방식이 아니라 은행인 만큼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돈을 무조건 회수하는 것에 목표를 두기보다 그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회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말로 마을이란다. 내가 살고 싶은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그림, 그 지도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그라민 은행이 가진 구체적인 시스템을 모르기에 확실하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워렌버펫, 필립피셔에서 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투자에 대한 고민들이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나도 무하마드 유누스 같은 삶을 꿈꾼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거리로 나서서 외치기도 하고, 사회단체를 만들기도 했지만.. 난 그런 사람들처럼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자생력을 가지고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수많은 비정부기구들이 많은 사람들을 돕기위해 생겨났지만, 막상 그 사람들에 의해 마련된 재원이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지원되는 경우는 흔지 않다. 내가 아는 분 중에는 예전 아프칸에서 전쟁이 났을때 거기 난민들을 위해 마련된 성금을 구호단체에 주지 않고 직접 그 곳으로 달려가셨던 적이 있다. (물론 그 전에 현지에서 한동안 사셨던 분이다) 빌게이츠 & 워렌버펫 워렌 버펫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빌게이츠 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었다. 항상 워렌 버펫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보면서 약간 부족한 면을 느껴왔었다. 투자로써는 최고였지만, 돈은 정말 잘 벌었지만 잘 쓸줄 모르는 기업인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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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털싸이트 상위에 올라와 있는 검색어 중에 부자 10명중 8명이 부모의 덕을 봤다는 기사가 실렸다. 최근 한국을 뒤흔들어 놓은 최고 기업 오너의 부적절한 관행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부의 세습이다. 내세울만한 특별한 업적이 없이 부모의 덕을 이용해 무소불위의 권력이나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용인이 되지 않는 사회적 잣대로 여겨지는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순간을 모면하려는 기업가들의 입장에선 갈수록 투명해지는 사회적 기준과 치열해지는 공급 시장이 더욱 힘든 기업 경영을 예고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본주의의 단맛과 쓴맛을 경험한 세대들이다. 가난이란 말을 혐오하거나 무지 싫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시장에 가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장은 보다 더 라는 의미의 럭셔리나 중산층, 혹은 어느 정도의 금융 흐름이 가능한 대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많은 경제학 책들이 주장하는 것이 뉴욕이나 유럽의 근사한 도시 혹은 동아시아에서 떠오르는 일부 도시를 상대로 한 경제 논리뿐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한국적 상황도 이에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사회 복지라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정치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는 경제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린 어떤 틀에 의해 조직화된 방향으로 내몰리거나 거기에서 나름의 직업을 얻고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경제구조에 길들여져 있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믿는가? 자본주의는 점차적으로 승자 독식사회를 만들고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를 휘두르는 자유 자본주의에 대적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린 자본주의의 마지막 파행에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각오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북미, 유럽, 일부 동아시아국가들에게 엄청난 편리성과 국가적 이익을 안겨주었고 끊어 질 듯한 흐름은 거대인구의 중국과 인도에 다시 집중되어 스스로가 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생리엔 기업과 주주의 이익이라는 절체절명의 경제학 법칙이 존재한다. 만약 이익을 남기지 않고 기업을 운영한다면 투자가는 바로 자본을 회수하거나 주주는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기업의 주식을 팔아 버릴 것이다. 빠져 나갈 수 없는 경제 세계, 우린 이미 그 틀 안에서 나름 자기만족을 하며 자본주의의 맹아가 되어가고 있다. 1억4천의 인구를 가진 방글라데시는 인도, 중국, 파키스탄과 지역적, 종교적으로 분쟁이 잦은 지역이다. 그리고 유달리 자연재해가 많아 해마다 구제의 손길을 기다리는 가난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2006년 그라민 은행과 창립자 유누스 교수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받는다. 그들은 간디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도 아니었고 사상적 지도자들도 아니었다. 유누스는 가난한 자국민들에게 소수의 자금을 빌려주고 삶의 희망을 선물해 주었다. 그라민 은행은 이미 전설적인 마이크로 크레딧 은행이 되었다. 세계 국가들은 그라민 은행과 유사한 은행을 만들어 빈곤층을 위한 소규모 대출을 진행중이며 한국 역시 사회연대은행이란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라민 은행의 대출 회수율은 일반 은행이 70%인데 비해 96%에 달할 정도로 뛰어난 신용을 바탕에 둔다. 그들에게 그라민은 삶의 근간을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의 잉여 자금으로 그라민 트러스트, 그라민 크리쉬, 웃독, 펀드, 샥티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의 영역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라민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다. 여성은 아이들의 교육과 가정에 투자 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많고 삶을 바꾸는데 훨씬 적극적이다. 2006년 그라민과 유누스에겐 노벨상 못지 않은 사건이 생긴다. 프랑스 다농그룹이 유누스의 사회적 기업에 투자할 용의를 전달하고 실질적인 공장을 설립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요쿠르트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 유누스 교수가 가난한 사회를 없애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구도다. 그는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남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빈곤층에 대한 선진국의 자선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마이크로크레딧이 있다. 인간은 고유의 생존 방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기존의 사회적 구조는 고용과 실업률에 초점이 맞추어져 모든 것을 기업 구도로 봐야 한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 도시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 되어가고 있다. 수억이 들어가는 가게 비용을 제하더라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 정책은 이미 자영업이 설 땅을 싹쓸이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빈곤한 나라에선 자영업이 가능하다. 그들에게 소규모 대출은 삶을 영위하는데 그 어떤 것 보다 필수적인 사항이다. 유누스는 사회적 기업과 일반기업의 차이를 이익에서 찾는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기업에선 주주나 기업에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은 모든 이익을 재투자하거나 재활용하는데 사용한다. 투자나 주주는 일반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운용되나 그들에겐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감과 기여 부분이 주어진다. 인간의 근원적인 이타적인 마음을 고려한 사회적 기업의 출현이다. 프랑스 기업 다농과 공동출자한 최초의 사회적 기업 그라민 다농의 탄생은 기부라는 말을 배제한다. 그들은 사회적 참여를 통해 원금을 회수 할 수 있고 얼마든지 재투자할 사회적 기업이나 일반기업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라민 은행과 유누스는 세계적으로 큰일을 수행하고 있다. 빈곤에 관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운행하며 큰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누스는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척 크게 생각한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은 성장성과 사회 기여에 스스로에게 의문점을 던져 할 시점이다. 이익의 0. 몇%로 생색내는 이웃돕기나 자선 혹은 기부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여가 결국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새로운 틀이 형성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까운 20세기 초 어느 누구도 21세기 마천루 경쟁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린 지금 대안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가? 새로운 사업 구상을 찾아 블루 오션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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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비합히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아주 조금씩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라는 글을 어느 책 한 귀퉁이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는 비합리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비합리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안위와 가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풍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 더구나 자립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사소한 도움으로 극빈계층에서 탈출 시킬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지고 회사를 세운 유누스는 미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키면서 그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책은 방글라데시와 그 주변 남아시아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기타 개발도상국이나 제 3세계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는 훌륭한 생각임이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제일 위의 구절처럼 세상은 비합리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좀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