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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제목만 보고서 조금 무서울 법한 책이겠지? 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기분이다..
숨막힐듯한 추리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방 읽어 버렸다. 아직도 주인공 파머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남아 있는 듯한데.. 그리고 아린 마음.. 책의 내용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비둘기 사격행사 축제로 유명한 마을. 웨이머. 마을 남자들은 열 살이 되는 해에 총 5천 마리의 비둘기 들을 총으로 쏘고, 그 상처 입은 비둘기 들의 목을 꺽어 숨을 끊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링어.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아이이다. 아주 잔인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비둘기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머. 4살때 처음으로 그 축제를 목격하게 된다. 충격의 장소. 그리고 링어 들의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그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열살이 다가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다른 남자아이들은 링어가 되기를 기다린다. 심지어는 링어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파머의 집 창문으로 한 마리의 비둘기가 찾아오게 되는데..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매일 저녁 비둘기가 찾아오고, 파머는 비둘기와 함께 잠을 자게 된다. 그리고 아침이면 비둘기는 파머의 귓볼을 물며 깨우고.. 파머의 머리위에 올라 앉기도 한다.. 다음날 저녁이면 다시 비둘기가 찾아오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어간다. 파머는 비둘기의 이름을 '니퍼'(자신의 귀를 깨물어서^^) 라고 지어 놓는다.
하지만..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날. 열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파머의 친구들에게 비둘기를 몰래 키운다는 것을 들키게 된 파머는 비둘기를 멀리 날려 보내게 되고, 마침내 열 살 축제가 다가왔다.. 총성소리와 링어들의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소리들.. 그리고 비둘기의 시체들... 파머는 그 속에서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비둘기 '니퍼'를 발견하게 된다. 충격과 공포... 그 축제장에서 파머는 자신의 비둘기 '니퍼'를 안고 나온다.
왜곡된 관습에 당당히 반대편에 맞선 파머. 그리고 파머의 순수한 감성에 마음이 울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찡한 울림이 있었다. 대충의 내용은 유치할 것 같으나..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때때로 그는 자신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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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아들이 '헐'하며 눈이 동그래진다. 뭘 비튼다는 거예요? 설마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겠죠? 아이가 읽은 후 "엄마, 진자 감동적이예요." 한다. 어떤 부분이 아이의 가슴에 가 닿았는 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든다.
문장은 짧고 강렬하다. 속도감 있게 빨아들이는 문장은 역시 '제리 스피넬리'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링어? 그게 뭐지?
미국의 '웨이머'라는 도시는 매년 가족 축제를 맞아 그 축제의 마지막 날인 '비둘기의날'에 5천 마리나 되는 엄청난 비둘기를 공중에 풀어 놓는다. 그리고 비둘기를 가장 많이 쏘아 죽이는 명사수를 뽑기 위해 화약 냄새를 지독하게 뿌린다. 총상을 입고 미처 죽지 못한(?!)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서 괴로움을 줄여주는(?!) 아이들을 링어라고 부른다. 10살이 된 아이들에게 링어의 자격이 주어진다.
네 살때 처음 비둘기의 날을 목격했던 파머는 그 맘때가 가까워 올 때 쯤이면 공원 옆 축구장 근처에서 피어오르는 화약 냄새와 오렌지색 눈동자때문에 시달림을 당한다. 다친 비둘기가 괴로워한다면 왜 애초에 총으로 쏴서 괴로움을 주는 것일까? 왜 비둘기들을 그냥 날려 보내지 않는 것일까? -본문 58쪽 발췌- 엄마조차도 대답을 피하는 물음에 파머는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9살의 생일빵을 무사히 치른 파머는 빈즈와 헨리, 머토와 한 편이 되었다고 행복해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이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들이 엄청나게 두려운 대상으로 위협하게 될 지는 미처 알지 못한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은 왜 그렇게 항상 일어나는 것일까?
'니퍼'는 회색빛 날개에 분홍색 발을 지닌 통통한 비둘기다. 파머의 창가로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고 아침이면 파머의 귓불을 깨물며 잠을 깨운다. 니퍼가 찾아온 후로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을 지니게 된 파머는 '비둘기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도 틀어 놓지 못한 채 침대 시트를 갈고 먹이를 챙기며 니퍼가 망쳐 놓은 방 안을 정리하면서도 니퍼때문에 행복하다. 그런데 니퍼, 넌 왜 하필 오 천 마리나 되는 비둘기를 죽이는 이 무서운 도시에 나타난 거니?
빈즈는 최고의 링어가 되는 게 꿈이다. 이미 상처입은 비둘기의 목을 나뭇가지 부러뜨리듯 가볍게 부순 경험이 있는 그는 파머의 집 쪽으로 날아오는 비둘기를 보고 더듬이를 세운다. 파머의 열번 째 생일 날에도 무서운 손을 가진 괴물처럼 파머의 마음을 뒤흔든다. 빈즈가 알면 니퍼를 가만두지 않을거야...
혼자서 니퍼를 지키기가 힘들어진 파머는 옆집에 사는 도로시를 찾는다. 니퍼에게 쏠리는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 도로시를 무척이나 괴롭혔는 데 이렇게 도움을 구할 줄 어떻게 알았을까? 니퍼를 지킬 수만 있다면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빈즈와 아이들의 손에 끌려 찾은 링어 학교에서 파머는 양말을 이용해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법을 배운다. 정말 링어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그럼 니퍼는?
따돌림이 무서워 제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파머의 모습이 어찌 아이들만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야비하고 잔인한 빈즈의 모습을 그저 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소름이 돋는다. 어쩔 수 없는 절대 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야 했던 힘약한 모든 짐승들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감히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망설이는 모습이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파머의 머리에 앉은 니퍼를 가로채서 사수에게 전하는 빈즈의 악랄함과 대조적으로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파머!
니퍼를 떠나 보내기로 한 파머의 마음이 어땠을까? 키우던 강아지를 잃고 한달 동안 멍청하게 그저 시간이 가는 데로 자신을 방치해 두었던 경험이 있던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파머의 아픔이 오롯이 전해져 한참을 같이 울었다. 니퍼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차장에 니퍼를 놓아준 도로시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쓰러지는 비둘기를 보며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머는 니퍼를 찾기에 바쁘다.
어느 회색 깃털 비둘기가 니퍼인지 알 수 없었던 파머는 모두가 니퍼라고 믿었다. 천 번을 두고 계속해서 파머는 니퍼가 죽는 것을 보았다고 믿었다. 천 번을 두고 파머는 총알에 맞는 아픔을 느꼈다. 천 번을 두고 니퍼의 목이 꺽이는 것을 보았다. -본문272 발췌-
파머와 함께 숨이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면 조마조마하던 마음은 쓸쓸히 끝을 맺는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10살난 아이의 손에서 파닥거리고던 생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슴을 때리는 뭔가가 있기는 했던 걸까?
소싸움과 닭싸움, 투우를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이 어쩜 저렇게 잔인할까 치를 떨게 되고 저러한 생각이 살인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혹자는 인간의 그런 본성을 오히려 스포츠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 순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지만 글쎄! 격투기나 권투를 보며 죽여라, 죽여.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 보게 된다. 나와 다르다고 욕하거나 비난하지 말라고 배웠고 문화적 차이와 개인차를 인정해야 된다고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를 차이라고 봐야 할 지 여전히 의문이다. 식용으로 먹는 고기는 뭐가 다르냐고 혹은 또다른 질문들로 논쟁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뭐라고 나름의 답을 하겠지만 쉽사리 내릴 수 없는 결정 역시 각자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순종적이고 소심한 파머를 통해 용기를 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게 된다. 니퍼를 지키기 위해 외롭고 힘들었을 어린 마음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고 싶다. 아들을 혼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던 파머의 엄마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링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파머는 링어가 되지 않았다. 이 두 문장 사이에 녹아있는,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파머의 이야기를 함께 느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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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우리는 자라면서 거듭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한다. 어떤 것은 선악이 너무 극명하여 반드시 선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것이 악인 줄 알면서도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선악의 구분조차 모호하여 그냥 가 보았더니 원치않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거부할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일까? 또 거부함으로써 받아야할 댓가는 어느 정도 일까?
링어...
이 책 초반부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은 주인공 파머가 느꼈을 그 감정을 너무나 잘 전해준다. 왜 이렇게 읽어 나가면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지...
이 불편함은 차차 파머가 헤쳐 나가야할 성장의 고통이며 또한 힘들고 어렵지만 스스로 그 굴레를 벗기위해 안간힘 쓰는 파머의 행보에 동참하게 된다. 또래집단에서 스스로 등을 돌리는 엄청난 용기. 그저 왕따 당하지 않기위해 안간힘 쓰며 살아야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또다른 의미일 수 있다. 선택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이렇게 거부할 용기가 있는가?
시대의 흐름에 파묻혀가면서 그것에 저항할 어떠한 의지도 없는 성인들조차 숙연해지는 이야기. 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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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nger, 목을 비트는 아이. 참 묘한 제목이라고만 생각했다. 검은 하늘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비둘기둘. <향수> 류의 책일까, 그러고보니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비둘기>라는 책도 썼다.
몇 살 때였던가. 개를 나무에 매달아 때려 죽이는 광경을 본 일이 있다. 나는 집으로 달려와 구역질을 하며 눈물을 흘렸고,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그들은 웃으며 그 일을 했는데, 어렸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개가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왜 누군가가 누군가의 즐거움의 희생물이 돼야 하는지. 세상이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을 거라는 무언의 암시와도 같았던 그 일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해 왔다. 심지어 나는 어떤 경우에도 다수에 끼어 소수를 향해 소리쳐 본 적이 없다.
파머의 심경이 나는 참 이해되었다. 사람들이 5천 마리의 비둘기를 잡아 상자에 담아와서 축구장에서 풀어준 뒤 총을 쏘고, 미처 죽지 않은 비둘기들의 목을 비틀어 고통을 덜어준답시고 하는 그따위 축제가 파머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지 알 수 있었다. 10살이 되면 링어, 즉 비둘기 목 비트는 아이가 될 수 있고, 남자아이라면 당연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링어 되기가 남몰래 고통스러운 아이 파머.
니퍼는 그런 파머의 방문 앞에 날아든 비둘기다. 파머는 또래 집단에 속해야 했고, 그 일은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아홉살 열살 또래집단에서는 비둘기를 사랑하는 아이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마치 좀비 세상에서 홀로 정상인 것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기분으로, 파머는 고통스러워한다.
니퍼를 안고 축구장 한가운데 선 파머.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이기는 순간 파머는 성장할 것이다. 삶은, 남은 삶 역시 수많은 그런 굴곡을 지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파머는 성장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비둘기를 죽이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잘 잘못으로 가려지지 않는 불온한 인생를 견디는.
"왜 걔네들은 니퍼를 내버려 두지 않는 거지?" "니퍼가 걔네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비둘기로 태어난 것, 그게 니퍼가 한 짓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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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홉 살 된 파머의 생일에서 시작된다. 파머가 사는 웨이머에서는 전통축제로 비둘기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열 살이 되는 아이들은 누구나 비둘기목을 비틀어 죽이는 링어(wringer)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이것을 성장의 한 단계로 받아들인다. 파머는 이 끔찍한 일이 너무 싫다. 그렇지만 이런 행위에 대해 과감히 나서서 반대하거나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또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할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파머에게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온다. 파머는 비둘기에게 ‘니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먹이를 주며 보살핀다. 그렇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마음을 졸이는 날을 보내게 된다. 파머는 친구들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서 학교에서 일부러 말썽을 피우서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한다. 파머는 아홉 살에서 열 살이 되는 일 년 동안 ‘니퍼’에 대한 사랑과 마을의 전통관습과의 충돌이라는 엄청난 혼란 속에 빠진다. 파머가 겪는 이런 일련의 일은 결국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늘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파머의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 현실에 부딪혀 입는 고통에 가슴이 저렸다. 그렇지만 생명에 대한 이런 지극한 사랑은 결국 파머가 차가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서게 한다. 성장에는 큰 아픔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주인공 파머를 통해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아이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 들어간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아홉 살 아이의 심리세계가 이렇게 성숙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제 나 자신은 그 신비로운 세계에서 벗어난 지 너무 오래된 탓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