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준 이하의 번역에 책장을 넘기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몇 몇 문장은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해석이 불가능한 상황은 원작의 난해함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센스없는 의역이나 무식하게 직역하는 것 쯤은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번역에 힘쓴다는 번역가의 변을 봐서 이해하더라도 잘못된 조사나 접사의 사용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소설은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다. 막판의 반전은 이 소설이 곧 영화화될 것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사실 별다른 성찰이나 예술성을 논할 수는 없으나 재치있고 그로테스크한 문장들은 보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단, 위에서 말했듯... 아쉬운 번역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교훈을 위해 독서를 하지 않는다. 사실 교훈을 얻으려 책을 집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 교훈이라는 것은 원한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니컬한 소설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줬다. 그러나 그것이 척 팔라닉의 글솜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것이다. 어줍잖은 번역본에 의지하여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심히 괴로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와 더불어 번역가의 이름도 꼼꼼히 살피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필연적으로 본질적인 면은 퇴색되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퇴색이나 변질을 최소화하는 것이 번역가의 몫이 아닐까? 토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이제껏 영문판을 번역했다고 한다. 이번에야 비로서 러시아원문으로 번역하여 전집으로 출판했다. 한국에서 해외문학을 즐기다는 것은 이렇듯 힘든 일이다. 1. 영어, 독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어 등을 마스터하느냐? 2. 2%부족한, 혹은 2%의 완성도를 가진 번역본을 만족하며 읽느냐? 서평에 번역에 대한 아쉬움만을 토로했다. 그만큼 <질식>에서 느낀 감흥이 오역과 엉성한 번역에 대한 분노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과연 원작 자체에 그런 힘이 없을까? 아님 멍청한 번역의 기운이 원작의 힘을 날려버린 걸까? 원본을 보지 않은, 볼 수도 없는 나로서는 제대로 판단하기 힘드나... 조사, 접사 하나 똑바로 쓰지 못하는 번역가의 역량을 볼 때, 후자 쪽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농후하지 않나 싶다. |
| 컨테이너 열차의 디젤 엔진 수리공 출신 작가인 척 팔라닉은 영화로도 알려진 '파이트클럽'으로 인해 컬트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전체적인 내용을 뒤엎는 극적반전이 특기. 이 책에서도 그 묘미가 돋보인다. 섹스중독증, 질식사 연출 사기, 쉼없는 자학과 자기방치 등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서도 영악하게 이용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분노마저 아까울지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그를 그렇게 만든 원초적인 원인인, 지금은 정신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살기가 생길지도. 이탈리아어로 씌어진 어머니의 일기는 중반 이후의 흐름을 급격히 가속화시킨다. 예수의 표피를 이용해 태어난 주인공이 다름아닌 예수의 현신이라는 사실은 이제까지 내팽개쳐져왔던 주인공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계기가 되지만..막판 반전은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겠다. 단, 충격적인 섹스장면 묘사나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참을 수 없다면 읽지 말것. 무라카미 류보다 5배는 더 야하다. |
| 내가 사시인지 내 감성이 사시인지 나는 도통 일반적이지 않은가. 나는 이 작가의 사진 속 눈을 보다가 장난기 아니 장난기가 지나 약간은 광기까지 느낀다. 그가 말하는 빅터가 정말 측은한 그가 늘 말하는 멍청하고 어리석고 아둔한 아이의 영혼에서 결코 성장할 수 없는 현실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게 이미 끝인가..그의 글은 내게 악몽이다. 어린 시절 분명 꿈인줄 알고 매번 반복되는 테마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서 깨던 그 스토리 보드가 다시 이어지는 이 불길함. 누군가는 글을 읽을 때 그런 감흥(?)이 매력이라고 하는데...내 이런 감흥 살아서 힘겨울 때 충분히 넘치도록 실감하지 않는가. 하긴 그 반복되는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끝까지 읽어내는 내 의지는 아마도 그에게 뭔가 나와 같은 코드를 찾았기에...물론 그걸 바로 인정하는 그런 우월한 인간형은 아니기에...한 페이지를 그렇게 오래도록 물고 늘어지며 괜한 고집을 피우는지도. 나는 그가 사기꾼이라는 생각도 그가 사이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도무지 동감할 수가 없다. 냥 버려진 아이..측은한 우리 중 누군가의 머리를 고스란히 쏟아놓은 것이 이 책이다. 나는 고백하건데, 내 주변 모든 인간형 혹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연극배우 혹은 가장무도회에 출동한 비생물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오래오래 해왔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몽상(?)의 나래를 연장해보기도 한다. 측은한 그에게는 혹은 나에게(?)는 그래도 친구가 있었고...있고..물론 그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은 늘 거짓이다. 하지만 그 거짓 또한 그가 확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도 그 무엇도, 자신마저도..그는 자신을 의심한다. 우리는 곧 잘 말한다. '도대체 난 뭐야..'라고. 나는 읽는 내내 그가 왜 데니를 다 받아주는지 몰랐다. 물론 지금도 내가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중에 데니가 말한다. "코 풀어." 무관하다. 좀 심란하고 싶은가. 요즘 자신의 감성이 혹은 사고가 너무도 노말하고 정상(?)적인 범주에 안주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시도해봐라. 무지 심란해질 것이다. 장담한다. |
| 영화 파이트 클럽의 원작자 척팔라닉의 신작소설이다. 오래만에 이렇게 막나가는(?) 소설을 읽어서 약간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헐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답게 뛰어나 위트와 유머,간결한 문체,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스피드한 사건전개가 맘에 들었다. 특히 마지막의 반전은 그의 전작 '파이트클럽'을 많이 연상시켰다. 섹스중독자이며 질식사를 연출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일정부문 주인공의 자전적인 요소가 투영되고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사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손에 들면 쉽게 놓을수없는 매혹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玄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