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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크게 보면 1900년대 초까지 올라가고, 지리적으로는 러시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펼쳐지는 스케일 큰 작품이다. 한쪽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내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아파르트헤이드((apartheid; 인종분리정책)를 지키기 위해서 클레르크 대통령과 만델라와의 결합을 막고 국내 혼란을 부추기려는 암살 음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암살자의 훈련과 관계된 한 무고한 여자의 살인과 실종이 일어난다. 지리적으로 볼 때에도 지도상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두 지역에서 두가지 사건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있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을 물건으로 밖에 생각 못하는 아나톨리와 생명의 상실에 가슴아파할 줄 하는 발란더가 대립함으로써 각각 나란히 진행되었던 사건이 충돌을 하게 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또한, 작가의 범죄소설론에 걸맞게 현상금을 받고 살인을 주문하는 것, 러시아에서 범죄인, 비밀경찰 등의 해외도피를 통한 범죄의 확산 등 또한 곁가지로 문제 제기 된다. 그러나, 큰 줄거리가 정치적인 내용이라 복잡할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외로 여러 나레이터들 - 백인을 경멸하지만 그들의 시스템에 적응한 흑인킬러, 러시아에서 쫓겨나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은 전직 KGB, 대접받는 백인으로 태어났으나 흑인들의 처참한 삶에 의해 자신의 삶이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깨달은 관료 등 - 의 시점으로 숨가쁘게 사건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간 작품이었다.
"진실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모순적이다. 반대로 거짓은 오히려 분명한 흑백논리를 갖고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존경심을 갖지않고 경멸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는 삶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는 것과는 다른 진리가 되어버린다 (P369)." (--->흠, 근데 첫번째 문장을 읽는 순간 왜 부시가 생각날까? 오늘 날짜로 힐러리가 부시에서 세계질서를 선악으로 구분짓는 부시에게 경고했다나.)
맨처음 장면이 너무나 강렬했다. 여기는 1948년 남아프리카. 아직은 흑백인종분리가 철저한 시대이다. 3명의 보어인이 식당에 있다가 자신의 옷에 얼룩을 묻혔다고 늙은 흑인을 세차게 따귀를 갈긴다. 그들이 간 뒤 그 늙은 흑인은 억울하다는 감정을 억누른채 잊어버리려 하고 또 다음날 그들의 시중을 들 것이라는.... 인간이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믿는 종교가 다르고, 내려오는 전통이 이색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다른 이를 차별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부정적인 답변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자신들을 선민으로 믿고 인간간의 우월함과 열등함을 믿는 인간이 존재한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간인 *얀* 또한 모순적인 진실 속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는 것이다. 흑인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좀 더 옅은 피부색의 딸을 낳았으며, 그녀의 후손을 계속해서 좀 더 밝은 피부색을 가져 마침내는 백인과 구분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흰개미떼가 되어 집을 갉아먹을 것인가 아니면 하얀 암사자로서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가질 것인가가 음모를 직면한 이들의 내적 갈등인데, 결국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당연한 결과를 맺는다. 백인도 아니고, 보어인도 아니고, 아프리카인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발란더에 대해, " ....그리고 자신의 인생최대인 추적행위, 인생의 의미를 규명하는 과업은 실패로 남을 것이다. 그에게 인생은 여전히 그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P152)." 그래서인가 이 다음에 출판된 *미소지은 남자*에서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해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결국 그는 친구의 죽음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보니, 그는 영락없는 경찰,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부족함이 많은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시리즈물을 읽는 이유가 발란더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
| 계속 미뤄왔던 발란더 형사와의 첫만남을 이제 막 끝냈다. 추리팬이라 자처하는 주제에 이 무슨 뒷북인지,,,,,, "다섯번째 여자"를 진작부터 읽으려고 사뒀지만 시리즈 순서상 세번째에 해당한다기에 일단 보류,,, 그럼 처음에 해당하는 하얀 암사자부터 착착 읽어줘야지!했는데 하필 이 소설은 남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보니 정치 스릴러 쪽에는 별 재미를 못느끼는지라 사놓고도 몇달을 손이 안갔다. 이런 탓에 계속 방치하다 반쯤 체념하고 읽기 시작해선지 그럭저럭 읽을만 했다. 그래도 역시 이 발란더 시리즈의 첫편이 내 취향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하지만 헤닝 만켈의 거침없이 펼쳐내는 서사에는 감탄을 금할수가,,,,,, 스웨덴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평범한 기혼 여성의 살인 사건을, 멀고 먼 남아프리카의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 같은 정치 상황 안에 자연스레 엮어내고 있는 솜씨는 절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중반부를 지나면서 (헐리웃 영화의 공식같은) 간발의 엇갈림, 꼬임,,, 이런 게 너무 남발되다시피하니 되려 긴장감은 줄어들고 식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뻔한 정치 게임이나 액션씬이 가미되긴 했어도 톰 클랜시같은 미국 작가의 정치 스릴러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끊임없이 건드리는 뜨거운 울림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뭣보다 제일 반가운 건 쿠르트 발란더란 멋진 캐릭터를 만났다는 것! 마음을 끄는 이 수사관의 이야기가 아직 3편이나 더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어서 읽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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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야, 아주 좋다. 평소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운 아프리카의 내정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정치성과 인종차별을 다룬 추리소설이며, 한번 손에 잡으면 놓쳐지지가 않는 긴박감과 사회성을은 지금까지의 발란더 시리즈 중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빈번한 글자 오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단 이 책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 전 발란더 시리즈가 어색한 대화체를 비롯해(이건 작가의 의도된 대화방식일 수도 있고 스웨덴과 독일의 문법에서 오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오타로 가득해서 교정편집은 하고 출판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내용이 워낙 재미있어서 이런것 쯤 옥의 티로 생각했지만, 짜증은 책을 읽을때마다 거칠게 일어난다. 헤닝 만켈의 책을 출간해주는 것이야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기왕에 출판하는거 제대로 신경써서 책을 만들어야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좋은 소설에 이런 흠이 생기다니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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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무시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훌륭한 우리의 몇몇 정치가들은 그렇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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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의 '구르트 발란더' 시리즈 중 하나라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미스터리 컬렉션 중 한 권이었을 뿐. 덕분에 아무런 정보나 편견 없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처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설의 분량인데, 전자책이 아닌 실책이었다면 분책했을 정도. 하지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분량임에도 시간, 공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과 서로 교차하는 어긋난 시점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많은 분량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특이했던 것은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단순히 비현실적일 만큼 월등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닌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주인공이 주변인물들에 의해 느끼는 감정 이임이나 동요가 충분히 전달되었을 뿐 더러, 그 정도나 방향이 지극히 '일반적'으로 느껴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주인공의 이름을 빌려 영국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 있다는데, 과연 드라마에서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혹은 이러한 느낌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뿐인지 궁금하다. 이런 외형적인 형식과 느낌과 별개로, 작가가 건드리고 있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소재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평소에 피부로 직접 느끼기 어렵고 지리적, 심리적으로 머나먼 이야기이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도, 판단이나 평가를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소설을 통해 그러한 문제, 모순들이 실재하며 여전히 미제인 상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주인공 발란더를 통해 이야기 하듯, 진실이 오히려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모순적이고, 반대로 거짓은 오히려 분명한 흑백논리를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특징 하나.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스웨덴 소설들을 관통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시공간적 무대의 방대함이다. 분명 국가, 문화적 현실이 허구 쪽으로 투영된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 과정에서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 중 어떤 것의 영향이 더 컸을까 궁금하다. 철저한 준비와 경험에 토대를 둔 자료를 기반으로 삼는 경우라면 전자, 상상력의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경우라면 후자일 텐데, 어떤 경우든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어야 이런 걸 할 수 있는 걸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릴 듯한 촌스런 영웅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식 소설에 식상한 독자라면 충분히 신선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덧.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인 '하얀 암사자'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왜 하필 '하얀'이고, 왜 하필 '암사자'인지. 뭘 놓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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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추리소설이 너무나 많이 출간된다. 그러나 그 많은 추리 소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아서 코난 도일(영국), 애거서 크리스티(영국), 에드거 앨런 포(미국),모리스 르블랑(프랑스) ,히가시노 게이고(일본)등 일부 유명한 추리소설가의 작품이 사랑받을 뿐이다. 그래서 일까 스웨덴 출신의 추리소설작가는 조금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헤닝 만켈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꽤 유명한 추리소설가(범죄소설가)라는 것이다.
헤닝 마켈의 작품은 <미소지은 남자>에 이어 두번째다. 사실 <미소지은 남자>를 읽은지 몇년 전이고 그 내용도 가물가물 해서인지 그의 다른 작품을 선택할때 약간의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하얀 암사자>가 재미 있다는 평을 듣고 과감하게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재미있게 읽은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 여인의 실종 사건 (나중에는 살인사건이 되지만)이 우연이 어떤 일과 마주치면서 아주 커다란 음모와 연결이 되는 거대한 스케일의 추리 소설이다. 또한 이 책은 아주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존 인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직 대통령인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와 넬슨 만델라가 등장하고 그중에 한명을 암살하려는 조직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푸는 사람은 헤닝 마켈이 만들어낸 발란더 형사이다.
발란더 형사 그는 스웨덴 지방에 근무하는 중년의 수사관이다. 똑똑한 형사도 아니고 사건은 머리보다는 왠지 모를 직감으로 풀어내는 형사. 이혼남이고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있으며 딸과는 떨어져 사는 그야 말로 어쩜 이 시대 너무 열심히 살다보니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다 떠나버리고 혼자가 된 그저 아주 평범한 중년의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발란더 형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헤닐 마켈은 발란더 형사를 주인공으로 다섯편의 작품을 썼는데 난 이제 두 작품을 읽었다. 나머지 작품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 왠지 너무 똑똑한 형사보다 조금 어리숙해 보이는 발란더 형사에게 정이 가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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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지명들과 귀에 익지 않은 이름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짙은 우울함과 절망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헤닝 만켈의 소설은 재미가 있다. 제일 처음 '다섯번째 여자'를 읽고 나서 번역되어 나온 시리즈를 다 찾아서 읽어 볼 만큼. 아직 출판되지 않은 미번역작들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시리즈이긴 해도 각각 독립된 얘기들이서 그런지-일관되게 흐르는 분위기나 주인공은 같지만-아무 거나 먼저 읽어도 지장이 없다.
헤닝의 소설은 범인이 누구냐 하는 것보단 발란더와 그의 동료들이 사건의 중심으로-범인에게로- 찾아가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의 주인공인 발란더는 명석한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홈즈나 포와로식도 아니고, 시원한 액션을 구사하는 미국식 탐정도 아니다. 어찌보면 지루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막대한 서류 작업에 파묻히고, 눈물겹게 발품을 파는, 그야말로 일에 쩌들은 형사이다.
각각의 작품들마다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끝내 직업을 버리지 못하는 중년의 형사. 그의 노력은 정말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런 한편 그가 절망하는 스웨덴의 상황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와 그렇게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설이 나온 것은 90년대인데 말이다.
온갖 힘든 일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나라 경찰들과 우리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있음으로써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끝끝내 발란더가 경찰을 때려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발란더 같은 경찰이 우리 동네에도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앞에 분이 지적하신 대로 눈에 띄는 오타들은 참 거슬리지만, 그래도 소설만큼은 주저없이 <강력 추천>이다. [인상깊은구절] ... 저 아이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어떤 불안이 자리하고 있을까? 두 인간의 고독한 상념이 서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마주할 수 있을까? 인간은 죽을 때까지 다른 인간을 결코 온전히 알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을 아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
|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의 형사 쿠르트 발란더는 평범한 경찰이다. 강력 범죄가 난무하는 미국이나 다른 복잡한 나라의 경찰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중립적인 나라인 스웨덴의 경찰인 까닭에 인간의 능력 이상의 능력을 보일 필요도 없고 엽기적인 사건을 다루기 위해 비인간적인 성격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가 해결하는 사건은 다분히 그의 직관과 끈질김, 수사의 전권을 휘두르려는 다소 독불장군같은 성격에 의해 해결된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범죄자를 쫓다가 그를 살해했다고 우울증에 빠져 휴가를 떠나는 그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당연히 여기면 안 되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살았나 깨닫는다. 딸의 납치에 이성을 잃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재혼에 화를 내는 아들의 모습, 남아프리카에서 온 청부 살인자 빅토르에 대해 이해하려는 모습들을 보며 개인적이면서도 제 3자의 모습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이 작품의 큰 줄기인 만델라 암살 계획이라는 사건에 대해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이나 흑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시각이고 모든 문제에 대한 상관없는 방관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발란더를 통해 헤닝 만켈이 추구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지. 사회 문제에 대해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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