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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활약한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은 적지 않지만,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가 독특한 것은 여성성의 역사를 문학의 프리즘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서양 파트에서는 숫제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는 고대 문학만을 다루다시피 하고, 중세와 근대 초 파트에서 등장하는 여성들도 대부분이 문필가이다. 여성을 다룰 떄도 그 여성의 삶 자체보다는 그들이 남긴 글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예외라면 중세 파트에서 등장하는 키예프 공국의 올가 정도인데, 여기서도 올가를 다루는 후대 문학작품에서 올가를 어떤 여성으로 그려냈는지를 높은 비중으로 분석한다. 요컨대 역사시대 여성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여성에 대해 어떤 글을 썼고 여성들이 어떤 글을 썼는지로 더듬어보는 것이다.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높은 비중으로 다룬다. 예술작품에서 당대의 사회상을 도출하는 일은 종종 비약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함정을 노련하게 비해간다.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루는 문학작품은 모두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희곡인데, 공연되는 작품이란 당대의 사회인식을 반영하거나, 적어도 당대 기준에서 용인될 수는 있는 내용이기 마련인 것이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악녀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이 여성의 편견을 조장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절절히 느끼게 된다. 성녀 캐릭터는 한껏 칭송하다가도 그 성녀처럼 고결하고 고아한 여성이 아니라면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결과로 종종 귀결되는 반면, 악녀 캐릭터 중 태반은 가부장적 편견에 저항하는 장면이 나오기 떄문이다.
이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에우리피데스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가장 깊이있고 다채롭게 다룬다. 악랄하고 표독한 여성이 주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여성비하적인 작가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작품을 직접 보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남성은 얄팍한 편견을 내세워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은 그것이 불공평하다고 항의하고, 남성은 상대더러 순순히 복종하지 않다니 성품이 악독하다는 식으로 맞대응하다가, 종국에는 여성 전체를 비하하고 매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메데이아>에서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대면하는 장면을 보자.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돕기 위해 가족과 조국을 버렸고, 온갖 마법으로 정적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아손은 이웃나라 공주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메데이아를 추방하려 한다. 어떻게 물심양면으로 도운 자신을 버릴 수 있냐고 메데이아가 항의하자 이아손은 '당신은 그 덕에 야만국에서 벗어나 문명 세계에서 살 수 있었잖소'라고 응답한다. 이 상황에서 메데이아가 정말 표독한 악녀 캐릭터로만 보이는가? 메데이아가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되는 아내의 삶이 얼마나 불평등하고 부당한 것인지 청중에게 연설하며, 여성의 처지를 한탄하는 대목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외에 여성 문필가들도 다수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마거릿 캐번디쉬이다. 마거릿 캐번디쉬는 부유한 남편의 재산으로 수많은 책을 냈고, 가부장적인 사회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글도 많이 썼다. 객관적인 활약도로 놓고 보면, 20세기 이전 그녀만큼 활발하게 사회적 족적을 남긴 여성 문필가는 서양 역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페미니즘 사가들에게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본인 스스로 투쟁하거나 노력한 것도 하나 없고,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행동에 나선 적도 없는지라, 남편 돈으로 편하게 책이나 쓴 것이 전부하는 평을 받을 만 했지만, 가장 비판받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저서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 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기 마련이니 너그럽게 봐주십사 하는 내용의 글을 종종 썼던 것이다. 자신이 부족해도 너그럽게 보아달라는 말은 많은 문필가들이 으레 하는 말이지만, 하필이면 성별을 방패로 써먹었으니 후대 여성 사가들이 화낼 만도 했다. 개인적인 여성성의 발현보다 차별적인 주변환경에 대한 투쟁을 중시하는 페미니즘 연구 성향까지 더해지면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차별받는 여성, 능력에 비해 부당하게 푸대접받은 여성은 페미니즘에서 빠지지 않는 테마였다. 하지만 피해자의 이미지가 강조된 나머지, 그녀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보다 그녀들이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여성 문필가를 다룰 때조차 종종 그렇다.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어떤 말을 했으며, 여성 작가의 글에서 여성은 어떻게 말했을까?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는 페미니즘 담론에서 은근히 제외되었던 이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