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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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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풀이한 책이다. 더 정확하게는 뇌과학과 진화 등을 통해 종교의 발생을 설명한 후 현대 종교의 기원과 최근의 탈종교화 및 근본주의적 경향을 비판한 책이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뇌를 매우 발달시켰다. 인간의 뇌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도 주변의 상황을 빨리 해석하고 대응하도록 발달되었다. 이것은 원시시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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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풀이한 책이다. 더 정확하게는 뇌과학과 진화 등을 통해 종교의 발생을 설명한 후 현대 종교의 기원과 최근의 탈종교화 및 근본주의적 경향을 비판한 책이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뇌를 매우 발달시켰다. 인간의 뇌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도 주변의 상황을 빨리 해석하고 대응하도록 발달되었다. 이것은 원시시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주변의 일들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며 인식하고자 한다. 추측과 추리를 무의식적으로 하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믿으려고 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현상이나 사건에도 답을 제시하려한다. 인간의 두뇌는 모든 것에 대해 답을 가지기를 원하고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을 경우에만 우연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는 우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나열된 사건 속에서도 규칙을 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상상력과 창의성을 만들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다. 동물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동일한 일을 한다.

인간 뇌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은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혼란보다는 안정된 해석을 원하고 또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받아드린 가정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에 반대되는 증거가 나올 경우 이를 무시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집하려한다.

인간의 두뇌에서 무의식은 큰 역할을 한다. 또 이 부분은 사회문화적 학습을 통해 어린시절 형성되어 성인이 된 후에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이에 대한 설명은 좀 부족하지만 프로이드의 이론은 최근의 뇌 연구의 결과와도 유사하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의 종교나 도덕관은 그 사람의 평생 동안 따라다니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받아드리는 열린 사고를 위해서는 어린이에게 권위를 가진 사람의 사려깊은 행동이 요구된다.

최근에 와서 종교의 영향력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을 믿지만 특정 종교나 종파에는 소속되지 않고 그러한 특정 종파의 부도덕과 잘못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흐름에 반발해 일부러 자신들의 눈을 가리고 근본주의로 회귀해간다. 최근 이슬람이나 이스라엘 또 미국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종교적 우익의 강화다. 이런 일로 인해 전반적인 대중에게 미치는 종교의 영향은 작아졌지만 종교로 인한 분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책에는 많은 종교, 특히 기독교의 여러 분파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기원을 살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경우가 많다. 또 미국의 경우 일반 대중들의 종교관과 세계관이 다른 선진국과는 매우 동떨어져 낮은 수준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나라가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세계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퍼트리려 하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참 여기서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별로 좋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 과장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으나 대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l***m 2008.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무 급속하게 확산되는 확실성을 상대화하고자
"너무 급속하게 확산되는 확실성을 상대화하고자" 내용보기
올해 새 대통령이 된 분은 소망교회의 신도라고 한다. 행정 요직에 이 교회 신도들을 대거 기용해 뉴스가 되기도 하였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 그가 일요일 예배시간전후에 주차요원으로서 한 봉사활동이 그의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사교에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사회가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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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새 대통령이 된 분은 소망교회의 신도라고 한다. 행정 요직에 이 교회 신도들을 대거 기용해 뉴스가 되기도 하였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 그가 일요일 예배시간전후에 주차요원으로서 한 봉사활동이 그의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사교에도 큰 도움이 된다. 미국사회가 수많은 종파의 개신교사회가 된 것은 개척기를 겪어오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자치적인 도덕규범을 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생활의 위로를 얻기 위한 이웃과의 소통 통로로 교회를 이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식 개신교의 전파는 일찌기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영향을 주었다. 교회소속의 유치원을 다녔던 나는 간식시간에 앞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분께 기도를 드렸으며 해마다 크리스마스절기에는 맛있는 단팥빵을 주는 화려한 불빛치장을 한 교회에 즐겁게 드나들었던 것같다. 그이후로 특별히 개신교와의 인연은 없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온 대학시절에는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학교주변의 빨간 십자가가 자뭇 위협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너무 많았다. 신흥 동네였던 신림동 주변에는 특히 그 불빛이 많았다. 요즘에도 학교주변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나보다. 대학 새내기가 된 딸아이는 학교 교정을 활보하다가 부딪치는 전도요원들에게 아까운 시간을 할애해야한다고 투덜거리곤 한다.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 걸까? 왜 어떤 것을 믿지 않으면 불안한 걸까? 사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심히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던가, 아니면 겪었어도 그 일을 잊고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던가, 아니면 교회를 사교의 수단으로 또는 사회생활의 장으로 이용할 정도로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종교적 신비체험을 한 사람들, 또는 유에프오를 목격했다는 사람들 등은 초감각적 현상에 대한 믿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우연적으로 유사한 일이 잇달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초자연적 현상을 믿는 사람들이다. 엘도파라는 약물을 이용해 잘 믿지 않는 사람도 잘 믿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뇌의 물질 대사와 믿음이 관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어적 비관주의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악재에 대비하는 좋은 예방기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대신 악재를 벗어난 후에도 계속 비관주의를 유지한다면 안되겠지만. /지적 수준이 높든 낮든 어떤 그룹에 속한다, 결속되어있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교회(모든 종교의 모임)이다.

 

이 책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는 사람들이 가지는 종교적 근원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러한 물음의 출발점은 종교적 근본주의가 불러오는 파생적 문제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뿐 아니라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역시 문제의 타협에 장애요소임을 인정할 때이고 가톨릭교권 역시 수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권력과 위계질서의 산물이었음은 깨달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처럼 창조론자의 입장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며 믿음과 이성의 조화로운 상태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요즘에도 자동차를 몰고와서 엄청난 규모의 유리건축물안에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일요일 대낮에 텔레비젼으로 생중계되는 백발의 백인 목사가 진행하는 화려한 예배의식과 설교를 친숙하게 볼수 있다. 설교가 끝나면 흑인 보컬 성가대가 즉흥적인 가스펠송을 멋드러지게 불러댄다. 사람들은 일주일간 지은 죄를 씻고 다가오는 새로운 일주일을 착하게 살려고 다짐한다. 기업화된 교회가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곤한다. 진화론을 학문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 과학과 종교는 다른 영역이라고 굳게 믿는다. 믿음이 지나쳐 권력화되고 세계평화에 장해가 된다면 하찮은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때 믿음은 곧 미신이 되어버린다.

 

이 책은 시기적절한 이슈를 제기하였다. 그런데 책의 구조와 배열이 짜임새있는 반면에 하나의 주제로 집중된 메시지를 조리있게 전달하는데는 역부족인 듯하다. 그럼에도 칸트의 인용문은 가슴을 치는 데가 있다. 이성이 인간을 자기책임의 미성숙으로부터 탈출하도록 도와준다는 것. 그리고 저자는 덧붙인다. 히틀러의 부하였던 요제프 괴벨스의 예를 들면서 다른 사람의 지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도 미성숙이라고.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의 한 대목을 읊으며 어린 시절의 의식적 무의식적 교육이 미신으로 빠지지 않게하는 계몽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교육은 계몽주의의 기회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 빵집에서 산 빵에 빵집주인이 빵을 만들면서 침을 뱉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건전한 인간은 세상에 대해 어느정도의 기본적 신뢰감을 가진다. 또 어떤 이들은 니체처럼 믿는 사람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실을 이유로 믿음을 못갖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전도하려는 욕망에 불탄 사람들은 핑계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 말은 많은 위로가 된다. "믿음의 확신을 위해 오성을 포기하는 것은 편할지 모르나 정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의도를 한마디로 요약하였다. "이 책은 -희망을 빼앗지 않으면서 - 너무 급속하게 확산되는 확실성을 상대화하고자 한다."

f****e 2008.05.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맹목적 믿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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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인간의 뇌에는 종교적 경험에 관여하는 회로가 분명히 존재하며, 일부 간질 환자들의 경우 이 회로가 과민 행위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라마찬드란은 자신의 실험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밝혀낸 것인데, 뇌의 특정부위에서 종교적 경험과 관련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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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인간의 뇌에는 종교적 경험에 관여하는 회로가 분명히 존재하며, 일부 간질 환자들의 경우 이 회로가 과민 행위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라마찬드란은 자신의 실험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밝혀낸 것인데, 뇌의 특정부위에서 종교적 경험과 관련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의미를 찾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에든 잘 믿는다고 한다. 이런 성향은 유전적인 요인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말들을 종합하면, 유일신교에서 말하고 있는 신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으며, 또한 종교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우리 인간이 신을 믿는 것은 우리의 뇌 속에 존재하는 믿음에 관련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성향은 유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서 의미를 알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적절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면 잘못된 해석이라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거대한 일신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밑음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태양에서부터 각종 동식물에게 까지 영적 능력을 부여하고 이를 숭배해 왔다.


그러나 근대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많은 자연 현상에 대해 의미 있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의문을 해석해 내던 종교의 힘에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이 그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종교의 가르침과 믿음 체계는 서서히 붕궤되고 말았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 과학은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를 품고 있는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종교의 영역은 차츰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모두 신이란 존재는 인간이 만들어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도킨스는 무신론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는데, 사실 내가 보기에 무신론 자체도 하나의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믿음체계가 아닌가. 러셀처럼 우리는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조차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가 맞는 다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떤 과학자는 앞으로 50년 이내에 ‘신학’이 없어지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인간의 뇌에 대해 우리가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밝혀내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복잡한 뇌의 기능이 쉽게 그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논쟁은 아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도솔.2008년)도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결과와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인 마르틴 우르반은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한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신학자 집안 출신 답게 여러 종교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과학 저널리스트로서 과학적인 접근 또한 빈틈없어 보인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차이가 나는 인간의 사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고력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무의식에 스며들어 있는 경험들의 총합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이것은 합리성의 단순함을 넘어서는 매우 지혜로운 결정 방식이며, 인간이 진화를 거치는 동안 발달한 방식이다.”(34쪽)


저자 또한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인간의 생물학적인 요인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 책에서 신의 존재나 신앙, 믿음에 대해서 그 근거를 인간의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찾고 있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든 믿으려는 인간의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하니 말이다. 혹자들은 과학이 신앙을 대체할 수 있다고 까지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자연의 신비가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위대하기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e****n 2008.05.04.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들은 정말 무엇이든 믿고 싶어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정말 무엇이든 믿고 싶어하는 것일까?" 내용보기
믿음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게 되면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라고 나온다. 아주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정일 따름인데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확실히 넓고도 깊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란 게 담겨있는 까닭이 아닐까 싶은데.. 요즈음에 와서 믿음이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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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게 되면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라고 나온다. 아주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정일 따름인데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확실히 넓고도 깊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란 게 담겨있는 까닭이 아닐까 싶은데.. 요즈음에 와서 믿음이라는 의미가 왠지 종교적인 색채로만 보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무리한 생각일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보다는 아무래도 종교적인 것을 들이댈 때의 믿음이란 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평소 종교인들을 보면서 혹은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에도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찌 되었든 그 믿음이란 것을 붙잡게 되면 막무가내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다. 왜일까?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그동안의 내 물음표에 대한 마침표를 찍어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것에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말로 책장을 덮어야 했다. 그것 역시도 저마다의 느낌이 다를 수 있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일테니까 말이다.

 

책장을 펼치면 세세한 소제목들이 우선 눈길을 끈다. 한번만 주의깊에 살펴본다면 그리 쉽지않게 써내려갔을 저자의 배려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총 13장으로 나뉘어져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영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사람의 무의식이 어떻게 행동을 결정하며 뇌의 구조적인 점을 들어가며 그것을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들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되어진다. 믿음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이것이다,하고 정의내리기에는 뭔가 부연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되어졌지만 초반부터 내가 읽기에는 약간의 따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왜 신비주의에 빠지는지, 종교가 태어나게 되는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하는지를 저자는 성경의 재해석을 통하여 보여주려 하는 것 같았다. 얼핏 생각해보면 성경책을 아주 세분화하여 속속들이 밝혀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따분함때문에 책을 읽는 진도가 느렸다면 아마도 이쯤에서부터 이해의 속도에 탄력이 붙었던 듯 하다. 전설이나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과 복음서의 진위를 따져 물으며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무의식속에서 살아왔던 믿음의 실체를 아주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려웠다. 뇌의 구조라거나 알만한 사람의 이름을 빌어가며 실시했던 실험을 통하여 실례를 들어주고는 있지만 집중해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오래된 관념은 당연히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념은 뇌 속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의식에는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성서의 집필자들 역시 그들이 앞서 발견했던 관념들을 없애지 못하고 재해석했을 뿐이다.(110쪽)  어린시절에 교회 한번 안가본 사람이 있었을까?  그렇게 저렇게 이유를 붙인다해도 교회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관한, 특히 예수나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복음서는 창조적인 편집자의 창작물이라거나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을 해야 한다거나 종교안에서 일어나고있는 모순점들 등..어른이 되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우리가 마주쳐야만 했던 성경에 대한 재해석의 반론들은 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간에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저 '그만큼은 나도 안다'는 식의 말쯤은 어디에서도 할 수 있을만큼만..  하지만 나는 이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성경의 재해석분야에는 사실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성경의 재해석이 아닌 까닭이기 때문이다.  놀라웠던 점은 현대 종교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고대 샤머니즘을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있어 왔던 자칫 동화적인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샤머니즘의 행태로  지금의 종교속에서도 버젓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필요에 의해 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살아가는 현실에 의존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자구책으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 불안함을 무엇인가를 통하여 혹은 누군가를 통하여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여기 이 책속에서 그런 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관념에 따라 신을 창조했다"-루트비히 포이어바흐(133쪽)  시작할 때 말했던 것처럼 믿음은 철저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 신에 대한 감정 역시 철저히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죽음뒤의 세상을 말하기에 앞서 일단은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랐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안을 원한다. 그것도 마음의 평안을.. 나 역시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를 의지하고 있다거나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런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가질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은연중에 마음을 열어 그 사람과 함께 공유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물며 제 안의 불확실성이라거나 불안감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 할 수 있다는데에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둘씩 종교적인 모임이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고 또한 그 집단을 토대로 힘을 키우려하는 권력이라는 것도 생겨났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음이다.  이러한 종교단체들은 높은 참여율과 긴밀한 연대감, 엄격한 도덕규범, 막대한 자금을 신자들에게 요구함으로써 집단적인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인 정체성,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세계해석과 시대해석,정돈된 가족구조, 연대감으로 구성된 긴밀한 조직망을 제공한다.(291쪽)

 

이 책의 저자는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 안식일 교회등 수많은 기독교 종파의 탄생 배경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그에 따르는 창시자의 예언까지도.. 그리고 그들이 현재 어떻게 구원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떤 교리로써 사람들에게 다가가는지도. 그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지까지도 낱낱이 밝혀주고 있다. 일단은 재미있다. 고개를 끄덕이게도 한다. 결국 누가 더 많은 세력권을 형성하는가가 관건인 것처럼 느껴져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이라면 그것조차 어쩔 수 없는 일임엔 분명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의 종교전쟁에서부터 지금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끝도없이 치루어내고 있는 종교전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나는 모든 선한 자를 구원하고 모든 악한 자를 벌하는 전지전능한 '마초', 그리고 투사인 하느님을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삶이 참혹하게 무너질 때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자비로운 하느님은 믿습니다."(316쪽)  늘상 하는 말이지만 종교는 필요악이다. 필요해서 만들었지만 그것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되어버리고 만... 이 말을 앞세우며 나는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나는 믿음이라는 말이 예전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행로로 다시 부각되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참혹하게 무너져 지치고 힘겨울 때 눈물을 흘려주는 신을 믿는다는 말처럼... 결국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한 듯 하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누구나 외롭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외로움... 그것이 원죄의 업보일까?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i****9 2008.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문명의 발달과 함께하는 종교와 신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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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게된 책이다. 정치 및 종교에 대한 다소 부담스러운 곳까지 잘 표현해주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한번쯤 현재 사회에서 믿음과 종교라는 부분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종교의 역할과 실제로 인간사에서의 부분적인 역할에 까지의 전체적인 방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것 같다.   인간은 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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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게된 책이다. 정치 및 종교에 대한 다소 부담스러운 곳까지 잘 표현해주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한번쯤 현재 사회에서 믿음과 종교라는 부분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종교의 역할과 실제로 인간사에서의 부분적인 역할에 까지의 전체적인 방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것 같다.

 

인간은 태초부터 믿음의 심리를 가지게 된다. 아마 이것이 기타 다른 동물들과 다른 부분일것이다. 바로 생각이라는 부분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즉 감정적인 변화보다는 이성적 판단 즉 뇌의 활성화부분에 의하여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것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켜오는것이 바로 역사의 흐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옳지 않고 부당하다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자연적 법칙과 같은 원리로서 인정하고 수긍하게 된다.

 

아마도 종교가 없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것이다. 종교가 없던 사람들도 삶을 살아가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다보면 종교를 가지게 된다. 어떤이에게는 믿음이라는 존재보다 인간관계를 위해서도 종교를 찾게된다. 이러한 행동은 한편으로는 자기합리화가 된다. 실제로 종교가 없다하더라도 뇌에서는 어떠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러한 믿음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본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나를 보게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도 글을 쓰면서 독자로 하여금 믿음이라는 것의 시험을 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믿음...신앙...종교...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과학의 발전과 본 책과 같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면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뇌의 발달이 인류 문명의 발달을 가져오지만 한편으로는 무속신앙등의 출현을 더 발전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a******m 2008.05.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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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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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인가? 새삼 사전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사전을 찾아봤다.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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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인가? 새삼 사전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사전을 찾아봤다.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아는 단어이지만 사전에 풀이되어진 글을 읽노라니 웬지 규정되어진 확실함(?)때문인지 막연히 아는 것과 근거있는 자료와 데이터로 인한 앎은 많은 차이점이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해 본다.


이렇게 우리는 근거있는 확실함이 보장되어진 것을 좋아하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 점에 관해 인간의 지적인 부분과 영성부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인간의 심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확실한 해석을 찾아내는 능력을 발달시켜왔다고 한다.

고대 암흑시대부터 쌓여온 그 '대답들'은 우리 무의식으로 스며들어 환경이 바뀌어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라고 저널리스트이면서 과학에세이스트인 마르틴 우르반은 말하고 있는데 그는 이 책을 통해 종교와 정치 비판서, 고대부터 인간이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무의식적인 요인에 대해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라는 제목을 읽으며 처음엔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달라 의아해 했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원래 의심과 두려움이 많아 처음부터 담박에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생소한 것들을 내 눈앞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여부에 의해서 또는 익숙한 것으로 의해 그것을 믿고 안 믿기 때문에 제목이 원래는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의심부터 시작할까?』라는 제목을 붙여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훑어보면서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한 분석과 인간의 영성활동에 대한 분석과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 심리학과 행동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풀어놓아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수긍이 갔다.


책의 내용 중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무엇이든 잘 믿는 사람과 잘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실험해 보았더니, 잘 믿는 사람은 ‘거짓된 것’도 강한 암시에 따라 실제로 믿는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영혼의 경험(접신의 경험)은 간질 환자의 상황으로 연결시켜 ‘뇌의 측두엽에서 발작이 일어나는 간질 환자들은 흔히 ‘영적 환상’에 대해 진술하는데 이런 현상은 측두엽은 해부학적으로 기능적으로 해마, 편도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런 현상이 나온다고 한다.’ 또 명상을 하는 승려나 기독교 수사들의 경우를 보면,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는 뇌의 한 부분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감마파라는 고주파가 많이 나타나게 되어 이런 점들을 들어 라마찬드란은, ‘종교적인 경험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저자는 최고의 과학자들은 이미 신을 믿지 않는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현명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운이 좋은 사람은 세상을 좀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데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과연 보통사람들이 ‘운’에 대해 예상치 못한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에도 과학자처럼 근거 있는 분석과 해석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인가보다. 어쩌면 철학자 마티아스 융의 말처럼 ‘방관자’적인 사고방식일까?

어쩌면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꿈꾸지만 저자의 말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종교라는 안정감과 소속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속박 속에 우리 자신을 내버려두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YES마니아 : 로얄 t******7 2008.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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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불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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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제목은 '편안한 믿음과 불편한 지성, 당신의 선택은?'이다.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제목이였고, 십몇년여간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화두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어느정도 종교적인 불편함이 거리에 널려있다. 거리에서 선교를 하는 기독교인들과,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 시험볼때 절에가서 기원하는 사람들... 이러한 믿음들 사이에서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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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제목은 '편안한 믿음과 불편한 지성, 당신의 선택은?'이다.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제목이였고, 십몇년여간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화두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어느정도 종교적인 불편함이 거리에 널려있다.

거리에서 선교를 하는 기독교인들과,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

시험볼때 절에가서 기원하는 사람들...

이러한 믿음들 사이에서 서로이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믿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믿음을 부정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항상 공존해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부조리함들이 얽혀있는 속에서 현상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에서의 잠정적인 결론은 무의식적인 작용이 우리에게 믿음을 어느정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뇌의 오류라는 뜻인데, 어쩔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에피소드들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각 종교의 역사는 어찌보면, 불합리성의 강요의 역사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불합리성이 얼마나 인류에게 처절한 피비린내를 강요하였는지,

그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진것은 무엇인지가 진행된다.

우리가 종교에 대한 생각, 무엇인가를 지탱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준다.

어느정도 책을 시작하면서 잠정적인 결론을 얻고 시작하겠지만,

합리성과 이성의 어느 극단에 치닫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어느정도의 인간의 비합리성도 인간의 한 일면이라는 것과,

그러한 과정에서의 희생과 목표의 수립도 인간의 역사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수용하는 측면에 가깝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은 인본주의에서 시작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변화하면서 인류의 역사의 비극적인 측면과 발전적인 측면이 강화되지 않았을까 항상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종교적인 측면, 인문과학적인 측면, 생물학적인 측면, 사회과학적인 측면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이 화두를 이끌어 가지만, 화두에 대한 테마는 깊지만, 어느정도의 각 측면에서의 빈약함은 지우기 힘들듯 하다.

 

재미있는 테마역사 정도로 보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j******o 2008.05.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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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및 맹목적 믿음에 대한 과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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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이면서 과학에세이스트인 마르틴 우르반의 종교와 정치 비판서. 고대부터 인간에게 스며들어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무의식적인 요인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이 책은 뇌 과학의 연구성과를 적용하여 '사람들이 믿음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진화생물학 등의 최신과학을 활용하여 인간의 지적활동과 영적활동을 분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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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이면서 과학에세이스트인 마르틴 우르반의 종교와 정치 비판서. 고대부터 인간에게 스며들어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무의식적인 요인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뇌 과학의 연구성과를 적용하여 '사람들이 믿음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진화생물학 등의 최신과학을 활용하여 인간의 지적활동과 영적활동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종교사상과 정치에 대해서 심리학과 행동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내놓았다 / 네이버 책소개"

 

       전체적으로 위의 책소개는 일리가 있다. 두가지만 첨언을 하자면, 우르반은 베를린의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런 이유에서 종교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책을 읽기 전에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같은 이유에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러셀의 "내가 기독교인이 아닌 이유"와 같은 공격적이면서 적나라한 종교 비판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 책은 종교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한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때 자신의 사고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무의식에 스며들어 있는 경험들의 총합에 의존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뇌가 만들어 내는 현실을 투영하는 자신만의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실려 있는,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의 한 부분과 일맥 상통한다. 우르반은 이와 같은 경향이 사람이 진화해온 과정의 결과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종교가 아직까지 우리 주위에 남아 있을까" 라는 질문에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시도한 아래와 같은 설명으로 더욱 힘을 얻는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계에서 지극히 나약한 동물이었다. 고로, 부모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믿는 아이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늪지대에는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따르는 아이는 악어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고, 이 길은 사자가 자주 다니는 곳이니 피해라는 어른들의 말을 잘 믿는 아이는 사자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떨어진다. 그런 아이들의 생존 확률은 높아지게 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믿지 않고 자신이 직접 실험을 해보는 강인한 실험 정신의 모험가 기질의 아이들은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와 같은 진화적 설명은, 위와 같은 순반응 이외에 어른들의 거짓말까지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 이야기) 믿어버리는 유형의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적으로 생산하였고, 같은 맥락에서 종교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설명 할 수있다는 도킨스의 흥미로운 가설말이다.

 

       뇌혈류 분석에서 명상이나 종교적 흥분 상태에서 반응하는 부위가 특정 부위이고, 이 곳의 과다 반응이 간질이라는 사실을 인용하여, 저자는 종교적 반응이 자신의 뇌에서 이루어 낸 일종의 가상 믿음이라는 것과 이와 같은 막연한 믿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일종의 유전적 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현대 과학의 설명을 적절하게 전개해 나간다. 우르반은 이 과정에서 특유의 해박한 종교적 지식을 동원하고 인간 세계의 정치와 결탁하여 승승 장구하는 종교의 역사를 돌아 보기까지한다. 다른 여타 책과 같은 직설 화법은 지극히 완곡한 표현으로 대체되어 있지만, 이 책은 일종의 정중한 종교 비판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두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알카에다와 조지부시,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근본주의 종교 추종자들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예들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2004년 4월 엄격한 예배 규칙이 담긴 "구원의 성사"라는 훈령을 발표한다. 해당 훈령에 의하면 성찬식에 사용되는 성체에는 효모를 넣지 말아야 하고, 밀가루로만 구워야 했다. 미국 트렌트 지역의 주교 존 스미스는 이와 같은 훈령에 의거하여 한 소녀의 영성체 의식을 무효화한다. 그 소녀는 글루텐 불내성 질환을 앍고 있었고, 그 병은 밀가루를 섭취하면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에 의해 소장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는 병이다. 한 박애주의자 성직자는 그 소녀를 위해 밀가루 대신 쌀로 만든 성체를 주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존 스미스 주교가 그녀의 세례를 무효화 한 것이다. 이런 일이 2004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번째 이야기. 미국의 기독교 언론 기업 "인 터치 미니스트리스 In Touch Ministries" 는 이라크 전쟁이 벌어 지는 동안 매일 매일 조지 부시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월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비판에 굴하지 않고 올바른 행동을 강인하고 용감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 화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의 단결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 수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 , 그들의 가족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쉴 수 있도록,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기도하라.
  • 목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그들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세계 평화를 실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 금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그들의 사명을 인식하고 헌신과 은총, 진리속에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 토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항상 그들의 눈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향하도록 하고, 하느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신다는 것을 명심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 일요일 : 대통령과 그의 자문의원들이  매일 신의 지혜를 갈구하고 자신의 이성에 의지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 기도문에서 4가지에 주의하여야 한다. 1. 이성에 의지하지 않게 기도하라는 대목. 무서운 이야기이다.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2. 이 기도문에 이라크 국민, 군인, 미군 병사들의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다. 정치 권력과 그에 결탁한 현실에 실존하는 (그리고 인간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하였던) 종교 권력을 엿볼 수 있고, 이성적 박애 주의는 실존하는 종교와 별 관계가 없음을 이해 할 수 있다. 3. 이와 같은 기도문등으로 세계 제일의 군대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정책이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주는 섬뜩함이다. 북한이 이슬람을 믿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4. 지금 돌아 보면, 그들이 기도한 하느님은 위의 기도를 대부분 들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의 예들은 21세기 가장 진보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과, 어쩌면 이글을 읽고 있는 독실한 신자들이 본다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라는 점이 의미하는 바가 큰 것이다. 만약 위의 2가지 예들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는 신자 분들을 조금 반성하셔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우르반은 진보된 현대 과학 기술이 바라보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고 있고, 이 점이 다른 비슷한 부류의 책들과 이 책을 다르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흥미로운 최신 연구 결과들이 제시되고, 진보하는 뇌과학 분야가 언젠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은 설명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혹자들은 과학만을 맹신하는 것도 일종의 종교라 한다. 하지만, 난 단연코 이 주장을 반대한다. 과학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의 가설이나 설명들은 폐기하고 더욱 발전된 반성을 할 수 있지만, 종교는 원천적으로 이성을 무시하므로 이런 발전적 반성 과정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매우 더디다. 고로, 과학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무식함과 고지식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이유에서 종교라고 볼 수 없고, 삶을 이해하는 한가지 믿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적절할 것이다. 오랫만에 완곡한 어조의 종교, 정치 비판서를 과학적 사실과 풍부한 예들과 함께 재미있게 읽어 보았다.

      

j*****k 2008.05.30. 신고 공감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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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넘나드는 믿음의 역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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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로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매주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일주일에 2회 성경 시간도 있었고 각 반마다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도 학교 재단 소속의 교회에 나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했고, 이사장님은 그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다니던 3년간은 믿지 않아도 교회에 다녀야만 했다. 그때 내게 믿음의 씨앗이 뿌려졌으면, 지금의 삶은 많이 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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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로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매주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일주일에 2회 성경 시간도 있었고 각 반마다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도 학교 재단 소속의 교회에 나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했고, 이사장님은 그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다니던 3년간은 믿지 않아도 교회에 다녀야만 했다. 그때 내게 믿음의 씨앗이 뿌려졌으면, 지금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까?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물리학, 화학, 수학을 공부하고 과학 에세이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는 마르틴 우르반 씨는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2008, 도솔)에서,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동양에서 서양까지 모든 시공간을 아우르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들어가는 글의 질문이 심상치 않다. '편안한 믿음과 불편한 지성, 당신의 선택은?'. 저자는 우리가 믿는 이유를 알게 되면 무엇을 믿는 것인지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은 그만큼 우리가 믿는 이유가 다양함을, 믿음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다양함을 이야기하는 증거일 것이다.

이야기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항목으로 시작된다. 험난한 자연에서 원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할 수 있어야 했다. 뇌는 그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도 사실을 추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또한 원숭이들의 무리 생활에서 도덕이 생겨난 경위를 판단하면서, 사회적 공동생활을 통해 인간의 사고능력이 생겨났다고 추론한다. 이 설명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성과 프로이트의 무의식, 좌뇌와 우뇌의 역할 분담 등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에 대응하는 것으로 2장에서는 영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기원전 7000년의 석기시대에도 벌써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외과 시술이 일어난 것을 보면, 벌써 영혼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뇌와 영혼은 아직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처럼 생각과 영혼이라는 기반을 닦은 후에 무의식과 신비주의, 종교와 믿는다는 행위의 이유, 권력과 위계질서, 믿음의 위험성, 교회와 근본주의, 21세기의 믿음, 새로운 것의 불편함, 믿음과 이성의 조화 등 흥미진진한 항목들을 풀어 나간다.

 

이야기들은 아주 전문적인 생물학적 지식이나 인문학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학 에세이 분야의 개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독일의 퓰리처 상으로 불리는 '테오도르 볼프 상' 수상자답게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이야기는 술술 풀린다. 큰 항목의 제목으로 던져진 질문들에 대해 속시원한 답변은 싣고 있지 않지만, 원래 그 질문들은 뚜렷한 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심리학이나 인문학에서 보았던 실험 내용을 이 책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아는 사람을 낯선 지방에서 만난 것처럼 참 반가웠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어 맡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옷을 입는 것처럼 편안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맹목적인 믿음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제는 순수한 믿음보다는 권력과 위계질서의 측면으로 많이 달라진 듯해서 아쉽다. 책을 읽는 내내 사회와 믿음과 내 내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y*****9 2008.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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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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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반적 생각으로 '어떠한 대상을 신뢰하거나 의지하는 것 또는 어떠한 대상을 숭배, 경배하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기타 다른 정의가 더 나올 수 있지만 대체로 앞의 정의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진정 무엇일까? 이미 과학적, 종교적으로 확고한 의견들이 있다. 과학적으로는 뇌 작용에 의한 결과, 종교적으로는 신의 의한 결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믿음이란 무엇일까?" 내용보기

 우리는 일반적 생각으로 '어떠한 대상을 신뢰하거나 의지하는 것 또는 어떠한 대상을 숭배, 경배하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기타 다른 정의가 더 나올 수 있지만 대체로 앞의 정의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진정 무엇일까? 이미 과학적, 종교적으로 확고한 의견들이 있다. 과학적으로는 뇌 작용에 의한 결과, 종교적으로는 신의 의한 결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무엇인가 믿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이다. 과학으로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시기 이전의 거의 모든 인간들은 자연을 신성한 것으로 보았고 믿음의 대상,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때문에 자연 아래 놓인 인간은 그것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러나 마침내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더 이상 자연을 높게 보지 않았다. 이제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봄으로써 그것을 수단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수많은 설명들이 뒤따르나 아직까지 전인류가 공감 할 만한 확고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제시된 모든 답은 잠시 동안만 유효한, 언젠가 폐기될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가 축적 되었어도 믿음은 여전히 인간이 완벽히 밝히지 못하는 신비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믿음의 이유를 밝히는 책 중 하나이다. 무의식은 마음을 어떻게 설득하는가, 종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 왜 불신보다 믿음이 더 위험할까 등의 소주제를 통해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초반부에서는 과학적인 설명으로 각 주제를 풀어간다. 뇌 과학, 종의 진화 등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번 쯤은 들어봤을법 한 과학들을 언급하며 사람의 생각의 구동 방식, 무의식 분석 등 주제를 설명 해나간다.

 초반을 넘어 중후반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가 믿음이라 하면 흔히 쉽게 떠올리는 종교를 중심 소재로 하여 믿음의 병폐, 그것의 결과 그리고 미래 향방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런데 믿음을 기독교(카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이 책이 (순수한 의미에서의) 믿음에 대한 책인지 기독교(종교적 의미의 믿음)에 대한 책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모든 장에서 각 주제에 맞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나 역사 속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딱딱한 느낌이다. 지루한 감이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접하지 못했던 자료들이 많아 흥미롭기도 하다.

 

 책 전체를 통틀어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래서 그렇다."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주제에 맞는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각자 나름의 주장을 갖도록 한다. 하지만 제시 해놓은 자료들의 균형감이 떨어진다. 쉽게 말하면 첨부된 자료들은 믿음을 옹호하는 쪽이 아니라, 그것에 반하는 쪽의 자료 일색이다.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드러내놓고 지지하지는 않지만 자료들로 인해 한 쪽의 주장을 은근히 주입한다. 중립적인 책이길 기대 했지만 그렇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가 어찌 되었든 저자는 믿음과 이성의 합리적 조화를 바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믿음은 인간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자연에서는 너무나 어리고 약한 인간을 그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부호막 역할을 주었다. 하나가 되게 해주었다. 그리고 믿음은 항상 악용 되었다. 지배층과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믿음의 결과가 달라졌다. 선한 권력자가 믿음을 이용하면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악한 권력자가 믿음을 이용하였을 때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인간은 경험과 역사를 통해 믿음의 병폐를 잘 알고 있음에도 늘 무언가를 믿었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믿을 것이다. 믿음의 이유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단순히 뇌의 작용이나 진화의 산물이든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에 의한 결과이든 인간에게 믿음이란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도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f********3 2008.05.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