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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해방과 더불어 이념상 월북해서 북에서 생을 마친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에 대해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기회가 닿질 않던 중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민중의 삶,애환,언어,복장등을 천의무봉마냥 수작으로 알려져 있어,우선 홍명희의 삶과 문학,사상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좋은거 같아 이 도서를 선택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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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에 사로잡혀 지내온지 거의 두달이 되어간다. 임꺽정에 관한 것이라면 무슨 책이든지 관심을 가지고 찾다보니 여러 버전의 임꺽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꺽정은 천하장사니까 《천하장사 임꺽정》, 의적은 아니니까 《악당 임꺽정》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외설 임꺽정》, 《SF임꺽정》까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임꺽정이 늦게 배운 오입질로 한꺼번에 세 명의 부인과 한 명의 기생첩을 거느리고 질펀하게 지냈을지라도 《외설 임꺽정》이라니 착잡하기도 하다. 그래도 임꺽정이 그만큼 위대한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여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벽초 홍명희는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이다. 일생동안 애국자라는 그 명예를 잃을까봐 그 명예에 티끌조차 묻을세라 마음을 쓰며 살아왔다.(52쪽)"라고 고백했다. 그의 부친인 홍범식이 경술국치당시 자결하면서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52쪽)"고 남긴 유서는 벽초의 일생을 지배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신간회 활동과 13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한 《임꺽정》이다. 벽초가 뜻을 두었던 신간회는 "민족운동으로 보면 가장 왼편 길이나 사회주의 운동까지 겸치어 생각하면 중간 길"을 지향해야 한다고 천명했고 벽초의 인생길도 좌, 우편에 치우치지 않고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자 벽초는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뜻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했고 그 후 북에 잔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임꺽정》도 월북작가의 작품으로 분류되어 오랜 기간 금서에 묶이게 되어, 그 명성은 높았으나 막상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임꺽정》은 벽초에게는 순수한 창작활동을 넘어서서 민족계몽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계급투쟁과 같은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시키고자 쓴 것이라기 보다는, "일제의 민족교육 말살정책에 맞서 조선의 지나간 역사와 국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87쪽)"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임꺽정》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임꺽정》을 읽다보면 조광조 등의 사림은 말할 것도 없고, 퇴계, 이순신, 서경덕과 황진이, 휴정, 유정대사와 이지함 등의 역사적 인물의 소개가 나오고 꺽정이가 갖바치 양주팔을 따라다니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국토순례를 하는 것을 보며 벽초가 왜 이리 종횡무진 왔다갔다 하는가 의아하였더니 일제시대 동안 우리의 것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의 것을 알려주려는 애국자로서 품은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수호지같은 야담으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이면서, 꺽정이를 의적이나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고 리얼리즘 소설로 쓴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삼재三才라고 불리던 이 중 위대한 천재, 위대한 혼이었던 벽초만이 일제식민시대와 해방후 극심한 좌우대립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의 유일한 소설 《임꺽정》에서 그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조국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가득 담았다.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을 반영하듯이 《임꺽정》도 끝내 미완으로 남는 운명이 되었고, 벽초는 그리워하던 충북 괴산 제월리 고향을 다시 가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정작 좌익을 표방한 남로당 인사들은 숙청되었지만 좌우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중간길을 가고자 한 벽초는 북한에서 부수상을 역임하고 천수를 누렸다는 것은 격동의 역사속의 신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