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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남자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여인의 사랑과 그리움은 변함없는 순정으로 <<내 사랑 백석>>에 담겼다. 수능 시험에 백석 시인의 작품이 나온 후로 시험 대비 문제집에서 접하는 시인의 작품은 고향의 정취를 드러내며 사라지는 것들을 불러내 애잔한 그리움을 담았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김소월 시인의 ‘가는 길’에 나오는 구절의 평안북도 정주는 문인들을 배출한 고장이라는 말에 부합할 정도로 김억-김소월-백석으로 이어지는 시맥을 드러내고 있다. 오산학교 선배인 김소월을 선망해 온 백석은 ‘불세출의 천재’로 일컬으며 소월의 창작노트를 읽으면서 감탄하였다는 일화는 그의 시 쓰기를 촉진하였다. 유년기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있다 한 조각씩 꺼내 요동치는 현실에 휘둘리지 않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작품 속 고향의 명절 풍경, 이웃 할머니에 대한 추억, 또래 아이들과 놀던 놀이 등을 형상화하며 유년 시절에 익숙한 언어인 방언을 시 속에 활용하여 향토적 속성을 더했다. 백석 시인은 민속적 모티프와 방언의 현실적 특성이 호응을 이루는 시를 쓰며 공용어의 균질성을 비껴갔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힌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디로부터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비> 전문 흰빛의 임지를 형상화하는 시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사는 일은 북만행을 결행하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함흥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할 당시 회식 자리에서 만난 기생과 한눈에 반해버린 시인은 그녀와 동거하였지만 부모의 강권에 따라 결혼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주로 가버렸다. 28세의 나이에 시인은 자야와의 자유로운 사랑을 선택하기도 힘든 현실에서 북만행을 결행함으로써 스스로의 인생을 재건해보려는 새로운 시도로 저자는 보았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탈피하려는 이들은 유랑민으로 북방에서 생활하며 자신이 살던 땅에서 유배를 당하여 객지를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 인물들이었다. 시인은 고향을 떠난 공간에서 육친애를 드러내며 생명선으로 이어진 연결 고리를 떠올리며 생명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는 시를 썼다. 백석의 친구인 허준이 쓴 중편 소설 ‘잔등(殘燈)’을 공부할 때 낯선 소설가로만 여겼는데 백석 시인의 막역한 친구였다니 소설에서 화해와 포용을 실천하는 인간적인 사랑이 그려졌다. ‘(중략)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보기 드문 갈매나무에 굳고 정한 기운을 받아 그동안 겪었던 쓸쓸함과 어리석음, 슬픔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태도는 순수하고 고귀한 흰 눈의 이미지와 결합되었다.
나타샤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마가리에 가려던 시인은 끝내 그곳을 함께 가지 못하였고 부모의 강권을 뿌리치지 못한 채 결혼하였던 여인과 헤어지고 다시 결혼하였지만 사랑했던 여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운명적 남자였던 모양이다. 장남의 위치에서 한 가문을 일으켜 세울 인물로 자리해야 한다는 유교적 질서에 거역하지 못한 채 시인으로서 원고지에 정서를 표현하며 내면의 소리에 공명하며 지냈을 것이다. 시인을 열렬히 사랑하였던 여인은 백발이 성성한 때에 이르러 그를 그리워하는 수필로 지난한 사랑을 갈무리하여 사랑한다면 마음으로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무엇인지 가늠케 한다. 기회가 된다면 김소월과 백석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 평북 정주로 문학기행을 떠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