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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라졌다. 아니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가 어디론가 갔다. 시대가 시를 보낸건가, 혹은 내가 시를 멀리 보내 버린 건가.
봄이다.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겠다. 딱히 봄이라고 할만한 뭐가 있어야 말이지. 어쨌든 예전 언젠가는 봄이 오는 길목이 되면 온통 시적 감흥에 젖어 있곤 했었지. 배는 허전하고 힘은 없어도 그래도 정서는 시적이었다. 배가 고파야 시적이련가. 감성이 살아 있던 시대여서인가.
삼십 몇년 전, 김 기림은 정지용과 더불어 대표적인 '금禁'자가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거론하다가 걸리면 어떻게 될 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학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골방 구석에 돌아다니던 시인 장만영의 오래 전에 지은 책에서 김 기림을 보았다. 수업 시간에 겁없이 국어 선생께 졸랐다. 선생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고 시 몇 편을 적어 주었다.
분단과 이데올로기는 땅과 육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정서도 갈라 놓는다. 쪼그라뜨려 놓는다. 민족의 크나큰 밥그릇을 간장 종재기로 만든다. 그래서 이 땅은 스스로 쇠울타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그 속에 가두어 버렸다. 김기림과 정지용은 딱히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그렇지만 민족의 크나큰 밥그릇의 한 둘레를 차지하고 있다.
김기림의 시 중에 <금붕어>를 좋아했다. 다소 난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물론 김기림의 <금붕어>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노천명의 <남사당>은 더 좋았다. 소월시는 다 좋아했다. 우리의 시적 정서를 가장 잘 살린 사람은 소월이라 생각했다. 이들을 다 외고 다녔다. 삼십몇년전 울타리가 우리를 겹겹이 싸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가 살아 있었다.
김기림의 시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작가건 뭐건 한 결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다 좋아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가 못한 것이 일반적이다. 김지하의 70년대시를 그렇게 좋아했고 지금도 몇구절은 외우지만 김지하의 전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노천명도 그렇다. 노천명의 <사슴>과 <남사당>은 무지 좋아하지만 노천명은 거리가 있다. 어쩌면 일정 정도 시와 시인은 별개일지도 모른다. 시는 인간정서의 보편성을 끌어낸 것이어서 그 시인의 것이기도 하겠으나 동시에 동시대의 보편적 인간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삶은 동의 할 수 없어도 시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삼십몇년을 지난 지금 김기림을 다시 떠 올린다. 내 정서 속에 오랫동안 사라져 버린 시적 감성을 찿을 수 있을.......까?
< 바 다 와 나 비 >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公主처럼 지쳐서 돌아 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 기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