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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독자는 어떤 함수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기계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한다. 활자를 수단으로 <소통>하며 <교감>하는 관계, 가 가장 본질적이며 내포적인 작가와 독자 사이의 방정식이 아닐까 한다. 책 속에는 글쓴이의 지식과 지혜, 경험과 고백, 철학과 우주가 충만히 담겨 있다. 작가의 문자화 된 우주를 만나고 소통하며 교감하는 것, 작가의 머리로 잠시 생각해보는 것, 내가 아닌 너가 되어 보다 넓고 깊게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작가와의 호흡, 곧 독서의 본질적 의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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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내가 엄마에게 행복을 줄게" "뭐야? 아무것도 없네!" "이제 알겠어? 행복이란 보이지 않는거야.. 거봐, 이게 엄마를 웃게 했지? 그게 바로 행복이야"
모래한톨처럼 작게 접힌 종잇조각을 엄마에게 내민 아이와 나눈 대화랍니다.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찡해지고 감동적이었던 부분이에요. 여섯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게 네살 된 내아이도 혹시 여섯살쯤 되면 내게 이런말을 해줄까 기대가 되기도 했답니다. 중빈이와 엄마의 대화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중빈이가 하는 말들을 보면 아이만의 순수함,깨끗함이 뭍어나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이렇게 표현하고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요. 다른 아이들과는 뭔가 다른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육아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아이와 같이 있을 때 "엄마 놀아줘" 한마디에도 "그래~"가 아닌 "엄마 바빠. 혼자놀아~" 이렇게 되어버리는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얘기해 본적이 있던가 싶은게 이제부터라도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말에 귀기울이겠노라 다짐해봅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 세계 곳곳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집앞을 산책하고 가까운 공원에 가 집안에만 있어서 답답했을 마음을 트여주고 시원한 공기도 쐬어주면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것을 내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단 결심을 했네요. 언젠가 우리 아이와 나도 중빈이와 엄마처럼 사랑스러운 대화를 하는 날이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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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그녀 그녀는 나와 많은 부분 닮았다.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서 그렇다. 나이도 동갑, 아들 하나를 두었다는 점도 같고, 그 아이의 나이도 1살 차이, 남편과는 CC(사소한 차이점은 있다. 그녀는 Campus Couple, 나는 Company Couple)라는 점. 외형적인 것은 그렇다치고 내면적인 것에 대해 말로 비교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나의 부족한 표현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하고 싶어하던 이야기들이 바로 이거였어! 하고 무릎을 탁 치는 경우가 늘상 일어난다는 점에서 보면, 내면적으로 통하는 데가 많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감정과 고뇌들을 그가 무척이나 잘 포착하여 끄집어내고 글로 표현하기 때문인지 영 헷갈릴 때가 많기도 하다.
작가와의 동일시 그리하여 작가와의 동일시가 그녀에게도 일어난다. 난 책을 읽을 때 그 내용보다는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글쓴이, 즉 실제 창조주가 궁금한 것이다. 어떻게 하여 그런 글을 쓸 수 있는가, 혹은 쓰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에게는 글에서 표현되는 것 이외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가 하는 것들. 상상을 거듭하여 머릿속에서 그 생각들을 두리뭉실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에 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것이 나의 상상일뿐 아니라 실제 상황과도 부합한다는 조그마한 단서라도 발견하면 그지없이 기뻐하는 것이다. 이제 보니 그게 나의 독서 습관 중 하나인 듯싶다.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점 그래서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에 더 끌리는가 싶다. 강한 현실감,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 실제 나를 둘러싼 명백한 현실세계가 주는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택하는 것이 "판타지"가 아닌 실제 인물의 "삶"이 녹아있는 에세이류다. 너무 황당하지 않으면서 대리만족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대리인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소희라는 사람은 나의 대리만족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나 대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먼 곳에 여행을 떠나 주지 않나,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집 안팎에서 사소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글을 써서 실시간으로 들려주기 않나, 내 가족만 잘먹고 잘살자는 주의를 주입시키고 있는 요즘 세상의 현명한 사상들에서 과감히 벗어나 용감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그 속에서도 아이의 올바로 멋지게 크는 모습 통해 영리하지 못하고 어눌하기만 한 생활인에게, 그냥 그 정도로 살아도 충분하다는 용기를 주지 않나 말이다.
블로그와 책 사실 난 이번 책의 내용을 예전에 거의 다 읽었던 터라 내용 자체가 신선하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다만 블로그를 통해 실시간 중계를 보듯이 읽었었던, 긴 시간을 두고 며칠에 한번씩 읽고는 그 내용을 곱씹어가며, 인터넷 이웃들의 덧글들을 구경하며 매우 천천히 읽었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손으로도 그 느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였다. 블로그를 통해 읽을 때는 한 가지 이야기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과 이웃들과의 소감을 한마디씩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정말이지 책으로 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덧글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방통행과 쌍방향통신의 차이점이 뭔지 뚜렷이 느꼈던 체험이다. 하지만 책이라는 건 역시 휴대의 간편성, 소유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준다는 점, 선물할 때의 느낌 또한 전자매체보다는 뛰어나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블로그를 통해서는 볼 수 없었던 사진이 들어있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처음 대했을 때의 글과 책에서 만난 글이 약간의 차이(수정이 가해진 부분이 아마도 있었겠지)로 인해 느낌이 많이 달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은 나를 매우 서운하게 하기도 했다.
사랑스런 꼬마 철학자의 유아기 서설 치곤 너무 길었다. 이 책은 "육아서"로 분류가 되었는데 그 분류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라고도 볼 수 있으니 육아라는 말도 맞을 것이고, 엄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혹은 우리네 삶의 보편성을 통찰하는 부분이 많으니 철학서로도 볼 수 있다. 그냥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분류야 뭐 어떠랴. 그냥 육아일기라고만 하기에는 문장들이 너무나 시적이고, 모두 잠든 밤에 빗소리도 자작자작 들릴 때 쯤 읽으면 더욱 금상첨화일 듯한 사랑스런 언어들이다. 주인공 아이인 중빈은 사색과 대화가 특기인 엄마를 닮아 매우 철학적이다. '나에게는' 이미 "우리 모두의 사랑스런 꼬마철학자"인데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작가가 글 쓰기를 계속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팬클럽 하나쯤은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중빈과 그의 엄마를 보라. 울 아들과 그의 어미와 얼마나 많이 다를지 뼈가 저릴 지경이다. 공감하시는 엄마들 많을 듯. 하지만 이 세상에 모두 나와 같은 엄마들만 있다면 얼마나 심심할 것인가. 그 점에서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이 고마울 따름이다. 때로는 숨차게 내달리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 아이와 닮기도 하고 무척 다르기도 한 한 아이와 엄마의 대화 속에서 우리네 사는 "보편적인" 모습과 신선한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머릿속에 바람을 좀 넣어보는 것,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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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똘이 혼내지 마세요. 그러면 내가 너무 속상하고 슬프잖아요.” 며칠 전, 돌을 앞둔 조카 똘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기에 내가 “너 이놈, 그럼 안 돼!”라고 했더니, 네 살 난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말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 사소한 감정까지 다 표현하게 되었을까? 그 조그만 머릿속이 궁금하다. 책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는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기를 쓰면서 인터넷에서 인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소희 씨의 아이 이야기다. 특별히 ‘자녀교육서’라고 칭하기에는 좀 소박하고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의 아이가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오소희 씨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문체로 표현한다. 세 돌이 된 아이를 데리고 터키 배낭여행을 떠난 후 아이가 여덟 살이 된 현재까지 단둘이서 시리아, 레바논, 라오스, 아프리카 등의 오지만을 찾아 돌아다녔으니 이 모자의 삶은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 법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감행하는 용감한 엄마의 일상은 어떨까? 퀴퀴한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아빠 발, 엄마 발의 냄새를 서슴없이 맡는 저자의 아들 중빈이. 어른들에게는 이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확실하게 입력되어 있는 세상의 모든 냄새가 아이에게는 그저 즐거운 탐색의 대상일 뿐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사고는 이처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자라면서 귀여운 짓도 많이 하지만 엄마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많이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저자는 아들 중빈이가 즐겨 찾는 ‘파워레인저’가 영 못마땅하다. 하도 그 이야기만 늘어 놓기에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들여다 보니 어른이 보기에는 공격적인 듯하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아이와 함께 얘기하기 시작하자 아이는 드디어 엄마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어때, 엄마? 내가 좋아할 만하지 않아?” 아이의 이런 말에 저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상에는 아이에게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게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것은 곧 아이가 좋아하면 안 될 것이라는 방정식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가 비록 좋지 않은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해 줄 필요는 있는 것이다. “아이는 이미 내 품을 떠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자신만의 <기호>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호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치게 편향되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정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엄마와 먼저 나누고 싶어 했던 것이.”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나게 될 아이들. 그들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들은 쉽게 그들의 의견과 사고를 무시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쉬운 부모들에게 좋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요구와는 다르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성장해 가고 있다고 깨달으면 굳이 아이의 행동을 구속할 필요가 없다. 네 살이 된 중빈이는 부쩍 궁금한 게 많다. “엄마, 우리는 왜 저기 안 살고 이 건물에 살아? 엄마, 왜 나무는 나쁜 공기를 마시고 좋은 공기를 만들어? 왜 나는 지금 다섯 살이 되면 안 돼? 왜 포도는 동그래?” 이런 엉뚱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상황을 즐긴다. 끝이 없는 아이의 질문은 옛날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던 것만큼이나 기대되고 짜릿하다고 표현한다. 아이와 이처럼 충분한 대화 상황을 즐기는 가정이라면 깊이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아주 행복하고 즐거움이 넘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기쁨을 준다. 엉뚱한 그들의 사고, 이야기, 노는 모습, 해맑게 웃는 표정. 이런 아이들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네 살 된 딸이 묻는다. “엄마, 뱃속의 아가는 어떤 모양 집에 살고 있어?” “응, 풍선 모양 집에 살고 있지.” “그럼 동그란 모양이네.” “그렇지, 너는 어떤 모양 집에 살고 있는데?” “난 네모난 집에 살고 있지. 엄마랑 아빠도 네모난 집에 살고, 이모도 네모난 집에 살고...” 조잘거리는 아이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이렇게 부산하게 이야기를 늘어 놓으니 오늘 하루도 그 조그만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일 듯하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어려운 사람을 위한 모금을 한다며 자신이 모은 육십 만원의 돈을 서슴없이 내놓는 책의 주인공 중빈이. 너무 큰돈이라 엄마는 아까운 마음에 망설이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아이는 끄떡없다. 책을 읽으며 우리 어른들은 너무 좁은 사고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중빈이가 커 나가는 모습 속에는 어떤 동화에서도 만나 보기 어려운 풍부한 상상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우리 아이들의 세상일 것이다.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꿈꾸는 무한한 세계를 가로막을 게 아니라, 그 상상의 공간에 가끔은 첨벙 뛰어들어 동참해 봐야겠다. 그럼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게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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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소희. 내가 그녀를 알게된건 작년 여름 터키여행을 준비 중 일 때였다. 이미 카더라 통신을 통해 그 나라가 위험하다는 걸 인지한 나의 주변인들은 터키 행을 포기하라고 날 설득시켰다. 그 곳엔 무엇이든지 다 있다는 터키 관광홍보를 보고 이미 마음을 결정한 나는 터키가 아름다운 곳이라는걸 입증하기위해 터키에 관련된 모든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그녀를 만났다. 세살 짜리 아들 중빈이와 터키여행을 떠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의 책을 통해, 남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곳을 아빠도 없이 엄마와 세살 짜리 아들이 떠났다는 것에 무한한 위로를 받고, 그 곳에 가리라 확실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어했던 터키를 그녀의 손을 거치니 더욱더 그곳이 매력적인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만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3살 아이와 천천히 걸어가며 벼슬 마냥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관광지를 다니기 보다는, 땅 아래에 흐트러진 꽃과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볼 수 있는 여행. 남들이 결코 발견해 내지 못했던 것을 아이와 함께 발견한다는 것.. 참으로 낭만 적이였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는 어린아이가 나보다 영어를 잘 한다니 그 아이가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카더라 통신'을 비웃기라도 한 듯 [욕망이 넘치는 곳, 라오스]란 한 권의 책을 더 냈다. 가끔 그녀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endofpacific에 들어가 그녀의 근황도 살피며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세번째 책을 냈다. 이번엔 살짝 외도(?)해서 육아서를 냈다고 하니 세살아이와 여행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아이가 수준급의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기까지의 육아방법이 궁금하기도해서 그녀의 발간소식에 맞춰 책을 구입하였다.
"이 책이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알짜배기 육아정보가 아니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위안과 격려를 드리고 싶다. 육아란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대상도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며, 그저 이 순간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한 일이라고."
아이가 어떻게 하면 똑똑해 질까에 대한 육아 정보를 원한다면 이책을 살짝 빼놓고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런면에서 난 이 책이 육아서로 생각 되질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조금씩 유연해 진 엄마의 상념들을 통해 나 또한 성숙해 짐을 느낄 수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그런 점에서 그녀의 글이 좋다. 여행에세이 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지의 소개보다는 그것들과의 상념, 육아서 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와의 소통을 그린다는 것. 그게 그녀 책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영어 유치원, 학습지, 음악레슨, 수영레슨... 나보다 더 바쁜 조카를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한참 뛰어 놀아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것이 아닌지 다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녀는 그저 아이들과 같은 눈의 위치에서 친구가 되고 같이 뛰놀고, 모든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게 보듬어 주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에 전 폭 지원을 해 주면 자연의 신비처럼 아이도 올바르게 커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는 엄마가 소유하거나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가 자란다" "엄마가 자란다" 두개의 큰 파트로 분류된 엄마와 중빈이의 러브스토리를 읽으며 이내 나의 마음도 자라남을 느낄 수있었다.
"그렇게 너는 올라오고 나는 내려가면서, 언젠가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만날 것 같다. 그리고 또 그렇게 지나가겠지. 너는 계속 더 올라가면서, 나의 부족함을 답답해하고 심지어 그것을 나무랄 날도 오겠지. 나는 네가 앙코르왓 사원의 거대한 나무처럼 위로 위로 멀어지는 걸 흡족하게 바라보겠지."
그녀의 책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여운을 남겨 준다. 비록 내가 원했던 영어 잘 하는 방법은 없었지만, 그녀의 책으로 하여금 나에게 사색할 기회를 주고, 감사할 기회를 주고, 사랑할 기회를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 통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 그것 처럼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어서 그녀의 네번째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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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이하며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책 한권을 만났습니다. 중빈이라는 아이와 엄마간의 성장일기 아니..성장대화라고 해야할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게 살아가면서 어떤 의미일까 자주 깊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이 나를 키우며 행복을 느꼈듯이 내가 이 아이를 키우며 행복을 느끼는게 전부가 아닐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결코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에게는 행복이 되는 존재.
보통 책을 읽기전에 작가에 대해서 한번 보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는데 이 책은 그냥 무심코 책안부터 보게 되었답니다. 한참을 읽어가다..도대체 누구일까..하며 저자의 소개글을 보게 되었어요. 아...<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라면 이런 육아일기를 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마치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인생 한 구간을 걷는 여행인 것 처럼 생각을 주는 사진들과 더불어 써내려간 아이와의 대화는 여행중에 잠시 갖는 휴식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더군요.
3살 아이를 데리고 터키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의 여유를 지닌 엄마는 4살부터 7살까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모자간에 나눈 대화의 내용이 한글과 영어가 섞여서 마치 잔잔한 일상처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엄마를 닮아서일까..중빈이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참 깊고 투명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날 중빈이가 엄마에게 종이조각을 내밀면서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은 종이를 보며 엄마는 " 아무것도 없네!" 아이느 말합니다. " 이제 알겠어? 행복이란 보이지 않는 거야" 아이의 조숙한 말에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더니 아이는 " 거봐..엄마를 웃게 했지? 그게 바로 행복이야"
아마 세상의 남자들은 이해를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세상모든 것이, 나 자신조차도 새롭게 태어나거든요.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하나씩 알아가는 모습, 눈빛, 무심토 튀어나오는 말들 속에서 엄마는 세상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우리아이 이제 말잘하기 시작한 3살...우리 아이또한 날마다 엄마마음을 찡하게 하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 엄마가 자주 "예원이 아프니 엄마마음이 아프잖아..속상하잖아.."하니 이제는 아프면 "엄마 마음이 아파?" 그래서 엄마는 마음이 찡...합니다... 장난감을 정리하다가도 힘들다고 하면서 비켜서서는 정리하는 엄마를 보며 " 엄마, 미안해요~""엄마, 죄송해요.." 도대체 그 의미를 다 알고 말하는 것인지..뭐가 그토록 죄송하다는 것인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엄마는 찡...하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아이가 유아기에 자라면서 엄마와 나누는 대화들이 나중에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는지 아실거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욕심이 생깁니다. 나도 이렇게 우리 아이가 내게 해주는 대화들을 소중히 간직해놓고 싶다..라는 생각을요.
작가가 아이와 나누는 대화들 중에는 참 인상깊은 대화들이 많습니다. 아이와 성에 관해서 나누는 대화내용은 앞으로 내가 말해줘야 할 것들이기도 해서 꼼꼼이 보았어요. 나눔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깊었어요. 그녀의 육아방식은 '따로 할 수 없다면 함께 즐겨라'라고 합니다. 이 말처럼 그녀는 아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내버려두는 육아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2개국어를 사용하는 그녀와 아이의 대화가 독자가 읽기 쉬우라고 일부러 영어를 없애지 않은 것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와 이런 대화를 이렇게 영어로 하면 되는구나..이런 주제는 이렇게.. 영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법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특별한 읽을 거리가 많은 책이었네요.
중빈과 중빈엄마를 통해 또 다른 육아의 세상을 보게 되고 내 아이가 중빈이 나이가 되어서 이런 생각을 하겠구나..이렇게 질문을 하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기는 특별한 육아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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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라는 터키 여행기를 통해서이다. '여행작가' 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프로필에 덧붙여 '이 사람은 아기 엄마이기도 하구나' 하고 확연히 알 수 있었던 이유, 바로 그 여행에 그녀의 세돌된 아들 JB 가 동행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주옥같은 글들을 읽으며, 나는 때로는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의 어려움 대해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으로 공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자신의 관계,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그녀의 글귀들에 감탄하고,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들과 그녀가 나누는 사랑스럽고 소담스러운 상호작용을 부러워했다.
그리하여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는 주저 없이 선택하였고, 책을 덮은 지금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뭐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 마주하고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의 기록'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터키 여행기에서 세돌이었던 JB 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여행' 이라는 '벗어난 일상' 은 잠시 접어두고, 그녀와 중빈의 '진짜 일상' 을 엿본다.
그녀는 아이가 말을 시작하며, 온갖 사랑스럽고 귀여운 말들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에 대해 엉뚱한 질문을 하는 시기의 대화기록을 노후보험마냥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책은 '사랑, 행복, 우정, 성(姓),성장, 수용, 변화, 감사' 라는 챕터로 묶여있고, '아이가 자란다'와 '엄마가 자란다' 로 또한 크게 나눠져있다.
그녀의 글은 서문부터서 마음 속 답답했던 한켠을 뻥 뚫어주며, 모든 엄마들에게 심심찮은 위로를 건넨다. 더불어 손뼉치며 공감하게 하고, 가슴 뭉클하게 한다. 나는 솔직히 이 에세이의 리뷰를 잘 쓸 자신이 없다. 그저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분명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별이 다섯개 뿐인것이 아까울 정도다.
조금 이름있다 하는 육아서들은 엄마들에게 '이렇게 하라' 고 강요한다. '이렇게 해야한다' 고 말하고, 인터넷 까페에 엄마들도 쌍수들고 똑같은 내용을 역설하고 답습한다. '모두들 이렇게 한다' 는 생각속에 어느새 육아도 트렌드가 되고, 경쟁이 되버렸다.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의 소신을 지키기는 참으로 어려운데 그녀는 그런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공동육아와 어린이집을 거치면서 여자 아이들을 만나 이성에 눈뜨는 알콩 달콩한 중빈의 사랑 얘기에 절로 미소를 짓게되었고, 죽음에 눈뜨고 진지해지는 중빈이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몇 년이나 모아 놓은 65만원의 돈을 선뜻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아이의 순수함에 감탄하였고, 요즘같이 어린 아이때부터 욕설을 달고사는 세상에 엄마에게 사랑스러운 말만 쏟아내는 중빈이를 둔 그녀를 부러워했다.
한편, 참으로 잘 자란 중빈을 있게 한건 올바른 소신을 가지고서, 아이의 성장을 이끌어주고 지켜봐주며 하나의 완전체로 인정해준 그녀 나름의 육아방식 덕분임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는 부모가 준 것의 총합으로 형성된다는 그녀의 말에 이제야 진정으로 공감하게 된다. 아이의 기습질문에 성의껏 대답해주고, 강요하거나 조바심을 부리기 이전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 에 귀기울일 줄 알고, 아이 덕분에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엄마가 있기에 중빈은 잘 자란 것 같다.
그녀의 글에는 '아이와의 산책' 얘기가 자주 나온다. 산책을 하는 동안, 동네 할머니도 만나고, 그 손녀와 숲에도 가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사랑이 조금은 부족한 남매도 만나고, 매미가 허물 벗는 것도 구경하고, 동네 개가 낳은 새끼도 구경간다. 그녀와 중빈의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이들의 '산책' 과 같은 바람소리와 풀꽃향기, 그리고 사람냄새가 느껴지는 듯 하다. 또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유년을 두번 사는 일' 이란 말처럼 일방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부모도 자란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고, 사랑을 부풀려가는 일임을 깨닫게 한다.
너무나 부러운 이 두 사람의 대화의 기록을 보면, 엄마의 말은 여러번 아이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끝에 나왔고, 아이의 말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치 어느 전문가가 쓴 육아서에서 권고하듯, 아니면 아이를 영재로 키워낸 어느 부모가 자기들만의 완벽한 비법을 전수하듯, 소위 말해 '지키기 힘든 비현실적인' 얘기를 했더라면 이 책에 크게 공감하진 못했을 것 같다. 그녀는 때로는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의 노곤함을 말하기도 하고, 늘 반복되는 육아에 '이게 다 인가' 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겪을법한 매너리즘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이가 다치거나, 더 어려운 상황에서 발휘되는 모성을 봤을 땐 주어진 것에 행복을 더 절실히 느껴 '보통 엄마들의 공감대' 를 끌어낸다.
언젠가 내 아이가 말을 시작할 때, 그리고 내게 '기습' 같은 질문을 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와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 때, 다시금 이 책을 떠올릴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 그 전에, 생각날 때마다 이 책을 몇번이고 더 읽어 다 외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에 모든 엄마, 혹은 아빠들에게도 강추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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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자극적이고 나는 늘 몸을 움추리고 가시를 곧추세운다. 나비처럼 훨훨 날고 싶다는 욕망을 늘 드러내지만 살다보면 문득 내가 나비를 꿈꾸는 고슴도치가 되어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소희씨의 글은 그럴 때마다 내 가시를 어루만지며 그 가시로 인해 내가 세상에서 등을 돌리지 않도록 세상이 내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다독이고 또 다독여준다. 위로를 위해, 너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나비야,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너는 고슴도치이지만, 세상을 둥글게 맞이할 수 있단다, 라고 말해준다 너는 나비가 아니라 고슴도치이기 때문에 날 수 없어, 라는 말을 하지 않고 너는 나비를 꿈꾸는 고슴도치이기 때문에 마음 속엔 날개가 있을거야, 라고 말해준다. 그러니, 그녀의 긍정화법과 세상을 끌어안는 몸짓은 실용서들에 난무하는 '불가능한 무한 긍정' 혹은 '긍정하는 척하기'가 아니라 내가 발디딘 곳을 긍정하고, 내가 지닌 한계도 긍정하고, 나의 불완전함으로 너의 불완전함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형식이다. 그런 식으로 그녀가 중빈이를 키운 기록이 담겨있다. 그 기록이 이제 이십대 후반의 나를 키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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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중빈이가 엄마에게 종이조각을 내밀면서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은 종이를 보며 엄마는 "뭐야? 아무것도 없네!" 아이는 얘기한다 "이제 알겠어? 행복이란 보이지 않는거야.." 아이의 말에 엄마는 웃음을 터뜨렸더니 아이는 "거봐,이게 엄마를 웃게 했지? 그게 바로 행복이야" 엄마를 닮아서일까. 중빈이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깊고 투명하다. 여섯살 꼬마와 그 엄마<오소희 작가>와 나눈 행복의 대화들 속에 그녀의 육아방식과 그리고 그에따라 차츰 성장해가는 꼬마마이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흐뭇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저절로 미소짓게 하는 선물같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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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너무너무 좋은 책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읽는내내 미소가 내 입가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너무나 좋은 내용들이 이 책속에 가득해서 나는 감명깊고 좋은 내용이 가득한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워두는 탓에, 책갈피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갈피가 부족했던 나는 정말정말정말 제~~~일 마음에 드는 두 부분에 책갈피를 꽂을수 밖에 없었다.
그 첫번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였다.
141페이지 큰 제목이「피로할 땐 내려 놓으라」부분의.....
아니다,아니다... 아무래도 이 리뷰를 볼 사람들이 직접 보고, 아~ 하는게 좋겠다. 히히
자정이 가까워오는 그날 밤, 나는 유난히 피곤했다. 더불어 마무리에 대한 욕구도 비등해져 있었다. 그런데 옷을 다 벗고 욕실에 들어간 두 녀석이 지치지도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육아의 당사자인 엄마가 지쳐 있을 때,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을 때, 그럼에도 아이들은 영 따라주지 않을 때, 방법은 두가지다. 엄마도 인간이니, 어쩔 수 없이 피로를 발산하며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아니면, 눈 딱 감고 그 <할 일>을 손에서 내려놓거나.
라고 시작하며... 쓰여진 해결책이랄까?
그 말이 나는 너무나 마음에 든다. 나도 나중에 그 순간이 오면 꼭 저 말을 써먹으리라 다짐을 하며 여러번 되뇌여 읽었다.
그리고 237쪽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쉽지만, 그러면서도 또한 어려운 그 한마디가 참 맘에 들었다.
내가 속 시원하게 리뷰를 남기지 않는것은 이 책이 너무나 맘에 들고, 모든 사람이 읽어도 좋을만큼 괜찮다 싶기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보는게 좋겠다 싶어서 페이지 수는 적어도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적지 않는게 그 까닭이다.
솔직한 심정은, 교회에서 유치부 선생님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5명의 우리반 아이들이 있다. 응당 그 5명의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 계시고, 난 정말 책을 사서 선물 할 여건이 주어진다면 꼭 이 책을 그 분들께 선물하고 싶다. 아니아니, 내 여건타령은 그만두고 실례되는게 아니라면... 이 책을 돌려 읽고 싶을지경이다. 하하하
아참, 그리고 알았다. 아이들이 나의 질문들에 왜 다 "똥"하고 연관지어 얘기하는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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