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조진국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것도 동생이 산 책을 슬쩍 훔쳐본 게 전부였다. 무엇에 홀린듯 그의 상큼한 오렌지빛 사랑에 이내 빠져들었고, 감성적이고 독특한 그의 문체에 반했다. 사랑을 말하는 그의 몸짓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좋았다. 사실 일러스트가 예뻐서 읽게 되었지만 책 속의 글자들도 갓 구운 빵처럼 바삭거리는 맛이 좋았다.
여자_ 네가 내 곁에 있을 땐 그게 집착이고 욕심인 줄 몰랐다, 나. 그게 사랑인 줄만 알았어. 사랑이 없어지고 나니까 그제야 사랑이 보이더라. 사랑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로서 느끼는 거였어. (72~73쪽) MBC <소울메이트>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를 돋보이게 했겠지만 글 뿐만이 아니라 음악선곡에도 감각있는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글솜씨도 없고 음악에도 무지한 내 눈에는 적잖이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두근두근 체인지>에서 서브작가 겸 배경음악 선곡을 담당했고,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는 OST 작업을 했다. MBC <소울메이트>에서는 메인 작가겸 타이틀 음악과 배경음악 선곡도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친구_ 미러볼을 잘 봐. 깨진 거울을 붙여서 만들었어. 깨진 조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미러볼은 눈부신 거야. 사랑도 마찬가지야. 아픈 상처가 많을수록 다음엔 더 좋은 사랑을 하게 되는 거야. (83쪽)
그의 첫 작품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를 늦게라도 읽지 않으면 왠지 그와 코드를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진부한 사랑타령을 솜사탕처럼 잘 녹여낸 그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들었다. 드라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작가와의 인연은 그의 첫 장편소설 <키스키스 뱅!뱅!>이 인터넷 연재를 시작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이웃으로 맺어졌다. 프로필 사진만 봐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성격 같은데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자상한 부분이 많았다. 책의 화자로 여성을 택한 걸 보면 그의 내면에는 여성처럼 섬세하고 내성적인 부분도 많이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남들이 무디게 넘길 부분에도 상처받는, 남들이 그냥 지나쳐버릴 부분에서도 뭔가를 건져내는 그런 섬세한 감각 말이다.
여자_ 난 나뭇결이나 물결처럼 마음에도 결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 남자가 키스를 하려고 내 머리를 만지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내 마음의 결이 어떤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남자의 손길이었어. 마음이 쓸쓸할 땐 몸이 아니라 마음을 만져주어야 한다는 걸 느꼈어. (87쪽)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는 일반적인 책 사이즈 외에도 포켓북으로 만나볼 수 있고, 음반 CD로도 감상이 가능하다. 내가 읽은 건 포켓북인데 작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산책하면서 읽기 좋았다. 책을 보니 각 장의 하단에 그가 선곡했던 음악들을 실어놓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검색해서 한 곡 한 곡 들어봐야겠다.
여자_ 이런 유리잔에 물을 담으면 완전히 깨진다고 그랬죠? 깨진 유리잔엔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없듯이 한번 깨어진 가슴에 다른 사랑을 담는 것도 두려운 일일 거예요. 지금 제가 그렇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누군가를 만나는 게 힘들 것 같아요. (104쪽)
주인공들의 대화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한 편의 연극 같다. 짧고 함축적이며, 그 대화를 중심으로 작가의 생각은 내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소제목 단위로 연극이 한 장 분량이라면 내레이션 분량은 두 장 정도 될 것이다. 은유적인 표현에 빗대어 사랑을 풀이한 저자의 센스가 곳곳에서 돋보인다. 주인공들의 대화 - 작가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구성방식이 독특하긴 한데 그런 구성방식이 오히려 이야기 흐름의 맥을 자꾸만 끊어 이해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생략하려 한다. 메인 스토리가 워낙 짧은데다 얄미운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여기 옮겨적은 구절들만 읽어보아도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남자_ 나 말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연습장을 끝까지 써본 적이 없어. 볼펜도 꼭 다 쓰기 전에 잃어버리고, 입술 틀 때 바르는 크림도 끝까지 써본 적이 없어.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 뭐든 끝까지 하겠다는 욕심이 생겼어. (251쪽)
옮겨적은 대화도 인상적이지만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각 장에 담겨 있는 소제목들이었다. '진실한 사랑의 삼단 변화는 love - love - love이다.' , '사랑에도 유턴해야 할 때가 있다.', 시간은 이별의 습기를 말려준다.' '세상에 완벽한 남자와 완벽한 여자는 없다. 모자라는 남자와 모자라는 여자가 만들어가는 완벽한 사랑만이 있을 뿐' …. 이러한 표현들은 흡사 사랑의 정석을 모아놓은 것만 같다. 솔직히 남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여자라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도 모르겠지만 십대 이십대가 아닌데도 이렇게 풋풋한 사랑에 설렐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신기하다. 진실한 사랑의 삼단 변화는 사랑-이별-슬픔이 아닌 사랑-사랑-사랑임을 잊지 않으련다. 지금 비록 사랑에 가슴이 아려도 언젠가는 완벽한 사랑이 찾아올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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