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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샨보이>는 ‘인섹트’, ‘쓰키시마 모정’, ‘슈샨보이’, ‘제물’, ‘눈보라 속 장어구이’, ‘망향’, ‘해후’ 이렇게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작가가 겪은 고생의 다양함 덕분일까. 참으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일관되게 아사다 지로 식의 고단한 삶을 포옹하는 자세로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그의 글은 모두 감동을 기본적으로 주지만, 특히 나에게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은 ‘슈샨보이’와 ‘망향’이다. ‘인섹트’에서는 가난한 어렵게 다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도쿄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는 시골 고학생 사토루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도시 생활의 척박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름 모를 곤충을 애지중지 키우게 되는데, 그 벌레는 다름 아닌 바퀴벌레다. 도시인들은 그걸 보고 기겁을 한다. 사토루는 왜 이런 예쁜 벌레들을 도시인들은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쓰키시마 모정’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도시로 팔려온 미노의 이야기다. 온갖 고생 끝에 창녀 우두머리인 다유 자리에 오르긴 하지만, 이젠 나이도 많고 곧 퇴물 소리를 듣게 될 터이다. 평소 단골 손님이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 도키지로 씨는 그녀의 몸값을 지불하고 유녀를 기적에서 빼주는 낙적을 제안하면서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슈샨보이’는 사장의 전속 운전사인 쓰카다가 듣게 되는, 중견 기업 사장 이치로와 구두닦이 기쿠지 씨와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쓰카다는 52세의 전직 은행원으로 꽤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고, 앞으로의 미래도 보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직원들의 퇴직에 책임을 느끼고 자신의 양심대로 자신도 은행을 그만두어 슬픈 미담을 남긴다. 아내 몰래 신문 구인란을 샅샅이 뒤지다가 발견하게 된 전속 운전사 자리, 그는 학력은 고졸로, 경력은 예전에 근무했던 은행의 차량과라고 낮게 적어 내어, 운전사로 취직하게 된다. 어느 날 사장 이치로의 지시대로 철교 밑으로 가고, 어느 늙은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고는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사장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 한다. 그 늙은 구두닦이는 기쿠지 씨로, 부모가 누군지도,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혼자 불탄 자리를 헤매고 다니던 고아 소년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거두어 키우면서, 이치로라는 이름을 지어준 인물로 사장이 힘들 때 지켜 준 고마운 분이다. 사장 이치로는 쓰카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 탓을 하지 마라. 남 탓도 하지 마라. 부모 탓도 하지 마라.” 고구마를 먹으며 나는 대들었어. “하지만 내 탓도 아니에요.” “아니, 네 탓이야. 남자라면 모든 게 자기 탓이야.” 138쪽 그렇게 기쿠지 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던 이치로는 중학교만 졸업하면 기쿠지 씨의 일을 도와 자신도 구두닦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땅바닥에 엎드려 일하는 건 나 하나만으로 충분해. 남자라면 일어서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봐야지.” 141쪽 이치로는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웠는데, 왜 자신이 구두닦이를 하면 안되느냐고 묻고, 기쿠지 씨는 불같이 화내며 이렇게 말한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그냥 하는 소리야. 요즘 학교에서는 제대로 가르치지를 않는군. 귀한 직업인지 천한 직업인지, 그런 건 이 꼴을 보면 잘 알 거 아니냐.” 142쪽 그러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기쿠지 씨. “어차피 주워 얻은 목숨이니까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지. 뭔가 하나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나서 죽지 않고는 먼저 간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어.” 142쪽 사장은 기쿠지 씨에 대한 고마움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여생을 편안히 모시겠다고 제안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한다.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배려는 참으로 눈물겹다. ‘제물’은 술주정이 너무 심해 도망쳐 나와 이혼하고 현재는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하츠에의 이야기로 전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과거의 아픔을 회상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눈보라 속 장어구이’는 미타무라 육군 대장의 장어구이에 얽힌 과거 군대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망향’은 교수로 재직 중인 마사코가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주었던 이모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간 문상을 통해, 고인이 평소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덕을 베풀고 살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따스한 이야기다. 장례의 형태는 고인의 인품을 말해준다고 한다. 그 인생을 말해주는 게 아니고 품성을 말해준다는 의미다. 인간의 품성은 사회적 입장이나 경제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화려하기만 하고 천박한 장례식도 있지만 검소한 빈소의 모습을 한 번 바라보고도 마음이 움직이는, 소박하게 치러지는 장례도 있다. 233쪽 이모할머니의 장례는 후자 쪽의 소박한 장례식이었다. 평소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죽으면 최소한의 가족들에게만 연락할 것, 연락도 일에 방해되지 않게 오후 늦게 할 것, 자신의 시신은 의대에 기증할 것 등등을 유언으로 남긴다. 장례를 지키던 마사코는 그야말로 초대받지 않은 문상객들을 보게 되는데… 자기 엄마가 돌아가신 것처럼 서럽게 우는 택배 기사 아저씨. 밤늦게 시끄럽게 들이 닥친 폭주족 젊은이들. 고인으로부터 해마다 기부금을 받아 온 수녀회 수녀들. 가족들조차 모르게 이웃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고 간 고인의 마음 씀씀이로 장례식장은 더욱 숙연해진다. 아직 죽음을 논할 나이는 아니지만, 오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에는 순서가 따로 없다고 한다. 사람은 가도 베푼 선행만은 남아서 이와 더불어 자꾸 고인을 기리게 되는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러니, 매일을 살면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베풀 수 있는 한 많이 베풀고, 사랑할 수 있는 한 많이 사랑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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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다시 찾은 아사다 지로의 슈샨보이는 7편의 단편 모음이다. 7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하고의 공통점 아니 비슷한 부분은 전혀 없었지만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사람의 향기가 마음 속에 가득해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했다. 현실의 안타까움에 마음이 찌릿찌릿하면서도 사람의 향기가 마음을 위로하고 감싸는 느낌이랄까 마음이 시리면서도 땡긴다고 해야할까? 7편 모두 너무나 소중하게 읽어 내려갔다.
개인적으로 넘 아픈 사연을 담은 글들을 즐겨하는 편은 아닌데.. 가슴아픈 사연을 담고 살고 있는 슈샨보이의 주인공들은 나름의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일까?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들이 아프지만 매력이 있다.
왜 사람들이 아사다 지로, 아사다 지로..하는 지 슈샨보이를 읽으며 공감했다.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에게 팔려와 20년간의 유녀생활을 했던 미노의 인생,
마음에 상처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아픈 추억, 상처난 기억을 묻어둔 채
아무튼 다 읽고 애틋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애틋하면서도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디오니소스님의 댓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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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피곤함에 못 이겨 골아떨어졌다. 대체로 이런 상태에서 자면 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곤 했는데 이날은 예정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애들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였다. 처음엔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남의 잠을 방해하나 싶어서 짜증이 났다. 그러나 이내 그 짜증은 놀라움과 걱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난 그게 어머니와 동생들의 울음소리라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난 왜 우는지 그 이유를 물어봐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나 충격적이였고 가슴 아팠지만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어머니는 우는 동생들에게 "엄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지? 이젠 엄마는 멀리 떠날거야. 새엄마가 오더라도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알았지?"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는 동생들을 달래고 계셨다. 하지만 동생들은 울음을 그치지기는 커녕 더욱 큰 소리로 울었고 어머니의 다리에 매달렸다. 가지 말라고 앞으로 말 잘 들을테니 제발 엄마 가지 말라며 동생들은 울며불며 어머니를 붙들고 애원했다. 하지만 난 동생들처럼 매달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고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우셨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동생들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지만 난 계속 이불로 얼굴은 가린 채 자는 척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떠나려는 어머니를 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멀리 벗어나려고 독하게 마음먹으셨지만 동생들과 내가 남의 손에 클 생각을 하니 너무나 가여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번에는 그냥 보아 넘기시지 않으리라 결심하셨다. 어머니는 이번 기회에 술먹고 욱하는 아버지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고 마음먹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셨다. 실제로는 목욕탕에 가는거였는데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라고 전하라는 동생들을 교육시켰다. 동생들은 안 떠난다는 어머니의 약속을 믿고 어머니의 이 말을 잘 따랐다. 동생들은 아버지가 오실때까지 기다리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지마자 진짜 리얼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신 후 집의 물건들을 때려부수고 나가셨던 아버지는 한참만에 돌아오셨는데 울면서 하는 동생들의 말에 크게 당황하셨다. 나도 이때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동생들과 행동을 같이 했는데 아버지는 순간 너무나 놀라셔서 정신을 못 차리셨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시던 아버지는 우는 동생들을 뒤로한 채 우리 얘길 철석같이 믿고는 온 집안과 동네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어머니를 찾아헤맸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동네 목욕탕 여탕에 있는 어머니를 무슨 재주로 찾을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한시간을 넘게 동네를 누비시다가 맥이 풀린 채 돌아오셨다. 그리곤 우는 우리들을 달랠 생각도 못하시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셨다.
하지만 이때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진짜로 어머니는 우릴 버리시지 않고 목욕탕을 다녀오신 것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어머니의 계략은 아주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아버지는 이날 어머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했고 어머니는 또 그랬다가는 다음번엔 진짜 아주 집을 나가겠다고 단단히 으르셨다. 아버지는 굳게 맹세했고 정말로 나쁜 버릇을 단번에 고치셨다. 이때부터 우리집의 실세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큰 돈을 만지실때까지 이런 형세는 좀체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은 7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데 묶어놓은 책이다. 처음엔 난 내용이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서로 다른 내용들을 그냥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인공, 줄거리, 시대적 배경이 다 달랐다. 그냥 여러편의 단편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읽으면서 7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저자의 특징도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공통점이란 바로 이야기를 진행시킬 때 잔뜩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시켜놓고 끝에 가서야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적중했고 덕분에 난 아주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저자는 이야기속에 한가지 장치를 해두었는데 그것은 바로 핵심적인 말의 반복이였다. 혹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포인트로 놓칠까 저자는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최소한 두차례 이상 반복한다. 이런 형식은 7가지 이야기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의 이같은 배려 덕분에 난 어렵지 않게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얘기를 다 다루면 좋겠지만 그러다보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내가 인상적으로 봤던 한가지 이야기만을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나의 주목을 끌었던 이야기는 "제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4번째 단편이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혼한 하츠에는 전 남편의 부고를 듣기전까지는 과거를 깨끗이 잊고 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이혼을 추진했던 변호사로부터 전 남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때부터 주인공인 하츠에는 심란해진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의 남편이 다녀오라고 허락하자 밖으로 나와서 제물을 산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가 산 제물이 바로 그녀를 이혼하게끔 만든 술이라는 점이다. 술주정뱅이였던 전 남편의 제물로는 딱이다 싶어서 하츠에는 아주 비싼 프랑스와인을 산 것이다. 그리고는 하츠에는 그 제물을 들고 예전에 살았던 집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가는 길에 예전에 집을 뛰쳐나왔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기도 하고 과거에 은혜를 배풀어주었던 사람도 기억해낸다. 전에 살던 집에 도착한 그녀는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고 제물을 주고는 곧바로 집을 도망치듯 나온다. 그런데 이때 하츠에는 잊고 있었던 아들과 재회하게 된다. 아들은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의 안부만 묻고는 이내 사라진다. 하츠에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하염없이 목 놓아 운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속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내용인즉슨 "자식을 버리는 것이 이혼의 조건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건 악마의 소행이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난 저자의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자신이 괴롭고 견디기 힘들어도 자식을 버리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하츠에보다 더 힘들고 괴로우셨다. 시집살이에 못 견뎌 여러번 이혼도 결심하신 적도 있었고 아버지의 무능력 때문에 애도 많이 태우셨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할땐 유능했지만 장사를 하면서 완전히 무능력자가 전락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우리 셋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의 자식이 계모의 손에 구박받고 크는 것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셨다. 열 달 동안 배아파 낳은 자식이 남의 눈치나 보면서 고생하면서 크는 것을 어머니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하츠에가 자신의 자식을 버린 것을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자식은 결코 쓰다가 버릴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다. 이렇게 자식을 버릴 거였으면 애초에 낳지를 말았어야 했다. 자신만 불행한 사람인양 굴면서 금쪽같은 자식이 어떻게 자라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버리고 까맣게 잊고 산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난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도 하고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저자는 인간의 내면심리를 잘 보여준다. 의식없이 하루 하루를 그냥 무의미 하게 살고 있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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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베스트 프렌드는?" 고등학교때 상담을 위한 설문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그때 난 고민하거나 생각한번 해보지 않고 바로 "ㅇㅇ다"라고 당연하게 설문지에 그 친구이름을 적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을뿐만아니라 항상 같이 학교를 가고 집을 갈때도 같이 다녔던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 진정한 베스트프렌드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말실수로 인하여 이 친구와 사이가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물론 난 나쁜뜻으로 이야기 한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의 그친구는 나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했기에 사과를 할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나의 베스트프렌드이기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한다면 분명 받아 줄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 친구는 나와 말조차 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다녔었다. 그때 부터 인것 같다. 내가 친구를 믿지 못하게 되었던게. 그리고 지금까지 그때의 일때문인지 누군가를 쉽게 사귀지도 못할뿐더러 그 사람과 친해질 생각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깊게 사귀지 못해서 그런지 '너 참 무관심하구나'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책 '슈샨보이'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각 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도원으로 유명하고 가장탁월한 이야기꾼으로도 손꼽힌다는 아사다 지로가 쓴 단편집이다.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단편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시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좀더 길게 표현을 하자면 "새로운 출발"정도로 해야 할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에 아픈 추억이 있을것이다. 그 추억이 그저 추억으로만 존재 한다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그 추억이 지금 현재의 자신의 앞을 막고 있다면 그건 추억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7개의 단편중 대표작인 '슈샨보이'에서 보면 노인은 전쟁고아 이치로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아들처럼 키우지만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 이치로의 성공에도 불고하고 계속 구두닦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노인은 이치로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요소가 된다.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하는 이치로. 하지만 노인과 이치로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진정한 기쁨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기쁨을 찾으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뜻하는 식의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이 이야기 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 이다.
모든 단편 하나 하나가 잔잔한 흐름속에 감동과 안식을 주듯이 편안함을 주지만, 자신의 마음 깊속이 숨어있는 아픔을 풀어내면서 새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두리며 위로하면서 앞으로 나아갈수 있게 밀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였을것이다 고등학교때 일이 생각난 것은 말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너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많으니깐 이제 손을 내밀어서 친구를 사귀어 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믿어 보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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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울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내 머리의 통제력이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흔들리면서 그만 눈물이 솟는다. 그러면 눈물을 닦으면서 주위를 빨리 살펴야 한다. 보는 사람 없나 하고. 그 다음에 새삼 깨닫는다. 내가 아직도 책을 보고 우는구나.
모두 7편. 어느 하나도 마음을 울리지 않은 작품이 없다. 참고 참았는데 마지막 작품에서 그만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이 책에서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참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그 순간에는 내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일본소설을 언제 읽었던가, 기억이 없다. 이 작가의 소설도 아마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날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어졌다. 내가 왜 그 동안 몰라 보았던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아마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나의 편견 탓이리라. 괜히 보아 주고 싶은 마음을 없애는 것, 꼭 미워해야만 한다고 다짐하는 것, 모르는 척 하고 무시해야 한다고 억지 부린 것, 일본이라면, 일본 소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일본과 일본 사람과 일본 문학에 대한 내 편견의 단단한 빗장을 푼다. 내 스스로 풀었다. 좀더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까지 굳게 믿었던 일본에 대한 모든 것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오해였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 나라를 지배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몽땅 묶어 아무 것도 안 보고 안 듣고 무작정 무시만 하려고 했던 나의 고집으로.
따뜻한 사람들, 정 많고 예의 바르고, 우리처럼 당해서가 아니라 침략자의 입장이었음에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 내가 싫어하는 싸움도 없고 갈등도 없는데도 살아가는 것 자체로부터 아픔을 받는 사람들. 그럼에도,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원망이나 복수보다는 사랑으로 승화시킨 체념을 실천하는 사람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려고 하다니.
그래서 작가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마운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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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처음부터 좋아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지라 사실 작가가 나에게는 낯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라 해봤자 요시다 슈이치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 그리고 내가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공중그네>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 온다리쿠 정도가 다였다. 특히 공중그네를 읽으면서 일본 문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다 히데오 글은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일본 문학의 느낌인가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 후에 만났던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다 슈이치의 글을 읽으며 뭔가 잔잔하고 일상적이면서 조용한 감정을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나는 새롭게 만난 일본 작가이지만 이름이 낯설었을 뿐 <철도원>의 작가라는 점에 이 책은 어떤 느낌일까 기대감이 생겼다.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때는 그 사람의 경력이나 특이한 사항을 먼저 보고는 하는데 아사다 지로가 야쿠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니 조금 놀라웠다. 야쿠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감성적이고 슬픔에 대한 감정을 잘 표현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보면 사람의 슬픔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는 세심함이 돋보이는데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니.. 어쩌면 어릴 적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던 슬펐던 기억이 그 아픔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슈샨보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제목의 뜻이 짐작이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슈샨보이 뿐만아니라 7개의 단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7개의 단편에는 각자가 가진 아픔의 기억이 잘 묻어나 있다. 그 아픔의 소재들이 예상이 되면서도 어떤 부분은 독특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도쿄사립대에 다니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토루는 학비를 위해 다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삭막한 도쿄라는 도시에서 낯선 곤충을 기르기 시작한다. 미노라는 주인공이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고 창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창녀의 기적에서 빼준 남자에 고마움과 행복을 느끼지만 자신 때문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어버린 가족을 보게 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슈샨보이에서는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 이치로의 성공이 오기 전까지 겪었던 슬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슬픔 등을 간직한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가 재혼을 하게 된 아픔이 있는 하츠에, 전쟁을 겪으며 전우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사단장, 자신을 사랑해주던 할머니의 죽음과 사랑을 느낀 마사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안마사로 살아오며 청혼을 했던 남자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도키라는 여주인공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따뜻함이 함께 존재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누구든 마음속에 자신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이 내 작은 아픔도 남의 큰 아픔보다 크게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 모든 단편의 느낌이 잔잔하고 슬픔을 잘 표현 한 것 같다. 이 아픔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다. 처음 만난 그의 책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몇 년을 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인생은 길지.
인간의 기억이라는 건 도대체 몇 살부터 시작되는 걸까?
세상 탓을 하지 마라 남 탓도 하지 마라. 부모 탓도 하지 마라.
-슈샨보이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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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소름이 끼치는 순간이 좋다. 그것이 감동으로 인한 소름일때 말이다. 한창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녔던 시절 그런 경험을 종종 했었던듯 하다.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키스들의 향연에서 그리고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 도서반납증뒤의 그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소름끼치는 순간을 접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드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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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에게 이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를 고르라는 질문에서 언제나 첫번째로 꼽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인 [칼에 지다] 역시 그의 작품이다. 한밤중에 책을 읽다 통곡하거나,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워 절절 맸던 사람이라면 내가 [칼에 지다]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철도원]이나 [파리로 가다], [프리즌 호텔]등 괜찮은 작품은 많고도 많다. 그의 무엇이 이토록 나를 잡아끄는 것일까. 그 무엇은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아련함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정겨운 눈빛이다. [슈샨보이] 역시 그런 아사다 지로의 시각이 잘 녹아들어 있는 멋진 작품집이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현란한 미사여구? 무슨무슨 상을 받았더라는 꼬리표? 나에게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책은 무언가를 배우고 얻기 위해서도 읽어야 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와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와의 교감. 작가에게 있어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까. 그런 점에서 아사다 지로는 감히 훌륭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나는 항상 책을 통해 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가 그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원하고 꿈꾸는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7편의 단편으로 채워진 이 책은 속이 꽉꽉 차 있다. 어느 작품 하나를 제쳐두고 '이 이야기가 가장 좋았어!'라고 말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 유독 사람들의 상처를 심도있게 다룬 7가지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어느덧 떨어져나가는 시기를 맞는다. 도시 한복판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토루, 어린 시절 유곽에 팔린 유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을 남겨둔 채 홀로 도망나온 어머니, 구두닦이 출신 사업가, 이루지 못할 사랑을 간직한 맹인 안마사,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 이모할머니를 잃은 한 여의사의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은 또한 우리 마음 속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기도 한다. 사람마다 제각각 간직하고 있는 상처가 있다고, 그러니 아플만큼 다 아프고 나면 너에게도 분명 더 좋은 시간과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나 또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가 있다. 이 상처가 언제쯤 아물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 앞에 다가올 밝은 미래를, 마음을 나눌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러한 느낌들을 나는 항상 아사다 지로에게서 받는다. 아프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행복하다. 고 말하고 싶다.
앞서 7편의 이야기 중 어느 하나가 좋다고 꼽을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는 이 한 마디는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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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가깝고도 먼나라, 멀고도 가까운 나라??...’ 가장 흔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우리와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지리적 위치는 가까울지 몰라도 우리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적 사건에 휘말려 구원(舊怨)의 앙숙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피해국 민족의 후손으로서 메이드 인 재팬임이 드러나는 것들이라면 의무감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잠재의식이 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잠재의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패니메이션에 열광하는 설명 못 할 내 모습은 비록 전세계 많은 오타쿠를 생산해 낸 재패니메이션의 파워를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상으로 공감대가 있다는 생각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재패니메이션 한 분야만 가지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일지 몰라도 물리적인 거리인 국경을 넘어서 인간 본연의 감성을 아우르는 그 힘이 바로 문화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기에... 새삼 문화의 강력한 영향력을 절감하게 되곤 한다 최근에는 일본 소설에서 그러한 정서상의 친근감을 갖곤 한다. 원체 소설은 삼국지 이외에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에, 인문사회분야나 최근에는 그저 자기계발류의 책들에 경도되어 우리나라 문학조차 제대로 관심을 주지 않는 내게 일본 문학이 눈에 들어 올리는 만무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알게 된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소설은 평단의 평가와 별개로 그간 매니아를 위주로 관심을 끌어왔던 일본 문학이 상당한 흡인력을 무기로 이제는 독자층을 넓혀 가고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사다 지로라는 이름은 귀에 익었었다. 물론 ‘철도원’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그 잔잔한 감동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일본 문학에 문외한인지라 아사다 지로의 <슈샨보이> 홍보 포스터에 아사다 지로가 바로 ‘철도원’의 작가라는 것을 알려주기 전까지 이 둘을 연계해서 연상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면에서는 ‘철도원’의 이미지와 큰 차이가 없음을 어느 정도 짐작 했었다. <슈샨보이>는 아사다 지로의 7개의 단편들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부터 작정하고 감동하려고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가 역시 정공법을 택해 무작정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진 않는다. 대학진학으로 시골에서 상경한, 도시민들이 보기에 정신 나간 사람인 바퀴벌레를 무척이나 아끼는 청년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야기 ‘인섹트’,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고급요정으로 팔려와 기생이 된 여자가 새 삶을 약속한 남자의 숨겨 온 처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그토록 원했던 삶을 포기한 채 다시금 창녀의 길로 돌아서는 ‘쓰키시마 모정’ 전쟁고아로 하루를 연명하기 힘들었던 아이가 구두닦이인 눈 먼 상이군인의 따뜻한 사랑으로 어느덧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가슴 뭉클한 아름다운 이야기 ‘슈샨보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남편과 이별한 여인이 오랜 세월 후에 전남편의 장례식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과거와의 조우, 불편하고 지워버리기엔 죄책감으로 고통스럽기만 한 숨겨왔던 아들과의 짧은 만남, 이별 ‘제물’ 눈보라치는 한밤중 따뜻한 장어구이 도시락을 가지고 사령부 당직장교를 찾아온 사단장의 끔찍하고 눈물겨웠던 과거 ‘눈 보라속 장어구이’ 제자이며 한 때 연인이었던 남자의 아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에피소드 ‘망향’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는 망막색소변성증 때문에 연인과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한 여인이 오랜 세월후에 눈 먼 안마사가 되어 연인을 손님으로 다시 만나 아름다웠던 과거를 반추해보는 ‘해후’ 독특했던 점은 각 에피소드마다 번갈아가면서 주인공을 남녀로 구분하여 그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어찌보면 딱히 흥미로울 것도 없지만 여자가 주인공인 에피소드에서 여성작가 못지 않은(?) 감성으로 독자와의 감정이입의 다리를 놓아주는 능력에 아사다 지로가 왜 유명한지 고개가 끄덕여지게 됐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는 ‘눈 보라속 장어구이’와 ‘해후’이다. 우선 ‘해후’는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가슴 아련함을 가져다 주지만 아쉬움이 크기도 했는데 기존에 눈 먼 안마사의 시점에서 풀어낸 에피소드와 별도로 손님으로 온 옛 연인의 시점에서도 묘사했더라면 두 사람의 애틋함이 더 큰 감동으로 와 닿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눈 보라속 장어구이’는 퇴근길 지하철 내에서 보다가 별안간 충혈되는 눈으로 인해 주변 눈치를 보게 만들었던 난감한 에피소드였다. 일본 군국주의 하의 침략전쟁이었던 태평양전쟁의 치열했던 전투... 과달카날, 솔로몬, 뉴기니, 인팔에서 그들이 옥쇄를 감행해 가면서 증오감을 드러냈던 미영 제국주의 군대보다 더 큰 적이었던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죽은 시체나 살아있는 동료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일본군을 찾아내 처단하던 미타무라 소좌. 일본왕의 명령보다도 단 한명의 부하라도 살리기 위해 미타무라를 후방으로 보내는 사단장, 전방에서 고립된 채 어느덧 가족관계처럼 변해간 군대 내에서 부모인 사단장은 미타무라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데 정작 미타무라 자신은 자식과 같은 부하들을 찾아내 처단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느끼는 그의 자괴감 섞인 눈물. 어떤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아 훗날 훗카이도의 눈보라 속 사단본부에 서 있겠다는 사단장과의 약속을 한 미타무라가 이젠 사단장이 되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치며 찾아와 당직 장교에게 내어주는 따뜻한 장어구이 도시락... 침략전쟁을 자행했던 일본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자랑스럽게도(?) 일본왕의 군대로 차출되어 전쟁터에 내몰렸던,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사원, 목수, 농사꾼, 학생들이었던 연약한 인간인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짧지만 긴 여운을 가진 반전드라마라고 본다면 지나친 감정의 사치일까?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을 미화하기 위한 가면이라고 한다면 뭐라 할 말 없겠지만 그보다 살아남은 자이기에 느끼는 미타무라의 슬픔과 회한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감동스러운 영화 한편 보고서 극장 밖을 나설때 눈앞에 들어오는 일상의 낯설음처럼 이 책을 덮었을때 느끼는 낯설음은 무엇일까? 왠지 모르게 쫓기듯 바쁜 세상인데 이 책 때문에 한동안 감정기복이 심해지게 생겼다. 더 바빠지겠군..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