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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말로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을 듯
"이야 말로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을 듯" 내용보기
박노자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다. 아주 매력적이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설득력이 있는 논리들이었으나, 웬지 쉽게 잡히진 않았다. 이 책을 보고나서, 그 이유중 하나가 '불편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을 읽기는 다소 불편하다. 거북감과는 다른 것으로,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어하는 우리네의 모습에 대해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은 단정과
"이야 말로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을 듯" 내용보기

박노자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다. 아주 매력적이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설득력이 있는 논리들이었으나, 웬지 쉽게 잡히진 않았다. 이 책을 보고나서, 그 이유중 하나가 '불편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을 읽기는 다소 불편하다. 거북감과는 다른 것으로,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어하는 우리네의 모습에 대해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은 단정과 공격, 아무래 내가 스스로 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글들에 대해 동의를 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지적질을 하는 모습에 대한 회피의 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회를 병영사회라고, 기업사회라고 칭하는 그의 논리에 하등의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도 이 사회에서 40년 이상 살아오면서 엄청난 굴곡은 있었더라도, 그래도 나름의 성취는 있었다고 말하고 싶고, 나도 수백만중에 포함되는 그 일원이었다고 말하고 싶으나, 저자는 그런 성과가 얼마나 하찮은지? 아니 이상에 비해 미약한지를 인정하도록 한다. 그 많은 죽음과 피와 땀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그 성과는 여전히 병영사회이고 기업사회이고, 더욱 보수화가 공공하게 굳어져가는 사회일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지적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핵심어로 떠오른 '이민'은, 결국 더 부유하고 재분배 제도가 그나마 돌아가는 곳으로 가서 그곳의 시장 경쟁(단 한국보다 덜 치열하고 더 공평한 경쟁!)에서 삶의 터를 잡으려는, 사실 극히 보수적인 꿈을 함의한다." 이 논리에 100% 동의한다. 더구나 사회운동을 좀 해봤다고 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지쳤다는 이유로, 정치가 더 보수화된다는 이유로, 자녀 교육때문에라도, 환경이 너무 안좋아서라도 이민을 고민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올때, 마음 한켠에서 그 비겁함에 대해 질책하고자 했던게 내 입장이다. 덧붙여 그들이 가려는 사회에서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의 소시민일 수 밖에 없는 거 아니냐? 인종차별과 언어장벽, 그리고 인정부족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다수의 지인들이 선진국에서 삶의 터를 잡고 있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그 대부분 그 사회의 지도층이라기보다 쁘띠프롤레타리아 지식인 정도의 지위에서 만족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지도층과는 동떨어진 삶에서 만족해 사는 것이 대부분임을 보았을때 더욱 그런 이민에 대한 욕구의 비겁함을 생각하게 마련이었다. 거기 가서는 사회변혁위한 일을 꿈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 그전 선진국의 소시민으로써 개도국에 기부정도만 하면서 자족하려는거 아니냐... 라는 시각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보수주의'라는 식의 냉정한 판결을 스스로 내리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박노자의 글이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진 것이라 생각된다. 


보수화된 젊은이들에 대해 면도날을 들이댄 저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변호하는 이야기도 한다. "실은 생존 공포라는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져라'하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가혹할는지도 모른다. 생존공포증은 엄연히 '병리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유발된 병리적 현상이다. 생존공포에 빠져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아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만을 꿈꾸는 사람은 사회적 부조리를 거부할 줄 아는 자율적 개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 말로 이 사회의 '주류'가 간절히 열망하는 사항이다." 그렇게 젊은이들은 보수화된 것이다란 얘기냐... 그 일정한 사회적 지위의 획득 가능성이, 내가 말한 다양한 한계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자책을 감안하고라도 이민을 고려하게 내몰고 가는 상황일테다. 연민이 들면서도, 우리는 수십년의 노력을 통해서도 진정한 근대성이라 할 수 있을 '개인'으로 발전도 못했다라는 것이,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개인이 생존해 나갈만한 환경을 이룩하지도 못했다라는 것이 위 인용문이 나오는 글의 핵심논지다. 그렇게 이 사회에 대한 진단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도 못되는 병영국가의 한국인이란 진단 말이다. 


통일에 대한 이야기...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고 외치는 '개방, 개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멕시코나(미국의) 체코(독일의), 에스토니아(스웨덴의)가 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민중으로서도 한국 피지배자로서도 이와 같은 '새끼 제국주의'를 배격해서 평등한 통일, 민중 본위, 북한 주민 등 약자 본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바로 생사가 걸린 문제다." 역시 모르는 얘기는 아니다. 20년 전부터 한국 자본은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이 '새끼 제국주의'이며 우리사회의 진보운동이 그토록 배격하고자 했던 서구제국주의의 아류일 수 있다는 식으로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동남아에 한국제국주의라는 반감이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북한에 대한 남한제국주의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은연중에 각인되어 버린 같은 민족끼리 제국주의란 냉정한 현실의 가능성을 애써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용어의 사용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거다.


게다가 한국이란 나라를 병영국가 이상으로 진단하는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기업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공성의 부재다, 기업국가에서 공공기관이 챙겨주어야 할 서로 평등한 민주시민은 없다. 그저 기업이 필요로 한 인간 부품들이 있는가 하면, 필요가 없어져 페기처분되는 폐품들이 있을 뿐이다." 대학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력의 공급창구가 되었고, 공공기관도 사실 민간산업 부흥을 위한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열을 올리는 사회... 나도 그 일원이 아닌가? 내 분야에서도 우리 민간섹터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고민을 하곤 했는데, 그 이전에 그 민간섹터에서 부정을 없앨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게 공공섹터에 있는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닌가 자성이 든다. 목적과 수단을 전도시켜버린 사회도덕관념,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수십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국가로 존재하는 기본 이유를 자본가의 집행기구라는 비판적인 판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이데올로기의 굴레에 무의식적으로 잡혀있는게 아닌가 싶다. 나도 이 사회도. 


다행히도? 이 책은 박근혜 탄핵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촛불은 이와 같은 사회 진단에 대해 그나마 반박할 건덕지가 있을 희망이었다고 보고 싶다. 그 이후의 수습과정이 여전히 많은 비판을 수반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단들을 접하고 나서, 그 희망에 대한 기대 역시 낙관할 수는 없다.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들이 빗발치던 그 촛불광장을 떠올릴 때, 정말 조금이라도 더 나라답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답게 만들어 내야 할 일들이 지금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그에 못미치는 세력들이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e****s 2018.02.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