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참 낭만적이고 시적이다. 그런데 내용은 단순 여행기가 아니라서 책 읽는 동안 버거웠다. 영어 초급 수준의 실력으로 중급을 듣는 듯했다. 내가 꺼리는 한자도 많이 삽입되어 있고, 소개된 지명들은 또박또박 천천히 읽어도 흡수되지 않고 겉돌아버렸다. 나랑 여행서적은 정녕 맞지 않는 것인가. 체념하고 있는데 그제야 책 표지 하단에 있는 '사람과 풍경이 있는 역사 · 문화 기행'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역사 · 문화 기행 서적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여행하기 전에 갈 곳을 미리 공부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다녀오고 나서 책으로 다시 만나는 게 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사회와 한문 과목을 제일 싫어했던 나는 덕분에 여행을 떠나면 길치에 눈먼 장님이 되어 버린다. 책에 소개된 곳은 생소한 지명들이 많아 머리가 아팠다. 만약에 내가 이런 곳을 사전지식 없이 여행했다면 수박 겉핥기식이었겠지. 별로 볼 것도 없네 하면서 대충 훑어보고 자리를 옮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가보기 전에 이렇게 책을 통해 먼저 접한들 그리 흥미롭지도 않았다. 문화부기자로 역사와 풍물과 문화재와 민속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문화의 정체를 지식으로 전달하기보다는 그 문화의 속얼을 느낌으로 배달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과는 사뭇 모순된다. 그 당시의 문헌과 자료들을 가득 옮겨놓아 편히 숨을 못 쉴 지경이다. 일단 여행은 설렘을 안고 즐거워야 하지 않나, 그에게 묻고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우리 문화 찾기'의 일환으로 남도 일대를 떠돌며 <월간 예향>에 연재했던 글들을 간추려 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성과 깊이 있는 해설이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저자를 따라 내가 남쪽으로 떠난 곳은 서른 두 곳이나 된다. 아래에 차례를 간단히 옮겨 보았다. 내가 다녀온 곳은 위도, 부안 채석강, 변산 직소폭포, 진안 마이산 이렇게 네 곳뿐이다. 원래 잘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닌데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체험보다는 눈요기 위주로 찾아다니다 보니 그리된 것 같다.
화순 물염절벽, 김제 벽골제, 부안 반계초당, 진도 남박다리, 신안 흑산도, 고흥 백로 도래지, 정읍 유상대, 위도 띠뱃놀이, 부안 채석강, 함평 자산서원, 신안 전장포, 여수 사도, 진도 관매팔경, 진도 항몽 유적지, 거문도 등대길, 벌교 ·승주, 변산 직소폭포, 진안 마이산, 보길도 부용도, 장흥 방촌 문화마을, 구례 오산 사성암, 장성 박수량 백비, 익산 미륵사터, 영광 낙월도, 해남 두륜산 일지암, 화순 벽나리 벅수, 고흥 소록도, 구례 운조루, 영광 법성포 매향비, 순천 옥천서원, 구례 매천사, 정읍 배들평 (6~7쪽)
인상깊었던 몇 곳을 소개해본다. 서기 330년에 축조된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이며, 제방 길이가 3.3킬로미터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저수지이며, 연인원 50만 명의 피땀이 고인 최악의 저수지라고 한다. 2~3천 명의 백제인들이 5~6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등을 휘며 노동에 참여했을 걸 상상하니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보다는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더 짠하게 맘에 와 닿는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의 깊은 형제애가 내 심금을 울렸다. 향인지애(響人之愛)를 실현했던 그들은 흑산도, 강진에서 각각 유배생활하며 서로 그리워한다. 흑산도에서 유배중이던 손암은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난다는 소식을 듣고 우이도로 나와 3년을 기다리다 아우와의 상봉을 이루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한 많은 일생을 접었다고 한다. 손암의 주검이 원한에 치 떨며 흔들려 왔을 바닷길을 휘몰아오며 다산이 피눈물로 썼을 묘지명 일단을 책에서 옮겨 본다.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도 열렸건만 가로막는 이들 때문에 크게 서지 못하고 마침내 뒤집히는 난리를 만나 먼 바닷가 풀집으로 귀양살이 갔었네
정밀한 지식과 꿰뚫는 식견을 묵묵히 가슴에만 감추어 두고는 못 잊을 손 부모님 곁으로 멀고 먼 곳에서 돌아와 묻혀버렸네 (54쪽)
전국 최고의 새우젓 산지, 200백여 호가 아기자기 살던 부촌, 2백 척의 배가 들랑거리던 최초의 일종항이었던 신안 전장포가 휑해졌다. 멍텅구리배를 정리한다고 나라에서 준 돈으로 동력선을 빚내서 사들였지만 어황이 안 좋아 다들 빚을 지고 어민들 반 이상이 대부분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였다고 한다. 다시 살아날 전장포를 꿈꾸는 주민의 다짐이 자꾸만 메아리쳐 돌아온다.
"육젓이나 자젓국을 돼지고기에 발라 구워서는 소주 한 잔을 걸치는 맛을 모르면 참술꾼이 아니쟤. 자네들 전장포 헛것 같다 왔구만. 하기사 아무리 맛난 술도 분위기가 있어야 마시쟤 잉. 해선망을 사그리 쓸어불고 위판량이 떨어지니까 수협도 옮겨가 버린 뒤로 그 푸진 곳이 저 모양이 됐지만 나라에서 조금만 신경 써주면 전장포는 다시 살아날 것이여. 두고 봐. 우리 그때 전장포에서 다시 만나 멋지게 한잔 뽈드라고(마시자고)." (102쪽)
구례 운조루라는 곳이 뭘까 궁금했다. 하동군 토지 촬영지의 '최참판댁'은 명함도 못 내밀 99칸짜리 집이었다. 10척이 넘는 솟을대문을 지나 18칸이나 되는 행랑채가 나온다. 큰사랑채, 아랫사랑채, 안사랑채만도 중중첩첩이다. 큰사랑채에 있는 누마루가 눈에 띄는데 사대부 집에는 없는 궁궐양식이 돋보인다. 아마도 이 누마루 때문에 민가에 운조루라는 이름이 붙였는지도 모른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운조루 사랑채의 주인은 영조 때 사람 류이주(柳爾胄)라고 한다. 후손들이 잘 보존하고 전승한 덕분에 국립민속박물관 팀의 조사로 무료 1,723점의 희귀한 유물이 보고되었으나 정부의 관리 소홀로 모두 잃고 말았다. 참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 도둑 맞아부렀어요. 10년 동안 딱 13번 도둑이 들어 갖고 숟가락 몽뎅이 하나 없이 다 쓸어가 부렀어요. 마지막에는 강도한테 쇠파이프로 얻어맞고 한 달 간이나 입원을 안 했습디여. 그것들이 어떻게 고이고이 간직해 내려온 가보들인디. 선조들 뵐 낯이 없어요." 아니, 그것이 말이여, 뭐여. 한두 번 당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다음에는 무슨 대책이 있었어야지. … 그동안 군청은 뭘 하고 있었나? 혈세를 어디에 쓰시느라 1천7백 점의 귀한 문화재가 다 날아가도록 버려두셨을까. 보관 창고 하나 지을 예산이 없었을까. (238쪽) 진도는 명량대첩 축제가 한창일 때 차로 스쳐 지나간 게 전부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곳 중 진도 남박다리, 관매팔경, 항몽 유적지 세 곳 외에도 진도는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진도를 구경하고 싶다. 음력 2~3월 사이의 보름이나 스무사흗날에 바닷길이 열린다는 진도 회동마을은 기회가 되면 꼭 다녀오고 싶다. 진도 못지않게 여수 사도의 영등사리도 볼만하다고 한다. 진도 풍물을 말할 때 흔히 8경(景) · 3보(寶) · 3락(樂)을 든다. 여덟 절경은 울돌목 · 관매도 · 운림산방 · 남도석성 · 조도군도 · 회동 바닷길 · 용장산성 · 금골산 등이다. 세 가지 보물이라 함은 천연기념물인 진돗개, 신비의 한약재 구기자, 맛 좋은 진도곽을 가리키며 세 가지 즐거움으로는 민요 · 서화 · 홍주를 꼽는다. (118쪽) 지구는 넓고 이 나라 저 나라 가볼 곳도 많지만 우리네 이 작은 땅 한반도도 못 가본 곳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문화는 머리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어울린 다음에 아들딸에게 이를 직접 손으로 전수해주어야 한단다. 2009/12/13 Written by Das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