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서가 너무 현실의 사안에만 매달려서 바싹 말라있었던가? 오랜만에 읽은 소설에 왜이리 뿌리까지 물을 준 것처럼 내 감성이 눅눅해지는 것인지.
정말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작가마다 개성이 있고 드러내고자 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감히 이렇게 빗대어 말하면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와닿을 것 같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버금가는 아리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3아' 소설이라고. 이 책을 선물받은지 1년이 훨씬 지나서야 드디어 완독했다. 미루려고 미루었다기 보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잊혀지기를 반복,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다. 어제, 이제 소설 좀 읽어볼까? 라는 마음이 확 들어서 쭈욱 세워진 책등의 제목을 살피다 단숨에 이 책을 꺼냈다. 왠지 촉촉할 것 같았다. 여성 작가인데다 한겨례문학상 수상작이라 하지 않는가. 객관적 신뢰와 주관적 촉이 만났으니 이만한 선택의 확신이 어디있겠는가. 역시 이 두 박자는 딱 맞아 떨어져 첫 장을 넘기던 시작의 마음에 비해 백배는 부풀어진 감정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밤새 읽은 소설이다. 좋고또 좋아서 심윤경이란 작가의 작품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단단히 하였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성장소설이다. 열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인왕산 달동네에 위치한 우리집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다. 소년의 눈이라지만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져서 마치 어른의 눈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간간히 화자가 소년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예상치 못한 진짜 열살배기 소년의 표현과 판단들이 쏙쏙 들어있어서 독자를 자꾸만 웃게 만든다. 환한 웃음은 아니다. 씁쓸하다가도 피식, 김빠지는 웃음이다. 그건 소년의 상황이 애잔해서 내내 안쓰런 마음으로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기본 태도가 그렇다. 소년이 안됐어, 너무 착해, 하는 마음을 배경으로 깔고 내밀한 소년의 할머니부터 5살 아래 동생 영주의 모습까지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왕산이라는 지리적 의미, 동생이 태어나던 해로 시작하여 동생이 죽는 해로 끝나지만 77년부터 81년까지 짧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길었을 대한민국의 정세 변화, 가난한 달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부잣집 3층집, 그 3층집이 가진 정원이 지상의 최고의 장소로 꼽고 있는 소년, 능소화, 곤줄박이... 작가가 복선으로 깔고 있는 소재와 설정이 탄탄하고 섬세해서 깐깐한 수공업자가 만든 맞춤복을 들여다 보는 듯,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꼼꼼한 구성이라 왠지 작가가 며칠만에 단숨에 써내려갔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걸리는 거 없이 쫘악쫘악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이 좋다. 하필 응석받이로만 대하던 동생을 정신적 고뇌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지로 인정하고 한차원 높은 오빠 노릇을 하겠노라 다짐하던 날, 그날 동생이 죽었다. 소년(동구)이 놀란 것보다 아마 독자는 더 놀랐을테다. 온갖 똑똑한 설정은 다해놓았길래 불안불안하더니 결국 작가가 저런 덫을 만들어놓았다니, 작가의 냉정한 설정에 독자들은 욕을 할지라도 어느새 작가의 계산대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이 소설 재밌는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치였음을 눈치챈다. 소년의 가족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어른에 가까운 소년의 눈으로 이해하고 보듬고 희생한다. 애어른의 결론이라 탐탁친 않지만 이것은 이야기 자체보다 그 이야기를 풀어낸 문장들과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어 읽어야 하는 소설이기에, 그 마저도 용서한다. 소년의 열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3층집 정원의 대문이 닫힌다. 소년 스스로 과감히 작별을 고한다.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절망들을 그 정원에 모두 가둬놓고 나온다. 소년의 유년 한켠이 시간 속으로 까만 한 점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이제 소년은 다른 정원을 찾아 나서겠지. 새로운 인생의 마디가 시작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련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독자의 마음이 위로가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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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해 본다. 내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라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어제 저녁 밥을 먹는데 작은 녀석이 밑도 끝도 없이 한 마디 한다. “엄마 우리 집이 화목한 모양 이예요.” 그래서 “갑자기 웬 화목? 다른 집도 우리 집 만큼 화목하겠지.” 했더니 아니란다. 수업시간에 집안 분위기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한 이야기가 작은 녀석에게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큰소리를 내며 싸우는 집도 많구요, 뭔가를 던지는 집도 있데요. 자면서도 싸우는 소리는 다 들린 데요. 근데 우리 집은 엄마랑 아빠랑 안 싸우잖아요. 그럼 우리 집은 화목한 거지요?”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엄마 아빠도 처음에는 의견 충돌이 있었지. 소리 내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집집마다 해결 방법이 달라, 그래서 싸우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랑하지 않아서, 미워서 싸우는 건 아닐 거야.”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 책을 읽는데 마음 한 켠이 먹먹하고 아팠다.
인왕산 아래, 산동네에 살고 있는 동구에게 6살 터울의 동생이 생긴다. 동구는 침착하고 순수하고, 사려 깊은 아이지만 3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한다. 독자로 태어났지만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대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자라고 있다.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의 고부 갈등이 심해 그 대립각 속에서 어쩔 줄 모른다. 반면 늦둥이로 태어난 동생 영주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총명한 아이다. 세 돌이 되기 전에 한글을 줄줄 읽으면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3학년 담임이 된 박영은 선생님은 그런 동구를 유심히 살피고 동구에게 난독증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동구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차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되지만, 뜻하지 않게 10. 26, 12. 12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주리 삼촌과 박영은 선생님을 통해 역사의 격변을 맞이하고, 아이의 눈으로 사회의 혼란함을 본다. 이후 5. 18로 박영은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혼란함 속에서 동구는 동생 영주를 잃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동생의 죽음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동구는 그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책을 내려놓고 이 느낌을 어떻게 리뷰로 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감을 잡지 못하겠다. 한권의 책 안에서 동구가 느꼈을 아픔을 생각하니 아이를 키우는 어미 입장에서 안타깝고 아프고 눈물이 난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그렇게 시집살이를 했고, 그렇게 참고 살았으며, 그렇게 아이들을 교육 시켰다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아팠을 동구의 마음을 선생님 말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다니... 그랬기 때문에 동구에게 난독증이 온 게 아닐까?
나도 시어머님과 함께 산다.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의 고부 갈등은 없다. 욕을 하신적도 없고, 아이 앞에서 나의 흉을 보신적도 없다. 그래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동구 할머니의 그악스러운 모습이 무섭기까지 하다. 잘한 일은 당신 아들이 잘나 그렇게 된 것이고, 안 된 일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는 동구 할머니를 보면서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참고 살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쓴 웃음이 나온다. 어머니의 편도, 아내의 편도 들수 없는 우유부단한 동구 아버지의 모습도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어린 동구는 그런 가족들 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아파했을까? 똑똑한 동생에게 모든 사랑이 돌아가고, 표현하지 못하는 동구는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동구의 외로운 마음과 함께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이 그래서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결코 희망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구의 생활과 동구의 마음. 그리고 동구의 동생 영주의 죽음으로 치닫는 광기까지. 그 당시 우리나라의 광기 어린 모습과 오버랩 되어 아픔을 남긴다.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아버지는 자신이 중앙에 서 있는지 밀려났는지 그것부터 염려한다. 사실 아버지가 중심을 지키기만 했어도 엄마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가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엄마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당신은 못 배웠어, 당신도 잘한 거 없어, 자식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 라며 엄마의 입을 틀어막기에만 급급했다. 내가 엄마라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287)
한 가정도, 한 나라도 그 가족을, 그 구성원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결국 한꺼번에 터지고 만다. 강하게 터지고 나면 그것을 수습하는 게 쉽지 않다.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과 빗대어 이야기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
이렇게 좋은 책을 선물 받고도 이제서 읽은 내가 조금은... 미웠다. ^^ 아이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 나를 또 다시 생각하게 하는 참 멋진 책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한 책 읽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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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갈수록 뒷전으로 뒷전으로 계속해서 밀려나는 게 있다. 그리움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의 흔적들, 유년시절의 추억과 얼굴이 붉어질 만큼 어이없었던 실수들, 순박하거나 촌스러웠을 얼굴들... 그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의 이미지로 가슴에 와락 달려들 때가 있다. 수백 번도 더 떠올렸을 그런 것들이 '그리움'의 목록으로 가슴을 빼곡하게 메우는 날이면 '다 무슨 소용이람' 하면서 애써 외면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오래된 습관처럼 그렇게 소용'있는' 것들과 소용'없는' 것들로 애써 편을 나누고 소용'없는' 편에 떠올랐던 그리움의 뭉텅이들을 하나 남김없이 지워버리곤 한다.
"어느덧 박 선생님의 목소리는 정원을 떠난 듯하였다. 또다시 홀로 남았는가 하여 목줄기가 먹먹해오려 했으나 고개를 내저어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더 이상 그분의 소중한 기억을 눈물로 소진하지 않으리. 그리움아 그리움아, 나에게 힘을 다오. 박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내 안에서 꿈틀꿈틀 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그리움은 순식간에 내 안을 가득 메우고도 자라기를 멈추지 않아 좁은 내 몸뚱이 안에서 사납게 뒤채며 나갈 곳을 찾더니, 마침내 나의 땀구멍 하나하나마다 황금빛 깃털이 되어 쏟아져나왔다." (p.303)
심윤경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애써 밀쳐두었던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살아나게 한다. 의식의 저편에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날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급기야는 눈물 한 방울 찔끔 흐를 것처럼 감정이 고조된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나면 가슴에는 왜 아릿한 슬픔이 남는 걸까? 결말이 비극적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음의 한편을 슴벅슴벅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찌르르 전신을 휘감아 돌고 나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그리움만 가슴에 남는다.
소설은 인왕산 자락의 달동네를 무대로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얼핏 주인공인 한동구의 유년 시절을 다룬 성장소설인 듯 읽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한동구라는 소년의 눈을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여겨진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한동구가 아닌 대한민국의 성장소설인 셈이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문화적,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였고 시대의 아픔은 고스란히 그 시대를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었다.
소설은 동구의 어머니가 동생 영주를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대 독자인 동구의 아버지와 동구가 태어난 후 6년이나 아이가 없었던 탓에 동구의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태어날 아기가 아들이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바램과는 달리 딸이 태어났고 고부간의 갈등은 점점 격화된다. 음식 솜씨가 좋고 씩싹했던 동구의 어머니는 늦둥이 영주의 돌을 맞아 동네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줄 요량으로 떡쌀을 넉넉히 준비하지만 이를 본 동구의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낸다. 동구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어머니의 편을 들게 되고 그로 인해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
3학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읽지 못했던 동구와는 달리 영주는 제 스스로 한글을 깨쳣는가 하면 할머니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바람에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반면 동구는 점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데 어느 날 동구의 담임이었던 박영은 선생님을 통하여 동구가 난독증을 앓고 있음을 가족 모두가 알게 된다. 마땅히 기댈 데가 없었던 어머니는 선생님께 동구를 부탁하였고 그 바람에 동구는 하루에 한 시간씩 선생님과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왔던 선생님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던 동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족간의 불화와 자신의 속내를 선생님께 털어놓는다. 마냥 행복했던 동구의 3학년이 그렇게 흘러간다.
동구는 이제 한글을 제대로 쓰지는 못하지만 어눌하게 읽을 수는 있게 되었고, 담임 선생님의 편지를 가족들에게 읽어줌으로써 자신이 나아지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박영은 선생님은 6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동구의 담임은 학생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고 이상한 짓만 일삼는다. 게다가 동구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담임이 박영은 선생님을 마음에 두는 바람에 자신을 앞세워 박영은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학업 상담을 핑계로 말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 동구는 같은 동네의 주리 삼촌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게 된다. 고시 공부를 하는 주리 삼촌은 동네에서 덩치가 크고 똑똑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주리 삼촌은 동구의 담임을 만나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다짐을 받음으로써 동구의 고민을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영은 선생님과도 인사를 하게 된다.
세상이 어수선하던 1980년의 어느 날 박영은 선생님과 주리 삼촌, 삼촌의 후배이자 박 선생님의 선배인 이태석이 만나는 자리에 동구도 합석하게 된다. 장난으로 건넨 술잔을 받아 마신 동구는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사랑 고백을 하게 되고 박 선생님은 동구가 클 때까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노라 동구를 안심시킨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란 박 선생님은 생일을 맞아 할머니가 계신 광주에 다녀오겠다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이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주리 삼촌으로부터 듣게 된 동구는 강하게 부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구의 할머니가 같은 동네에 사는 모실 할머니와 여행을 떠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심하게 다투신다. 영주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온 동구는 자신의 목에 무등을 태워 동생으로 하여금 그해 처음 열린 감을 만져보도록 하려다가 그대로 넘어지는 바람에 동생 영주가 죽게 된다.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은 동구 가족의 해묵은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동구 어머니는 '자식 잡아 먹은 년'이라는 할머니의 욕설을 견디지 못하여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기운을 잃은 할머니도 드러 눕는다. 보다 못한 동구는 할머니의 고향 괴산에 내려가 자신과 함께 같이 살자며 할머니를 위로한다.
작가는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하여 그 시대의 상황과 아픔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가난과 가치관의 혼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현실의 고통을 피해 달아나고 싶어 했던 도시 소시민의 삶을 소년 동구의 눈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이따금 동구가 찾던 '아름다운 정원'은 현실 밖의 세상,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곳임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소중히 하고 끔찍이 위했던 것을 잃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남아선호의 가치관이 그렇고, 애국심과 반공을 기치로 삼았던 군부독재가 그렇다. 데모는 무작정 나쁜 것이라고 믿었던 동구처럼 그 시절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다는 건 내가 믿었던 어떤 것을 손에서 놓는 일이다. 그렇게 아끼던 영주를 떠나보내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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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집안의 4대 독자쯤 되면 그 귀하고 찬란한 나의 고추 덕에 내게 일정한 권력이 돌아올 법도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p.16) 1977년 6살 동구에게 동생이 생기는 날. 둘째도 아들이길 바라던 할머니의 대실망과는 반대로 여동생 영주는 동네 친구들의 동생들을 보며 그 지저분함에 토악질하는 깔끔이 동구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간다. 영주는 동구네 가족 모두에게 전과 다른 가족애를 느끼게 해주는 햇살 같은 존재의 등장이었다. 동구는 3학년이 되어도 글쓰기와 읽기를 하지 못해 할머니와 아버지에겐 바보로 여겨진다. 이와 반대로 영주는 세 돌도 되기 전에 스스로 글을 익혀 영재로 밝혀져 온 가족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다. 담임 선생님 박영은은 동구의 여린 맘과 난독증을 알아봐 줘서 동구에게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다. 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먹통이고, 엄마나 아버지도 가끔 벽창호 같아 보일 만큼 고지식한 사람들이고, 할머니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도 너무 바쁜 사람이어서 영주가 존재하기 이전에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p.23)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p.97)
이렇게 꿈같은 나날들만 이어지면 좋으련만 4학년이 되면서부터 동구에게 불어닥치는 시련은 너무나도 컸다. 변태 같은 4학년 담임 오준근의 등장, 사라진 박영은 선생님, 동생 영주의 죽음, 할머니와 엄마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등 이런 끔찍한 악몽 같은 일들이 쓰나미처럼 동구를 휩쓴다. 가족의 보살핌이 가장 절실했던 동구가 할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 매듭을 풀어내기로 마음먹는다. 나의 눈에 띄었던 금빛 가슴털의 새, 야윈 곤줄박이는 얼음 위에서 날아오르지 못하고 깡충깡충 뛰어 연못을 벗어났다. 살아 있었구나. 나의 곤줄박이야. 그 어느 못된 손목이 던진 돌팔매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렇게 살아서 아름다운 정원에 남아있었구나. (p.114)
슬프고 화나고 어이없는 일투성이지만 동구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섬세한 심리 묘사는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하고 여리고 착한 동구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문장을 마주하며 마음의 짐을 좀 덜고 읽어보자 했던 내 다짐이 무색하게 할머니를 만나는 순간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어쩜 이렇게 자신밖에 모르는 어른이 있을까? 동구 할머니는 시작부터 끝까지 분노 유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같은 여자, 며느리, 시어머니와 할머니 모든 측면에서 상식을 벗어난 이 할머니 어찌하면 좋은지 나조차 명쾌한 답을 낼 수 없다. 이 할머니 덕분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것인지 또 한 번 깨달았다. 동구 할머니를 내 아량으론 품어 줄 수 없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동구가 가장 절실하게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 아무도 동구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번에도 이렇게 동구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책을 덮게 된다. 동구야, 부디 곤줄박이처럼 잘 견뎌내고 너의 가족이 네가 원하던 아름다운 정원처럼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 삶에는 시련과 슬픔이 존재한다. 그 시련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냐에 따라서 그 삶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을 접한건 벌써 2년이 되었는데 오늘 책정리를 하다가 발견해서 다시 읽었다. 2년전의 감동이 되살아 난다.... 군부독재가 판치는 시대의 슬픔을 작가는 화려한 문체로 승화시켰다. 모든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시대, 그리고 선생님이 부모님보다 무서웠던 시대, 그 시대는 내가 자랐던 시대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동구에게서 나의 모습을 봤을 지도 모른다. 수없이 존재하는 갈등속에서 글을 깨우치지 못하는 동구의 모습은 가련하기보는 하나의 저항으로 보인다. 동구의 모습속에 세상은 우울하고 슬픈 모습이다. 동구는 이런 슬픔에 저항을 하고 시련을 자신의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글을 잘 읽지 못하지만 세상을 맑고 선명하게 바라보고 사려깊은 동구의 모습... 그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고 감동을 했다. 그러나 동생과 박영은 선생님의 죽음...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 같은 시련은 동구에게 계속된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런 시련을 극복하는 동구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동구는 암울하고 우울했던 시대의 시련을 극복했다. 글을 읽고 싶지 않은 시대에 저항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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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슬픈 현대사는 아픈 가족사와 함께 한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러했다.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여섯이 옹기종기 붙어 살았다. 건넌방에는 삼촌이 신혼방을 차려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 정확히 내가 여섯 살에 작은 엄마는 조카를 낳았다. 그것도 집에서. 문지방 너머로 몰래 본 애 낳는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은 채 뇌리에 남겨져 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그 시절을 일컬어 유신시절이라고 어른들은 불렀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가난했었고 누구나 아픈 시절이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언제나 바빴다. 좋게 이야기하면 부지런한 것이었고 나쁘게 표현하면 죽도록 일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만났다. 오랫동안 봉인 되어 온 기억을 스치기만 해도 툭 터져버리듯 그 시절들이 떠올랐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산동네가 꼭 우리가 살던 달동네와 닮아있었고 매일 같이 싸우는 엄마와 할머니의 싸움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욕설이 난무하고 며느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 환장하시는 할머니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살림하나는 똑 소리나게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늘 할머니 편만 드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모두 그랬다. 아내편 들어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주먹으로 자식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버지.
그런 동구의 가슴에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 어디에나 꼭 존재하는 부잣집의 정원을 비밀처럼 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은 잔디 하나 없지만 낙엽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순수의 결정체 같은 비밀의 정원이었다.
도저히 화목이라고는 눈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이 가족들이 영주의 탄생으로 인해 약간의 평화가 찾아오긴 했다. 며느리라면 쌍심지부터 켜는 할머니도 영주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고 아버지는 영주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동구는 달덩이 같은 영주얼굴을 보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고 아버지의 폭력과 할머니의 욕설로부터 엄마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영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3학년이 된 동구는 한글을 여전히 못 깨우쳤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동구가 한글을 모른다고 하자, 아버지는 따귀를 때렸다. 동구는 그후 더욱 글을 읽는 것을 두려워했다. 3학년이 되자 동구는 특수 학교로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난독증을 보이고 3학년 담임 박영은 선생은 동구의 상담을 자청한다. 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동구는 부모들에게 받지 못한 애정으로 치유되는 듯 하였고 학년이 끝나갈 무렵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경을 비밀 정원처럼 품는다.
사회의 격변기를 지나던 시절, 탱크 구경하러 간 곳에서 옆동네 주리 삼촌을 만나고, 처음으로 멍게와 소주를 맛본다. 소주의 맛처럼, 독하고 혼미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주리 삼촌과 박선생, 박선생의 선배와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대학시절 박영은 선생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시작된 고백은 이후 박영은 선생의 거취를 예고하는 복선이다.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찬미하면서 능소화 꽃 사이에서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능소화의 찬란한 영혼, 붉은 자주빛 원피스를 나부끼며 떠나가신 박 선생님 같은 그 황금의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p244
박영은 선생이 실종 되고도 동구의 집은 여느 때와 같다,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피해 영주를 무등 태워 감 따러 간 날, 영주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이후 동구의 집에는 파란이 일어난다. 충격으로 엄마는 정신이 나가고 할머니의 타령은 더욱 심해졌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죽을 듯이 싸운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성숙의 계단을 오르는 동구는 오랜 비밀의 정원에 이별을 고한다.
아버지와 엄마는 돈을 많이 벌고 나를 잘 키우자는 희망이 있다. 나는 나중에 박 선생님을 다시 만나자는 희망이 있다.하지만 할머니의 몫으로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고,노래를 불러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나들이를 함께 나가던 영주가 떠난 후 할머니에게는 어떤 희망이 남았을까.
소설의 큰 틀은 글 한자 읽을 줄 모르던 동구가 할머니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동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동구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힘겹게 한 세계를 깨뜨린 후에야 성장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이 흔한 것과 귀한 것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누구나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기차 밖에서 흘러가는 풍경처럼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에 풀칠하는 것만으로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동구의 비밀 정원처럼 아로 새겨진 민주화 운동을 기억한다. 유신 시절은 누구나 가난했고 누구나 아팠다. 동구의 아픈 가족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였고 슬픈 현대사를 품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책속에서- 영주와 나와 박 선생님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지금 같은 새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긴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
인간이 살아가는데 치사하게 답만 알고 과정을 모른다는 것은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라는 설명에 수긍했을 따름이었다. 그 원칙이 산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사 전반에 그렇다는 훈계를 듣고는 앞으로 어른이 되더라도 내 인생이 뿌리가 없고 불완전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고, 인생을 완전한 것으로 해주는 그 '과정'을 찾기 위해 따로 노력도 해보았으나 야속하게도 내 머릿속에 과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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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하나하나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단어들인가. 나의, 아름다운, 정원. 소리내어 볼수록 예쁘고 아련한 단어들은 언뜻 '비밀의 화원'을 연상하게 한다. 신예 심윤경이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놓은 첫 작품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소리없이 내리는 비처럼 조용히 슬픈.
주인공 동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난독증 탓에 글자를 잘 읽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아이이다. 그러나 속은 누구보다도 깊고 어른스럽다-물론 말을 잘 하지 못하니 어른들로서는 그런 동구의 속내를 알 수 없고, 박 선생님이 말하기 전까지는 난독증인 줄도 모르고 그저 덜 떨어졌다고만 생각한다-동구는 달동네에서 아버지, 어머니, 입 험한 할머니,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영리한 여동생 영주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어머니에게 트집을 잡고, 동구는 어린 마음에도 그악스러운 할머니가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하는 아버지는 동구에게 가끔 미운 존재이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여과 없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동구의 어린 여동생 영주이다. 세 돌이 채 지나기도 전에 스스로 글자를 깨치고, 팔을 벌려 안으면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어린 천사 영주가 동구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심윤경은 동구의 눈을 통해 본 가족 간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악스러운 할머니는 동구에게 있어 가끔 동정을 느끼게도 하고, 가끔 미움을 느끼게도 한다. 많이 먹으라며 깍두기와 멸치볶음을 동구 앞에 밀어놓고 은근슬쩍 자기 앞으로 고기반찬을 끌어다 놓는 할머니는 어머니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동네에서 음식 솜씨가 가장 좋은 어머니는 할머니의 신경질을 꾹 참고 받아내며 사는 불쌍한 사람이다. 동구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연민한다. 동구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고부간의 갈등은 첨예하다. 왜 모든 시어머니는 자신이 며느리였던 때를 잊는가? 혹은,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며느리에게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드물지 않은 이 갈등은 아버지를 사이에 두면서 더욱 극렬히 치닫는다. 어머니의 편도 아내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아버지는 두 여자 사이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며 고뇌할 뿐이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편견이 없으므로 더욱 무섭고 또한 선명하다. 동구의 이야기 속에서 여과없이 드러나는 아버지의 불안감은 실로 애처롭기까지 하다. 또한 동구가 어린 마음에도 아들로서 어머니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왜 남자들은 때로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가? 심윤경의 섬세한 문체로 그려지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는 잔혹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이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가 갖는 가족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성원들 각각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잔인하다. 자의지로 선택할 수도 없는 집단 속에서, 그 이름을 위해, 그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단 말인가.
동구의 난독증은 아름답고 천사같은 박영은 선생님과 동구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이다. 매일 한 시간씩 남아 선생님과 글자 공부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동구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동구가 글자를 배우는 과정은 길고 지루하며 인내심이 필요하다. 박 선생님은 그 모든 과정을 훌륭히 해낸다. 그녀는 동구에게 글자를 알게 되면 세상이 보다 넓어진다고 말한다. 동구가 글자를 읽게 되면서 선물로 받은 책은 동물 도감이었다.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된 동구는, 그러나 이미 동물 도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글자를 통해 배우는 것들 이상으로, 삶을 통해 배우는 것들은 때로 아주 혹독하고 치열하다. 박 선생님은 동구와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동구에게 글자를 가르친다.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거리에 설 수 있을까, 다린 면바지를 입고 자유 민주화를 외칠 수 있을까를 고뇌하던 그녀의 속내를 훗날 자란 동구는 깨달을 것이다. 동구는 교과서에 적힌 백 마디 말보다, 박 선생님과 함께 한 짧은 시간을 통해 역사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배운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효자동 이발사'를 떠올렸다. 차라리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자동 이발사'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정말, 훨씬 더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효자동 이발사'의 낙안이는, 고문을 통해 걷지 못하게 된다는 장치를 통해 독재 정치에 대한 조소를 내비쳤다. 그러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고는 박정희 '각하'와 최규하 '각하'의 이름밖에 없고, 고대 법대 출신의 고시생 주리 삼촌이 술자리에서 떠드는 이야기 같은 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자주색 쿨울 원피스와 마노 목걸이를 건 채 거리에 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박 선생님의 한 줄 대사를 통해 그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박 선생님의 죽음을 알리는 주리 삼촌의 한 줄 대사는 두 시간짜리 '효자동 이발사'보다 독자에게 더욱 큰 임팩트를 떠안긴다. 좋은 작가 한 사람이 갖는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쿨한 것들'의 범람 속에서, 심윤경은 아주 눈에 띄는 작가이다.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울 만큼 많은데도 말이다. 그녀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녀의 글이 쿨한 인생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치열하고, 집요하리만치 격렬하다. 심윤경은 그 뜨거움을 잔잔하고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때로, 좋은 작가 한 사람의 글은 백 권의 교과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심윤경은 바로 그런 작가다. 오래간만에 만난 좋은 작가인 그녀가 앞으로 선보일 글들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녀가 지금처럼 아름다운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 심윤경의 책을 읽는 기쁨을 오래오래 누릴 수 있도록. [인상깊은구절] 선생님과 공통점이 하나 생겼다. 둘 다 어린 시절에 동물 도감을 좋아했다는 거. 나는 선생님을 우러러보며 무턱대고 존경과 숭배를 바쳤다. 스님 앞에 서면 잡귀신이 파랗게 질린다던가. 내 눈을 가리고 내 머릿속에 글자가 들어가는 것을 완강하게 막고 있는 심술쟁이 훼방꾼은 선생님 앞에서 제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끼고 새파랗게 질려 있을 것이다. 그래, 이 훼방꾼아, 얼른 손을 치우란 말이야. 나는 네 손을 치우고 글을 읽을 거야. 네가 떨어져나가면, 나는 영주처럼 동화책도 읽고, 환한 세상으로 훨훨 날아갈 거야. 나에게 인생의 진실과 동물의 신비를 알려주시는 박영은 선생님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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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심 윤 경
제 7 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1996년의 가을이었다.. 난 스물 셋이었고.. 상병 정기휴가를 나왔더랬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친여동생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혼자 자취를 하고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우수한 인간들만 들어간다던 동생의 학교를 구경하고..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동생의 자취방에서 와인을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 때.. 뜬금없이 동생은 내게 물었다..
'오빠는 사랑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해..?'
매일 같이 TV를 보며 연예인에 관한 시시껄렁한 농담만 주고받던 우리 남매의 대화의 전력에 비추어볼 때.. 그런 진지한 대화가 무척이나 낯설긴 했지만.. 맥주탓이었는지.. 와인탓이었는지..
난..
'사랑의 조건은 이해가 아닐까..' 란
멋드러진 대답을 했던것 같다..
요즘은 바쁘다..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일이 바쁜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바쁘다.. 아니 바쁘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생각이 안 들거라는.. 그런 강박관념탓일게다..
즐겨쓰던 독후감도.. 인터넷에서 퍼다 나르는게 요즘의 행태인데.. 방금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아.. 이건 내가 써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출퇴근길 버스안에서.. 사람이나 밥을 기다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침대나 의자에 걸터앉아 제대로 자세를 잡으면서..
가방속에는 두권의 책이 있고.. 출퇴근길 버스안에서는 '오만과 편견'을.. 약속을 기다릴때는 '성학십도'를.. 보고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이틀내내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이 책만을 보며.. 나름대로 정한 독서의 규칙을 깨버리게 만들었다..
그만큼 푹 빠져.. 길가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한번 읽어보세요.. 아마 지금보다 조금쯤은.. 마음이 따뜻해질거예요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책..
제일 많이보고..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 이런 성장소설인데.. 주인공이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치열한 성장통을 겪고.. 결국엔 한 층 더 커버리고..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라는 결론을 모두다가 전해주는 식인데.. 그런데도.. 항상 이렇게.. 이런 글을 볼 때면..
난..
매번..
그렇게 아리기만 하는건지..
청와대와 중앙청이 가까운 곳이라.. 시대의 시끄러움을 벗어나진 못한다.. 그리고 그 곳엔.. 그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어떤 사장님의 3층 저택이 있고.. 그 저택에는.. 동구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황금빛 곤줄박이와 함께..
그 귀한 '고추' 대접은 받지 못한다..
왜..? 덜 떨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글자를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항상 욕을 입에달고 며느리 갈구기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와.. 그런 냉대에 항상 침묵으로 일관하며 가슴이 숯검댕이가 되어버린 어머니.. 그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며 폭력까지 행사하는 아버지.. 참 동구네 집은.. 깝깝함의 결정판이었다..
동구에게.. 늦둥이 여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할머니가 지어오신 이름은.. '한복자'였다..
여동생의 이름은.. 적어도 미연이나 희정이 정도는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동구에게..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상황인가.. 그리하여.. 결국 그 여동생은 '영주'라는 예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가족들 서로간에.. 어떠한 애정 표현도 해 본 적이 없는 동구네에.. 영주는 항상 먼저 팔을 벌려 안기고.. 돼지막창같은 그 조그마한 입술로.. 앙증맞게 볼에 뽀뽀를 '쪽' 해주는.. 동구네의 삶의 활력소였다..
그래도 동구는 그런 동생을 질투하기는 커녕.. 선생님 선물로 엄마가 카스테라를 만들던 계란반죽에.. 영주가 석고가루를 뿌려넣자.. 엄마가 돌아왔을때.. 그 계란반죽통을 뒤엎어버려.. 대신 엉덩이를 맞았던..
세상에서 가장 '착한' 어린이였다..
항상 바보라고 놀림받던 동구에게도.. 난독(難讀)증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방과 후 한시간씩 시간을 내어 주시던..
박영은 선생님..
동구에게는 이제.. 삶의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인.. 77년부터 81년까진.. 우리 모두에게.. 난독(難讀)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런 연유로 동구가 사랑하던 이들은.. 하나 둘 동구곁을 떠나가고.. 동구가 노루너미로 갈 생각을 굳힐때 즈음..
동구는 그 사람들을 진정 '이해' 하는.. 사랑을 배우며.. 그렇게 한 층 더 자라나게 된다..
박영은 선생님은 물론 이거니와.. 주리 삼촌.. 동구의 엄마까지도.. 그러한 모든것이.. 덜 떨어진 한동구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나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고 희망차게 볼 수 있었던..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새삼.. 나도 좋은 '어른'이 되야지란 다짐을 했을 정도로..
수상당시 신인 이었다고는 하나.. 글을 참 '아름답고 예쁘게' 쓰는 재주를 지닌듯 하다..
우유와 방금 내린 눈송이, 푸르스름한 오이의 속살에 꿀을 더하면 선생님의 피부 빛깔이었다. 반투명한 피부 밑을 흐르는 푸른 혈관은 얕은 바닷속의 싱싱한 해초 같았다.' (P.94)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눈썹을 적신 눈물로 시야가 어룽져 모든 것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발걸음이 변함없이 경쾌한 것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수십억 년의 나이를 먹는 동안 한 번도 누군가를 놓쳐본 적이 없는 늙은 지구였지만, 선생님의 가벼운 발걸음 앞에서는 갑자기 그 집요한 중력도기운을 놓고 마는 모양이었다. 지구가 결국 선생님을 붙들기를 포기하고 손을 놓아버리면 선생님은 미련 없이 날아가버릴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나비처럼 나풀나풀 조금씩 떠오르다가, 날아오르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진 후에는 허공에 대고 쏘아올린 새총처럼 가뿐하고 시원하게 솟구치는 모습이었다. 여름날, 외갓집 앞의 너른 벌판에서 보았던 종달새가 그렇게 치솟았던가.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손을 흔들었던 것같기도 했지만 이미 날은 어두웠고 버스 꽁무니가 쏟아내는 검은 연기 때문에 앞이 흐려져 박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P.228)
그렇게 자기 중심적이던 할머니가 못내 서운했으며.. 밥상머리에서 동구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바탕 싸울 기세를 보이면.. 책장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서 땀이 베어나오고.. 괴로울때면 악다구니를 부리고 아무리 주먹으로 쳐대도.. 허허하고 웃으며 받아주는 주리 삼촌같은 어떤 든든한 대상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소주 두잔에 자신의 사랑을 고백해버린 동구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얼굴이 붉어지고..
동구만큼이나.. 여신과도 같은.. 박영은 선생님의 향기를 흠모했었나 보다..
지난밤 꿈에 나온 여인은.. 아마도 박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아무 걱정 말고 지금처럼 예쁘게 자라기만 하렴.'
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얼마나 가슴이 벌렁 거리던지..
참..
나의..
아름다운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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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인왕산 허리 아래 위치한 "동구"네 집. 동구와 6살 터울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동구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는 큰 삐걱거림이 있다. 하루에도 여러번 큰 소리가 나고... 울고... 욕하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할머니에게 어머니가 당하는 꼴이지만... )고부간의 관계는 더 이상 나빠 질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다. 그런 동구네 집에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가끔이지만 웃음꽃이 피는 집으로 변해간다. 보통의 평범한 집처럼. 동구를 비롯해 어머니, 아버지는 두말할 필요없고, 까칠하고 정 없는 할머니까지도 영주라면 껌뻑 죽었다. 영주가 두 팔 벌려 달려가 안아달라고 하고, 뽀뽀세례를 퍼붓기라도 하면, 동구네 가족 누구라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동구는 한번도 업혀 본 적이 없지만, 영주는 매일같이 할머니 등에서 산다.
동구에게는 '난독증' 이라는 병(?)이 있다. 지능은 정상인과 똑같으나, 글을 읽고 쓰는데 문제가 있다. 난독증 때문에 지옥같은 수업시간을 견뎌야 하는 터라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다. 그런 그에게 학교가고 싶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천사가 방금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은 예쁘고 착한 "박영은" 선생님이다. 한심한 멍청이로 학교와 집에서 온갖 구박을 달고 살았는데, 오히려 난독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동구에게 더디긴 하지만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선생님 이기도 하다. 그런 박선생님을 동구는 많이 따른다.
여동생 영주와 예쁜 박영은 선생님의 존재로 동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온 몸을 희생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쳐오는데... 열 한살!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상실감은 동구가 견뎌 내기엔 너무 벅찬 일이다. 하지만 생각의 넓이와 깊이가 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수투성이에 지지리 공부도 못하는 한심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동구는 또래에 비해 속이 깊고 마음이 참 따뜻한 아이다. 어머니 입장도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고, 괴팍한 할머니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현명한 아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 아프고, 힘들고, 무기력하지만 세상을 향해 기꺼이 한걸음 내딛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른이였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건 동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동구는 고독한 자아를 찾아 부딪치고 깨지고 찢어지면서, 어렵게 그러나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많이 안쓰럽고 또 그만큼 대견스럽다.
p.s 이 책을 읽고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지 했던 점 두 가지. ^*^ ① 아이 앞에서는 부부싸움 하면 안되겠다. ② 책을 많이 읽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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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는 동안 몇 번인가 눈시울을 적셨다. 읽는 내내 긴장감을 가지게 되었다. 동구, 영주,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박선생님 등의 등장인물들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내내 그려질 만큼 묘사력이 뛰어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구는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가족들의 구박으로 인해서 난독증이라는 병이 아닌 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박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인해서 치유가 되고, 정상인처럼 글을 잘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글은 장애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에서 시작해 그것이 점점 완치 된다는 점에서 보면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는 느낌도 든다.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자신은 상처 받았지만, 자기가 더 나이가 많고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동생 영주가 혼나지 않게 대신 혼나는 모습이나, 어렸을 적에 동생을 내내 엎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 어린 동생이 자기보다 더 글을 잘 읽는다는 것에서 서운함을 가지지 않고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자신의 일보다 더 기뻐했다는 점에서 뭔가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 글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지게 되는 아픔을 보여주면서 독자를 슬프게 한다. 이런 타입의 글을 처음 읽었다. 욕쟁이 할머니로부터 항상 구박을 당하지만, 옆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갈등을 항상 지켜보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지만, 주인공 ‘동구’는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소년이다. 이 소년의 속마음을 보여주면서, 이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점점 슬퍼졌다. 할머니께 당치 않은 이유로 계속 구박받는 동구를 보면서 어느덧 나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고, 동구가 글을 읽게 되어서 부모님들이 놀라게 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동구는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가족들로부터의 무관심과 미움으로 인해 가슴속에 표현하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온 아이이다. 그것이 난독증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3학년 담임인 박선생님의 등장은 동구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할머니의 생신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간 박선생님이 돌아오지 않게 된 것에서부터 다시 슬픔은 시작된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이제는 동구가 행복해 질 때가 되지 않았나?’ 하고 계속 생각했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정말 슬픈 일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글을 읽고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동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동생 ‘영주’의 죽음이다. 나도 믿어지지 않았다. ‘작가는 왜 갑자기 이런 전환을..’ 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쉽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소설의 주인공들과 함께 나도 너무 슬퍼졌다. 덜컥 눈물이 났다. 그토록 영주를 아끼고 좋아하고, 또 사랑하던 동구의 모습이 플래시백처럼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영주를 화장하면서 아버지께서 힘없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에서도, 평소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던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슬픔을 가지는지 알 수 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가게 되고, 가족들에게는 깊은 혼란이 오게 된다. 결국 추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구는 박선생님을 기다리던 곳, 사랑하는 동생 영주와의 추억이 있는 곳에서 떠나 시골에 가서 생활을 하려 한다. 그렇게 책의 내용은 끝나지만, 내가 정말 걱정이 되는 것은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시련과 슬픔을 겪은 동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대상」 이 책은 고부갈등에 대해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순진한 아이의 눈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그 아이가 느끼는 점을 얘기하고, 상처받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점을 바꾸어 이 책을 우리 어른들이 읽는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주로 가족들로부터의 냉대에서 생긴 동구의 상처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고부갈등의 관계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이것이 우리 현실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 중에 박선생님과 동구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시간에 이런 대화가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할머니도 사랑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동구도 지금은 어머니를 제일 사랑하지만, 언젠가 사랑하는 아내가 생긴다면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할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사이에서 이런 문제로 고민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나쁜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은 것이 그것의 예방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그런 일이 있을 때, 나의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당신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아.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어머니가 당신을 속상하게 하더라도 당신이 참아줘. 난 당신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 [인상깊은구절] “당신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아.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어머니가 당신을 속상하게 하더라도 당신이 참아줘. 난 당신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