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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오는 긴박감,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장면은 없지만 주인공과 공감하며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길 수 있는 고급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추리소설이 늘 상 제시하는 밀실살인, 퍼즐 맞추기처럼 정신의 소모를 요구하지 않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 소설의 주인공인 형사 발란더는 마흔이 넘은 유능한 수사관이지만, 사실 고독을 느끼며 사별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딸을 걱정하는 평범한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초특급 무술의 달인이거나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가 아니란 점이 더 와 닿는 것일까? 한 권으로 읽기엔 조금은 두꺼운,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이 소설에서도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문제, 사람들의 편견 등이 저변에 깔려 있다. 사건의 단초를 잡아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이 살짝살짝 긴장감을 주는 묘미가 더해지는 추리소설, 작가의 신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인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자신이 도랑 바닥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고통 한가운데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기차가 지나간 후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그녀는 물의 심판을 생각했다. 이 죄인은 물 속에서 멸망해야 한다. / 알제리 어딘가에 내 어머니를 죽인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어요. 누가 그를 찾아내죠? |
| 발란더 형사의 범죄 수사기는 많은 난관 끝에 살인범을 잡아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뭔가 개운찮은 덩어리가 가슴팍에 걸린 듯 속이 갑갑하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관계없는 이 개운찮은 뒷끝,,,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이 과도하게 이뤄진 탓도 있을텐데, 이 "다섯번째 여자"는 앞선 두 작품에 비해 그 정도가 더 심하고 오래 가는 것 같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에 (남자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여자라는 점과 범인 체포 후에도 마음을 못잡고 여전히 불안해 하는 발란더의 황망한 심정이 옮아 와 버린 때문일까,,,,,, 이번 이야기에서 발란더는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식인 추적 작업의 와중에서 보는 사람 아슬아슬할 정도로 짜증과 신경질을 온사방에 터뜨린다. 그의 피로와 위기감이 행간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탓에 가끔은 그를 쫓아가는 일이 아주 부담스럽다. (한마디로 이 아저씨, 히스테리가 장난 아니다) 이 모든 사건의 무대가 되고 있는 스웨덴 남부 소도시의 그 음울하고 황량한 풍경은 이제껏 가져온 지상 최고의 복지 국가라는 부티나고 반듯한 스웨덴, 소싯적의 고르바쵸프가 그랬듯 많은 이들에게 선망으로 여겨져온 이 나라를, 구제할 길 없이 음침하고 막막한 안개와 비바람의 대륙으로 바꿔놓는다. 그런데 결말에서 범인의 최후 진술과 심경 고백이 별로 설득력있게 안와닿아 맥이 빠졌다. 천벌받아 마땅한 비열한 놈들은 당연히 죄값을 치뤄야 하지만 범행 동기와 실행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탓에 추리 소설의 백미라 할 다 밝혀진 뒤의 개운함이 안느껴졌다. 대신 처량한 신파의 여운만 덜렁하니 남아 괜히 뒷끝이 찜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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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물이 그렇듯..읽을땐 정말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게 된다. 그리 가볍지도 않게 전개되어 빠뜨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작년 여름에 이 작가의 책을 우연히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단순하지 않아 다시 찾아서 구입했다. 아마 앞으로 몇 권을 더 구입해서 읽을 것 같다. 도서관에 있으면 다행이긴 하지만..ㅎㅎ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처벌받지 않는 위법자들..특히 생명과 관련하든지 아님..중범죄에 대한 그들에 대한 처벌은 누가 할것인가? 그것으로 피해입은 자들의 상실감 상처는 누가 감싸 줄 수 있을까? 다시 고민하게 된다. 몇년전에 했던 고민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특별한 결론없이..그냥 신이라는 이름으로..지금 당장은 아니지만..시간이 흐르면 무엇인가 댓가가 있겠지 하는 심심한 결론으로 말이다. 주인공??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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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작가인 '헤닝 만켈'의 '발란더 형사 시리즈'는 일반적인 추리물과는 모습을
달리한다. 물론 현대의 많은 추리물들이 그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고전적인 탐정물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에서 만날 수 있는 탐정의 번개처럼 떠오르는
그러한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고전적인 탐정의 모습이고, 추리물의 모
습이라고 한다면, '헤닝 만켈'의 '발란더 형사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안개속을 더듬는 것처럼 답답한 상황들의 연속이고, 그 상황들 속에서 찾아오
는 우연이 사건들이 모여서 그 우연들이 결국 사건의 해결로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
가 '헤닝 만켈'의 소설 속에서 만나는 사건 해결 과정이 진짜 현실적인 수사일지도 모
른다. 우리네 세상은 소설처럼 딱딱 단서가 주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의
세상도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그 우연이 다시 새로운 우연을 불러들이는 과정이니 말
이다. 그래서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는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번째 여자'는 '발란더 시리즈'에서 잘 보여지는 이중구조를 잘 보여준다. '발란
더 시리즈'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큰 축을 이루고, 또 다른 사건이 다른 한 축을 이루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행이 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두 사건은 전혀 서
로 이어져있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더구나 이야기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들은 전혀 그 두 축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
리고 '다섯번째 여자'에서는 그 두 축 중의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돌아가게 하는 방아쇠
의 역활을 한다. 그리고 그 방아쇠는 폭력이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의 모습으로 독자
들을 찾아간다.
'발란더 시리즈'가 진행이 되면서 이 시리즈를 차례대로 만난 독자들은 차츰 차츰 사
건들이 '발란더'라는 주인공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코난'이
나 '김전일'의 경우에서 만나는 사건을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발란더'는 형사이기에
사건과 떨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직업으로서의 일의 모습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발란더'의 가까운 이
들이 그 범죄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다섯번째 여자'는 그렇게 '발
란더'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범죄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발란더'가 목
숨을 걸었던 장면은 있어도, 그의 동료가 생사를 오가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
어 '발란더 시리즈'는 어쩌면 조금씩 조금씩 붕괴하는 사회를, 그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서 보여준다. 완전히 행복한 인물들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발란더 시리즈'가 보여주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다섯번째 여자'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난 폭력과 그 폭력에 대한 은폐가 전혀 다
른 곳에서 새로운 폭력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전의 이야기에서는 그
다지 범인에게 동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 '다섯번째 여자'는 범인에게 동정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범죄가 결국은 숨겨진 폭력들이 만들어낸 폭력이었
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지고 법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어이없는 상황을 만
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도와줬어도 그것이 법에 저촉된다고 해서 범죄가 되
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그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개입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법은 언제나 범
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폭력이 되고 다른 폭력을 만들어낸다. 그 모
습들을 '다섯번째 여자'는 담담하게 그린다. 폭력에 희생되었지만, 그 폭력의 은폐로 세
상에서 그냥 지워져 버린 '다섯번째 여자'에 대한 진혼곡인 이 책은 또한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우리들 모두를 위한 진혼곡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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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일까.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살인이 억눌려 있던 키를 망가뜨려 버렸다. 기폭제가 되어 연쇄살인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수녀원에 잠입해 외국인 수녀넷과 나이든 여행자 한 명을 죽인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날 그들이 알제리에서 저지른 일이 무엇의 시작점이 되었는지.....!
이번에도 헤닝 만켈이다. 나를 놀라게 만든 필력의 작가는. 대중성과 작품성은 평행선을
달릴 때가 많은데, 그의 작품은 그 두가지가 알차게 부합되어 있다. 그래서 놀랍다. 왜 그동안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트릭이나
반전이 없어도 결말이 시시하지 않았고 범인의 윤곽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시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분명 몰입도는 최고인 작품이지만 뉴스를 보며 그냥 흘려 보았던 것과 달리 헤닝 만켈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내는 크라임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 그 재미보다 범죄의 파장을 염려하게
된 소설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래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이 작가의 소설은-.
78세의 시를 쓰는 노인, 아프리카로
'난초'를 보기 위해 떠난 꽃집 주인, 대학의 보조연구원이 왜 죽창에 찔려 죽고 나무에 목매달렸으며 호수에 내던져져 익사하게 되었는지를
수사하면서 그들이 찾아낸 키워드는 '용병'과 '여성을 향한 폭력'이었다. 그래서 용의자는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폭력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내 폭력, 사회적인 폭력, 집단적인 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력의 폐해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다섯번째 여자>에서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진 않았다. 다만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라는 의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독자 스스로
내뱉게 만드는 영리함을 보여줄 뿐이다.
악인에 대한 정의는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칼같이 정의내려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어느 일면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나뉘게 되며(희생자들의 보여진 삶처럼) 살인자라고 해서 그 사연까지 악하진 않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만 '폭력에 대한 응대가 폭력'이어서도 안되며 여기에 절대 익숙해져서도 안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각성하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고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얻을 수 있어 좋은 헤닝 만켈의 작품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제 몇 권 남지 않았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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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끔찍한 폭력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입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 의해 인생이 어그러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남일이 아니게 되었어요. 길거리를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물론이고 집 안에서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무섭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폭행하고, 생명을 빼앗고,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일. 북유럽 스릴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 헤닝 만켈의 [다섯번째 여자]는 그런 폭력과 복수, 정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알제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 늦은 밤, 종교 갈등으로 인해 한 수녀원에서 수녀 네 명과 여행객 안나 안데르가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안나의 딸은 분노하며 자신이 그동안 미뤄왔다 여긴 일을 시작해요. 그리고 차례로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사건. 그런 사건을 막아서려는 사법제도 앞에 형사 쿠르트 발란더가 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살인사건들 속에서 개인적인 고통을 겪으며 죽음과 맞서는 자신을 발견하는 발란더. 굳건하기는 하나 때로는 흔들리고, 완벽하려고 애쓰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고 외로움에 사무친 존재로 그려지는 발란더 형사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로 여겨지는 것은 -폭력과 정의-입니다. 종교 간의 갈등으로 희생이나 정의라는 명목 아래 그려지는 일방적인 폭력과 여성 학대, 남녀 문제,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동체의 개인에 대한 폭력,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점차 증가하는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그것이 가슴에 상처로 남아 범인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희생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사회문제를 고발합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에 변하지 않는 가치란 있는 것인가, 과연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의문을 독자에게 던지면서요.
그런 중에 -과연 사법체계를 거치지 않은 개인적 복수가 정당한가-라는 물음 또한 자연스럽게 던지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비유적으로 그려지는 듯 한데요, 사건 발생 후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에 대한 불만으로 경찰의 딸을 학교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폭행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사법제도 개입의 필요성을 강력히 인식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시키면 아마도 우리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면서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과연 어느 것이 옳은 지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되풀이 될 의문과 답이 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속도감이 있다거나 굉장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건과 더불어 우리 존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퍼즐을 하나씩 하나씩 맞추어나가는 심도있는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인식하면서, 199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이 심각한 폭력에 대해 다룬 지 16년이 지난 지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진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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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남자', '하얀암사자'를 전자책으로 먼저 읽었어요. '다섯번째 여자'는 책으로 소장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전자책으로 읽지 않고, 계속 기다렸던것 같습니다. 전편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은탓에, '다섯번째 여자'는 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범인이 누군인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범인이 누구인가?보다는 범인의 다음 희생자는 누구이고, 어떻게 처형을 하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물론, 범인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궁금하긴하지만 이것 역시 금방 유추하실수 있습니다. 그점이 어찌보면 좀 맥이 빠질수가 있어요. 궁금한거 다 보여주고서는 어떤 점을 궁금하라고? 묻고 싶다고요.^^
오랜만에 만난 발란더의 모습이 무척 반갑고도 낯설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졌나봐요.ㅎㅎ 낯설어지기전에 읽지 않은 다른 '발란더' 시리즈를 읽어야할것 같습니다. 어쩜 이 책은 구입했던 그 시점에 읽었어야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늦게 이 책을 만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추리소설에 대한 리뷰를 쓰기는 조심스럽다. 반전을 까발리거나 범인을 밝히거나, 힌트도 삼가면서 내용을 이끌어 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종종 소설의 스토리에 대한 언급보다는 그 작품의 의미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기가 쉽다. 번역된 헤닝 만켈의 일련의 작품들은 대체로 도서추리 형식이고, 이 말은 범인과 범행의 과정이 실제로 도입부에서 언급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소설 역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범행의 개요는 작가에 의해, 도입부에서 범인의 시점으로 한 번 이상 서술된다. 되풀이되는 범행 과정에 있어서도, 범행이 일어날 때마다 작가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그가 범행을 숨기는 대상은 쿠르트 발란더와 그 동료 수사관들 뿐이다. 이미 독자는 쥐고 있는 사실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서 발란더 팀은 갖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사실에 아슬아슬하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금방 다른 길로 새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사실이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어서, 이러한 발란더의 사고나 연상이 과연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잘 서술되어 있는지, 억지부리는 것이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갖은 노력들은 우리의 현실을 잘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근사하게 딱딱 들어맞아 제대로 끝나는 일은 얼마나 적은지.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안간힘을 써가야 제대로 뭔가 하나 될까 말까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또 이 작품은, 헤닝 만켈의 다른 작품들처럼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범죄,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려 전개된다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번역된 이 작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1995년 이전의 것이고, 부끄럽게도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긴가민가한 사람인데 스웨덴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야 오죽하랴. 다만 소설 속에서, 발란더의 입에 의해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흔히,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 갈등은 여러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소설 역시도 스웨덴 바깥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범행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현지의 상황과 절묘하게 같은 주제(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의 두 변주곡을 이룬다. 결국 사건은 발란더에 의해 해결되지만, 그 과정을 아는 독자는 마냥 개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범죄가 간혹 착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그리고 헤닝 만켈의 다른 번역된 소설들도-은 독자의 머리를 혹사시키는 류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단, 독자에게 주인공과 비슷한 정도의 심려를 끼치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나는 머리를 정신없이 혹사시키는 강력한 퍼즐 미스터리도 좋아하지만, 법 제도와 인간에 대한 담백한 신뢰를 담고 있는, 그리고 작은 한숨 하나로-그것이 안도의 한숨이든 아니든- 그동안의 심려를 매듭짓게 하는 이 소설도 좋아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