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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득템, 정지아의 봄빛.
이름도 생소한 작가 정지아를 발견한 것은 윤대녕의 산문집 덕분이다. 그의 이름이 낯선 것은 그의 작품들이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소설이나 전기류이기 때문이다.
살짝 살펴본 정지아의 이력은 꽤나 독특하다. 처녀작 '빨치산의 딸'은 판금조치를 당했던 것 같고(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념적인 눈높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자신의 출생 또한 그 근저에 있는 것 같다. 어찌보면 이러한 사고의 뿌리가 글쓰기의 양, 또는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쉬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도 정지아의 다작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2008년 유일하게 내놓은 소설집 '봄빛'만으로도, 사실 가슴이 턱 막힐 지경이다. 현대사의 질곡을 오롯히 짊어지고 걸어온 전쟁세대, 이제 부활과 재생의 조짐조차 없는 그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시선은, 치열하지도 전투적이지도 않지만 이전의 어느 작가의 책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생생함이 담겨 있다.
전라도 사투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자화된 사투리가 박제되지 않고 이처럼 귀에 쟁쟁할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의 언어 능력보다 체화된 태생적 감각 때문일 것이다. 사투리 기록에 대한 어떤 숭고함 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2010년을 마무리할 시점에 얻은 득템, 정지아의 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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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책 웹서핑중 봄빛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 가을에 봄빛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사고 또 단숨에 읽었다. 11개의 단편이 서로 다르나 같은 느낌을 주는, 참으로 따스한 책이다. 봄빛이라하면 봄기운을 말하는 것일테고 우리 인생에 있어 봄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부모가 아닌가.. 이 책의 단편들의 자식과 부모를 보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어느새 부모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반추해보면서 나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봄빛같은 존재일까...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연두빛 환한 봄을 그리며 한번도 봄빛을 거두지 않은 우리 부모님, 자식들이 응달의 추위에 떨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이신 부모님, 오래오래 사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봄빛은 생떼난 아이처럼 천지사방 흩날리는 흙먼지를 오냐오냐 다독이고, (못)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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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은 거의 논픽션인데 독자들은 픽션으로 읽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픽션인데 독자들은 논픽션으로 읽는다는 정지아 소설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독자들의 오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시대가 변하면서 빨치산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사이에 출간한 『봄빛』은 빨치산 아버지가 배경으로 들어 있지만 시간에 관한, 세월에 관한, 정지아 소설가의 깊디깊은 사유와 문체가 돋보인다. 단편 세 편만 읽어도 송기원 시인이 젊은 대학생이던 정지아에게 『빨치산의 딸』을 쓰라고 독려한 까닭을 알게 된다. ‘빨치산의 딸’이기 때문인지 일찍부터 시간에 눈뜬 작가를 보게 된다.
- 「봄빛」 : 아버지와 의절하다시피 보내다가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찾아간 아버지는 치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완고하다.
두 사람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머리를 맞댄 채 잠들어 있었다. 이른 새벽에 깨어나 먼 길을 움직였으니 여든의 나이에 피곤하기도 했으리라. 죽음보다 더한 치매선고를 받고도 잠들 수밖에 없을 만큼 부모님의 몸이 늙었음을 깨달은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기가 촉촉이 눈에 고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눈물이었다. 당황조차 할 겨를도 없이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에 닿은 물기는 짜디짰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 고리대금업자 같은 비정한 세월이 자신으로부터 수금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47쪽)
- 「풍경」 : 백 살을 바라보는 노망든 할머니와 환갑을 지난, 세상과 섞여본 일 없는 늙다리 아들이 사는 산골에 여든의 아랫마을 아낙이 찾아온 하루.
노망든 어머니가 하루빨리 가기를 바란 적도 없었고, 오래 살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해가 뜨면 새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듯 곁에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을 뿐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세상이었으며 유일한 동무였다. 영원처럼 느리게 그러나 쏜살같이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69쪽) - 「세월」 : 빨치산이었던 남편이 늙어 죽은 뒤 아내가 하는 혼잣말.
이만허먼 됐소. 말로는 못해도라. 헥멩도 뭣도 아니고라. 생명은 말이고라, 살아봉게 애달프요. 짠허고 애달프요. 긍게 우리, 허공중에 산산이 흩어져, 생명 가진 잡초로도 말고라, 사램으로도 말고라, 뵈도 않는 먼지 같은 것으로나 날라면 나서 말이어라, 슬픔도 없이 기쁨도 없이, 여그저그 떠돔시로나, 암것에도 맘 주지 말고 말이어라, 시시허게 고로코롬이나 살아볼라먼 살아보등가요. 벹이 좋소. 짜울짜울, 나도 잠이 와라, 안 깼으먼 좋겄소. (2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