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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퉁 그의 글은 늘 읽는 다는 느낌보다 이야기를 아주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기분을 받는다. 그래서 내용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도 혹은 정말 꾸며낸 듯 한 인상을 강하게 받아도 고개를 주억이며 다음 스토리를 궁금해 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옛날이야기 재미있게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쑤퉁의 신작을 만났다. 이번엔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하는 설레임으로...
아 그런데 마씨집안 자녀교육기가 너무 강한 홈런을 날리는 바람에 뒷 작품들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 든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마씨네..를 제일 마지막으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술상무를 하는 사람이 그리고 화가 나면 따귀를 때리는 남편 그래서 이혼한 아빠를 둔 아들과 그 아들의 아버지가 사는 가족이란 공간에서 교육이란 것을 말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교육관이 있었다. 투박하기도 때론 무식하기도 한 교육이었지만 그래서 질퍽해 보이고 억세보이기만 한 그들이었지만 어느날 매가 아닌 엄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게 하는 훈계에선 눈물이 핑돌고 말았다.
결혼한 남자는 이혼지침서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1934년의 사망과, 양귀비의 집은 굉장히 탄탄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쑤퉁의 익살스러운면이 살짝 감추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쑤퉁소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론 마씨네 이야기가 제일 마지막에 있었으면 전체적으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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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지침서], [쌀], [나,제왕의생애], [홍분], [눈물]에 이어 [마씨집안자녀교육기]가 찾아왔다. 이중 [쌀], [나, 제왕의생애], [눈물]은 쑤퉁의 장편소설이고, [이혼지침서], [홍분], [마씨집안자녀교육기]는 중편을 모은 작품들이다. 모든 작품이 한결같이 인생을 다루고 있다. [이혼지침서]로 쑤퉁을 처음 알게되고, 그의 작품세계에 흠뻑빠져 책이 나오는데로 읽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왜 쑤퉁이 중국내에서 영향력있는 작가'로 인정받는지 알수 있다.
이번 [마씨집안자녀교육기]도 예외는 아니다. [마씨지방자녀교육기]에는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중 두번째 작품인 '1934년의 도망'을 빼고 나머지 3작품은 중국의 아버지상을 시대별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1934년의 도망'이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3편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1934의 도망'은 그런 아버지와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쑤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는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문화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인간의 내면까지도 쑤퉁만의 글솜씨로 읽는이로 하여금 때로는 가슴이 아리고, 때로는 슬픔이 묻어나오고, 또 한편으로는 웃음이 베어나오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은 웃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수가 없게 만든다거나, 때로는 그 반대로 울고 싶은데 입가에는 웃음이 나게 만드는게 바로 쑤퉁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작품을 읽다보면 쑤퉁의 두가지 면을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거소가, 슬픔을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말이다. 처음 3작품은 전자에 속할 것이고, 마지만 작품인 '결혼이야기'는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4작품 중에 특히 마지막 '결혼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이 주는 짜릿함은 바로 쑤퉁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철학이 담겨있고, 해학이 담겨있고, 이 시대 중국의 남성상-꼭히 중국이라고 하지 않아도 될- 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모든것에 대해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어찌할 수 없음에 마음 아파하는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으로 쑤퉁의 작품을 6번째 만났지만 그는 분명 만나면 만날수록 새로운 작가임에 분명하다. 또한 장편이면 장편 중편이면 중편,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이야기를 두루 두루 재미있게 풀어내는 멋까지 지니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어찌보면 쑤퉁에 푹빠져 있는 나만의 장황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직접 쑤퉁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꼭 그렇지 않음을 찾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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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집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를 읽다보니 교육과 체벌에도 집안마다 각기 특색이 있음을 생각해내고 혼자 웃었더랬다.
그러면 3대에 걸쳐 따귀를 쳐 대는 것이 버릇인 마씨 집안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다른 두 작품, 1934년의 도망과 양귀비의 꿈은 풍양나무 마을에 사는 천씨 가문의 족보를 설명해주는 연작이다. 대지주의 몰락과 공산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중국, 아편에 찌들어 무너져가는 중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인하게 살아남고자 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이며,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역사의 거대한 파도를 헤어나와 살아가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남자는 이혼지침서의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쑤퉁의 살짝 뒤틀린 해학이 결혼한 남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하게 사실적이라는 느낌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양보의 태도에 질려 그의 아내는 집을 나가버리고 친구의 여자친구는 그를 유혹하고 뜬금없이 나타난 방문객에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사기꾼으로 몰리며 얻어맞는 결혼한 남자 양보의 이야기는 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래 물론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언제나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지만(367) 쑤퉁이 그려내고 있는 그의 인물들은 거대한 역사의 물결속에 휩쓸려 가 익사해버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359)했다고 하지만 쑤퉁이 그려내는 인물들의 답답하고 숨막힐 것 같은 집착의 모습과 맹목적인 사랑은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맹목적인 삶의 모습이 아님을 알게되어버린다. 쑤퉁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쑤퉁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가 인간에 대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에 대해 지독하게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역사와 설화가 사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웃음과 해학속에서 인간적인 깊은 슬픔이 배어나오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또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쑤퉁이라는 이야기꾼의 글은 꽤 읽은 편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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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의 집
류라오신 -- 류씨네 영감 나리 -- 류라오샤 | 취화화 | 천마오 | 류천차오
취화화라는 여자는 기녀 출신으로 류라오신의 여자였다, 아버지인 류씨네 영감 나리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류씨네 영감 나리의 죽음과 본처가 죽고, 그 아들인 류라오샤의 여자가 된다. 뿐인가, 류씨 집안의 유일한 혈육인 류천차오를 낳아 류라오샤에게 아들을 안기지만, 실상 천차오의 아버지는 천마오다.
취화화라는 여자를 축으로 이루어진 한 세대의 가계도, 쑤퉁은 작중 화자의 말을 빌어, 가계도가 여성 생식기의 신비 앞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취화화를 중심으로, 지위와 부를 거머쥔 류라오샤... 그는 아들 "연이(백치)"를 낳기 전까지 네 아이 모두 물고기와 같은 기형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 아이들은 물로 보내졌다. 류라오샤가 가진 지위와 부는 '성적인 힘'을 갖추지 못한 부분적 권력이었다.
반대로 천마오는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개 취급'을 당하는 류라오샤의 '종'이었으나, 섹스어필한 외모와 타고난 수컷 기질을 가진 사내다. 그는 부와 지위는 없었으나, 수컷으로서의 권력은 가진 셈이다. 그는 이를 이용하여 '천차오'를 낳게 되고, 천차오의 생부가 '천차오'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류라오샤마저 이미 알고 있는.
가계도만큼이나 혹은 더 매혹적인 소재가 있으니, 바로 '양귀비'다. 류천차오와 풍양마을은 세계는 '양귀비'의 출현으로 현저히 갈린다. 양귀비 이전의 시대가 리얼리즘이라면, 이후의 시대는 초현실주의 되시겠다. 시대 상황도, 주인공들의 정신세계도....
또 하나, 등장하는 소재, 천차오의 형인 '옌이'라는 백치는 늘 '배고파, 찐빵줘, 죽여버릴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찐빵을 훔쳐 먹다 광에 갇히고, 그는 늘 살의에 불타 있다. 심리적 허기짐은 동물적 살인본능과 짝을 이루어 등장하다, 천차오는 양귀비 이후의 시대의 신비로운 냄새에 현기증을 일으킨 어느 날, '죽여버릴 거야'를 외치며 나무칼을 들고 쫓아오던 '옌이'를 참혹하게 죽인다.
그 이후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향과 색깔의 뒤섞임. 찐빵 --> 테니스공 --> 굴러다니는 눈알로 변주되는 동그란 것...
1949년 중국 공산당 혁명, 계몽주의적 인간의 본성을 전제로 시작이 된다. 거기에 끼어든 양귀비(아편), 풍양마을 사람들의 동물적 이기심. 단지 그것은 지주 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천마오가 느닷없이 지주를 타도하는 '혁명 위원장'으로 변신을 하지만, 그는 결국 류라오샤을 범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 중편 정도 되는 책 속에 들어 있는 많은 회화적인 요소들, 상징들, 내러티브들... 다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매혹되었다...라고 밖에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철저하게 동물적인 가족사 혹은 한 세대...가 이렇게 매혹적일 수도 있구나...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싶다. 장편 '쌀'에서 펼쳐지는 자매 간의 다툼(성적인 측면과 모든 면에서)이었다면, '양귀비의 집'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띈다.
그러나, 피로 살로 섞였던 모든 사람이 마지막 순간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유전자는 그래도 살아 남겠군...했는데, 진화론의 시각에서 보면 쑤퉁은 끝까지 밀고 나가진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류천차오'가 살아 남아 천마오의 '성적 권력'의 대물림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너무 처절하게 '사실적이어서' 양귀비 이후의 시대의 신비로움은 모두 사라지고 말겠지. 이야기 완성도의 차원에서 보면 싸그리 죽는 것이 더 아름답다.
빠른 시간 내에 읽고 정리하려고 하니.. 늘 정리가 아니라 늘어 놓는 것이 되어 버리는군... 아, 놀고 싶다... '백수생활백서'라는 소설 생각나네. 책 읽는 것으로 생을 소모하던 그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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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를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중국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쑤퉁이 아닌가 싶네요. 그전에도 그의 작품을 몇편 읽었지만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만나다보니 그의 작품을 접할때마다 신선한것 같아요.
이번 소설은 터프한 제목과 표지디자인으로 눈길을 끌더니 그 느낌만큼이나 스토리도 무척 터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쌀'을 연상케 한다고 할까요. 무척 거칠지만 그래서 강인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애증이 느껴졌습니다. 쑤퉁의 글을 읽으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중국인들의 생활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난번에 '홍분'에서는 중국에서의 여자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이번소설에는 남자들의 삶, 아버지와 아들에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어요. (물론 '1934년의 도망'에서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보면 때로는 무척 잔인할정도 폭력과 폭언이 오고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습고 때로는 안타까운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그다지 편하게 읽을만한 소설은 아닌것 같아요. 하지만 이 책은 그 불편함이 큰 매력인것 같습니다. 쑤퉁과 중국근대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소설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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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나는 어둑함 바의 기운이 넘쳐나는 도시를 가로질러 줄곧 내달렸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나를 부르며 쫓아왔다. 그것은 엄청나 힘으로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깨달았다. 내 뜀박질은 일종의 도망이었다. - 1934년의 도망에서
* 우리의 삶은 모두 도망일지 모른다. 어릴 때는 희망과 욕망, 사랑과 꿈을 쫓아가는 달리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도망, 저질러 놓은 실패에 대한 도망,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도망, 쫓아내지지 않는 서둘러 쫓아오는 저 세월에 대한 도망 말이다......
어떤 이야기들을 읽는이에게 불쾌감과 고통, 슬픔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런 이야기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일까? 그 불쾌감이 그 고통이 그 슬픔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불쾌감도 고통도 슬픔도 결국에는 끝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것도 아니라면 그 불쾌감의 끝까지의 가보고 말겠다는, 그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삶은 어떠한가? 우리들의 삶이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고 모멸감을 주며 고통을 주고 슬픔을 줄 때 조차도 우리들은 삶을 멈추지 않는다. 왜? 무엇이 우리를 그 모든 살 수 없게 많드는 것들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아게 하는 것일까? 우리들은 이 모멸, 이 수치, 이 고통, 이 슬픔 속에서도 왜 살아가는가?
중국 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수많은 사람, 드넓고 광활한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온갖 짝퉁과 괴소문과 상식이하의 사건들, 속아플때 생개구리를 처방하는 의사와 쓰레기로 가득한 도시, 이리저리 깸퍼스를 옮겨다니는 사기 대학, 화려한 겉모양과 장구한 역사와 거짓과 허풍...최고(古)와 최신, 최고(高)와 최저가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나라 중국. 쑤퉁의 소설을 읽다보면 바로 그런 중국이 떠오른다. 때로는 안타깝고 아름다운 삶이 그러나 또 섬뜩하고 무서운 삶이, 피비린내나는 일상이 둥둥 떠다니는 삶이, 아름다운 슬픔이 배어든 삶이, 더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비상식의 삶이, 비빔밥처럼 어울려 있는 것이다. 쑤퉁이 펼쳐 놓는 이야기들마다 각기 다른 중국의 모습, 각기 다른 중국의 삶의 모습, 각기 다른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씨집안 자녀교육기>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마씨집안 자녀교육기, 1934년의 도망, 양귀비의 집, 결혼한 남자, 네 편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상상도 어떤 예측도 상관없이 그저 눈물을 머금게 된다. 아, 지랄맞은 인생 죽기도 어렵도 살기도 어렵고 사랑하기엔 더더욱 어려운 이 놈의 인생에 말이다. 삼국지나 수호지, 영웅전이나 무협소설이 중국 소설의 전부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위화를 만나고 쑤퉁을 만나고 하진을 만나면서 중국의 현대소설들에 눈뜨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끼게 되는 건 역시 영미권이나 유럽소설보다는 중국이나 일본 소설쪽이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이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중국 작가 쑤퉁, 그만큼 매력적인 그의 소설들. 아직 중국 소설들을 만나보지 않은 당신이라면 감추고 싶고 지우고 싶은 원초적 욕망들로 씌여진 쑤퉁의 소설들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물론 그의 소설들 중 백미는 <쌀>이나 <제왕의 생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마씨집안 자녀교육기>역시 그의 역량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덧붙여 삶의 구질구질함을 싫어하는 당신이라면, 그래서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기피하는 당신이라면~ ㅡ.ㅡ;;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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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퉁의 작품 중 <이혼 지침서> 이후 두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인데 중,단편 소설 4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그런데 <이혼 지침서>를 읽을 때도 그렇지만 쑤퉁 아저씨는 나와는 코드가 영 안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위화의 작품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총 4편 중에서 표제작인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는 그래도 나름 유머스러우면서도 마지막에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고 <1934년의 도망>도 어느 정도의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었지만 나머지 두 편은 책이 아니라 그냥 글자만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이 되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중국 근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 이런 평가를 하기에 부적합할지도 모르겠으나, 지극히 개별적인 군상들의 일상과 사건들을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작품마다 보여지기는 하지만 전체로 확대하여 이념화나 체계화를 시키기에는 아무래도 좀 무리가 따르는 설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도 좋고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막장 설정도 나쁘지는 않지만 막장이 그냥 막장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함은 포기하지 않고 책을 끝까지 읽었던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쑤퉁과 단편. 나에게는 썩 호감가는 조합이 아니다. |
| 소설집의 매력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집은 아니었다. 차라리 ‘마씨 집안 자녀 교육’만 있다면 좋았을 텐데, 다른 소설들이 지루하다. 위화와 함께 중국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쑤퉁이라고 하는데 이번 소설집은 좀 실망이다. 힘들게 읽은 끝에 ‘마씨 집안 자녀교육기’만 재밌게 봤다. 중국소설만의 왁자지껄함이 돋보이는데 다른 것들은 왜 이리 구질구질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