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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로써의 탐험을 몹소 실천한 살아있는 이시대의 아니 이제는 전시대의 저널리스트 표지의 눈빛은 그를 매섭고 사납게 보일지언정 그의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2008년 10월 4일 생일날 몽골-알타이산맥 최고봉인 몽하이르한울 8부 능선을 넘은 직후 조난하여 현재 불귀의 몸이 된 그를 사람들은 저널리스트계의 신화라고 부른다. 저널리스트는 '직전 과거'를 최단시간에 가장 사실에 가깝게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해야 하는 장애물 경주가다. 사실과 사안을 가상적인 모형으로 바꾸는 일은 신기루를 그려내는 일처럼 어렵다. 내가 초기부터 실천하려고 노력한 현장주의 리얼리즘은 당대의 어두운 정치상황 속에서 씨앗이 자란 것이다. -본문 중에서- 책의 필자는 사실적인 저널리즘에 입각한 탐험에 몰두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며, 국내의 형사사건의 어두운 비밀을 파해치기 위해 잠복수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는 최후의 한순간에도 사실적인 탐험에 입각한 저널리즘을 포기하지 않는 불귀의 의지를 보여준다.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저널리스트의 신화라 불리는 사내의 고민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또 현재 현역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많은 사람들에게 저널리스트의 '탐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귀감이 될 수 있는 보배와 같은 책임을 조심스레 강조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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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는 무엇인가. 단순히 신문에 기사글을 올리면서 사회적인 이슈나 쟁점을 보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대학생 웹진 '바이트'에서 5기 인턴기자를 하였다. 기자생활이란 고달프고도 힘든 것 같다. 단순한 정신력과 체력만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집착과 현장에 대한 모험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안병찬씨는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의 모험이라는 책을 통해 저널리스트의 현장 취재에 대한 고달픔과 그에 따른 값진 경험들을 자신의 행적과 취재 기사들을 통해서 서술하였다.
격변과 사변, 분리와 참여의 모순 운동을 하는 저널리스트 안병찬. 그에게 저널리즘의 첫 자극제는 신문의 정론성이었다고 한다. 이승만 독재정권 말기이던 당시에 대학 기숙사에서 3년 동안 구독한 '경향신문'은 정치적 탄압 속에서 정론적 야성을 발휘하는 자극적인 저널리즘으로 그의 마음에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학생 시절 저널리즘에 대한 감명과 이성이 뇌리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상큼한 향기를 넘어서 시큼함을 느낄 정도로 신선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그는 언론고시의 문을 통과하여 당시 장기영 발행인이 선도하는 '한국일보'의 자유주의적 사풍에 젖어들었다고 한다. 편집국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는 '기자의 계단, 구보의 계단'이라는 장 발행인의 슬로건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젋은 저널리슽으를 자극하고 고무하는 격문이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는 자체가 자유여야 한다. 현장과 취재는 저널리즘의 자유적인 사풍을 바탕으로 저널리스트를 완성시키는 것 같다.
어용 언론의 절망이라고 하였나. 그는 사건 취재를 하던 중 맨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기자실이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의나태와 비리를 키우는 기자실 풍토를 경험한 그는 미력으로 세 차례에 걸쳐 기자실 및 기자단 철폐 운동을 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또한 진퇴유곡이라 하였던가. 당시 언론사 내부는 언론자본과 편집진이 한편에 서고 일선 기자들이 이에 맞서는 해괴한 내부 분열의 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장이 문체를 만든다. 그는 사건기사를 시작으로 사이공 최후의 새벽과 레바논과 시리아 29개 검문소를 통과하는 취재 전선기사를 거쳐 로디지아 최초 입국 취재기사를 통해 저널리스트의 화맥을 깊이 짚어가고 있었다. 초곡리 27년 추적기와 부통화 감각으로 본 중국, 그리고 다시 찾은 베트남 등을 통해서 기획 취재 기사의 면모를 보여주어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을 보여주었다. 그는 냉철한 사고와 논리적인 문체를 화려하지 않고 현장감있는 문체로 살려내는 저널리스트이며, 선후배들에게 있어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위로와 존경을 같이 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갖췄다.
그는 조부인 위단 안숙이 <민 충정공 영전에 부치는 글>에 담은 다음 대목 앞에 숙연해진다고 한다. "오호라!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는데 그 죽음이 진실로 마땅히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면 도리어 사는 것보다 옳은 것이니, 이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밟고도 제 목숨을 돌보지 않았던 까닭인 것이다." 그 추상과 같은 기개, 춘추필법 앞에 그는 저널리즘의 역정에서 무었을 했는지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의 탐험이란 책은 단순한 기자들의 현장취재와 특파원 생활을 보여주고 소개해 주는 책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생활적인 고단함과 현장 경험적인 분위기를 사실감있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냉철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이며 때로는 이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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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글쓴이의 언론관과 지난 날의 취재 과정과 기록을 엿볼 수 있었다. 참된 문장의 근거는 '사실'이라는 그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책 속에 소개된 기사들은 대부분 내가 태어나기 전 이거나 어렸을 때의 시기였는데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글은 스티븐 호킹 박사와의 인터뷰였다. 세계물리학계의 거장, 그의 재치있는 유머감각이 인상깊었다. 아무튼 글쓴이는 저널리스트로서 현장주의 리얼리즘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기자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언론의 역할이 사회에 대한 공정한 감시자라고 한다면 요즘의 언론 신문들은 조작이 난무하며 찌라시 수준의 글들이 많아서 차라리 신문을 안 보는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들 정도다. 책 구성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첫 장에 나의 사망기사로 시작한다. 글쓴이가 가상으로 자신의 사망기사를 써 본 것이다. 마치 자서전처럼 말이다. 그 다음 나오는 내용은 글쓴이의 언론관이라고 할까? 이 부분은 '현장이 문체를 만든다.'라고 요약되는데 글쓴이가 추구하는 현장주의 리얼리즘을 대변하는 문장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리얼리즘의 서사를 좇아서 구도자처럼 헤맸다. 저널리스트는 험난한 리얼리즘의 바닥에 몸을 갈아야 하지만, 거기로부터 또 다시 자신을 빼내야 하는 가혹한 현장에 산다고 말한다. 나는 그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써나간 현장기록이 때로는 역사보고서나 기록문학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 끝에 내가 기착한 것이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이다.-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론, 지난 날들의 기사들과 그에 대한 작가의 짤막한 회고를 읽을 수 있다.
르포르타주(reportage):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 신문의 보도기사와 기록문학 사이의 영역을 메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도 '기자의 르포(report)'와 '소설가의 르포'가 독자적인 특색이 있음을 강조하는 설도 있어 그 한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자료: 두산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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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혹은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고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 속에서도 대중에게 정보를 취합하여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20세기 후반에 급박하게 변화하고 전개된 세계사의 상황과 권력의 압력으로 골조부터 흔들렸던 한국사의 중심 속에서 저널리스트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외줄을 타는 것보다 아슬아슬하면서 매일 매일이 긴장감이 엄습하는 나날들 이었을거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의 곡절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을 표방한 저널리스트 안병찬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혈혈단신으로 베트남전쟁의 막판에 이르기까지 부닥친 그 엄청난 열정과 혈기가 그러하였고 종족의 근원지라는 몽골,알타이산맥,고비산맥을 돌며 취재한다는 엄청난 계획을 이룬 불굴의 의지가 그러하였다. 7-80년대의 혼란스러운 한국사의 속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올바른 길을 고수했었다는 것은 그의 정신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은 책의 서문이었다. 마치 플래시 백으로 그의 일생을 그리는 듯하며 ‘안병찬’이라는 인물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는데 이는 마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홀로 세상과 마주했던 생택쥐페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고비-알타이-몽골을 잇는 경로를 홀로 돌면서 민족의 근원을 찾는 여정을 떠났던 그의 모습은 마치 깊은 심연을 탐구하는 학자의 자세와 한길만을 고집으로 가는 구도자를 닮아있다. 끝없이 덮여있는 눈속에서 그가 보았던것은 무엇이었을까. 춥고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속에서 그는 평생 벼랑끝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던 '기자'라는 타이틀을 떼어버리고 자기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 이미 그는 '기자'라는 직업적 명분내지는 한계를 넘어섰던것 같다.
안병찬씨는 중국통으로서 상당기 초창기에 유학을 다녀왔다. 그가 남긴 기사들을 쭉 검토해본 결과 중국문화권에 관련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베트남전쟁의 막판까지 취재한 현장기사들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역사적 보고로서의 가치로도 충분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자신의 무능력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사건이었던 베트남전을 다 관찰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것이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20,30년 그리고 현대의 베트남까지 지속적으로 관찰해 온 기사들은 한 나라의 변천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현대 베트남의 엄청난 발전가능성과 역동성을 알고 있기에 이는 더욱 신기하기도 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는 20살의 나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지워주는 것 같았다. 사명감과 투철한 직업의식, 의지력등은 어떤일을 하던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20살의 겨울에 약간의 길과 빛을 보여주었던 책이었다.
다만 거슬렸던것은 책을 읽다보면 마치 안병찬씨가 돌아가신 분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서문은 마치 그가 눈속에서 실종사한것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데 생존하고 계신 본인에게 상당한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