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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한동안 높았었다. 하지만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던 과거를 향한 관심이 최근에는 많이 사라진 듯도 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변의 국가들이 식민사관이나 한족 중심사관의 잣대로 우리의 역사를 들출 때마다 ‘욱’하기에 급급했을 뿐, 체계적으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출판사는 본 책이 ‘발해사를 당의 모방 혹은 위성국으로 보지 않으며 일본과의 외교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개성 있는 독자적 역사로 다루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저자는 말갈족 중심의 국가로 당나라의 속국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선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사관과는 다른 입장을 보인다. 또한 ‘천왕’이라는 명칭에 대한 그의 의문제기를 통해 그가 과거 많은 일본학자들이 보여준 사관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발해국왕에게 아뢰어 묻는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고켄 천황의 새서에는 “계서를 살펴보니 신명을 칭함이 없다”며 계서에 신하임을 의미하는 표현이 빠져 있음을 지적했다. 게다가 “『고려구기』를 찾아보니 고구려의 상표문에는 고구려는 일본의 왕가와 형제 사이이고 군신의 관계에서 충성을 다해 왔다고 되어 있다. 이전의 사자를 통해 칙서를 보냈는데, 이번에도 역시 신명을 기재한 상표문을 가져오지 않은 것은 예에 어긋난다”며 질책한 것이다. (p 60-61) 일본의 율령 관료들은 고구려가 이미 당에게 멸망되었던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발해가 등장한 후 이를 고구려의 왕가가 고씨에서 대씨로 옮겨간 것이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므로 계속하여 일본에 조공하는 국가라고 여기며 조공 형식을 갖춘 외교를 강요하였다. (p 120) 이 내용을 보면 일본이 발해를 고구려의 부흥으로 파악하고 군신관계로 해석했다는 식의 도출이 가능하다. 물론 저자에 의하면 일본 조정의 이와 같은 관점은 발해 대흠무과 취했던 우호적 관점과 크게 달라 후에 알력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위 문장을 살펴보자. 고구려가 일본에 신하로서 예를 다했으니 고구려의 부흥이라 할 수 있는 발해도 일본을 섬겨야 한다는 식의 도출이 가능해진다. 언제 고구려가 일본을 섬겼던가? 고구려가 한 때 일본을 천자로 섬겼다는 식의 전제가 깔리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논리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자는 발해의 역할을 당과 일본 사이의 ‘중계자’로 한정 짓는다. (그것도 발해라는 국가가 점차 강성해지고 있던 대흠무 시절에) 발해의 역할이 일본의 견당사 귀국이나 파견을 호송하고 당 조정의 정보를 일본에 전달하는 것으로 국한되었다는 식의 해석을 올바른 해석이라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는 견일본사가 발해군왕이라고 칭하는 새서를 일본에서 받는다든가, 이 부분 역시 마치 발해가 중국의 한 ‘군’에 불과했으며 일본을 상전으로 모셨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발해가 고구려적 요소를 기본으로 출발했으나 추후 당풍(唐風)으로 변화해 갔다는 일반적인 우리의 이해에 저자의 이와 같은 시선이 더해질 때 발해는 독자적인 국가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즉, 초창기에는 일본 치하에 놓여 있던 고구려와 그 성격을 같이 했으며 이후 당의 문화, 정치, 사회를 본받아 당에 종속적인 국가가 되어갔다는 식의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본 무녀 11명을 당 조정에 발해가 헌상한 사건에 대한 저자의 해석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무녀 11명이 순수 일본인이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저자는 이 사건이 발해가 ‘소제국’ 일본을 지향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당시 국제 질서의 중심은 결코 일본이 아니었다. 발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상황에서 저자의 상세한 글은 발해에 대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언제나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는 법인가 보다. 과거 어느 시점에 일어난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할지 몰라도 이를 해석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저자의 목소리의 옳고 그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몫일지도 모른다. 문득 우리의 역사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본 그리고 중국 인들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과거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더 이상 일어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대신 살고 죽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전투가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진 쪽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조리 잃는다. 이 어찌 살벌하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