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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남북국시대가 있었다고 적혀있다.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북에는 발해가 있었던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이후 고구려 부흥운동의 연장선에서 698년에 건국을 했다. 그 후 넓은 영토를 가진 강력한 국가로서 존재했다. 그런데 그렇게 강력했던 국가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 역사 문헌에 있는 말해멸망의 모습은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발해멸망이 백두산의 화산폭발 때문이었다고 한 TV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정말 발해는 백두산 화산 폭발이 원인이 된 것일까? 진재운이 쓴 <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산지니.2008년)는 발해의 멸망과 백두산 화산 폭발에 관해서 화산학과 같은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하고 역사서를 해석하면서 이에 대한 답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많은 화산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10세기에 백두산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화산폭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폭발의 증거는 백두산 부근은 물론이고, 동해를 건너 일본 동북부 지방인 아오모리 현에서도 발견된다. 이 지방의 유적지의 딸을 30센티미터 가량 파헤치자 아래 위 흙과 다른 비교적 밝은 색을 띄고 있는 지질이 발견된다. 연구결과 화산재 층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 화산재는 일본의 화산에서 나온 것과는 성분이 전혀 다르고, 그 지질에 대한 시대 측정을 해보니 지금으로부터 약 일천 년 전의 화산폭발 흔적이었다. 이를 연구한 일본학자는 이 폭발이 발해멸망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백두산 화산폭발이 정말 지난 일만 년 이래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면 과연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연구를 했다. 그 결과는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로 알려졌던 1815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 폭발의 3배 이상의 규모였다고 한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섬에 살고 있던 주민 1만여 명이나 죽게 했으며, 화산재가 햇빛을 가리면서 열사의 섬에 추위가 찾아와 약 10만여 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피해에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분출된 화산재는 34킬로미터 이상의 성층권으로 치솟으면서 기류를 타고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화산이 폭발한 다음해인 1816년 유럽 전역은 ‘여름이 없는 해’로 기록되었다. 미국에서도 매우 추운 여름이 출현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폭발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원자폭탄 6만 개가 동시에 폭발한 것과 맞먹는다고 하니, 엄청난 충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백두산 화산폭발은 탐보라 화산의 3배 이상이었다니 정말 놀랄만하다. 이상한 점은 이런 큰 사건이 왜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 것은 진실인 것은 확신한 것인데, 이는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당시 주변 정세의 복잡성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10세기 동아시아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보다는 당시 이 지역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변동의 과정에 있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10세기의 동아시아의 모습을 보면, 중국은 5대10국 혼란기에 있었으며, 동북아에서는 발해의 멸망과 요나라의 건국 등이 일어나는 등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또한 한반도에서도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쳐 고려가 건국되었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서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거란이 세운 나라의 역사서인 <요서>에는 발해멸망에 대해서 ‘이심(離心)’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민심이 등을 돌렸다“나 ’내부적 갈등이 있었다‘로 보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은 내분으로 인해 민심이반이 발해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멸망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구결과 백두산 화산 폭발은 발해가 멸망한지 10년 정도 뒤로 추정하고 있다. 926년 발해가 멸망되고도 부흥운동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먼저 후발해가 탄생했고, 그 후 정안국을 세워 발해 부흥운동은 계속된다. 즉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요나라)은 효과적으로 발해를 다스리지 못해다는 것이다. 부흥운동 중에도 발해는 각국에 사신을 보낸다. 그러나 936년 이후 사신의 기록은 18년 뒤인 954년에 가서야 다시 등장한다. 즉 후발해는 매년 후당에 사신과 조공을 바쳤는데 유독 936년 이후부터 18년간의 기록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후당으로 가는 길이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하여 막혔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진재운이다. 그는 학자가 아니라 기자다. 부산경남의 민영방송인 KNN의 기자로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백두산 폭발과 발해멸망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학자가 아닌 사람이 이런 전문적인 책을 쓴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다. 저자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관련 학자들과 인터뷰하고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분석하고, 게다가 직접 자신의 발로 여러 곳을 취재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다. 화산학을 비롯해 여러 자연과학분야의 연구 결과를 활용해서 역사학에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어느 정도는 채워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내용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짐짓 모르는 척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만으로도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나머지 일은 역사학자들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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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화산(Supervolcano) 은 말 그대로 일반적인 화산보다 폭발력이 거대한 화산들을 의미한다. 초화산도 폭발 규오메 따라 등급이 나뉜다. 초화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8의 경우 단순한 폭발이 아닌 지구 기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질시대에 남아 있는 가장 최근의 폭발은 인도네시아 토바화산으로 74,000년전 폭발하여 빙하기가 왔고, 이 때 구석기인의 90%이상이 멸종되었다. 남아 있는 소수의 인류의 후손은 혈통이 비슷해지게 되었다. 오래된 노래처럼 우리는 하나인것이다. VEI8까지는 아니지만 VEI7급에 해당하는 화산이 폭발할 경우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게된다. 지질학적으로 기록된 것 중 중요한 것이 세계적으로 20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 2~3건이 역사시대에 벌어졌다. 한건은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화산의 폭발로 인도네시아 주변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을 뿐 아니라 다음 해에 잠시 지구전체에 한냉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또하나의 화산 폭발이 우리의 영산 백두산이다. 백두산폭발과 발해멸망이 비슷한 시기라는 것에 착안한 필자는 백두산 폭발에 대한 다양한 조사와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 또한 발해의 역사를 심층 연구하여 두 연구결과를 엮어가게 된다. 이제 마지막 단추만 연결되면 된다. 바로 "백두산의 폭발로 그 지역에 피해가 왔고 발해가 멸망했다."라는 결과만 나오면 모든것이 완벽하다.
그렇지!! 거의 다 되었다.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가 멸망한 것이다. 마지막 신의 한수가 필요하다. 연도를 확정하자!
아뿔사. 938년이라니......발해멸망은 926년인데.....백두산 폭발이 발해멸망 이후라니... 진재운이라는 발해역사와 백두산 폭발에 심취한 저자는 두 사건을 묶으려 했지만 엉뚱한 연도로 멋진 그림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로 멋진 책 한권은 얻었다. 아뿔사. 938년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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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발해가 함게 엮여있다니. 연관성을 짓지 못한 부분이다.
화산폭발로 주목되고 있는 백두산에 발해의 멸망이 합쳐지니 더욱 놀라울따름.
당연 세간의 주목을 받을만한 책이다.
백두산과 장백산에 대한 신경전 역시 의아하면서도 분하기도하고.
관심이 없었지만, 관심을 둬야하는 부분이 되어버린 백두산. 그리고 많은 자료가 없었
던발해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1년간 촬영한 내용이 고
스란히 글로 남겨져있다.
그나저나, 나 아직 백두산도 못 가봤는데 정말 터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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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상상만 해도 겁나네요. 그런데 실제로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는데요. 물론 백두산은 사화산이 아니라 휴화산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폭발할 수도 있지만 조만간 그것도 4~5년쯤 후일 수도 있다고 하니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화산학으로 풀어본 발해 멸망의 진실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발해는 갑자기 왜 망했을까? 백두산이 폭발했기 때문은 아닐까? 1천 년 전 백두산에서는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직접 현장 조사를 통해 이 폭발을 입증하고, 이것이 발해 등 당시 동북아 정세에 끼친 영향을 여러 문헌과 과학적 조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1천 년 전 백두산 화산 폭발이 가지는 의미를 발해사와 결합하면서 여러 가설이 있는 발해 멸망설에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사실을 넘어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백두산 천년분화와 발해 멸망과의 관련성 구체적인 증거 제시
고구려가 668년 멸망하고 그 땅 위에 30년 만에 세워진 발해국은 698년부터 926년까지 229년간 존속하였던 왕조다.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고구려 최강성기 영토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 나라이다.
![]() 고온의 뜨거운 화쇄류가 무서운 속도로 지나간 자리에는 이처럼 살아남은 나무들을 보기 힘들다.
저자도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발해 멸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갖고 출발하고 있다. 그 가설을 여러 과학 실험과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하나하나 밝혀나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화산 폭발설과는 달리 이 책은 발해 멸망의 원인이 화산 폭발 직후가 아니라 멸망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발해 유민들이 활약하고 있던 시기였음을 제기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저자가 이 책에서 보다 정치하게 자연과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문헌이 없는 상황에서 화산학적 접근을 통해 진실을 재구성
저자는 1천 년 전 백두산 거대 분화를 연구하던 한·중·일 학자들과 공동으로 화산 폭발의 명확한 증거 찾기에 나섰다. 1천 년 전 백두산이 거대 분화를 일으킨 것은 사실일까? 그리고 폭발했다면 당시 발해와 신라, 거란 등 동북아 주변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뜨거운 화산재를 들이마시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이 개도 뜨거운 화산재 때문에 재로 변했다.
한, 중, 일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 조사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중국에 이어 일본 아오모리와 센다이, 러시아 캄차카 반도, 몽골 홉스골 그리고 인도네시아 메라피 화산에 대한 직접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얻은 답은 백두산에 한때 전 지구적 환경에 충격을 가한 거대한 분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발해 멸망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가설을 여러 증거를 제시하며 풀어나가고 있다. 1천 년 전 일어난 백두산 폭발과 발해 멸망의 깊은 관계를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이나 일본과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 백두산 화산재층의 증거자료들을 통해 밝혀간다.
기록과 문헌이 없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오랜 세월 만주벌판을 호령하다 사라진 엄연한 역사다. 그리고 백두산 또한 1천 년 전 거대 분화라는 화산의 역사를 간직한 채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 교집합을 밝히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또 다른 열쇠가 될 수 있다. 단지 기록과 문헌이 없다고 해서 역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백두산 관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펄펄 끓는 온천수에서 삶은 계란을 맛보앗을 것이다.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난다는 것 자체가 백두산의 지하 마그마가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